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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2일
    Letter from Kunner 2006. 3. 12. 16:04
    *
    오늘도 눈 뜨자마자 시작해 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 잠깐을 제외하고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어.

    손가락 끝에 통증이 느껴지길래 봤더니 물집이 잡혀 있다.
    하루에 18시간씩 코딩하는 일을 사흘동안 반복했더니 당장 손가락이 견뎌내질 못하는가보다.


    **
    이렇게 죽어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도, 잡생각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일하는 두뇌와 잡생각 하는 두뇌는 분리되어 있기라도 한 듯 쉴새없이 딴 생각이 들고, 그 생각들 떨쳐내려 머리를 흔들고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잠깐 하려던 일이 호구책이 되고, 이젠 어느새 전업이 되어 버렸어.
    이렇게 해선 답이 안 나오는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조급함만 이만큼 자라버린다.


    ***
    언제였던가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걸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을 축복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라 해야 할까?
    퍼뜩 드는 생각으론.. 그냥 모르는 대로 맘 편하게 살아가게 두지, 왜 다 늦은 후에야 알려 주느라 그러나 싶어.


    ****
    언제쯤이면,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
    이제 그만 어둔 기억의 터널에서 벗어 나고 싶어.
    그런데 용서라는 것, 조건이 무엇인지 대가는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어.
    그땐 어려서 그랬다고, 이제 다시는 그런 일 없을거라고.. 
    그렇게 하는 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일까? 그리고 용서를 받으면, 이젠 그 일을 없던 셈 치는 것, 맞나?
    참 쉬운데, 그런게 용서를 구하는 법이라면 수십 수백번도 더 했는데...
    결코 용서를 모르는 나의 기억은, 항상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쳐박아 버리곤 해.
    더 이상 그건 내 몫이 아닌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내게 뭘 더 앗아가려 하는걸까.


    *****
    사람 맘 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게 또 있을까?
    그러고 보면 희노애락,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만 한게 없다.
    어차피 며칠 지나고 나면 다 쇠잔해질테니.
    언젠가 절제란 참으로 비인간적인 것 같아,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살면 그게 과연 누굴 위한 삶인거냐 하던 적이 있었어.
    애석하게도 나란 사람, 그렇게 희노애락을 표출하는 일엔 통 소질이 없는데.
    그래도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것도 같아.
    서투나마 조금씩 감추고 살아서...


    ******
    아직 잠을 못 잤지만, 오늘은 일요일.
    어느덧 3월의 셋째 주가 시작됐어.
    지난 주 초까지만 해도, 그러니 불과 4~5 일전만 해도..
    아직 여유가 많아 보였는데, 고작 4~5 일이 + 에서 - 로 돌아선 지금.
    시간을 도둑맞기라도 한 듯 한 기분에 억울함을 감출 길 없다.
    나 할 일 너무 많은데... 시간이 조금만 쉬엄쉬엄 가 줬으면 좋겠다.


    *******
    무언가 바라고 그리는 일이 죄는 아니야.
    그렇게 내가 무언가 바라고 그리는 일이 있다면, 그건 흉이 아니라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일거야.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내밀 손이 부끄러워 바라지도, 그리지도 못하고 살곤 하는 것 같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
    아직 미약하지만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열망이 있다는 것.
    이미 내게, 무언가 바라고 그리는 일이 죄가 될 수는 없어.

    좀 더 원하자.
    조금 더 누리자, 그 달콤한 열매를 얻자.


    ********
    오캄의 면도날을 손에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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