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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 VS 프랑스 관전기
    쉼을 위한 이야기/축구 2006. 6. 19. 19:21

    G조 예선 2차전, 對 프랑스전을 무승부로 마쳤다.
    어려운 상대에도 불구,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 준 선수들 이하 코칭스탭에게 감사를 전한다.

    경기를 마친 직후, 아직 감상이 채 걸러지기도 전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오늘이 아니면 이 경기를 바탕으로 한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글 쓰는게 결코 본업이 아닌데도 꼭 써야 한다는 강박감.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경기를 보고 난 후, 어떻게든 나도 거들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키보드 두드리는 일 밖에 없다.
    어쨌든,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의 Review가 시작되었다.


    전반 - 불운과 행운의 교차.

    TV 전원을 켠 순간, 앙리가 클로즈업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전반 9분에서야 TV의 전원을 켜게 됐는데, 켜자마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앙리의 선제골이다.

    대한민국 0 : 1 프랑스.
    하필이면 TV 전원을 켜자 마자 골이라니, 우연이라도 이런 우연이 있나.

    전반 10여분을 날려 먹은 탓에, 포메이션이고 출전 선수 명단이고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해설자가 선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그리고 TV 화면에 잡힌 선수들의 대형을 보며 눈짐작 할 수 밖에..

    대충 눈 짐작 한 결과, 조재진/박지성/이천수의 3톱에 이을용/이호/김남일의 미드필드, 그리고 좌동진 우영표에 김영철과 최진철이 중앙수비 - 이렇게 4-3-3인 듯 했다.
    전반 내내 거의 경기장을 반만 쓰다시피 하며 수비만 해야 했기에 포메이션을 구분하는게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경기가 끝난 후, 뉴스 기사에서 오늘 포메이션은 3-4-3 이었고 김동진이 왼쪽 수비수로, 이을용은 좌측 미드필더로 나왔다고 되어있지만 그다지 수긍이 가진 않는다.
    어쨌거나.. 그랬다니 그렇구나, 할 밖에... 근데 정말 그랬나?

    나같이 골이 들어간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첫 골장면에 대한 리플레이가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이제 보니 김남일이 윌토르의 슛팅을 걷어 낸 것이, 하필이면 앙리의 앞에 척 놓여졌던 것이다.
    두 수비수 사이에 앙리가 쇄도하고, 타이밍 좋게 공이 들어와 세상 어떤 수비수와 골키퍼라도 막을 수 없을 듯한 골 장면이 연출되었다.

    누굴 탓하랴? 비껴간 행운을 안타까워 할 밖에.


    무엇보다도 상대는 우리보다 객관적 전력이 한 두 수는 우위에 있다고 해야 좋은 프랑스.
    전반 초반의 실점으로 자칫 대량실점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우려됐다.
    이기면 1:0, 지면 0:2, 비기면 1:1 이라 예상했던 나는 어쩐지 자꾸 한 골을 더 허용해 0:2로 지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자고로 축구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그리고 이 경기는 0:2 가 아닌, 1:1이 되었다.
    그게 축구의 묘미고 그래서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나의 축구 사랑과는 관계없이, 전반은 완전히 프랑스의 페이스로 흘러간다.
    하프라인을 넘는 게 숙제라 생각될 정도로, 또 간신히 넘는다 해도 위협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는 우리의 공격.
    그렇게 내내 수비만 하다보니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벌써 전반 30분이 되었다.
    (가뜩이나 전반 10분을 날려 먹었으니 시간은 더욱 빨리 가는 듯 하다.)


    전반 30분이 살짝 넘을 무렵, 나는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바로 비에이라의 헤딩슛이 골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
    이번에도 역시, 첫골 상황과 마찬가지로 계속 리플레이를 보여 주는데 여러 각도에서 본 영상으로는 분명 골라인을 넘었다고 보여진다.
    이운재가 선방해 냈으나 이미 골라인은 넘어간 상황.
    공의 들고 나는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였을까?
    주심도 부심도 모두 보지 못한 듯, 이운재가 쳐낸 공을 수비가 차내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반칙.
    다행스럽게도 경기는 그대로 속행됐다.

