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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목적인 대표팀 사랑은 기형적인 축구 사랑에 다름 아니다.
    쉼을 위한 이야기/축구 2006. 5. 29. 16:49

    *
    어느새 4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월드컵이 다가왔다.
    이번 월드컵에도 역시, 우리 대표팀은 앞다툰 언론 보도와 뭇 사람들의 기대로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산업에서는 물론 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온통 월드컵 특수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월드컵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눈살이 찌뿌려 지기도 한다.
    "좋은게 좋은 거긴 한데.. 너무 흥분해 있어요." 하고 말해 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즐기는 한 방식일 뿐인데.

    그런데.. 정말 축구를 즐기는 것은 맞는가? 
    예상 성적을 말하고, 각국 대표팀의 포메이션과 선수 이름을 줄줄 외는 것을 보면 분명 축구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우리네 축구 현실을 돌아 보노라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혹시 "모두 모여 얼싸앉고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 보는 놀이판"에 온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성적이야 어떻든, 경기야 어떻든 그저 신명나게 놀기만 해야 할 것이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들려 올 욕설과 비난이, 나는 벌써부터 두렵다.


    **
    94년에도 98년에도.. 그리고 그 훨씬 이전부터 월드컵은 있어왔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2002년 월드컵.
    "신화"라고 표현되곤 하는 2002년 월드컵에 대해 따로 코멘트를 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 행복했던 한달, 그 열광적인 한달의 기억으로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팬이 되었다.
    "전국민의 붉은악마" 같은 말 아니어도, 그 한달 동안 우리는 모두 한 팀을 응원하는 팬이었으니까.
    그러고보면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많이도 바꿔 놓았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전의 월드컵과 02년 월드컵, 그리고 앞으로 2주도 채 남지 않은 06년 월드컵.
    02년의 괄목할 성적 외, 과연 무엇이 다른가?
    정작 축구엔 별반 관심도 없으면서 국가대표팀을 향한 기형적인 관심과 성급한 예상, 그리고 섣부른 기대.
    우리는 정말 그런 기대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까?


    ***
    고백하건데 내게 축구란.. 그리고 월드컵이란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이 못 되었다.
    프로축구는 고사하고 그렇게 열광하는 대표팀 축구조차 잘 알지 못했다.

    예전에 국내 축구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저 황선홍이나 홍명보, 서정원이나 최용수 정도.
    고종수는 남들이 다 천재라니 천재인가 보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98월드컵에 없었으니) 안정환은 그렇게 잘 한단다.
    그래, 이동국 얘기도 많이 나오더라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서 튀어 나온 걸까?
    내가 아는 사람을 다 합쳐봐야 열명도 안 되는데, 축구는 11명이 한다.
    리저브 멤버도 있을테니, 최소한 스무명은 될게다.
    그럼 대체..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나온걸까?

    국가대표라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축구 국가대표는 그 나라에서 제일 축구 잘한다는 사람을 모아 놓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그 기준은 뭐고, 인력 Pool 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너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다 전철에서 우연히 한 스포츠 신문을 보게 되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프로축구, K 리그였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 프로축구라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스포츠 신문의 1면이나 TV의 스포츠 중계 같은 걸 보게 되면 부산이 어떻고 수원이 어떻고, 포항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들어서 말이다.
    사실 나같이 축구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도, 간간히 스포츠 신문을 통해 프로축구에 노출 되어 있긴 했나보다.
    샤샤의 "신의 손" 사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샤샤나 우승팀 수원삼성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저 아.. 그런 사람이 있구나, 그런 팀이 있는가보구나 했을 뿐이다.
    그래, 내게 K리그란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난 FC 코리아 - 국가대표팀의 팬이었다.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는, 그리고 선수들의 소속팀의 경기가 있는 K 리그는 그저 국가대표 양성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국가대표 경기에 열중하다보니, 안양의 최용수도 포항의 이동국도 모두 내 선수인데..
    그들이 서로 적이 되어 경기를 하는 프로축구엔 그다지 정을 느낄 수가 없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경기장에 뛰는 선수들 중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 도무지 재미도 없고 감정 이입도 되지 않는 것이 맞을게다.
    아는 바가 없으니 도무지 재미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편파적인 언론을 도저히 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이 시작된 것은 축구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안다" 라고 하는 것에 열중하는 나는, 특히 잘 모른다라는 것에 대해 괜스레 죄의식을 갖고 있는 나는, 그때부터 축구에 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게 된 지금엔, "재미가 없어 관심이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내게 적용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게 축구는 단순한 공차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단지 조금 더 알고 싶어 관심 갖게 된 축구를 통해, 프로축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국가대표를 위해 프로축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의 내게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었다.


