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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 from Kunner 2007. 2. 7. 12:04

    지난 삶에서 제발 좀 잊혀졌으면 하는 기억.
    누구나 하나 둘 쯤은 갖고 있겠지.
    아니, 어찌 하나 둘 밖에 없겠어.

    그 중에서도, 떠올리기만 하면 분노에 치를 떨게 되는 기억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겠지.

    어제 밤엔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 그딴 거 다 잊어 버렸다고 관심도 없다고 하면서도 
    떠올리면 내내 않던 욕이 입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말야.

    상상은 나래를 펴서 그를 마구 짓밟아주기도 하고, 나 혼자만의 정의로 그를 응징해 주기도 했어.
    얼마나 격렬했던지 가슴이 다 콩닥거리고 손에 땀이 배기까지 했지 뭐야.
    그래봐야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한데 말이지.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어, 
    나를 다치게 한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가하고 있었어.
    그를 조롱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기도 했고 - 또 실제로 문구를 떠올리기도 했고 -
    그 녀석 확 죽어 버렸으면,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죽어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
    생각 중에, 내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일까 - 아니, 잔인한 사람일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들어 몸서리를 치기도 했어.
    그래도 내 손에 피 묻히는 상상 같은 건 하지 않았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나마 어느 정도 선은 넘지 않았다는 생각 - 어차피 상상에 불과하지만 - 덕에 말야.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상상을 해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어지질 않았어.
    게다가 그런 상상 하고 있는 내가 싫어서,
    "잊자, 잊자. 다른 걸 생각하자. 좋은 걸 떠올리자." 하고 부르짖는데도, 
    떨쳐지지 않는 그 생각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잠자리를 차고 일어났다가 한참을 식식대고, 다시 누웠다가 또 벌떡 일어났다가..

    그냥 갑자기 떠오른 생각만으로 그랬다니.. 내가 생각해도 이거 정신병 아닌가 싶었지.
    단지 밤의 어두움과 적막이 만들어 낸 망상일 뿐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집요했으니까.

    그딴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나인줄 알았는데..
    그런거 맘에 담아두고 해코지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을 나일 줄 알았는데.
    단지 상상 뿐이었지만.. 그래, 그냥 공허한 망상일 뿐이었지만.
    용서란거, 그렇게 쉬운거 아니구나.
    잊었다, 다 잊었다 해도.. 말처럼 쉬운게 아니구나.


    온통 까맣던 창문이 어스름 녘의 빛을 받아 푸르스름해 지다가..
    다시 백열전구 빛처럼 노란 빛을 내는 아침이 될 때 까지 나의 고통스런 상상은 계속 됐는데...
    그렇게 밤이 하얗게 새 버리고 말 즈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는 왜 그를 미워하고 있는거지? 그도 그 나름대로는 그게 정의였을텐데.."

    하지만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그렇게 아침이 되고, 하루가 시작되고.
    내가 왜 그를 여전히 미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숨가쁜 일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어.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난 지금에서는..
    그 질문이 새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기까지 해.
    사람 맘이 조석변이라고 하지만, 참 그래.
    여기까지 써내려 온 글이 무색할 정도로...


    사실 아직도 나는 그가 참 미워.
    여전히 복수, 내지는 응징 따위의 생각들이 머리 한 구석, 어디엔가는 자리잡고 있음을 느껴.
    용서, 화해 같은 말은 자신도 없을 뿐더러, 그런 사람과는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무시, 망각 같은 말은 열렬히 바라고 있다고나 할까.

    아직 수양이 부족한거지.
    아직도 한참이나..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인거지,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겠다, 어떻게 변해야겠다 하는 다짐을 하기보다..
    오늘은 딱 그 정도만 하고 말래.
    그냥.. 난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인거다, 그러니 그런거다.. 하고 말야.

    원수도 사랑할 정도의 수양.. 나는 아직 못 하고 있는가봐.
    언젠가 그 나쁜 기억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내 키가 한뼘은 더 자랄 수 있게 되겠지.
    결코 낫지 않을 것 같던 상처도 지난 뒤에 돌아보면 아물어 새살이 돋곤 하니까 말야.

    분노에 벌벌 떠느라 잠을 못 자다니, 잘 한 것 하나 없지만.
    어쩐지 안쓰러 토닥거려 주고 싶다. 토닥토닥..
    너무 애쓰지말자. 시간이 해결할테니까.. rel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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