    분명 오심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행복한 오심이다.
    축구에서는 오심도 엄연히 경기의 일부이다.
    혹여 누군가 이 상황을 놓고 오늘 우리의 경기를 비난한다면, "오심으로 얻은 골을 잠그느라 긍긍하던 어떤 팀" 도 있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적어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축구를 할 줄 아는 팀이라고 말이다. ^^
    (리뷰를 다 써내리고 뉴스기사를 보니, FIFA 사이트에 오심이 아니었다는 기사가 떴다 하는데.. 카메라 각도 문제라고 하기엔 골라인을 많이 넘은 듯도 해 보이던데.. ^^ 아니라면 더욱 다행한 일이다.)


    미처 가슴 쓸어내린 손을 내릴 틈도 없이.. 경기는 프랑스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된다.
    프랑스의 그 거센 몰아침에, "근성을 보여 달라"는 말 뿐 -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맞게 되었다.
    이천수의 프리킥, 거리가 멀어 직접 슛은 어렵겠다 생각한 순간 공이 빠른 속도로 골문을 향한다.
    마치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의 경기에서 베컴이 가마라의 자책골을 유도해 낸 것과 같이, 날카롭고 빠른 궤적을 보였다.
    역시 이천수, 킥의 감각이 농익었다.
    이천수의 발끝을 떠난 볼이 다른 선수에게 제대로 맞았다면, 경기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쉽다.

    전반 종료 휘슬이 가까워 올 수록 프랑스도 우리도 이렇게 전반을 끝내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미쳐 예상치 못한 가운데 한골을 허용했지만, 1:0 이라는 전반 스코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리드하는 상태로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상대는 프랑스다.
    썩어도 준치인데, 하물며 뢰블레야.

    드디어, 1:0으로 끌려가는 전반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참..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35분(^^;;)이다.
    선수들.. 특히 4백라인과 이운재 골키퍼에게 박수를!


    분명 전반의 우리 움직임은 좋지 못했다.
    뭐.. 대단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짚고 넘어 갈 것은 짚고 넘어가 보자.

    1.
    우선 공수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었다.
    언젠가 어떤 축구 컬럼에서, 현대 축구의 이상적인 공수 간격은 40미터 내외라고 나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의 공수 간격은 그 두배는 되어 보였다.
    프랑스의 거센 공격에 수비진이 뒤로, 뒤로 물러 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앙리같은 빠른 공격수를 두고 수비가 전진하는 것은 상대적 열세인 우리에게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2.
    그리고 좌동진, 우영표.

    (기사에선 좌을용, 우영표의 3백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좌동진, 우영표의 4백으로 보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김동진 - 이천수와 이영표 - 박지성의 조합은 맞지 않는다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월드컵 첫 무대를 밟은 김동진이 약간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듯 하고, 김동진의 오버래핑이 없는 한 이천수 혼자서는 왼쪽이 원활히 돌아갈 수 없다.
    또 오른쪽의 박지성은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를 올리는 윙포워드라기 보다 중앙을 향해 치닫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때, 오버래핑을 하는 이영표와의 유기적인 공격을 기대할 수가 없다.
    무조건적으로 좌동진, 우영표가 안된다는게 아니라 이런 식의 좌동진, 우영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천수가 오른쪽을, 박지성이 왼쪽을 공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추가 실점이 없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무엇보다, 이영표의 분전이 돋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마지막으로, 실종된 미드필드.

    4-3-3 포메이션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 미드필드가 실종되기 쉽다는 것이다.
    경기가 잘 풀릴 때의 4-3-3은 두 명의 윙포워드와 역시 두 명의 측면 수비수가 미드필드를 지원해 주어 상황에 따라 마치 7명의 선수가 미드필드에 배치된 효과를 내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완전히 정 반대가 된다.
    4-3-3 에서 오늘 전반처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공격수는 전방에 고립되고 수비수는 수비라인에 갇혀 미드필드에 3명만 덩그러니 서 있는 형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토고전에 이어 이을용의 컨디션이 충분치 못한 듯 했던 것은 우리 팀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었다.