    *****
    국가대표든 뭐든.. 축구 선수는 사실 축구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밥벌이는 프로축구인데, 누구나 그렇듯 당연히 축구 선수에게는 자기 밥벌이 - 프로축구가 가장 중요하다.
    그 밥벌이가 시원찮게 되면 축구선수를 희망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테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줄면 당연히 국가대표의 실력도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열광하는 대표팀이라는 것은 프로축구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표팀의 성적과 경기력에 관심을 가지면서 프로축구는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어떠한 대가도 노력도 없이, 그저 열매만 취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는 것, 그건 조금 거칠게 말해 부도덕함일 뿐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프로축구 - 우리 K리그는 재미가 없어 보지 못하겠노라고.
    느리고 실력이 떨어져서 도무지 예쁘게 봐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당장 TV만 켜면 곧잘 나오는 영국의 EPL 이나 스페인의 라리가 같은 걸 보라며, 그런게 축구지 우리 프로축구는 동네축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며 비하하곤 한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영국과 브라질의 경기,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 심지어 중국이어도 좋다 - 가 한날 한시에 벌어진다 치자.
    그리고 서로 다른 방송사에서 중계를 해 준다 칠 때 우리의 채널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기력과 볼거리에 우선한다면 당연히 영국과 브라질의 경기를 보는 것이 맞다.
    어떻게 말한다 쳐도 우리들의 경기력과 그네들의 그것은 한참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우리나라의 경기를 보게 될 것이다.
    경기력과 보는 즐거움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그들간의 비교가 아니더라도 몰디브 같은 초약체와의 경기중계의 시청률에 대해서 과연 재미나 경기력 따위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정말 우리나라의 축구가 그렇게 재미 있어서 보는 걸까?

    바다 건너 일본은 1부 18개, 2부 12개 팀으로 이루어진 J리그의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보다 십년은 먼저 자리잡은 우리 K리그는 고작 14개의 팀. 
    그네들의 그것에 반도 되지 않는다.
    경기력으로 따졌을 때, 아직 J리그는 우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J리그가 우리보다 더 좋은 리그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인프라나 행정이라면 모를까 경기력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의 단골 손님이 J리거가 아닌 K리거라는 점과,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팀간 전적이 그것을 대변한다.

    평균관중 1만명도 채 되지 않는 우리 K리그는 현재 아시아 리그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관중의 열기가 뜨거워서도 아니고, 축구행정이 잘 뒷받침 되어서도 아니다.
    그저 성적이 좋을 뿐이다. 마치 우리 대표팀 처럼 말이다.
    이런 K리그가 "걸어 다니고 재미가 없어 못 봐주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물어야겠다.
    K리그를 보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일 뿐이라고?

    그야 어떻든 나는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정말 재미가 없어서 보지 못하는게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정말 우리 프로축구에 관심을 가져 주기가 싫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국가대표팀은 장차 정말 "관심 가져 주고 싶지 않은", 그리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 그런 팀이 될 것이다.
    프로축구에 대한 다른 얘기는 다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그 대표팀을 위해 우리는 프로축구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 줄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이렇게 접근하는 것에 나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


    ******
    어쩌면 우리나라 축구는 그 투자에 비해 너무 큰 결과를 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관심도로 볼 때, 거의 축구 불모지에 가까운 이 나라에서 월드컵 단골 진출, 그리고 02년 월드컵 4강.
    이런 성적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성적을 보며 어쩐지 나는 자꾸 우울해진다.
    따로 투자 하지 않아도, 따로 관심 가져 주지 않아도..
    그들이 오늘도 텅빈 경기장에서 그들만의 경기를 한다 하더라도, 프로팀이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연고이전을 밥먹듯 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국가대표팀은 성적을 내 주고 사람들이 그에 열광하는 이런 구조가 언제까지 반복될 수 있을 것인가.

