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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영이에게
    Letter from Kunner 2005. 12. 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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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형을 만난 후, 은영일 만나고 온 얘기를 쓰다 보니..
    어느 틈에 편지처럼 되어 버렸네.
    장난삼아 가요 제목을 글 제목으로 붙여 본다.
    ========================================================

    뱅크온이 문제인지.. 내 전화기가 문제인지..
    아니면 CD 입출금기가 문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많은 CD 입출금기가 모두 고장일 리는 없고..
    뱅크온에 문제가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도 없으니, 아마도 십중팔구는 내 전화기의 문제였을거야.

    내참.. 내 지갑을 통째로 들고 나가 버리는 형의 센스 덕에 참 곤란했고, 미안했어.
    주머니에 달랑 동전 몇개 밖에 없는 녀석이 넉살 좋게 영화도 보고 음료수도 얻어 먹었네.
    더구나 집에 오는 전철표를 사는 티켓 창구 앞에서 뻘쭘히 서 있어야 할 때의 기분이란.. 하하.

    하지만 뭐, 이건 다 핸드폰으로 돈을 뽑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원래 내가 얻어 먹고 다니는 편이 아니란 것, 모르지 않잖아? (아.. 모르나? -ㅅ-;;)


    "피터 잭슨"은 워낙 러닝타임의 귀재긴 하다.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긴 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내내 성토했던 것처럼..
    스토리 텔러로서의 그는 영 시원찮다.
    호러물로 입지를 다진 사람답게 각 장면 장면을 조합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극의 얼개를 맞춰내는 데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랄까?
    그런 점에서 "킹콩"은 딱 "피터 잭슨" 틱 하다 하겠어.
    내게 "피터 잭슨"의 영화가 늘 그렇듯, 별 3개 반 정도?

    하지만 별이 몇개던 간에, 어제는 너무 즐거웠어.
    그러고 보니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영화를 같이 본 건 처음이었구나.


    그렇게 오래 걸어 본 건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아.
    하필 바닥이 거의 없는 운동화를 신어서 발목에 통증을 느끼긴 했지만 내내 너무 즐거웠어.
    마침 눈이 흩뿌려져 기분이 더 좋았어.
    눈이 오는 덕인지 춥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 뭐야.
    가로등에 비친 눈 내리는 모습도 참 예쁘더라.
    그 덕에 그리 짧지만은 않은 거리인, 전철 세 정거장을 힘들이지 않고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테크노마트 30층.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거길 선택했는데 나름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내겐 3년 동안의 추억이 있는 곳이자, 은영일 처음 알게 되고 근 1년을 함께 보낸 곳.
    이젠 회사도 그 건물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오랜만에 찾아 가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게.. 참 좋더라.

    무심결에 시간을 때운다고 말했다가 한소리 들었네.
    생각없이 말실수 하는 편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말 실수 많이 하네.
    친해진다는 건, 아무 말이나 하고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가끔 잊곤 하는거야.
    하지만 우리 즐겨 하는 "바로 인정하기 놀이", 이때 써 주셔야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미안!"


    처음 은영이랑 친해질 즈음엔..
    그 녀석과 친해지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어.
    도무지 세상에 근심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았거든.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노란색 유채밭이거나, 화려한 놀이공원 퍼레이드 같은게 아닐까 생각했어.

    누구나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는게 인생이지만, 어쩐지 그 녀석은 그런거 없을 것만 같았거든.
    고민과 한숨 같은 건 정말 안 어울리게 보였거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유쾌한 웃음 소리 만큼이나 언제고 으쌰으쌰 하기만 할 것 같았지.
    아니.. 심지어 인생이 참 단순하고 유쾌하기까지 할 것 같았는데..
    그건 그야말로 내 착각이었어. (착각이고 자시고를 따질 것도 없이, 세상에 어찌 그런 사람이 있을까? 푸..)
    조금 알고 나니 이 녀석..
    고민도 많고, 숙제도 많고..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도 하고, 그에 따른 노력도 많이 하고.
    인생을 바라보는데 있어 누구보다 진지한 사람이었던거야.
    어쩌면 우리가 친해지기 시작한건 그의 대책없는 외향적 밝음에 있겠지만,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건 그의 내면에 있는 진지함이 아닐까 싶다.
    알면 알 수록 속이 단단한 녀석이라, 친해져 가는 과정에 참 즐거운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인생의 행로를 수정하고, 궤도를 틀어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해 - 그럼에도 후회는 늘 남겠지만 - 가는 그 녀석 보면..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들어.

    난 때론, 그가 세상살이, 제 잘난 맛에 산다고 느껴질 만큼.. 
    조금은 무모하게 여겨질 정도의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
    소극적이거나, 비관적이란 표현이 결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님엔 틀림 없지만, 좀 더 그랬으면 좋겠단 말이지.
    내가 그를 두고 하는 것처럼, 그도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에 좀 높은 점수를 메겨 줬음 좋겠다.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말야.


    얘기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학교 얘기나 진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마다 난 그가 참 부럽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 가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그런걸거야.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는 일, 꿈을 위해 노력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힘.
    내게 그런 영감을 주는 친구는 흔치 않아, 참 좋은 녀석이다.


    새해엔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네.
    건강하게만 보이는데, 왜 그리 아픈데가 많은지.
    그리고 남은 한 학기, 잘 마치고 그가 원하는 꿈을 한발 한발 착실히 옮겨 가게 되기를 바래.
    나보다 훨씬 앞서 있으니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깝지만, 내가 뭘 도울 필요도 없이 잘 해낼 거라 굳게 믿으니..


    어느덧 알게 된 지도 4년, 그간 우여곡절도 많고 사건도 사연도 많은데..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앞으로도 내내 즐거운 사람으로 내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의 친구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도록 나도 열심히 노력할테니 말야.

    내가 붙인 덕에 나만 부르는 별명만 두개.
    삼육아, 딸숙아. 내년엔 정말 좋은 일만 가득할거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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