    미드필드를 점령당해 수비는 걷어 내기 바쁘고, 공격수는 무리한 패스를 받아 내느라 체력소모가 컸다.
    추가 실점이 없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칭찬할 점이긴 하나, 이대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내가 생각한 것은, 
    1. 
    우선 박지성과 이천수의 위치이동.
    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인 좌동진, 우영표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 있는 공격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에서 박지성과 이천수가 자리를 바꾼다.
    김동진이 수비에 전념하더라도, 박지성은 충분히 혼자 해 나갈 능력이 된다.
    이천수는 이영표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공격라인을 정비한다.


    2. 
    안정환의 교체 투입.

    부진한 이을용을 안정환으로 교체한다.
    안정환은 안정된 볼 키핑력과 넓은 시야로 공격진과 미드필드 사이를 조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토고전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지난 토고전에서 "아드보카트 매직"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이런 우려에도 불구, 후반전이 기대되었다.
    토고전에서 1:0 으로 끌려가던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역시 학습효과는 무섭다.
    그래, 나는 고작 두 경기 만에 "파블로프의 건너", 아니 "아드보카트의 건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후반 - 아드보카트 매직.

    하프타임동안 지루한 광고를 피하느라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끝에, 드디어 후반전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아마도 토고전처럼 안정환이 투입되겠지, 교체는 이을용일거고." 하는 나의 예상을 비웃는 듯 아드보카트는 이을용 대신 안정환이 아닌 설기현을 투입했다.

    무척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인 설기현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는가?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 직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통쾌한 역전골의 주인공이다.
    후반 들어 뒤가리와 르뵈프의 연속골로 3:2로 분패하긴 했지만, 하프타임 내내 대한민국 2 : 1 프랑스 라고 찍힌 프로그램명을 볼 수 있었던 것은 4년이 지난 아직도 짜릿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래, 느낌이 좋다. 설기현 Go, 기현 Go!

    그리고 후반 들어 달라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바라던 대로 이천수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격수들의 스위칭은 경기 중에도 빈번히 이뤄지는 것이긴 하지만, 일시적인 스위치가 아닌 그야말로 포지션 변화 말이다.
    이제 공격라인은 왼쪽의 설기현, 중앙의 조재진, 오른쪽의 이천수. 그리고 프리롤의 박지성이 이끌게 된다.
    그리고 공격은, 예상대로 활기를 띄어가기 시작한다.
    조재진이 홀로 고군분투하던 공격진에 우리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하게 된 것이다.

    후반 휘슬이 울린 후 10여분간, 우리는 상대를 몰아 치기 시작한다.
    과연 이게.. 전반전의 그 팀인가 싶을 정도로 상대를 몰아 부쳤다.
    결정적인 장면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부쩍 늘어난 점유율과 패스성공률에서 선수들의 여유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이쯤되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전반의 졸전은 고질적인 문제일까?
    전반엔 고전하고 후반에 만회한다가 모토인 "아드보카트 매직" 은 아닐까?
    물론 요즘 유행하는 조삼모사처럼 "만회하기만 해 준다면야 그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수의 간격은 전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쯤되니 감독의 노림수이기도 한 듯 하다.
    차범근 해설위원의 말로는, 공격과 수비를 완전히 이원화 하여 경기를 운영했다고 한다.
    아마도 프랑스가 앙리나 리베리의 빠른 발을 이용한 공격을 자주 하기 때문에 그것만 묶어 두면 된다고 생각한 탓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드보카트가 추구하는 축구는 히딩크의 그것처럼 중원의 점령을 도모하는 축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압도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히딩크 시절보다 훨씬 실리적인 축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히딩크에게 길들여진 나는, 그때의 대표팀이 자꾸 그립다.
    또 어느 틈에 아드보카트에게 길들여져 지금이 대표팀을 사랑하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02년의 대표팀이 그립다.