    맹목적인 대표팀 사랑은 기형적인 축구 사랑에 다름 아니다.
    당장 이번 월드컵에서 참패하게 되면 그 여론의 화살은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애꿎은 선수들은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너희들(어느새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은 고작 그 정도 일 뿐이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 다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한다는 얘기가 어떻게 말이 되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으나 유럽의 강호들에게조차 월드컵 출전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실제로 피파랭킹 2위의 체코와 3위 네덜란드는 02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현재 11위인 나이지리아와 덴마크는 이번 월드컵에 나오지 못한다.
    (일본이 18위고 독일이 19위인 피파랭킹이니 믿을 거 하나 없다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지표는 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소속 지역은 아시아고,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보다 축구를 더 잘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지만 우리는 지난 월드컵 예선도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이라는 얘기가 그다지 허구적인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꽤 높은 실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호주가 아시아 지역예선에 참가하게 되는 다음 월드컵 때 부터는 얘기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그토록 기대해 마지 않는 월드컵에서의 참패.
    어쩌면 당장 98년처럼 프로축구 중흥의 바람이 몰아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작스런 바람이 오래 갈 리도 없거니와, 그때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월드컵 4강의 추억(?).
    98년의 경우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1승을 챙기지 못한, 그러니 관심 갖고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으로 그 영광을 재현해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만약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다면, 관심이 아닌 경멸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체의 발달.
    TV채널을 돌리다보면 K리그보다 유럽리그 중계가 더 많이 보인다.
    K리그 중계는 한달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지만, 유럽리그는 매주 몇차례씩 중계를 해 주곤 한다.
    물리적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이 K리그가 좋지만, 매체의 접근성은 완전히 반대라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뭘 보여 줘야 관심을 가지던 말던 할 것이 아닌가? 
    하물며 "재미 없고 느려 터진" K리그는 오죽하겠는가.
    이런 생각들이 들때면, 잘 보고 있던 유럽리그 중계도 꺼버리고 싶어진다.

    지금도 외신을 통해 심심찮게 들리는 02년 월드컵에 대한 판정의혹과, 
    우리 대표팀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비하는 그만큼 우리 축구의 저변이 형편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월드컵 4강이라는 우리의 좋은 성적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뽀록"에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뽀록"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뜻밖에 수능 대박 맞은 학생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분 나쁘지만 그 손가락질 조차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지 않는 한 그런 불명예의 꼬리표는 언제고 계속 붙어 다닐 것이다.
    설령 우리가 월드컵 우승을 한다 하더라도 1부만 있는 리그, 관중석이 텅 비어 버린 리그를 가지고 있는 한 말이다.


    ********
    지난 12월, 토고와 스위스가 같은 조에 편성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했던 기사가 있었다.
    다만 이 기사에서는 시드 배정국을 프랑스가 아닌 멕시코로 예상했을 뿐,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던 그 조와 실제 우리가 편성된 조는 거의 같다.
    사실 12월까지만해도 약체로 분류되던 나라들을, 같은 조에 속했다 해서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 실력으로 최약체라고 평가받는 두 나라가 한 조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약체라고 부를 만한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냉정해지자.
    우리는 아직도 축구 변방일 뿐이며, 객관적 실력으로는 월드컵 1승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환상적인 조편성이라 하더라도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제압하고 8강에 오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다는 것도 전문가 뿐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좋아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예상과 기대에 어긋났다고 해서 선수들을 욕하고 대표팀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아무 노력없이 그저 과일을 따먹을 뿐이다.
    과일에 잘 여물지 못했다 해서 인상을 찌뿌리지 말자. 
    그나마 따먹을 과일이 있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설령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참패하고 돌아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오히려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잠시나마 주빈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떳떳해지자.
    우리가 열광하는 대표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단 한번도 매진을 기록한 적이 없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지난 주 두번의 평가전 내내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 흔히 1200만 인구, 실제 인구는 1100 만을 약간 넘긴다고한다.
    그런 대도시에서 6만여석의 경기장이 매진되는 사례는 국가대표 경기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단 한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대표팀의 성적이나 경기력을 두고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또, 그런 우리가 K리그가 재미있네 없네 하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다.
    비판이란, 책임을 지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 월드컵 때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표팀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떳떳하게 바래보자.
    비록 이번에는 그저 주는 과일을 받아 먹는다 치더라도, 다음 번에는 진정한 주체로 참여해 보자.
    진정 축제를 즐기는 것은 그런 것이다.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자.
    그리고 떳떳하게 응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자.
    부디 떳떳해지자.


    우리가 하고 있는 축구 사랑은 어떤 것인가?
    혹시 그 "재미없고 느려터진 K리거"들로 채워진 국가대표팀에 열광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맹목적인 대표팀 사랑은 기형적인 축구 사랑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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