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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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이제 그만 우물처럼 깊고 음습한 곳에서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찬 우물물과 거기에 기대 사는 푸른 이끼들만 얘기하지 말고, 밝은 곳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기쁨에 대해 얘기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우울함을 떨쳐낼 수는 없더라도, 잠시 접어두고 살얼음 같이 조심스럽더라도 그 위에 살짝 덮힌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감탄하는 법, 부러워하며 저것은 내 가질 수 없는 것이라 한탄하지 않고도. 그러면서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도, 저절로 탄성 내지르며 나에게 온 행복을 감탄하며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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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한지 어느덧 5개월이 되어 간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면 내가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는 것을 느낀다. 그건 의식적으로 변화를 갈망한 탓이기도 하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동화된 때문이기도 할거다. (단적으로 지각대장이었던 내가 새로운 회사에서는 - 정확히 말하면 프로젝트가 끝난 4월 중순 이후에는 단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 심지어 보통 30분 전쯤에 도착하는 것 : 과거의 나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새 직장에 입사하면서 내가 가장 염두하던 것은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첫 출근하던 날 아침,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보고자 했다. "네가 속한 곳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바로 너다." 말을 하기보단 듣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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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근황
* 지난 번 프로젝트 종료 후 근 한달을 내리 -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다. 간간히 뭔가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일을 한다고 말하기도 좀 민망할 정도.. 그야말로 놀고 있다. 처음엔 곧 들이닥칠 폭풍우 같은 일거리에 대비해 푹 쉬자는 생각이었다. 일 복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팔자에 이렇게 놀다니, 이게 웬 호사인가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언제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놀아 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이것도 못 할 짓이다. 역시 뭐든, 치우침은 좋지 않다. 얼마 안 지나서 무료함을 넘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대체 나를 어쩌려는 생각일까, 나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 말이지. ** 그렇지만 발 동동 구른다고 상황이 막 달라질 것도 아니다. 특히 지금은 계획된 일정이 외부의 문제로 인해 어그러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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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KER1 탐방 + 나는꼽사리다 금주5회 방청기.
- 지난 화요일, 입사 100일된 기념으로 반차를 준다기에 기쁜 맘에 오후 반차를 냈다. 거기에 지난 번 슈퍼 오픈 포상 휴가를 3일 붙여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짜리 연휴를 만들었다. 이제 또 프로젝트 시작이니, 한동안은 누릴 수 없는 호사일거다. 아무튼 그렇게 오후 반차로 연휴를 시작했다. 거기에 딱 맞는 - 햇살이 무척 좋은 날이었다. 간만에 데이트를 하려고 옥녀사와 반차를 맞췄다. 광화문으로 가 노무현 사진전을 볼까 하다 대학로로 방향을 잡았다. 한 번쯤 가고 싶었던 곳, BUNKER1 을 가 보기 위해서다. * 날이 좋아 걸을까 하다 택시를 잡아 탔다. 이렇게 날 좋을 때는 걷는 것도 데이트다 하는 나와 벌써부터 지치고 싶지 않다는 녀사. 늘 사무실에 쳐박혀 있느라 볕 쬐는 일이 드문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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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습니다. 동지들께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통합진보당 분란에 부쳐
나는 국민참여당 출신으로 통합진보당 창당 시 부터 함께 한 진성당원이다. 비록 당 가입 신청서를 재작성 하라는데 바빠서 안 했더니, 준 회원으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매달 당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말이다. - 생각해보면, 당비 납부는 따로 신청 안 해도 승계하더니, 가입신청서는 따로 받는 아이러니 ㅡㅡㅋ 여튼, 작금의 사태가 너무나 안타까워 글을 보탠다. 이 글은 통합진보당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옮긴 것이다. ================================================================================== 무릇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입장 차이에 따라 그 이유는 다 제각각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일이 당권파의 그릇된 권력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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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se
프로젝트 종료 후 그간 반납한 주말을 대신해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대휴가 사규에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약간은 눈치를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여튼 간만에 이렇게 쉬고 있다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불과 몇 달 전에는 백수 생활 이제 끝내고 싶다 생각 했는데.. 그게 뭐든 - 가지지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는가보다. 여튼 간만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이리저리 고민했다. 엊그제는 비행기 티켓도 좀 알아 보고 했더랬지.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그간 너무 피곤했는데, 또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푹 - 쉬어야 겠다, 싶다. 특히 해외로 나가면 그 자체로 고역이니.. 그냥 가까운데 바람이나 쐬러 다녀야지. 그래서 실행에 옮긴 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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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포스팅
날짜를 헤아릴 것도 없이, 어느새 두 달이 훨씬 넘었다. 회사를 새로 들어 간 후 몸이 바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더 바빴던 것 같다. 덕분에 결국 지금껏 단 하나의 포스팅도 하지 못 했다. 아무리 짤막한 글이라도 무언가 써내리려면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데, 스트레스로 꽉 찬 마음을 열어 제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입사 후 두 달 보름여를 매일 야근에 주말 특근, 가끔은 밤샘 까지. 프로젝트 말미에 들어 온 탓에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결과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이런 경우 책임, 의무 같은 것은 함께 나누고 그 열매는 나에게는 오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뭐 한 두 번 겪는 일 아니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