    그 후 경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되지만 분명 전반전과는 많은 것이 다르다.
    우선 이영표의 오버래핑이 활발해졌다.
    이영표의 오버래핑으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미드필드 및 포워드 진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덩달아 왼쪽의 공격도 활발해 졌다.
    그리고 슬슬 프랑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우리의 압박이 되살아 났다.
    우리가 공만 잡았다 하면 두 세 명이 에워싸던 프랑스는 더 이상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지 못했고, 그에 반해 그저 멀뚱멀뚱 쳐다 본다고 생각되던 우리 선수들이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공 가로채기가 몇번 연출되고, 공수 간의 패스 연결도 매끄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 경기력을 두고 평한다면 "쉽지 않은 상대".
    이런 경기력을 전반부터 보여 줄 수 있다면... 강팀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던 중 이호가 비에이라의 니킥을 맞고 쓰러진다.
    비에이라 이 녀석, 못 본건지 일부러였는지.. 헤딩 경합을 하다 넘어진 이호를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몸을 돌려 방향전환을 하느라 못 본 것이었겠으나, 나쁜 자식.. 하고 욕이 나온다.
    힐끔 쳐다 보더니 녀석도 덩달아 누워 무릎을 부여잡는다.
    그래, 실수로 모서리에 무릎 부딪히면 참 아프긴 하더라만.. 어쩐지 그 놈 고의로 니킥을 날린 것이 아닌가 계속 의심이 간다.

    결국 비에이라가 날린 니킥의 가공할 위력으로, 이호는 김상식과 교체되어 들것에 실려 나간다.
    두둥 - K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 납시오!
    김상식이 투입되는 걸 보며, 기대 반 우려 반이 된다.
    그의 플레이에는 기대가, 그리고 선수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려.
    뭘 해도 욕 먹는 사람 중 하나인 이 김상식이 들어 갈 때 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하나 같이 이렇다.
    뭘 해도 욕 먹는 사람들.
    어쩌면 그 반대급부로 그들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쯤되면 국가대표 경기에서 그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제발 욕 먹을 빌미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 된다.
    그래, 수비수는.. 경기 내내 화면에 클로즈업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호와 이을용이 교체되어 나갔다.
    미드필드는 이제 전반 시작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김상식이 깊이 내려가고, 김남일이 공격적인 모습을 띄게 되리라.

    이에 앞서 프랑스는 윌토르를 빼고 리베리를 투입했다.
    아마도 도메네크는 리베리의 빠른 발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지난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오더니만.. 아직 신인의 티를 채 벗지 못했다.
    빠르구나,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약간은 지루하게 시간이 흐를 쯤, 아드보카트가 최후의 칼날을 빼들었다.
    후반 25분 경, 이천수가 교체되어 나가고 안정환이 들어 온 것이다.

    사실 이 교체는 너무나 뻔한 것임에 틀림없다.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가 아닌 한, 토고전에서 큰 활약을 펼친 안정환을 내보내지 않을리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상이나 선수 보호 차원이 아닌 한, 박지성을 교체아웃할 리는 없다.
    또 이미 공격적인 수비라인임을 감안할 때, 수비수를 공격수로 대체할 리는 없다.
    조재진을 빼고 안정환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공중볼을 따낼 포스트 플레이어가 없다.
    설기현이 원톱도 가능한 선수라고는 하지만 최근 실전 경험은 전무하다.
    아드보카트는 전술 운용은 모험적으로 할지 모르지만,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결코 모험적으로 하지 않는다.
    3-4-3 에서 4-4-2 를 쓰는 감독이긴 하지만, 설기현을 포스트 플레이어로 쓰는 감독은 아니라는 뜻이다.
    남은 것은 단 한자리, 이천수 뿐이다.

    어쩌면 1:0 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늦은 교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드보카트는 후반을 20여분 남기고 이천수와 안정환을 맞바꾸었고, 교체되어 들어 온 안정환은 예의 그 몸놀림을 보여 주며 공격진에 활기를 가져다 주었다.
    앞서 설기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교체 카드는 멋지게 적중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 팀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인 이천수, 이을용이 모두 교체 되어 나가다보니 프리킥이나 코너킥 할 때,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김남일과 안정환이 프리킥을, 코너킥은 리그 경기에서도 종종 차곤 하는 박지성이 맡는다.
    이번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김남일의 크로스성 프리킥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후반 35분, 시간이 멈추다.

