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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 from Kunner 2005. 12. 27. 09:20

    정말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컴퓨터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어색하고, 또 글씨가 쓰여진 무언가를 받아 드는 일이 낯설다.

    오랜만에 서랍에서 편지함을 꺼내, 편지함 한켠에 곱게 넣어 둔다.


    97년이니, 벌써 햇수로 9년이 된 편지함.
    선물로 받았던 건데 언젠가부터 편지함으로 쓰고 있다.
    재질이 종이이다보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또 이리저리 옮겨지다 보니 조금은 꼬깃해졌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편지함을 하나 새로 마련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안에는 잊고 지내는 추억들이 한 가득하다.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다시 읽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들도 있다.
    간혹 이런 편지가 왜 아직도 들어 있는가 하며 소스라치기도 하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그것도 다 좋은 추억들이다.
    물론, 보고 소스라칠 편지들 중 대부분은 이미 폐기된 후 일테니 다 좋은 추억이라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아주 가끔씩.. 오늘처럼 뭔가 계기가 있을 때나 꺼내 보는 편지함이다.
    평소엔 그런걸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많은데..
    막상 열고 보면 쉽사리 닫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나 하나 꺼내 읽다 보면, 어느 새 나는 붕 떠 있다는 생각이 드는게, 시간이 가는 건지, 오는 건지 알 수 없어진다.


    오늘 다시 읽은 편지 중 하나에선, 내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떤 어떤 사람이 되어라, 이런 모습은 지양하고 저런 모습을 가지려 노력해라.
    내가 가야 할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좀 더 나은 내가 되었으면 하는 편지였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 편지가 아니라 내 발전모델 말이다.)

    그 편지를 읽다가 문득..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그 편지 속의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건만, 나는 분명 조금 달라져 있는 듯 하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능숙하지는 않지만, 고독과 좌절, 절망의 노래는 더 이상 부르고 있지 않으니까...
    그의 바람 때문인지, 혹은 기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분명, 조금은... 그 우울한 터널을 뚫고 나온 것 같다.
    그 길고 지루했던, 우울의 터널 말이다.
    내게 그 글을 써 주던 사람을 만날 길은 없지만, 언젠가 우연히라도 스치게 된다면 감사하노라 말해주고 싶다.


    또 다른 편지에서 나는,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럴 때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내용의 편지.
    그러고 보면 즐거운 기억은 퍽도 금방 잊혀져 버린다.
    모든 만남의 끝, 이별은 즐겁지 않기 때문일까?
    이성간의 이별이든, 동성간의 그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때의 나는 무척 사랑받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마냥 천덕꾸러기는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하하..
    나를 자라게 해 준 지난 날 내 고마운 친구들의 편지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밤이다.



    이번에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는 올해 마지막으로 편지함에 들어가게 될 녀석일 듯 하다.
    그리고 또 그 카드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다른 많은 녀석들이 그러하듯.
    내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오래고 간직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2005년 겨울을, 잊지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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