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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융건릉 산책
    Letter from Kunner 2011. 4. 18. 01:38

    아무 약속도 없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집에서 빈둥거리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최근 주말만 되면 날씨가 안 좋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좋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뭘 할까 고민하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하도 오래 안 탔더니 바람이 다 빠져 있다. 
    바람을 넣고 페달을 밟았다.
    겨울 내내 안 탔으니 근 반년만이다.
    겨드랑이 사이로 지나는 바람이 아직은 조금 차게 느껴진다.

    어디를 갈까 하다, 그간 벼르고 한번도 못 갔던 융건릉을 가기로 했다.
    (예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사 온 후로는 한번도 못 가본 것이다.)

    신나게 페달을 밟아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융건릉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다보니 사람이 엄청 많다.
    하긴, 여긴 매 주말마다 사람이 많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자전거를 전용주차장에 주차했다.


    사실 이 사진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찍은 것이다. 시간이 늦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아까 왔을 때는 주차장이 꽉 차 있었는데..



    입장료는 천원이다.


    사실 이 정도 시설의 유적지(라고 쓰고 공원이라 읽는..)를 돈 천원이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거리에 이런 유적지가 있다는 건 더욱 그렇다.



    융건릉 입구를 들어서니 철쭉이 한창이다.
    그간 나는 진달래고 철쭉이고, 별로 안 예쁘다고 생각해왔다.
    색깔이 좀 예쁘긴 해도, 모양이 영 볼품없어서 사진을 찍어도 멋스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장미니 양귀비니 하는 다른 꽃들에 비해 말이다.
    또 연꽃 같은 꽃에 비하면 정말 매력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융건릉에서 본 철쭉은 그런 그간의 생각들을 모두 불식시켜 버렸다.

    무수히 많은 철쭉이 진입로를 따라 쭉 심어져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간.. 진달래나 철쭉이 별로라고 생각했던 건 주택가 공원 같은 곳에 한 두 그루 심어져 있는 것만 봐 와서 그런가보다.
    황홀했다. 다른 어떤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황홀한 핑크빛 향연을 보고 있었다.


    벌은 아닌데, 나방은 더욱 아닌 것 같고. 이름모를 벌레가 프레임이 들어왔다.


    벌레를 좀 더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화면 중앙을 잘라냈다.
    초점이 맞은 부위라면 크롭해서 쓰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저가의 렌즈임에도 만족도는 최고다.


    꽃을 찍을 때는 노출을 좀 높여 주는 편이 좋다. 나는 일단 +1 정도 하고 본다.
    하지만 높여 놓은 노출만큼 배경색도 함께 바래져 버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철쭉이 위로 뻗어 자라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소나무 밭이라 햇빛을 받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위로 쭉 뻗어나간 철쭉을 낮은 앵글로 잡아 봤다.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모습들이다.


    애초에 광각렌즈 하나 들고 간 탓에 이 정도 거리에선 뒷배경을 벽지처럼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꼭 아웃포커스 된 사진이 좋은 사진일 수는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빛의 향연. 대체 이런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가운데 빛 받은 곳을 크롭해서 쓰면 더 좋은 사진이 됐으려나? 하지만 이런 진득한 색감도 맘에 든다. 


    색깔이며, 화각이며, 선예도며 해상력까지.. 모두 다 대만족이다.
    그런데 자꾸 이러다보니.. 얘도 이런데 칼이사는 대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ㅡㅡ^ 



    제법 푸른 색이 많아졌다. 곧 푸르름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예전에 '희망' 이라는 이름으로 포스팅한 사진이 생각 나는 컷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각도로 보면 마치 왼쪽의 소나무에서 저 싹이 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종교배' ㅎㅎ


    빈 나무 가지가 빽빽하다. 이런 장면을 보면 꼭 찍고 싶어지는 사진이다.
    이 멋진 장면을 위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셔터를 눌렀을 뿐. 


    윗 사진의 위치와 한참 떨어진 다른 곳인데..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어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마침 까치가 날아가면서 심심함을 덜어준다. 


    곧 '신록예찬'을 노래할 날이 오겠지. 청아한 어린 잎이 몹시나 아름다웠다.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이런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 사치다.
    끝날 때 즈음까지 기다렸다면 찍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사람을 최대한 안 보이게 화각을 잡느라 고생했다. 역시나 아예 안 나올 수는 없다.
    그저, 융건릉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곳은 장조(사도세자)와 그의 비(혜경궁 홍씨)가 묻힌 융릉이다. 사진에 보이는 누각은 장조 부부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단청색이 몹시 아름답다. 다른 유적지나 사찰에서는 본 적이 없는 색이어서 한참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정말 예쁘다. 


    단청기와가 참 예쁘다. 사진 상 융릉의 사당은 복원 공사를 했는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굉장히 깨끗한데, 정조의 무덤인 건릉은 몹시 낡았다. 왜 같은 유적지에서 하나는 복원 공사를 하고 하나는 안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일까?


    건릉의 사당이다. 보는 바와 같이 굉장히 낡았다. 문짝도 기둥도 단청도.. 제대로 남아 난 게 거의 없을 정도다.
    완전 깨끗한 융릉의 사당과  비교가 됐다. 아무튼 궁금한 일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지붕 귀퉁이에는 저렇게 동물상들이 붙어 있었다.
    저게 대충 뭐라는 것은 알겠는데, 배움이 짧아 하나하나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역시 아는 건 힘이고 모르면 죽어야 되는 거다. 


    융릉과 똑같이 생긴 건릉이다. 정조와 그의 아버지. 부정, 효심, 가족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무를 보고 한참 신기해했다. 무슨 개나리가 흰색이 다 있지?
    나중에 검색해 보니 개나리가 아니라 '미선나무'라 한다.
    개나리와 같은 물푸레나무 과라 하니, 개나리랑은 친척 쯤 되겠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똑같이 생겼다.


    이건 산수유. 산수유 역시 참..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본 것들은 다 예뻤다. 내 마음이 그랬는지..


    빛을 받아 반짝이는 신록을 찍고 싶었다. 마침 뒤의 연인이 지나가서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잇는 것 같다.


    가끔 자연은 놀라운 신비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 등걸의 모양이 일부러 만들기라도 한 것 같다.


    여기저기 꺾여 버려진 철쭉을 보니 속이 상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몹시 즐거워 보여서 보는 사람도 함께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철쭉이며 개나리 같은 꽃들을 사정없이 꺾어서 아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 또 부모들이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왕에 아이들과 함께 유적지를 찾았다면 자연을, 특히나 유적지의 자연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훌륭한 교육일 것이다. 


    기묘하게 생긴 나무를 다 봤다. 연리지라 하기엔 너무 일찍 가지가 분리되서 바지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최단거리가 짧으니까 이런 사진도 찍어보고.. 재밌다. 24mm의 화각은 정말 재밌다.


    집에 오는 길에 용주사 앞에 심어져 있는 목련을 찍었다.
    이 목련은 지난 2월, 봄이 움트고 있음을 발견했던 그 목련이다. 못 본 사이 이렇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수원터미널 앞에 있는 설렁탕집에 갔다. 

    설렁탕집에서 기르고 있던 이름모를 꽃. 빨려들어갈 것 같은 회오리 꽃술을 가지고 있었다.




    휴, 어느덧 시간이 또 이렇게..
    즐거운만큼 아쉬운 주말이 이렇게 가버렸다.

    내일 또 한 주를 시작하려면 얼른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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