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
안녕
시간이 꽤 흐른 후여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그게 언제였더라?"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니까. 작년, 그 지난 1년이 좀 어이없이 흘러가 버린지라 머릿속의 시간관념이 엉켜있어서 그렇다고 해 두자. 따져 보니 벌써 몇년이나 지나 버렸구나. 지금 생각하니 참 어렸었어. 무척이나 진지했고 심각했고, 그래서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를 먹은 것 같이 느꼈었는데 말야. 웃음이 난다. 바람이 무척 따뜻해진게.. 봄이 완연한데. 그렇게 바람 따뜻한 봄 기운 탓일까? 갑작스러운 연락에 잊고 살았던 내가 다 미안해지네. 답장을 보내면 좋으련만, 어쩐지 적절한 대꾸가 생각나지 않아. 가볍게, 아무렇지않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네. 넌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네게 보내지 못하는 답장은 이..
-
심호흡
3월 하고도 6일,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있어. 몇가지 계획했던 일들 중 얼마간은 다 해치웠고, 또 얼마간은 미뤄두고 있다. 몇몇 머리 아프던 일 중, 얼마간은 해결됐고, 또 얼마간은 여전히 골치를 썩게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날짜 지나갈 때 마다, 얼마간은 해결될 거고, 또 얼마간은 미결로 남게 될거야. 또 얼마간은.. 새로운 문제도 생겨나겠지. 차를 팔아 버릴까 싶다가, 연비 차이도 별로 안 나던데, 그냥 폐차할 때 까지 타고 다녀야겠다. 얼마간 고민되던 자동차 문제는 맥없고 싱겁게 끝났어. 아무렇게나 돌아봐도 할 일 투성이인데.. 내키지 않아 죽겠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건드리고는 있지만, 평소 일을 손에 잡았을 때의 내 작업스타일이나 속도를 미루어 볼 때.. 전혀 안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
春亂
요며칠, 부쩍 늙어 버린 느낌이다. 이러다 또 살이 빠져 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써 봐야 푸념일까봐 글 쓰는 것도 자제하는 중이었어. 그렇게 고민이 많아진 탓에 밤이면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어. 어제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말았네. 모두 잠든 밤, 누구와도 말상대가 될 수 없는 그 밤은 참 외로워. 세상에 툭.. 혼자 떨어져 나온 듯.. 언제고 내 짐은 누구와도 나눠질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져 두려워, 힘들다. 걸지도 않을 전화, 쓸데 없이 전화번호부를 이리저리 뒤적여 본다. 거기에 적힌 사람들 이름 하나하나 뇌까려 보며, 절절한 고독감을 지워 내리는 거야. 새삼스러, 새삼스러워. 정말 새로울 것도 없는 상황이고, 달라진 것도 없는 상황인데 말야. 희망이란 녀석은 아주 쉽게 자라고, 또 아주 쉽게 ..
-
3월 1일.
* 월요일, 화요일을 내내 밖에 나가 보냈어. 오늘은 삼일절. 그냥 즐거운 휴일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데 주력하기로 했어. ** 어제 부동산을 돌아 다니고 밤에 머리를 깎았어. 깎은 머리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짧은 머리가 맘에 든다. 무엇보다 씻고 나서 머리 말리는데 시간 적게 들어 좋아. ^^;; 머리가 짧으면 좋긴 한데 짧을수록 자주 깎아 줘야 하는 일은 귀찮아. 미용실 가는 일은 나이 먹어 가며 점점 더 귀찮아 진다. 한번 짧게 깎고 한 서너달 지나 또 가서 팍 깎아 주고.. 어쨌거나.. 답답해 보이던 긴 머리를 짧게 치니 깔끔해 보여 좋다. ***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긴 하지만.. 가지고 싶은 게 있다는 건, 한편으론 짜증스런 일이기도 해...
-
2월 25일
그저께부터 낮밤이 바뀌기 시작했어.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하느라 그런건데, 그러면 좀 어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어. 빤한 자기합리화 진행중이다. 일이란게 늘 그래. 막상 하고 나면 별게 아닐 걸 뻔히 아는데도, 하기 전에는 왜 그렇게 엄두가 나지 않는지.. 내키지 않는 손놀림으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만들어 나가고 있긴 한데.. 아직은 진행이 더뎌. 빨리 쳐내 버리고 다음 일을 시작해야지.. 게으름은 그만 피우자.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는 거라던 말이 있지. 끊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전히 담배 생각. 생각조차 나지 않아얄텐데.. 이제 보름도 안 됐는데 끊어야 한다는 강박과 조바심만 잔뜩해.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인데, 막상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슬퍼지기도 하고. 평생을..
-
새벽
* 일 좀 하려다 보니.. 어찌어찌 3시가 넘었다. 대충 마무리 하고 잘까 하다 요즘 글 쓰는 일이 예전같지 않단 생각이 들어 사이트를 찾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서 게시물 쓰기 창을 띄워 놓고 망설이기를 한시간도 넘게 이리저리 인터넷 뉴스도 보고, 이리저리 웹서핑도 하고. 그러다 결국은 힘겹게 타자를 놀려 게시물 두개를 써내렸다. 그리곤 다시 글을 쓰려 목록에서 쓰기 버튼을 누르는데.. 이 시간에도 누가 오는지, 분명 1이어야 할 게시물의 조회수가 늘어있다. 내가 눌렀나.. 생각하다 그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이 시간에 깨어 있는게 나뿐이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참 성급히도 자란 정체 불명의 그(또는 그녀)에 대한 유대감을 만지며 실없이 웃어 버린다. **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