Letter from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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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처럼..
내 손톱은 참 못 생겼다.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 아니면 내가 손톱을 예쁘게 깎는 법을 몰라서 뭉뚝하게 깎다 보니 그렇게 못 생기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손톱은 내가 봐도 참 한심할 정도로 못 생겼다. 오늘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말고 손톱을 깎았다. 분명 얼마 전에 깎은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잔뜩 길어져 지저분해져 있네. 손톱을 깎다가 문득.. 이렇게 매일 조금씩 자라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틈에 이만큼 길어져 있는 손톱. 깎아도 깎아도 또 자라나 있는 이 손톱. 불현듯 우리네 삶에도 이 손톱 자라는 듯 한 에너지가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제 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당시엔 죽을 것 같아, 아프고 힘들어 숨 쉬는 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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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올해도 이제 보름 남았구나. 올해의 365일에서, 350일여가 지나고 있는거야. 오늘로 나의 수인(囚人) 생활은 54일 남았고... 하루 하루 셀 때는 꿈처럼 아득하더니, 어느 덧 저물어 가는 해를 쫓고 있어. 요즘 나의 나날은 무척이나 분주해. 회사 일도 바쁘고, 개인적인 일도 바쁘고.. 하지만 그렇게 바쁜 중에도 투덜거림이 없어진 나는, 분명 뭔가 새로운 에너지로 뒤덮였나보다. 며칠 전 다짐하듯 말하던 그 에너지가 말야. 오늘은 맘을 추스리고.. 그동안 잠시 소홀했던 나의 일들을 꺼내들어 처리 하고 있어. 그러고 보면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들은 미루고 있었는가봐. 해야 할 일이 어찌나 많은지.. 이거 며칠 고생 좀 하겠는걸? 그래도, 올 한 해는 나름대로 잘 보낸 모양이야. 딱히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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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나는 긴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어. 이 레이스는 결코 짧은 시간에 끝나지 않아, 42.195km 따위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을지 몰라. 활활 타오르다 제풀에 지쳐 덩그러니 흉측한 재만 남기고 타 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렇다고 뜨듯미지근하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는 일은 없도록. 긴 이정에 맞는 적절한 안배로 늘 한결같음을 유지하도록, 나는 바라고 또 바라고 있어. 나는 아직 턱도 없어서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나도 모르게 실토하고 말았던 것. 한편으론 너무 즐겁고 유쾌하지만 한편으론 또 그만큼의 걱정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어. 늘 지금만 같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사람 사는 인생살이 그렇지 않음은 너도 나도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니까. 유쾌한 영화같지 않은 험난한 인생의 질곡. 그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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杞憂
그의 글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두려워진다. 생소한 그 표현이 두렵고, 간간이 등장하는 낯선 인물들이 두렵고, 그 가운데 내가 모르는 그의 모습이 두렵고, 심지어는 몰래 읽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니.. 참, 중증이다. 그의 번민과 아픔을 나누어 질 수 없음이 두렵고, 그의 지난 시간을 이해할 수 없음이 두렵다. 모르는 얘기들로 가득한 그의 글들이 언젠가는 글자 하나 하나 아로히 새겨질 것 같아 두렵다. 그러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내가 두렵다. 부족함을 부족함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언제나처럼 또 억지를 부리고 싶은 모양이다. 또 그렇게 억지 부리고, 내가 아닌 내가 되어 감정에 휘둘릴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 빠져 나갈 생각조차 없는 이 두려움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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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眠
뭔갈 써야지.. 하며 앉은 모니터 앞에서.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앉아만 있다. 운율이 살아 있는 통통거리는 운문을 쓰고 싶은데, 나는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런 걸 즐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글은 언제나 헛되고 장황하고 지리하다. 꼭 내 사는 모습 처럼. 이미 지난 일에 대한 후회는 말할 것도 없이 시작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며,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밤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되어야지.. 늘 말로만 읊조리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 때가 되면, 자신 있게 안아 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다짐처럼 내게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싫어 거울에 눈도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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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곤하구나..
어제는 회사 회식이 있던 날이어서 일찍 업무를 파하고 회사 근처의 고기집으로 몰려 갔더랬지. 난 술을 먹지 않으니, 회식이라고 뭐 대단할 것도 없는 저녁식사에 지나지 않지만. 회사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가 무척 오래간만인 듯 해. 며칠,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에 몹시 피곤한데 혼자 빠지기도 뭐하고 오늘은 근무를 해야 하는 토요일이다 보니 집에 가지 않고 회사 근처에 사는 형네 집에 가기로 했었지. 그래서 2차, 3차도 다 따라간거야. 술도 안 먹는 녀석이 술만 먹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니 죽을 맛이더구만.. 뭐 딱히 재밌는 얘기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술 먹은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뭔가가 있었는지 참 재밌게 놀더라구. 물론, 나만 빼고. 그렇게 자정을 넘고 1시를 넘겨서야 자리가 파하는데.. 이리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