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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리산행
    Letter from Kunner 2006. 1. 23. 07:25
    오늘, 휴일을 맞아 산을 다녀 왔어.
    어제 저녁을 먹다 엄마가 산에 가고 싶다 하셔서 네이버로 둘러 봤지.
    집에서 가까운 곳 중 가 볼 만한 산이 어디 있는가고.

    인천엔 아무래도 산이 없어 이리 저리 눌러 보다, 안양에 있는 수리산을 찾게 됐어.
    경기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찾았는데.. 사람들 평도 좋고 해서 주저 없이 수리산을 선택했지.

    집에서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으니 다녀 오기는 좋더라.
    난 어렸을 때 부터 워낙 산을 많이 다녀서..
    내가 가 봤던 산들에 비하면 좀 어설픈 동네 뒷산 정도긴 했지만 오랜만에 산행을 하니 기분이 무척 좋더라.
    날씨도 청명한게 산행엔 딱이었는데.. 다만, 산마루에서 불어대는 무지막지한 바람 덕에 고생 좀 했지.


    처음엔 등산로 입구를 못 찾아서 무척 애를 먹었어.
    난 무슨 도립공원 내지는 시립공원 정도로 착각하고, 매표소라던가 상점가라던가 하는..
    제대로 된 입구가 있을 줄 알았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잡산, 입구가 한 두개가 아니었는데..
    차로 입구를 찾아 헤매다 보니 가장 깊숙한 곳에서 산행이 시작된거야.

    오를 때 1시간 반, 내릴 때 두시간 정도를 계획하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았어.
    경사도 완만한 편이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랐지.
    하지만 이젠 노령이 되신 엄마에겐 조금 힘들었을까?
    산을 내려 올땐 숨이 턱까지 차 올라 운동부족을 실감하노라 하시더라고.
    하기사.. 같이 간 친구 녀석도 기진맥진해져 집에 오자마자 골골 대다 뻗어 버렸으니..
    어쩌면 나만 산정의 기를 담뿍 받아 온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동네 산이라고 해도 있을 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삼림욕장도 있고, 약수터도 있고.

     src=

    등산로 중에 잣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있었는데 여긴 정말 분위기 좋더라.
    TV CF 찍는 배경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 한 분위기에 감탄사 연발하며 카메라를 들어 봤는데 바람이 너무 차 손이 꽁꽁 얼어 버려서 구도고 뭐고 다 내팽겨쳐 버렸어.
    그저 그런 곳이 있더라 하는 것만 남겨 보려 셔터를 눌렀지.


    그리고 약수터.
    수질이 낮아서 식수로는 안 된다더군..
    그런데 그 경고문을 본 건 이미 약수를 한 바가지 가득 들이킨 다음이었어.
    큭..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느낌이야. ㅋㅋ


    엄마가 더 이상은 어려우시겠다며 산 중턱에서 주저 앉는 바람에 그대로 하산할까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산행을 했는데 정상은 밟아 줘야 하지 않겠어?
    혹시나 이대로 산을 내려갈까 기대하던 친구의 기대를 지그시 밟아 주고 벤치에 앉은 엄마를 두고 우리는 마저 정상으로 향했어.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망연자실.
    정상이나 됐는데.. 꼴랑 벤치 몇개 놓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거야.
    하다 못해 커피파는 아줌마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더군.

    경치라고 해 봐야 외곽순환로를 내려다 보는 정도고..
    안양 시내가 보이긴 하는데 그것도 그다지 좋은 경관은 아니었지.
    정상에 오른 기쁨을 잔뜩 만끽하고 싶었는데 초라한 정상의 모습이 외려 힘을 쭉 빼 놓던걸?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던가.
    그래도 사진 한장 박아 주고 내려 온다.
     src=

    친구 녀석에게 사진 잘 찍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하고 매번 생각하는 중. -_-;;


    정상에서 붙들고 가리라는 다짐을 아주 작은 소리로 외쳐 준 후(-- )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어.
    왔던 길 되짚어 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역시 길이란 처음 갈 땐 무척 멀어 보이지만 이미 지나갔던 길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식수 부적격 판정을 받은 약수터에 다시 들러 잠시 숨을 고르다 보니 약수터에 놓인 팻말에 눈을 끄는 글귀가 있다.

    "건강하게 삽시다" 란 것이었는데..
    건강하게 살기 위한 몇가지 덕목들을 적어 두었더라고.

    난 채식을 즐기는 편이고 걷는 것도 좋아해.
    술은 아예 안 먹고 맵고 짠 음식은 질색이지.
    몸이 둔해지는 걸 무척 싫어해 놔서, 두껍고 무거운 외투를 걸치는 일은 거의 없어.
    그리고 목욕은, 너무 자주 해서 탈이야. 피부가 건조해져 문제가 생길 정도니까.
    그런데 단 하나, 저 항목에선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군.
      src=

    번민은 피하고 잠은 충분히..
    번민은 피하고 잠은 충분히..
    번민은 피하고 잠은 충분히...

    ^^ 하지만 오늘은, 산행 덕분에 단잠에 빠지겠는걸?
    지금 당장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야.


    고단하긴 하지만, 너무 즐거웠어.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다녀 왔더니 더 즐거웠지.
    엄마도 무척이나 즐거워 하시고.
    내친김에 앞으론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꼭 가족들과 산행을 하기로 약속했어.
    매번 나 혼자 놀러 다니지 말고, 이젠 가족들도 챙기고 그러기로 말이지.



    여러 가지 생각들, 마음속을 괴롭히는 고민과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결 가벼워져 돌아 왔어.
    바람에 다 날려 버릴 수는 없었지만, 그 바람에 퀴퀴한 냄새들은 조금 빠져 나간 것 같아.

    더 밝은 사람이 되야지.
    더 긍정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함박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건너 Char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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