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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나는..
    Letter from Kunner 2003. 9. 2. 11:41
    올해 여름은 비가 참 잦지?
    최악의 가뭄을 기록했던 지난 94년 이래로 최대의 흉작이 될 거란 보도가 있더라.
    나야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어서 농부들의 애타는 가슴을 알리 없지만..
    그래도 잔뜩 찌뿌린 하늘을 보며 아주 약간은.. 애타는 농심을 떠올려 보곤 할 정도로 비가 잦아.

    어차피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 한가지니..
    비 오는 날씨가 그리 싫지 않은 나는.. 요즘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지난 8월 16일..
    언제까지가 될 진 모르지만.. 나는 한동안은 그 날을 잊을 수 없을거야.
    지난 8월 16일에는 회사 출장이 있어서 울산엘 갔었어.
    올 여름엔 울산을 참 자주 가지 ^^;
    우리 회사는 학교 선생님들 연수를 담당하는 온라인 연수 사이트를 운영중인데..
    온라인 연수지만 딱 하루 모여서 시험을 보는.. "출석연수" 라는 날이 있어.
    내가 회사 출장으로 지방을 갔다.. 라고 함은 늘 이 출석연수를 하러 가는 걸 의미하지.

    출석연수는 그리 재미 있진 않아.
    시험 보는 입장이 아니라 시험 감독하는 입장이니.. 부담감이나 그런 건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이 시험 보는 2시간 동안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니.. 참 심심하지.
    그래서 나는 출석연수 감독하러 가는게 참 싫었어..
    가뜩이나 싫은 출석연수를 더더욱 싫게 만드는 건..
    시험 보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들이란거지.
    아무래도 연수 라는 것이 승진과 관련한 거기 때문인 듯 해.
    아직까지 단 한번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을 보질 못했던 거야.
    나이 지긋하신 양반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안경 치켜세우며 끙끙 대는 모습을 두시간이나 봐야 하니..
    곤욕도 그런 곤욕이 있나..

    하지만 이번 출석연수는 달랐어.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이 하나 있었는데..
    처음 딱 보곤.. 눈이 휘둥그레져 버린거야.
    그래서 잽싸게.. 출석부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랑 동갑이지 않겠어?
    손가락으로 내 나이를 세어 가며.. 졸업년도와 임용고시 합격 년도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이거 원.. 시험감독이란 본연의 임무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거야..
    멍.. 하니 그 선생님 얼굴만 쳐다 보다.. 2시간이 훌쩍 가 버린거 있지.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선생님은 시험을 다 치고 가 버렸고..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 하고 돌아서선.. 몇번이고 가슴을 친거야.
    아.. 아쉽다.. 하면서 말이지.

    평소의 나라면.. 아마 그러고 말았을거야.
    그냥 또 그렇게 가슴 치면서.. "아.. 난 왜 이러지.." 하면서..

    그런데 토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일요일이 되고 월요일이 되도..
    도무지 그 선생님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거야.
    막 생각나고.. 보고 싶고..
    형이 날 보면서.. 저 자식 단단히 상사병엘 걸렸다고.. 문제 있다고..
    한참이나 날 놀려대곤 했었지.

    그러다 월요일 저녁..
    뭐 어차피 밑져도 본전이란 생각에..
    연수 사이트 관리자 페이지에서 그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입수하고는...(물론 이건 불법이지.. 감방가도 할 말 없는.. ;;)
    저녁에 집에 가서.. 몇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했어.(대단하지? 나의 놀라운 발전..)

    "뚜르르르르... 가 아니라 컬러링..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지 참.."

    "...여보세요?"
    (처음 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기 때문인지 약간은 긴장한 목소리..)

    "예, 안녕하세요. XXX 선생님이시죠?"
    (물론 나는 무척 떨렸지만.. 최대한 편안한 목소리로...)

    "예 그런데요?"

    "저.. 지난 주말에 울산공고에서 출석연수 치르셨었죠? 저는 그때 연수를 진행했던 사람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혹시 제 점수에 문제라도??"
    (아.. 귀여운 사람.. 그런게 있을리가 있나..)

    "아뇨 아뇨.. 그런건 아니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전화 드린 겁니다. 연수랑은 관계가 없어요."
    (이렇게 말 해 놓고 보니깐.. 내가 생각해도 참 너무 어이없는 전화더라구..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

    "음.. 그럼요?"
    (개인적으로 연락 할 일이.. 뭐 별 거 있겠어...--;;)

    "음.. 음.."
    갑작스레 말문이 막혀 버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더랬지..

    "다른 건 아니구요.. 그때 처음 뵙고 느낌이 참 좋아서 이렇게 연락 드렸습니다. 실례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선..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었어..

    "네? 정말요?"

    "(다 죽을 상이 되서..)예..."

    난 아마도.. 아마도 내 번호 어떻게 알았느냐? 불쾌하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라..
    뭐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무척 긴장하고 있었어.

    하지만 잠시 후..

    "그렇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하고 웃는 그녀..

    그렇게 시작된 전화 연락은..
    지난 주말 나를 또 울산에 데려다 놓을 정도로 발전했어.

    그리고 지난 주말.. 나는 울산에서 그녀를 만났지.
    내 오랜 꿈이었던 돌고래에서의 데이트.. 그 첫 데이트가 드디어 현실이 된거야.

    내가 늘 꿈꿔왔던 데이트..
    늦은 밤 대왕암의 야경도 같이 보고..
    돌고래를 타고 여기저기 드라이브도 하고.. 좋은 노래가 나오면 같이 흥얼거리기도 하고..
    아.. 너무 꿈같던 5시간 남짓 이었어.

    하지만 시간은 이런 내 맘 몰라주고 재깍재깍 잘도 가대..
    결국 집에 들어가기로 했던 10시가 되어 버렸고..
    나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그녀를 집에 바래다 주고 왔지.

    그리고 오늘은 화요일...
    지난 며칠을 정말 꿈같은 기분으로 보내고 있어.

    여기는 서울이고 그녀가 있는 그곳은 울산..
    너무 멀어..
    너무 멀어서 아무리 내가 맘을 써도 닿지 않을 것만 같아.
    아무리 잘 되도 일년에 열번 남짓 볼 수 있을까?
    휴가나 연휴, 출장 같은 걸 다 세어 봐도 일년에 스무번을 넘지 못할 거 같아.

    왜 자꾸만..
    내 사랑은 이렇게 힘든 길만 걸으려 하는 걸까?

    결국.. 요즘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게시판에 뜸한 이유도.. 온통 그 때문이었을거야... ^^;;

    만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또 전화통화도 자주 하곤 있지만..
    거리가 워낙 멀고 아직 어떤 사이도 아닌지라 말을 아끼느라 그동안 말을 아끼고 있었어.

    하지만.. 또 아쉽게 끝나고 가슴 저미더라도..
    이번엔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만 있었던게 아니라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었다는 걸..
    그냥 바라보며 후회만 하고 있질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잡아 보려 애썼다는 걸..
    그렇게 끝나서 가슴에 상처가 될 지라도..
    그동안 나는 참 행복했더라는 걸.. 나는 기억하고 있을거야.
    그게 좀 더 강한 나를, 좀 더 성숙한 나를 만들어 주겠지.

    나 또한 그녀와의 관계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많이 고민스럽지만..
    단 하루가 되더라도..
    그 시간 동안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일거야.
    그러니 저 자식 또 혼자 모래성 쌓다 끝나는 구나.. 하고 바라보지 말고..
    맘속으로라도 조금은 응원을 해 줘봐.. ^^

    그럼.. 앞으론 그녀와의 일기를 주목해 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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