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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 세월을 넘어, 유년 시절에 노크를.
    Letter from Kunner 2005. 12. 6. 03:36

    내일은 무려 15년만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야.
    예전에 월악산 자락에 살 때(엄밀히 말하면 월악산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난 거길 월악산 자락이라 즐겨 부르곤 해^^),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인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때 전학을 가게 되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헤어졌었어.

    가끔 여길 들러 주곤 하는 윤희, 그리고 어렸을 땐 별로 친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던 호순이.
    와아~ 정말 15년 만에 얼굴을 보겠구나.
    무척 서먹할 지도 모르겠는데? ^^

    초등학교에만 4번을 전학하고 중학교에도 한번 전학을 하게 됐던 탓에 남들에겐 큰 추억거리인 "모교", "동창" 이런 개념의 것들이 내겐 부족한 편이야.
    덕분에 남들 열심히 하던 "아이러브스쿨" 같은 것도 거의 안 했었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이러브스쿨" 따위의 도움을 빌지 않아도 충분한 왕래가 있으니 말야.)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라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부터 이듬해 겨울까지의 그 1년 반 여가 떠올라.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맞던가? ^^; 학교 이름은 세성초등학교였고.
    한 학년에 한반밖에 없는 작은 학교여서, 우린 4학년때도 5학년때도 내내 1반이었지.
    전에는 단 한번도 1반에 배정된 적이 없었어.
    그 학교에서 1반에 배정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 때문에 난 괜히 기분이 좋기도 했었어.
    그 후로 내가 1반에 배정된 건 고3때가 유일하지.
    그리고 그 1반은 어렸을 때의 1반과는 달리,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었고. 하하..

    내 어린 시절, 가장 즐거웠던 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시절.
    산도 들도, 물도 너무 푸르고 푸르던 그곳의 추억은 내 유년기를 윤택하게 했다 말하기에 충분할거야.
    덕분에 전학을 한 후, 한동안은 적응을 못 해 힘들어 하기도 했었지.
    친구들이 보고 싶고, 그 그리운 산천이 보고 싶어 말야.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될 때 마다 충주의 세성과 수안보를 찾곤 하는데..
    아직 친구들을 한번도 만나보진 못했어.
    분명 전화 한 통화면 만날 수 있었을 건데, 매번 그러지 못했어.
    아마 날 잊어 버렸거나.. 잊지 않았다 해도 만나자 하는 게 어쩐지 서먹할 것 같아 말야.
    내게도 흐릿한 기억인데, 심지어 남은 사람들이 떠난 나를 기억해 주기 바라는 건 과욕이 아닐까 싶었거든.
    하지만 이렇게 날 기억해 주고, 안부를 물어 줄 때면.. 
    내 인생, 그렇게 가난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편안해져. ^-^;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
    만약, 내가 전학을 가지 않고 그 동네에서 계속 살게 됐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순수하고,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거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할 것 같거든.
    사람 사는 세상, 어디라고 다르겠느냐만.. 내게 세성이란 그런 곳이었어.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얘기가 가득한 곳.

    물론, 마냥 즐거운 기억만 있는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은 굳이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전혀 생각나지 않으니까.
    봄이면 산으로 들로 나물이며 들꽃, 또 산열매를 따러 다니던 일.
    아, "으름" 이라고 하는가? "어름" 이라고 하는가?
    썩 맛있진 않지만 달착지근한 독특한 맛과 향이 나는 산열매. ^^
    아마 내가 거기에 살지 않았다면, 평생 그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르는.. 
    여름이면 냇가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하고, 가슴 두근대며 포도 서리하던 일.
    한밤중까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온갖 즐거움을 낚던 기억 가득해.
    가을엔 사과 향으로 온 동네가 진동을 하고, 
    겨울이 오면 온통 눈으로 덮였었어.
    사냥을 한답시고 되지도 않는 활을 만들고, 결국은 그 활로 전쟁놀이만 열심이었지.
    나중에 도시에 나가서는 BB탄 총을 갖고 놀게 됐지만, 그런 것 따위론 결코 그 시절의 즐거움에 견줄 수가 없다.

    아지트를 만든답시고 산에 나무를 잔뜩 베어내고 오두막을 짓기도 했고,
    집 짓는 터에서 각목을 가져다 뗏목을 만들어 냇가 도하를 시도하기도 했어.
    심지어 그 냇가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튼튼한 징검다리(둑을 겸하는)도 있었는데 그 바로 옆에 뗏목을 띄웠었지.
    나중에 오두막을 산 주인에게 들키는 바람에, 우리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이셔야만 했어.
    게다가 남의 건축 자재로 뗏목 만든 일이 발각돼 그 역시 모조리 변상을 해야 했고.
    대신 물에 잔뜩 불어 더 이상 건축자재가 될 수 없던 뗏목의 부속물들은 아궁이로 들어가 겨울녘 우리 집 난방을 해결해 주었지. ^^;
    지금이야 웃고 말하지만 당시엔 맞아 죽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것 같은 그 시절.
    언젠가 방과후에 윤희가 우리 집에 놀러와 집 뒤의 과수원 눈밭에서 즐겁게 놀던 기억이 난다.
    옷을 완전히 버리도록 노는 바람에 나는 엄마한테 혼쭐이 나고, 윤희는 옷을 말리다 집에 못 갔지, 하하..
    추운 줄도 모르고 정말 재밌게 놀았었는데..

    다시 그 시절 그 꼬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시름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던 그 시절,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말야.
    그때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좌절이 있었겠지만..
    시간 지나고 보니 정말 아름답고 행복했던 내 유년 시절의 추억.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절.. 버선발로 맞아 줄텐데. ^^


    내일은 15년만에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날.
    참 그리운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는 날.
    벌써부터 나는 가슴이 뛴다.
    싸이월드 같은 데서 사진을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 어떨까?
    어떻게 변했을까, 서로 얼굴을 보면 알아 챌 수 있을까?
    같이 추억을 헤아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다들 나처럼 기억하고 있을까, 그 시절 그 어린 날들을? ^^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밤도 역시, 무척 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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