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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맥과이어
늦은 점심을 먹으며 TV를 틀었는데.. 케이블 TV에 "제리 맥과이어"가 나오고 있었어. 내 맘 속 오랜 명작 중 하나인 "제리 맥과이어". 그동안 보고 또 본 영화지만 - 반가운 맘으로 또 보고 있었어. 시작한지 얼마 안 됐길래 한참 열심히 보고 있는데.. 뒤통수를 텅하니 맞은 것 같았어. "이봐, 제리.. Business는 의리로 하는게 아니라고." 아.. 요 며칠 내가 끙끙 앓고 있던 게 결국은 "제리 맥과이어" 였구나.. 고2때 비가 잔뜩 내리던 날, 텅빈 극장에서 처음 본 "제리 맥과이어".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매표소 아저씨를 조르고 졸라 포스터를 몇장 얻기도 했었지. 그 후 기회가 될 때 마다 보고, 또 보고.. 대사를 외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영화의 메시지는 내게 각인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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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조별리그 3차전 관전기
우리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이자 2006년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가 된 對 스위스 전이 막 아쉽게 끝났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라는 말보다 더 어울릴만한 얘길 찾을 수 있을까? 분명 심판은 스위스에 우호적이었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 사실 절대적으로 불리한 판정 속에서 90분간 싸워야했다. 차두리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사기라며 흥분했던 것이 지나쳤다면, 적어도 그게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가 아니라는 것 쯤은 확실했다. 판정은 결코 번복되지 않는데다 오심도 축구의 일부이므로 우리는 이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패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친 우리 선수들에게 앞선 두 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오늘은 앞선 두 경기와 달리 좀 씁쓸한 관전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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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스위스 전을 앞두고
이제 2006 월드컵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 對 스위스 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토고와 프랑스 전 경기 결과에 따라, 설령 스위스에 패한다 해도 16강 행 기회가 있긴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프랑스가 동네북이 되버린 토고를 잡지 못한다고 기대할 바에야, 우리가 스위스를 이긴다는데 거는 편이 현실적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스위스를 이기는 것만이 최선이다. 어떤 경우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중에 친구에게 했던 말을 다시 써 본다. 설령 끝나고 나서 좌절을 겪게 될런지도 모르지만, 경기 시작전엔 승리에 대한 염원 만이 있을 뿐이라고. 부디 기쁨으로 충만한 가운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 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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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필요하다는 말은 무언가 가치 있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지만, 내 경우엔 일반적인 삶의 이정표에서 나의 그것이 한참 비껴나갔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짜증스럽다. 하지만 결국은 다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일 뿐이니 짜증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모든 화살과 창이 나를 향할 뿐이다. 그래도 서러운 삶 이대로 마감할 수 없는 것은, 내 최고의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그저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내게도 웃을 날이 올게다. 며칠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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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中恨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연민과 동정을 바라는 나약한 나를 보았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꿈을 꾸고 잔뜩 가라앉아 있다. 아버지가 그립다 하던 나는, 실은 아버지가 그리웠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쨌거나 내가 가져가야 할 몫이다. 삶은, 때론 너무나도 격렬한 투쟁의 연속이어서 무얼 위해 사는지 또 무얼 바라고 사는지 잊어 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가져가야 할 몫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나 말고는 대신 서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을 두고 외로운 싸움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누구에게도 인생이란 그렇게 외로운 싸움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딛고 일어 서느냐, 영영 쓰러지고 마느냐 그 차이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