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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 산책Letter from Kunner 2005. 12. 4. 09:05저녁 무렵에 책을 읽다 잠이 들었어.
따뜻한 방에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노라니, 자꾸 잠의 여신이 손짓하더란 말이지. ^^;
책을 읽다 잠드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덕분에 꿀맛같은 낮잠을 잤다.
좀 자다 일어나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눈이 온다는 얘길 들었어.
그 말에 놀라 창문을 열어 보니, 창틀에 쌓인 반가운 눈!
추운 줄도 모르고 고개를 뻗어 창밖을 보니 머리 위로 정신없이 눈발이 흩날리고 골목은 어느새 눈밭이더라고.
올 겨울 들어 첫 눈!
아주 조금.. 그것도 간밤에 내려, 온 줄도 몰랐던 눈이 이미 한번 내렸었다지만.
누가 뭐래도 내겐 이게 첫눈. ^^
난 눈 오는 걸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좋아했었어.
눈이 오면, 괜히 기분 좋고 가슴 설레곤 했지.
나이 들면서는, 눈 오면 길 질퍽이고 내일 아침 출근길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시 미간이 찌뿌려졌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부담없이 아주 즐겁고 반갑게 눈을 맞을 수 있어.
내친 김에 옷을 꺼내입고 눈을 맞으러 나갔었어.
창문 틈으로 들어 오는 바람은 꽤 차가운데, 막상 밖에 나가고 보니 함박눈 오는 날 답게 무척 포근하던걸?
눈이 오는 소리라도 들릴 법한, 그 눈오는 밤의 정적이란..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세상은 너무 환하고 밝았어.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구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물론, 눈사람은 조금 시도하다.. 손이 시려서 포기. -_ㅠ
어렸을 때도 못 만들던 눈사람, 나이 들어서라고 만들 수 있겠어?(난 사실 직접 눈사람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남이 만든 눈사람에 눈코입 붙이는 것만 했었지.. ^^;)
그렇게 눈사람을 포기한 후에도, 이리 저리 많이 걸어 다녔어.
집 근처엔 공원이 많아서 좋아.
한적한 공원, 흩날리는 눈발 보며 괜히 분위기도 잡아 보고~
가끔 축구를 하러 가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강아지처럼 뜀박질도 해 보고 ^^
외투 하나 걸치고 나가느라 카메라를 안 갖고 나갔는데..
눈오는 경치라도 좀 찍게 가지고 나갈걸 그랬었나봐.
핸드폰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긴 했는데, 도무지 좋게 봐 줄 수 없는 수준이네 ^^;;
하지만.. 이 첫눈 오는 밤.
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 연인들의 즐거운 웃음 소리에..
"기왕 내리는거 우박이나 잔뜩 내려라!"
친구 녀석은 전화를 해서 이건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저주라며, 대체 인생 왜 이러냐고 한참 푸념하다 끊는다.
하지만 말하는 그도, 듣는 나도 알아.
그게 결코 좌절이나 절망의 푸념이 아님을..
다음 눈은 사랑하는 사람과 맞기 바란다고 덕담 한마디 해 주고~ 하하.
작년 첫 눈, 뭘 했더라?
아.. 그땐 정문연에 출장 나갔다 오는 길이었구나, 그때의 첫눈도 참 많이 내렸었는데..
벌써 1년 전 얘기네.
눈이 온다고, 정말 예쁘다고.. 너도 보고 있느냐고..
1년의 터울을 두고, 각각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
떠올리다, 잘 지낼거야.. 하며 빙긋 웃는 밤이다.
모처럼만에 즐거운, 눈 오는 밤이다.
보고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도 떠오르는 밤이고.
가까운 곳에 살았더라면, 단숨에 달려갈텐데.. ^^'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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