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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unner Blues...
    Letter from Kunner 2003. 10. 13. 23:48
    오늘 날짜가 10월 13일..
    백수는 아니다 보니 비교적 날짜 감각, 요일 감각은 정확해서 올해가 얼마나 갔구나.. 하는 것 모를 리 없을텐데도 깜짝 놀라 버렸어.
    정말 시간 빠르네.
    병특 2년차는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 그런걸까..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2년차도 마감하고.. 곧 제대를 꿈꾸며 살아 갈 날이 오겠네.

    한편으론 너무 즐겁고, 다른 한편으론 너무 안타까워.
    결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병특생활이 막바지를 향해 조금씩 가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내 한번뿐인 20대가 이렇게 지고 있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병특을 마치고 나면,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되고 나면 나는 뭘 해야 할까 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곤 했어.
    정신 바짝 차리고 복학해서 빨리 졸업장을 따내야 할까..
    또는 얼마간 뒤쳐진 출세의 길을 위해 고시라도 준비해야 할까..
    등등의 생각들을 많이 하곤 했지.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또는 알면서도 현실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 가곤 하지.
    꿈많던 학창시절, 뭐든 될 수 있을것 같던 난 아직 그대로인데..
    슬슬 현실의 벽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지 미래, 꿈, 목표 등등의 화두에는 입을 닫아 버리기 일쑤야.
    나 말고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 가겠지.

    적당히 나이 들면 적당한 사람 만나서 적당히 결혼하고, 적당한 집 구해서 살림 차리고..
    내 집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다가 내 집 생기고 나면 융자금을 갚기 위해 허리띠 조르고..
    뽀대나는 차 한 대 있어야 겠다 싶어 잘 살펴 보면 각종 신용프로그램으로 돈을 많이 갖지 않아도 차 사는 건 어렵지 않겠네?
    그렇게 차 한 대 사고 카드 몇 장 만들어 이렇게 저렇게 한달 두달 살다 보면..
    결국 어느 틈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파산하게 될 내가 서 있겠지.

    신용사회라는 건 분명 편리한 일이겠지만, 서툴게 이용하면 바로 사람을 영원히 빞갈음의 굴레 속으로 집어 넣고야 마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 이미 나는 반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고...

    하..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 인생이라는 것, 암울하기만한 일이다.

    그런 굴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구해야겠지?
    그러자면 공부를 좀 해야 할거고 학벌은 기본, 고급 자격증을 좀 더 따내야 할거야.
    훌륭한 대인관계는 성공의 발판이라더라. 그렇게 사람 대하는 법도 배워얄거고..
    생활이 빨리 안정되려면 맞벌이는 필수니 능력 있는 배필 만나야 겠지.
    연애사업에도 심심찮은 관심을 쏟아야 겠구나.


    정말 숨 막힌다.
    진짜 이렇게 살아얄까? 답은 이런 것 밖에 없나?
    내 주위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내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인생이 그렇게 밝게만은 보이지 않는걸..

    대학교 졸업 꼭 해야느니라.. 안 그러면 어디서도 취급 받지 못한다.
    네.. 그럼 당신의 대학 졸업장은 왜 당신의 대우를 보장하지 못하는 건지..
    좋은 회사 들어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느니라..
    사오정이네 오륙도네 하는 말이 더 이상 허튼 소리가 아닌 지금..
    좋은 회사니 많은 연봉이니 하는 것 따위가 어떻게 인생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건지..


    처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난 가끔 우리네 아버지란 사람들이 너무도 존경스러울 때가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아도 아침마다 떠지지 않는 눈 부벼가며 출근을 하지.
    아주 가끔이지만 빨간날도 출근하기도 하고, 빨간 날 쉰다고 해도 모자란 잠 자느라 하루 종일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서 누워지내기만 하지.
    아주 가끔.. 일요일 아침 등산을 다녀오기도 하는데..
    그런 다음이면 어김없이 며칠동안은 집에만 오면 시체가 되어 버리는 가련한 인생..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나를 위한 희생이었다는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 뒤 나도 그래야 할지 모른다는 엄청난 두려움..

    그렇게 몇년 더 지나고 보면 거의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이렇게들 말하지.
    "한 10억만 있음.. 난 정말 행복할 거야."
    어렸을 때 꿈은 대통령은 기본이고 세계정복은 옵션..
    뭐 돈이라면 하늘끝까지 쌓아 놓고 살아도 시원찮았는데.. 이제 어느 덧 10억이란 소박한(?) 꿈을 꾸게 되고 그마저도 몽상에서 현실로 돌아 오게 되면..
    단 돈 만원이라도 공돈으로 들어오면 마냥 행복해 지는 불쌍한심한 인생들..

    그리고 그 많은 한숨들의 행렬 속에 동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커가고..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니까 일단 하루하루 열심히 보내자 하는 맘으로..
    어지간하면 안 먹고, 어지간하면 안 쓰고, 어지간하면 안 입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건 모조리 죄악이 되어 버리고..

