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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
어느 틈에 길어진 머리칼을 보면, "아, 아직 늙은게 아니지?"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곤 한다. 사실 뭐, 늙었다고 할 나이는 아닌걸. 그런데 어쩐지 머리칼 자라고 손톱 자라는 걸 보면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 보면, "아직 퇴화하는 건 아닌가봐" 하곤 해. 지난 번에도 꽤 짧게 머리를 잘랐는데, 어느 새 머리가 귀를 덮고 있어. 참 빨리도 자란다. 빨간 생각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빨리 자랄까, 내 머리는? 딱 적당한 길이로 머리칼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매번 하게 돼. 그리고 동시에,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머리며 손톱이 "왕성하게" 자라 줬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돼. 스물 여덟의 나는, 여전히 늙는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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悔而不逆
헤어진 사람과 끈이 닿는 일은, 한편으론 즐겁고 한편으론 죄스런 일이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또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지만. "그땐 이래서 내가 나빴어." "그땐 그래서 내가 나빴어." 그러다 보면... "그래, 애초에 그를 사랑한 내가 나빴어", 하는 결론에 닿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일은 언제나, 어떻게나.. 늘 내가 나쁘다. 悔而不逆,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머리 두드릴 밖에. 하기사.. 돌이킬 수 있다 해도 그 역시 그를 대할 예가 아니다만. 내내 연락 않고 살다가, 이렇게 일을 통해야만 연락을 넣는 일이 안타깝지만.. 어쩔게야, 그 역시 내 업보인걸.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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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거리.
지난 해 그만 둔 회사에서 일거리를 받게 됐다. 사실 일처리가 명쾌하지 않은 덕에 그 회사 일을 받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잊지 않고 찾아 준다는 고마움과, 항상 한켠을 차지하는 죄스러움이 결부되어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어려운 때에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나름대로는 뿌듯하다.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도움을 준다는 말이 어폐가 있기도 하다만.. 여유롭지 않은 조건에,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내 입으로 믿고 맡긴다는 말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들은 말을 옮기는 정도라면 괜찮을까? 그게 어떤 일이 됐던지 간에..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정 받는 다는 것은 내게 중요한 동인(動因)이 된다. 결국 그 믿음이 그저 입발림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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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다
담배 때문인지, 목이 쉽게 쉬는 나는..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목이 다 쉬어 버리곤 해. 다음 날 일어나면 왜 이리 목이 아플까 싶은데 그건 다 말을 많이 한 탓이지. 목이 쉬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떠들어 댈 수 있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이렇게 신나게 떠들 수 있는게 또 언제일까 싶어. 성격이 꽁한 탓인지.. 말을 많이 하고 나면, 이런 저런 생각끝에 괜한 말을 참 많이도 했구나.. 자책하곤 하는데. 그를 만나고 돌아 서는 걸음엔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참 좋아. 천성적인 얕은 생각과 섵부른 내뱉음 덕에 어찌 후회가 없겠느냐만, 그런걸 계산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즐거운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야. 또 언제까지고 그렇게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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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를 만나다#2
박사과정을 밟느라 미국에 있는 쿠를 반년만에 다시 만나게 됐어. 지난 겨울, 비자 문제 때문에 들어 온 쿠와 만나고 꼭 반년 만이야. 생각하면 소중한 인연. 매번 잊지 않고 찾아 준다는 데 고마울 따름이지. 지난 번에 쿠를 만나고, 한껏 가라앉아 글을 썼던 기억이 나. 다시 찾아 보니, 참 많이도 가라앉아 있었구나.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그렇게 즐거운 사람을 만나는데도, 이렇게나 가라앉을 수 있다는 건...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나와.. 그 반년 동안, 역시 달라진 게 없는 그. 둘 다 똑같이 달라진 게 없지만, 나의 그것과 그의 그것은 참으로 닮은 구석이 없다. 그래서 안타까워. 잘 할 수 있을거라 말하는 그의 말에, 꼭 그래 보이겠노라는 다짐으로 눈을 맞춘다.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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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운동화 사 모으는 괴상한 취미를 버려야 해. 한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을 티셔츠 사 모으는 괴상한 취미도 버려야 해. 쓸데 없이 사서 재어 놓고 그런게 있다는 것조차 잊어 버리곤 하는 못된 버릇도 없애 버려야해. 쓸 수 있는 돈과, 그렇지 않은 돈을 구별하는 법도 다시 배워야하고. 어쨌거나 나는 지출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해. 아직 7월이 채 다 가지도 않았는데.. 이번 달 지출 내역을 보고 까무러치기 일보직전. 그나마 가계부라도 쓰니 얼마가 나가고 얼마가 들어 온지 알았지. 안 그랬으면 아예 모르고 살았겠지. 어쩌면 이렇게 돈 쓰는 일에 무감한걸까? 아아.. 나는 역시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였어... 반성, 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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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마비, 조심..
뉴스에선 한창 마지막 장마가 몰아칠 예정이라고 난리야. 그러고 보면 올해 장마는 참 길기도 하다. 예년보다 좀 늦게 온 대신, 참 많이도 뿌리고 간다랄까? 중부 지방에 300mm 가까운 비를 뿌리고 갈 것이라는데, 더 큰 피해가 없길 바래야지. 정말 요즘 같아선, "시원하게 비나 와라" 하는 말을 하기도 죄스럽다니깐.. 여기저기서 비 피해로 울상이고.. 또 여기저기서 비 피해 없느냐 묻는게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 나도 한 몫 거들어야 겠다 싶어 키보드를 두드려. 다들 큰 피해 없지? 남은 장마비가 무시무시한 피해를 주는 나쁜 비가 아닌, 시원하게 더위 식혀 주는 고마운 비로 느껴질 수 있기를. 뭐, 그 막바지 장마 녀석 덕에 산행을 미뤄야 했던 나도 피해자 중 하나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이 장마 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