    프랑스 진영의 하프라인을 넘어 우리 선수들끼리의 패스가 연결되던 중, 안정환이 설기현에게 볼을 건넨다.
    이보다 한 두어 장면 전에, 프랑스의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외곽에서 설기현이 볼을 몰고 가다 두 명의 수비수에 에워쌓여 볼을 뺏긴 적이 있었다.
    또 그렇게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설기현은 다시 같은 장소로 볼을 몰고 들어 갔다.
    예의 그 굼뜬 듯 하게 보이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멋지게 두 수비수를 제치고 크로스를 밀어 넣었다.
    마치 조금 전 상황에 대해 복수하기라도 하는 듯.

    과연 설기현의 크로스는 "칼날크로스" 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대 수비와 골키퍼 사이를 가로지르는 빠른 크로스가 넘어 갔다.
    기다리고 있던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궈 주고, 어느새 자리 잡은 박지성이 밀어 넣는다.
    볼이 정확히 맞지 않아, 핑그르르~ 돌며 프랑스의 골문 안으로 빨려 가는데..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골, 골.. 그렇게도 기다리던 골이 박지성의 발끝에서 터져 나왔다.

    후반 35분, 드디어 우리 팀의 만회골이 들어 간 것이다.
    미친 듯 환호하는 우리 선수들과 넋나간 프랑스 선수들의 희비가 교차된다.

    역시 기회는 열심히 뛰는 선수에게 오는 법인가보다.
    비록 얀콜러가 보여 줬던 헤딩 슛이나, 프링스의 중거리 슛처럼 멋지게 들어 간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치고, 연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후반 중반 이후, 김남일이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고 체력적인 부담을 호소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교체카드도 모두 다 쓴 후여서 김남일의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 경련을 일으키게 되면 계속 그렇게 된다던데.. 
    남은 시간이 아쉽고 교체 카드가 아쉽다.
    비에이라가 이호에게 날린 니킥은 이렇게 엉뚱한 곳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버렸다.
    그래도 남은 시간, 김남일은 잘 버텨 주었다.
    고맙고, 고맙다.


    후반 말미, 프랑스는 도라수를 말루다와 교체하고, 곧이어 트레제게와 지단을 교체한다.
    이런 이런.. 아무리 앙리와 트레제게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트레제게가 후반 45분 출전용이란 말인가?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에서 트레제게 교체타임으로 시간끌기라도 하는 건가?
    아아.. 아무리 앙리가 대단한 선수기로소니 트레제게가 이렇게 전락해 버리다니.
    이봐요, 도메네크 감독.. 트레제게가 전갈자리인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시나.. 참내.


    그렇게 경기는 약간의 공방을 더하다 종료되었고 우리는 귀중한 승점 1점을 추가했다.

    대한민국 1승 1무.
    승점 4점으로 여전히 G조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늘 스위스가 토고를 2점차 이상으로 이기지 않는 한, 다음 경기까지 조 1위는 여전히 우리의 몫일 것이다.
    두 경기가 끝난 시점에서도 조별 순위표 맨 위에 우리 이름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우리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

    늘 그렇듯,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 이하 코칭스탭에게 감사를.
    라이프치히를 홈구장처럼 만들어 준 원정응원단의 노고에 치하를.
    마지막으로 부디, 이번 거리응원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기를.. 
    하긴, 경기 끝나고 바로 해가 떠 버려서 탈선의 기회는 확 줄지 않았을까? 
    하하.. 기쁜 경기 결과에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일이 우습다.



    선수 열전

    평점을 메겨 보려다, 그라운드의 열다섯에 일일히 점수를 부여하는 일이 버거워 그만 두기로 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선수들 면면에 대해 끄적거린다.