    이렇게 한숨만 쉬면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시간은 간다. 좀 더 웃으면서 살자 하며
    빈 주먹만 움켜쥐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릴 열심히 읊어 보고 있지.
    혹시 스스로를 속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렇게 간신히 자기 기만에 성공하고 나면 한동안 부푼 가슴 부여잡고 살아 가지.
    그리곤 지나온 길을 돌아 보지 말자고, 지난 길 더듬어 봐야 현실이 달라지진 않는다며 애써 나를 달래고..
    그렇게 잠들고.. 그렇게 깨어나 회사를 가고..
    월급이 돌아 오면 밀린 공과금에 각종 대금을 납입하고 나면 주머니에 들어 오는 건 고작 몇만원..
    그래, 이게 다 내 종자돈이다 하며 은행에 넣어 봐도 한 해 지나고 나니까 인플레이션이 4% 란다..
    은행금리 4%로는 오히려 손해만 보지.

    왜 나는 어떤 누구처럼 좋은 집에서 못 태어났나 원망도 해 보고..
    가끔은 나라가 확 뒤집어 져서 자산분배나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 보고..
    그렇게 뜨거워진 가슴 부여잡고 현실로 돌아 오느라 또 며칠을 허비해야 하는..
    정말 암담한 인생아..


    그래도 왜 한때는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로 친구들 우르르 몰려 다니며 담배 꼬나물고 있으면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던 때가 말이야.

    언제든 손만 내밀면 쥐어지는 용돈, 그걸 어떻게 벌었을까 하는 것 따윈 관심조차 없었지.
    원래 부모란 자식에게 용돈을 쥐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 브라보~ 나의 인생아.
    그렇게 세상이 쉬워 보인 때가 있었던가?
    두툼한 지갑을 보여주기 위해선지 여기저기 들어가서 연방 지갑을 열어 제치느라 정신 없고..
    밤이면 밤마다 모여 흥청망청 하다 보면 날이 밝아 오고..
    눈부신 태양을 저주하며 흐릿한 정신 다잡을 새도 없이 침대 속으로 고꾸라 지고..
    그렇게 밤이 되면 위선과 가식 따위 차리지 않아도 될 거란 환상..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정말 나다운 모습일 거란 착각..

    그렇게 몇 해 지나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대.
    학생이라는 최고 계급에 있다가 백수라는 하층민이 되다 보니..
    결코 마르지 않을 것 같던 샘물은 슬슬 낌새가 이상하고..
    언제나 어께 두드려 주는 것 같던 사람들은 슬슬 이상한 눈빛 보내오기 시작하고.
    그 중 몇몇은 눈물이 쏙 나오게 만들기도 하고..

    나라고 이렇게만 살겠냐,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일단 뭐든 하면 난 다 잘해.
    두고 보라고.. 그 같잖은 돈, 파묻혀서 살게 해 줄테니.. 하며 호기 넘치게 시작한 돈벌이..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어느 새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어느 덧 주름이 뒤덮은 엄마 얼굴 보면 한숨부터 나오고..
    인상을 자주 찌뿌려서인가 거울을 보면 무표정한 얼굴도 화난 표정으로 보이고..
    이번에 월급 타면 뭘 해야 겠다..
    매번 마음은 굳게 먹어 보지만 막상 월급타고 나면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고..

    나만 그런가, 일부를 빼 놓고 나면 세상 사람 다 그렇게 산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죽으면 한 푼도 못 쥐고 가는데 돈이 뭐가 중요해?
    그런 걱정 따위 집어 치워 버리고 인생을 즐기자..
    내 감정에 충실하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자.
    한번 가면 없는 시간 한숨 쉬면 뭐할 거냐, 나중에 또 후회를 한다 하더라도 오늘만은 즐기자..
    불안한 표정으로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결국 우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씁쓸한 자위로 오늘도 하루를 산다.


    하지만...
    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남들 다 그렇게 사는게 맞다고 해도..
    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것 못 할 때 마다.. 철학적인 얘기, 형이상학적인 얘기 온갖 잡지식 있는 대로 끌어다 맞춰 가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씨알도 안 먹힐 소리 하며 살고 싶지 않아.
    더는 한숨으로 가득한 무리 속에 섞여 살고 싶지 않아.

    생각해 보면 아직 아득한 이 터널의 끝.
    언제 끝날지 모를.. 어쩌면 죽음으로 마감해야 할 지 모를 이 긴 어둠 속을..
    나는 빨리 뛰쳐 나오고 싶어.
    터널 저 앞 부분이 확 무너져 내려서..
    그 무너진 틈으로 바깥에 나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어.
    복권이라도 사야 할까? 그러자면 많은 행운이 따라야겠네.

    왜.. 그런 말 있지..
    두 발 앞서기 위해서 한발 물러선다고.
    더 멀리 뛰기 위해 도움닫기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뒤로 물러나야 하는 법이라고 말야.
    현실에서도 비슷한 얘기 할 수 있겠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덕분에 출발선은 모두 제각각 이라는 게 좀 다를까?

    난 한참이나 물러서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물러선 거리만큼 도움닫기가 될 수있을까?
    | 이렇게 곧바르게 물러서야 도움닫기도 되는거지.. S 이렇게 꼬여 버리면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잖아.


    횡설수설..
    도무지 앞뒤를 맞춰 볼 수 없는 단어와 문장들의 나열..
    아무 의미없는 푸념뿐인 얘기들..
    Kunner Blues...







    지금의 물러섬이 훗날 앞섬의 밑거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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