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
푸름이가 태어났다.
2019년 1월 16일 오전 1시 55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둘째 딸, 푸름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예정일이 18일이었으니, 거의 10달을 꽉 채웠다. 출산 2개월 전부터 조산 위험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기도 하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던 지난 몇달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 생각만큼 내가 많은 힘이 되어 주진 못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여기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고맙고, 미안하고.. 얼마간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제 딸 둘의 아빠가 됐다.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몸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쳇, 가장의 무게랄까... 첫째 때와는..
-
안녕, 사랑하는 푸름아!
지난 크리스마스에 둘째 딸을 기다리면서 쓴 글이다. 산부인과의 편지 쓰기 이벤트에 지원하기 위해 썼다는 것은 비밀로.. 게으름 탓에, 푸름이가 세상에 나오고 이틀이 지나서야 부랴부랴 글을 올리게 된다. 안녕, 사랑하는 푸름아. 어느덧 예정일이 한달이 채 남지 않았어. 처음 네가 엄마 뱃속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 부터 지금껏, 우리는 딸을 둘이나 갖게 된다는 생각에 몹시 설레고 신나 하고 있어. 재미있게도, 엄마 아빠의 주변에는 딸만 둘 가진 친구들이 많아서 많은 얘기를 듣곤 했거든. 그럴때 마다 ‘딸 둘을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 하며 ‘우리도 딸이 둘이면 좋겠는데’ 했었는데... 기적같은 선물이 온거야. 엄마 뱃속에, 너란 선물이. ‘잘 부탁해’ 언니가 태어날 때 어쩔 줄 몰라 했던 것과..
-
연목구어
*연목구어(緣木求魚) 학창시절 저 사자성어를 배웠을 때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대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니,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세상에 저렇게 대책없는 불합리함이라니.. 아마 고사나 속담, 사자성어가 으레 그렇듯, 과장과 비약으로 교훈을 주려는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그 허무맹랑한 연목구어를 내가 하고 있던 것 같다. **이 길 끝엔 무엇이 있을까?설레는 맘 반, 두려운 맘 반으로 늘 채근하며 달려 오던 차였다. 하지만 설레는 맘도, 두려운 맘도 점점 사라지는 지금..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냉정히 돌아보면.. 이 길은 내가 원하던 그 길도 아니었고,이 길을 함께 간다고 믿던 사람들은 그 길을 갈 생각이 없었고,무엇보다,..
-
사랑한다
결혼하고 맞는 3번째 결혼 기념일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우리 부부는 무려 10 시간의 시차 -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떨어져 버렸다.마침 사랑이는 돌치레라도 하는지 무척 아픈 중이어서 가뜩이나 무거운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생각해 보면 엊그제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십수년은 된 것 같기도 하고.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속상하고 슬픈 일들은 만들지 말자 했지만,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때론 다투기도 하고 때론 서운해 하기도 한다.수행이 모자란 탓이기도 하겠지만, 삶이 늘 그런 것 아니겠는가. 가끔 예전 우리 사진을 보면, 그새 우리 퍽도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고작 몇년이 지났을 뿐인데, 티가 나게 늙어 버렸어.비록 피부는 빛을 잃고, 주름은 늘어 버렸지만.그때의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지금..
-
또 찾아 왔구나...
"다 때려 치우고, 원 없이 책이나 읽고 글이나 끄적대고 싶다.." 끝모를 상실감과 무기력이 엄습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날 - 쇼파에 반쯤 누워 내뱉듯 던진 말이었다. 한창 열중이던 블로그마저 일년에 한 편 쓸까 말까 한 요즈음의 나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한때는 글 쓰는 걸로 밥 벌어 먹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장르는 수필일게다. 아니면 사설이든가.매마른 감성에 소설은 상상하기 어렵다. 기껏 쓴대도 '상실의 시대' 의 아류 따위를 벗어 나기 어려우리라.아무 결말도 맺지 못하는 허망함 뿐이겠지. 마흔을 바라보는 적잖은 인생에도 불혹을 갖지 못했다.아직도 철듦은 저 멀리인가.나는 여전히 수많은 惑을 달고 산다. 이런 글쓰기 역시 그 혹 중 하나일테다. 무엇을 할 것인가 대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와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던 즈음.나는 아내를 심하게 울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녀 계획으로 옮겨 갔던 차인데, 나는 필요 이상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원치 않노라고. 딴엔 그게 대단한 가치관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그리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얼마나 떠들어 댔던가. 아무리 민주주의고 자본주의고 하더라도 단지 3세대만 거쳐도 신분은 고착화 되고야 만다든가(그러니 낳아봐야 개돼지...), 순간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운 젊은 날이라든가(감성적인 접근이다) 하는 류의 이야기를 그녀의 앞에 마구 쏟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
-
증명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1월에 시작해 4월에 끝났으니 만 3개월이다. 따지고 보면, 내게 이 프로젝트는 3개월이 아니라 2년 짜리였다.지난 2년 동안 내 삶을 이리저리 흩어, 회사를 두 번이나 옮기고서야 마무리 된 프로젝트.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 지도 모른채,그저 세월이 시키는 대로 잊고 잊혀지고. 처음에는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이다 싶었는데,이제 돌이켜 보니 그냥 내 앞에 그 길이 있었을 뿐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2년 만에 처음 성공한 것인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것은.감격해 눈물이라도 흐를 줄 알았는데,남의 일 같은 이 기분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정도면 수고했다 어깨 한번 두드려 줄 법 한데..욕심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