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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 from Kunner 2005. 12. 25. 10:30
    어제 그를 만났어.
    극도의 우울함과 귀찮음에 시달리던게 맞나 싶게, 콧노래 흥얼거리며 옷을 챙겨 입던 내가 우습다.

    영화를 보고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잠깐 옷을 구경하다 녹차라떼를 마셨어.
    버스를 같이 타고 그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왔지.

    글자로 옮겨 놓으니 참 단조롭지만, 기분은 내내 둥실둥실 떠 있었어. ^-^;


    이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도 있을 법 한데, 그와 마주하면 그게 잘 안 돼.
    몇번이나 망설이다 슬며시 잡은 손이 참 따뜻해.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민망해져 시선을 돌리지만 나도 몰래 그의 얼굴로 다시 눈이 가게 돼.
    마치 망막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는 듯.
    오래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잊어 버리지 않으려 자꾸 쳐다보고 있었어.

    정말 더 잘 할 수 있는데..
    멋진 얘기들을 풀어내진 못하더라도,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할 수 있고, 
    매력적인 웃음을 짓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더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다고.
    우물쭈물 거리기만 하던 어제보다 훨씬 더 말야.
    정말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말문이 막히고 어색해지기만 하는걸까?
    왜 그냥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마는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무슨 순정파라고..


    헤어지고 돌아서 몇발자국 떼기도 전에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어.
    우물거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소리냐 자책하다 빙긋 웃고 말았다.
    그렇게 아무 말 못하고 섰기만 해도 즐거운 걸.
    이렇게 비적비적 웃음이 나오는걸 뭐, 그럼 됐지.

    잡은 손의 온기는 매서운 겨울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린지 오래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쉬 바래지 않을거야.
    일부러 눈을 부릅 뜨고(!) 쳐다 봤는데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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