    역시 김남일의 수비력과 시야, 패스 센스는 일품이다.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패스를 차단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그의 수비력에 박수를 치는 일이 잦아진다.
    중거리 슛의 정확도만 보강한다면, 이런 선수 언제 또 나올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결정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을까.
    고작해야 5년? 그런 생각을 하면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유럽 도전이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 덕에 지금의 김남일도 있는 거고, 가까운 수원에서 적어도 격주에 한번은 그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수원 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리고 김남일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내게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다시 유럽에 노크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이영표는 토트넘 부동의 왼쪽 측면 수비수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국가대표팀에 오면 오른쪽으로 밀려 나곤 하는데, 그것은 왼쪽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오른쪽 자원이 취약한 탓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레 짚어 본다.
    하지만 오늘의 이영표는 오른쪽에서도 제 기량을 십분 발휘해 주었다.
    평소 오른쪽의 이영표를 보면, 왼쪽에 섰을때에 비해 수비에 간혹 문제점을 드러내곤 했는데 오늘 경기는 정말 완벽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역시 달리 프리미어리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단을 앞에 두고 발재간으로 제치는 장면에서는, 지단에게 "이젠 그만 은퇴해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단, 이제 남은 한 경기가 은퇴냐 잠시 은퇴연장이냐를 가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지단의 은퇴와 관계없이, 이영표는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정환은 박지성처럼 두개의 심장을 가진 선수가 아니다.
    조재진처럼 포스트 플레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설기현처럼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편도 아니다.
    이영표처럼 상대를 앞에 두고 헛다리를 짚어 낼 줄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에는 나름의 미학이 있다.
    항상 여유가 있으며, 기품이 있다.
    물론, 게임이 정말 안 풀리는 날에는 안정환이라고 별 수 있는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플레이에는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의 플레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가 큰 경기에 강한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 쯤은 인정하지 않는가?
    오늘도 그가 교체되어 들어 올 때, 오늘 뛴 그라운드의 11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천수와의 교체였음에도 불구 가슴이 뛰던 것은.. 바로 그런 안정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나를 안정환 빠~로 몰아 갈까?
    특정 선수의 빠~ 가 되고 싶진 않지만, 굳이 그럴거라면 No20. DG lee에게.. 히히 ^^;;
    근데 이 녀석은 재활치료 중이다.. -_ㅠ


    이천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선수들 중 하나지만, 그를 보면 자꾸 쓴소리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나의 기대치가 워낙 높은 탓이리라.
    이천수는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스페인에서 돌아 온 후 더욱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성숙의 과정에서 이천수는 약간의 스타일 변화가 있던 듯 하다.
    정신적인 면과 킥의 정밀함이야 말할 것도 없이 성숙해 졌겠지만, 이 스타일 변화로 인해 그의 과감한 돌파는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질풍처럼 달리는" 이란 수식어를 붙이기가 힘들어 진 것이다.
    "좌천수 우태욱"이라는 닉네임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윙플레이어는 어느새 투톱의 small 이 더 어울리는 선수로 탈바꿈해 버렸다.
    소속팀에서의 그의 위치는 현재,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인 듯 하다.
    하지만 선수는 자기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억지스럽지만 설령 이천수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요구하면, 그에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여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본프레레가 그를 그렇게 기용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결과는 1골 1어시스트.

    어쨌거나 지금의 이천수는, 좀 더 강단 있는.. 과감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
    이동국에 이어 내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인 이 녀석, 남은 경기에선 제발 그래주길 바란다.
    말디니 뒤통수를 후려 차던, 칸을 앞에 두고 호쾌한 발리슛을 날리던 그 모습을 다시 보여 달라고!



    이제 우리 대표팀은 5일간 휴식 후, 스위스와 마지막 일전을 펼치게 된다.
    오늘 스위스와 토고의 경기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결과가 어찌 된다 해도 아직 16강에 올라갈 나라가 확정되진 않는다.
    모든 것은 조별리그 3차전이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
    16강행에 대한 가능성이 어느때보다도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은 기간, 선수들은 컨디션을 더욱 끌어 올리고 심리적 안정을 취해 24일 對 스위스전을 최상의 전력으로 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오늘 부상이 염려되는 이호와 김남일 선수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바란다.

    붉은악마의 함성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덧 -
    몇번이나 화면에 잡힌 FC AN YANG, Forever BU CHEON의 걸개에 희비가 교차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표팀을 가진 나라에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부디 안양과 부천이 다시 K리그에 깃발을 나부끼게 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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