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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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끝.
지리한 장마가 이젠 끝나가는 것 같아. 뉴스를 들어 봐도, 이젠 장마가 물러갔다고 얘기하고. 그런 얘길 들어선가, 똑같이 잔뜩 흐린 하늘이긴 하지만 어쩐지 구름이 슬슬 걷혀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 낮에 구청을 다녀 왔는데.. 용무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내렸어.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돌리는데도,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니 비가 참 심하게 많이 오더라. "비님, 이젠 그만 와 주셔도 되는데.." 하며 집으로 들어 왔지. 그러고 보면 참 길기도 한 장마다. 뉴스 기사에서는 46일간 이어진 장마라던데.. 한달 반동안 이어진 장마, 이건 완전 "우기" 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아, 비 참 많이도 왔어. 어쨌거나 이렇게 장마가 끝난다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이젠 무더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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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고스톱 삼매에 빠지다
우리 엄마는 요즘, 고스톱 삼매에 빠져 있다. 이제 사흘 째 됐는데, 참 재미있어 하셔. 왜 진작 가르쳐 드리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TV의 드라마 보는게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엄마에게 뭔가 새로운 재미거리를 찾아 준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다. 지난 해에, 컴퓨터도 가르쳐 드릴 겸 오락거리라도 제공할 겸 해서 컴퓨터로 고스톱 치는 법을 가르쳐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땐 오프라인으로 혼자 컴퓨터와 하는 고스톱이었어. 딴에 생각하기로는.. 웹사이트에서 로그인 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고스톱 치는 일을 엄마가 익히기엔 너무 어렵겠다 싶었지. 요즘엔 오프라인 고스톱 게임이 안 나오니, 나온지 아주 오래된 게임 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화면도 굉장히 조악하고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화투장이 너무 작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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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
뭔가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는데.. 하루가 굉장히 빨리 가 버렸어. 돌아 보면, 그래도 이것저것 처리해 놓은 일이 있긴 하구나. 나의 일이란.. 항상 시작하기 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휩싸이게 만들곤 해. 지금도 특별히 다르진 않아서.. 머리 속이 정리 되지 않아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뭘 해도 하는 것 같지 않고, 뭘 봐도 제대로 보는 것 같지 않고. 결국 첫 삽을 들면 아무 것도 아닌 걸 그간의 경험이 말해 주고 있는데도 말이지. 그래도 일 없어 걱정인 것보다 얼마나 좋아. 자고로 20대란,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달리는게 맞는 법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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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
어느 틈에 길어진 머리칼을 보면, "아, 아직 늙은게 아니지?"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곤 한다. 사실 뭐, 늙었다고 할 나이는 아닌걸. 그런데 어쩐지 머리칼 자라고 손톱 자라는 걸 보면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 보면, "아직 퇴화하는 건 아닌가봐" 하곤 해. 지난 번에도 꽤 짧게 머리를 잘랐는데, 어느 새 머리가 귀를 덮고 있어. 참 빨리도 자란다. 빨간 생각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빨리 자랄까, 내 머리는? 딱 적당한 길이로 머리칼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매번 하게 돼. 그리고 동시에,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머리며 손톱이 "왕성하게" 자라 줬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돼. 스물 여덟의 나는, 여전히 늙는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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悔而不逆
헤어진 사람과 끈이 닿는 일은, 한편으론 즐겁고 한편으론 죄스런 일이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또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지만. "그땐 이래서 내가 나빴어." "그땐 그래서 내가 나빴어." 그러다 보면... "그래, 애초에 그를 사랑한 내가 나빴어", 하는 결론에 닿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일은 언제나, 어떻게나.. 늘 내가 나쁘다. 悔而不逆,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머리 두드릴 밖에. 하기사.. 돌이킬 수 있다 해도 그 역시 그를 대할 예가 아니다만. 내내 연락 않고 살다가, 이렇게 일을 통해야만 연락을 넣는 일이 안타깝지만.. 어쩔게야, 그 역시 내 업보인걸.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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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거리.
지난 해 그만 둔 회사에서 일거리를 받게 됐다. 사실 일처리가 명쾌하지 않은 덕에 그 회사 일을 받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잊지 않고 찾아 준다는 고마움과, 항상 한켠을 차지하는 죄스러움이 결부되어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어려운 때에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나름대로는 뿌듯하다.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도움을 준다는 말이 어폐가 있기도 하다만.. 여유롭지 않은 조건에,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내 입으로 믿고 맡긴다는 말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들은 말을 옮기는 정도라면 괜찮을까? 그게 어떤 일이 됐던지 간에..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정 받는 다는 것은 내게 중요한 동인(動因)이 된다. 결국 그 믿음이 그저 입발림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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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다
담배 때문인지, 목이 쉽게 쉬는 나는..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목이 다 쉬어 버리곤 해. 다음 날 일어나면 왜 이리 목이 아플까 싶은데 그건 다 말을 많이 한 탓이지. 목이 쉬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떠들어 댈 수 있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이렇게 신나게 떠들 수 있는게 또 언제일까 싶어. 성격이 꽁한 탓인지.. 말을 많이 하고 나면, 이런 저런 생각끝에 괜한 말을 참 많이도 했구나.. 자책하곤 하는데. 그를 만나고 돌아 서는 걸음엔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참 좋아. 천성적인 얕은 생각과 섵부른 내뱉음 덕에 어찌 후회가 없겠느냐만, 그런걸 계산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즐거운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야. 또 언제까지고 그렇게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