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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을 보고..
    Letter from Kunner 2003. 9. 22. 16:23
    주말에 울산 내려가서 시험을 보고 왔지.
    두달 전쯤.. 시험을 하나 볼 예정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이렇게 두달이 훌쩍 가 버린거야.

    원래 집 근처에서 볼 생각이었는데.. 형이 같이 시험을 치자고 해서 울산에 신청을 했었어.
    나중에 형이 등록을 안 했던 걸 알고는 참 많이 허탈했었지.. ^^

    아무튼..
    결과부터 얘기하면, 떨어졌지만 아직은 몰라 ^^;;
    아직은 모른다는 말의 의미는 좀 아래서 얘기하도록 하고.. ^^

    떨어진 이유를 좀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시험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크고..
    공부를 별로 안 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으니까..
    게다가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내가 한 방식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을 것 같아.
    나중에 시험문제를 받아 보고 나니..
    내가 공부했던 책은 너무 허접했던지 책에서 열심히 외운 내용은 전혀 나오질 않고 책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들만 잔뜩 나오더군..
    그때의 그 절망감이란.. 하하..

    시험을 다 보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이거 반타작이나 했으면 다행이겠더라구.
    그래서 한껏 풀이 죽었다가.. 집에 오자마자 한숨 뻗어 잠을 잤지.
    자고 일어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시험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할 수 있었어.

    그러다 저녁 때 쯤 가채점 답안이 나와서 채점을 해 보니..
    의외로 시험을 꽤나 잘 본 거야. 단 한 과목에서 과락이 나오는 바람에 탈락했지만
    그 과목이 과락을 면하기만 했더라면, 어떻게 될런지 모를텐데.. 많이 아쉬웠어. ^^;

    그런데 오늘 아침에 가답 발표 사이트에 이의제기 란을 가 보니까..
    나보다 훨씬 열심히 준비한 수험생들이 이의제기를 많이 해 놓았더라구?
    그래서 좀 살펴 보니.. 지금 잠깐 쳐다 보고 왔는데..
    내가 틀린 문제 - 아니, 틀렸다고 체크된 문제 - 들에 이의제기가 많이 되어 있는거야.
    그리고 잘 보니 거기서 틀렸다고 된 게 맞게 처리 된다면 합격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가늠해 볼 수도 있을거 같아.

    어차피 이 시험은 그동안 수년간 놀려 왔던 내 머리를 다시 써먹기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고..
    그 결과가 합격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만족해.
    "떨어져도 만족한다.."
    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대단히 만족스러워.. ^^

    무엇보다.. 지난 열흘동안 하루에 한 두시간 밖에 안 자고 공부를 했었던 것이..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고, 나중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아.

    시험을 보겠다고 마음 먹고.. 첫 이틀 공부하고 나서 무려 한달 반이나..그냥 놀아 버렸지..
    그런 부분에 대해선 박약한 나의 의지에 고개를 젓게 되는게 사실야.
    역시 나란 놈은.. 끈기도 없고 뭘 하겠다는 의지도 열정도 없구나.. 하는..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추석연휴를 기점으로, 나는 정말..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수준의
    그래.. 정말 노력이라고 부를 만한 걸 해 봤어.

    시험 일자 닥쳐서 벼락치기 해 놓고 또 무슨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게냐고 할 사람들 있을지 몰라.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노력이라는 걸 해 봤어.
    물론, 이 시험을 위해 1년, 2년씩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노력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내 스스로가 이렇게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
    적어도 내 기준으로서..
    하루도 아니고 열흘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하루에 한 두시간만 자면서 공부를 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렇게 해서, 비록 훌륭한 성적은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도..
    게다가 가답에 의한 채점결과는 불합격이다만 이의제기가 상당수 받아들여질 경우 합격할 수 있을지 모르니..
    결과를 떠나서 내겐 내심 뿌듯한 일이야.

    어차피 궁극의 목표는 이 시험이 아니었으니..
    워밍업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좋다.
    친한 사람들은..
    책값(5만원 정도)이며 시험응시비(2만원정도), 그리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울산에 내려갔던 교통비(13만원정도) 도합 20만원 이상..
    그리고 그동안 준비하며 겪은 맘고생이며 기타 등등 나의 인건비..
    다 따져 볼 때 엄청난 손해를 봤다며 쯧쯧 거리는데..

    글쎄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물론, 합격했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았을테고.. 역시 나는 천재였더라며 한껏 웃을 수 있었겠지만..
    합격 여부를 떠나 시험에 응시했단 것.
    그리고 응시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것(비록 그 노력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관점은 아니더라도)..
    스스로는 너무나 만족하고 있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여기 와서 내 글을 보고 가는 사람이 나를 잘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구나..
    아무튼..
    나는 못 할 줄 알았어.
    나는 끈기가 없고 도무지 노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
    뭐에 매달리고, 그걸 위해서 잠도 안 자고 놀지도 않고..
    그래 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
    뭐.. 주절주절 나의 지난 얘기들을 읊을 필요도 없이.. 나는 금방 싫증내고 금방 지치고..
    또 자기합리화에 강하다 보니 그런 끈기 없음을 미화 시키려고까지 했었지.

    근데 나는.. 실은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싫었거든.
    누가 밤 새워 공부하는 걸 좋아하겠어.
    또 누가 노는 걸 싫어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가끔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내겐 없고 그들에게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마다 많이 힘들어.
    그리고 내겐 없고 그들에게 있는 것을 갖기 위해서..
    나도 그들과 똑같이, 아니 그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으니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는 해.

    물론..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하는 걸 바라지는 않아.
    하지만 이번에 시험을 준비하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
    좀 더 맘을 다부지게 먹고.. 좀 더 성취를 갈망하게 되면..
    나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새로운 자신감이 생기게 됐어.
    좀 우습지만 거기다 하나 더 보태면..
    내겐 길고 고통스러웠지만 또 시험을 준비하기엔 너무나 짧았던 그 열흘..
    그 열흘 공부하고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기분이 참 좋네. "아직 나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잠깐 해 보곤 많이 뿌득했더랬지.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며칠은 푹 쉬고 싶어.
    추석연휴로부터 지금까지.. 한 열흘에 걸쳐 계속 잠을 못 잤더니 몸이 말이 아닌 거 있지.
    그동안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게임도 좀 하고 싶고.. ㅋㅋ

    그리고 슬슬.. 다시 고삐를 조여 나가야지.
    지금 내 예정대로라면.. 다음에 치를 시험은 내년 1월에 있을 거야.
    이건 이번에 치른 것과는 또 다른 거고.. 시험까지 기간은 3달 남짓 남았지만..
    난이도는 그 이상일 것 같아.
    이번엔 정말 정신 차려서.. 시험일 얼마 전에 벼락치기 하는게 아니라..
    조금씩 꾸준히 노력하는 연습을 좀 해 볼까해.
    과연.. 내가 거기까지 성공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만.. 노력해 봐야지.
    이제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웠다면 배운 걸 써 먹어 봐야지 푸하..

    합격했다는 소식으로 맘이 더 편했을텐데 아직 결과를 잘 알 수 없으니.. ^^
    부디 합격자발표날까지.. 그 문제들의 이의신청이 받아 들여져서 합격통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해줘. 하핫..
    지금의 아쉬움을 꼭 기억해서.. 나중에 또 권태라는 녀석이 나를 찾아 오면 떠올려야겠어. ^^
    확실히 점수를 획득했더라면 이렇게 조바심 내진 않아도 좋았을테니 말야.

    나는..
    지금 어두운 무대 뒤에서 내 인생의 2막을 준비하고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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