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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Letter from Kunner 2006. 11. 9. 09:50집에 오는 막차.
전철안은 온통 사람들로 북적인다.
문가에 서서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다 내릴 곳을 놓쳐 버렸다.
그간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요즘 들어 내릴 곳을 놓치는 일이 잦다.
막차인 덕에.. 내려서 집까지 꽤 긴 거리를 걸어와야만 했는데,
부평에서 집까지 걸어 보기는 참으로 오래간만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새 집으로 이사한 후에 걸어 보기는 처음이구나.
바람이 무척이나 심하게 불어 온다.
마치 태풍이라도 온 듯, 사납게..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치 봄바람처럼..
아직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봄을 그리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면, 생각도 함께 줄어들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언젠가 했던 얘기처럼.. 일을 하는, 또는 다른 것을 하는 두뇌와 잡상을 하는 두뇌는 서로 다른 곳에 있는가보다.
나는, 언제쯤이면 이 무거운 생각들을 내려 놓을 수 있을까...
왼손잡이에게 너는 사실 오른손잡이라고 계속 말하면, 그 왼손잡이는 결국 오른손잡이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내 경우엔 다르다.
나는 왼손조차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서, 진정 "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내 것이라 믿었던 것도,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런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동안의 마취 - 그리고 긴 고통을 더는 반복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쩐지 비장하고, 어쩐지 영원히 풀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다짐이다.
주술이란 그런 것이다.
깨어지지 않길 바라며 걸지만, 깨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에 거는 것이기도 하다.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