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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희망을 품자..
    Letter from Kunner 2005. 1. 3. 18:09
    오랜동안 나는 이정표를 잃고 비틀거렸던 듯 해.
    어디로 가야 할 지.. 뭘 해야 할지.
    그래, 정말 속되게 말하면 뭘 해서 먹고 살지 막막했어.

    이런 내 맘은 아랑곳없이 하루하루 시간은 잘도 흘러가고..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 그 시간의 뒤꽁무니만 보며 끌려 가고 있었지 뭐야.

    어렸을 적 같이 놀던 친구 녀석들은 슬슬 자리를 잡아 나가는데..
    어떤 녀석은 잘 만난 부모 덕에 벌써 빌딩 몇 채 쯤 가지고 있다 하고..
    어떤 녀석은 전 세계가 제 집 안방인양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고..
    누구는 어떻다더라, 누구는 어땠다더라..

    그런데 나는 이제야 병역을 해결하고, 학교 졸업은 까마득하게 남아서 복학이라도 할라치면 신입생이나 다름 없고.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도 없고..
    딱히 대단한 재주를 지닌 것도 아니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같이 학교 다닐 땐 그 녀석들 보단 내가 좀 더 나아 보였는데, 그건 착각이었나봐.

    스무살, 그 꿈이 열개라도 모자랄 시절에 눈물 흘리며 공감하던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말하는 희망없는 청춘이란게 바로 내 모습이구나.. 싶었지.

    그렇게 패배주의에 빠져서 어떤 날엔 그런 것 다 부질없다 외면하려 하고,
    또 어떤 날엔 열등감에 빠져 허덕이고..
    그렇게 그렇게.. 비틀거리며 살아 가고 있던가봐.
    생각하면 머리 아프니 그냥 생각 말자고.. 시간 가는대로 좀 지켜 보자고..
    난 아직 그리 가능성 없는 건 아니니.. 조금만 더 시간 가는대로 두고 보자고..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 했던가봐.

    이제 슬슬 소집해제가 다가 오고..
    한달만 더 지나면 더 이상 "병역" 이란 멍에를 쓰지 않아도 되지.
    그동안 나를 그렇게 발목 잡던 것이었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그 병역을 방패 삼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도 했지 뭐야.
    지금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지만..
    "군대니까.." 하는 핑계로, 변명으로.. 그렇게 비겁하게 웅크리고 있기도 했었을 거야.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아니, 갑자기 나는 20살에서 27살로 뛰어 올라 버리게 되는거야.
    그간 스무살 시절의 잣대도 버거워서 간신히 버텨 오던 내게 갑자기 스물 일곱의 잣대를 들이대면 난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난 벌써부터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어.

    형과의 오랜 불화의 원인도 사실 이런 거였던 가봐.
    우리의 미래를 함께 할 수 없을 거란 불안함.
    형과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너무도 다를 것만 같더란 그런 불안함이었던 거지.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그것과는 자꾸 멀어져 가는 것 같은 형의 길을 바라보며..
    막연한 두려움, 또 실망.. 그렇게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던 가봐.
    아마 형도 그랬겠지.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2005년.
    하늘에 자가용 비행기가 날아 다니고, 텔레파시로 대화할 것 같던 21세기.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 싶던 어린 시절..
    그 시절에도 2005 년이란 숫자의 해는 까마득하기만 했는데..
    이제 나는 그 2005년의 시간에 살고 있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또 오늘 같을 것만 같아서 하루하루가 매양 그 모양일 것 같아서..
    그래서 평소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시간의 무게도 실감 못 하고 사는데..
    어느덧 2005년이야.

    나의 병역 문제를 완전 종결하는 해이기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해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변화가 가득할 한 해야.
    그 변화의 휘몰이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시간들이 결정되겠지.
    그 시간이 눈물과 번민이냐, 기쁨과 탄성이냐가 곧 내 하기에 달려 있겠지.


    자, 이제 희망을 품자.
    구차한 눈물과 회한은 잠시 접어 두고, 늘 그랬듯 새해의 희망을 안고 가자.
    올 한해가, 그리고 나의 남은 생 -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을 그 生 - 이 축복으로 가득한 길이 되도록 하자.

    자.. 희망을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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