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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원정 첫 승, 그 감격의 Review
    쉼을 위한 이야기/축구 2006. 6. 15. 06:06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의 모든 경기 리뷰를 쓸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월드컵 원정 첫 승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여..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남아 돌아 경기 리뷰까지 쓰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도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기에 말이다.


    리뷰에 앞서

    이번 경기의 승리는 우리의 기나긴 월드컵 도전사의 한 획을 긋는, 원정에서 거둔 첫 승이다.
    자국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는 이른바 4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축구의 변방국일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98년 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에도 불구하고 승점 자판기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만 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안방 호랑이, 심판 매수설등 4강의 위업을 폄훼하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월드컵 1승은 무척 값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별리그 1라운드가 지난 현재, 우리는 G조 1위라는 성적을 마크하고 있으며 경기력이 어떻다 한들 적어도 19일 새벽 4시까지 우리는 승자의 여유를 부려도 좋다.
    무엇보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월드컵 첫 경기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끈 23명의 선수들 외 코칭스탭들에게, 그리고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해 준 모든 팬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경기 전 - 불안한 한국, 설상가상의 토고

    EPL, 챔피언십리그, 분데스리가에서 각각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다시 해외진출 실패로 국내로 유턴했지만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선수들.
    그 내실이야 어떻든 굳이 지난 2002년 4강 멤버가 다수 포함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선수들 면면은 지난 월드컵 대표들과 비교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해 대표팀은 정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고 주전급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과 컨디션 악화는 우리 대표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지난 4월,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동국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송종국과 김남일의 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설기현의 컨디션 난조 등은 현재 대표팀 전력에 상당한 누수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그건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이다.
    선수들의 몸상태와 팀 전술 극대화는 각 팀의 전력, 그 자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선수가 이랬으면, 또는 이 팀의 전술이 이랬으면.. 하는 말은 이미 대회가 시작된 지금에서는 의미가 없다.
    다만, 응원과 응원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토고를 역대 월드컵 출전국 중 최약체라 평가한 뉴스 기사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팀이 월드컵에 출전했는지 의문이라며, 토고는 다른 G조 국가들에게 승점을 벌어다 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더구나 토고는 월드컵이 개막했는데도, 선수들과 협회 및 코칭스탭들이 출전 수당등을 이유로 불화를 빚었고 결국 감독이 자취를 감추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첫 경기 하루 전날 감독이 복귀하여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가뜩이나 낮은 팀전력을 더욱 낮추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경기 전, 초점은 하나로 맞춰져 있었다.
    이런 "팀 같지도 않은" 토고를 맞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전반 - 최악의 졸전,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 버렸다.

    아드보카트 취임 이후로 우리의 주 포메이션은 4-3-3 이었다.
    4명의 수비 중 좌,우 측면 수비수들의 활발한 오버래핑을 통해 미드필드 및 포워드 진의 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토고 전에서 우리는 3-4-3 이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낯선 포메이션을 선보이게 되었다.
    포메이션과 출전 선수 면면을 보고, 
    "상대가 투톱이니 3백을 가동하는가보다, 오히려 미드필드와 측면 수비가 따로 노는 부작용이 있던 우리 4백보다 더 안정적이겠구나" 싶었다.
    결국 감독의 뜻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지난 9개월간의 4백을 버리고, 3백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경기 시작 전 우리의 국가가 두번 울리는 희대의 해프닝으로, 대한민국의 당연한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게다가 토고의 국가 연주 때 토고 선수들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 중 몇몇이 전형을 이탈(!) 하는 일까지 벌어져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내게 실소를 머금게 했다.

    토고의 측면 수비가 취약하다던 협회 기술국의 자문에 따라, 토고 전은 당연하게도 측면 공격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선발 라인업으로는 왼쪽의 이천수, 오른쪽의 박지성, 가운데 조재진.
    이천수와 박지성의 활발한 위치 변경과 함께 이천수에게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박지성에게는 저돌적인 중앙돌파를 기대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거기에 조재진의 안정된 포스트 플레이, 토고전 승리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드디어 킥오프, 하지만 우리 팀은 정상이 아니었다.
    유효한 공격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수비는 불안하기만 했다.
    이것은 비단 한 선수, 또는 공격진만의, 수비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첫 경기라는 지나친 부담감 때문인지 잔뜩 얼어 있었고 느린 볼처리와 패스미스가 남발했다.
    공을 가지고 있던 없던, 선수들은 자기 위치도 찾지 못해 허둥댔으며 선수들간의 약속된 플레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더구나 02년 이후 우리의 최대 화두였던 "압박" 은 실종된지 오래였다.
    그 덕분에 상대가 수비라인을 끌어 올리지도 않았는데 불구, 미드필드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고 공수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난 마지막 두 평가전 때의 모습이라 하겠다.
    이게 과연 우리 대표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리팀의 특질이라 여겨질 요소들을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토고는 후방에서 날아 오는 긴 패스를 쿠바자와 아데바요르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수비수의 배후를 침투하는 플레이를 즐겨했다.
    이 플레이는 무척 위협적이었으며, 그들이 좀 더 여유를 갖춘 선수들이었다면 2점 정도는 더 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험한 상황을 맞은 후 리플레이를 통해 나타난 최진철 선수의 입모양 - "집중해, 집중!" - 을 보더라도,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토고의 투톱은 좀 이상한 형태였다.
    아데바요르는 톱이라기 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미드필드 진영으로 내려와 있었으며, 쿠바자는 오른쪽 측면에 치우쳐 높게 솟아 있었다.
    이는 수비를 강화하면서 공격은 철저히 아데바요르와 쿠바자에게 맡기는 토고의 독특한 전략으로 보인다.
    더구나 쿠바자가 오른쪽 측면에 깊이 위치했던 것은 우리 3백 수비의 약점을 왼쪽 측면 - 즉 김진규로 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전반 30분,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배후에서 날아 온 로빙패스가 김영철과 최진철, 두 수비수 사이로 날아 들었고 이 공의 처리를 미적거린 순간 쿠바자가 두 선수 사이로 짓쳐 들었다.
    우리 3백의 왼쪽 측면, 원래대로라면 김진규의 수비공간이었으나 공격가담 후 미처 자리를 지키지 못한 틈을 토고가 파고 든 것이다.

    이 실점 상황에서 몇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상대 토고가 지나치리만큼 오른쪽 측면(우리에겐 왼쪽 측면)을 공략했는데도 불구 그에 대한 대비가 적절치 못했다는 점.
    둘째는, 김영철과 최진철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수비수들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 애매한 볼처리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골키퍼 이운재의 상황판단이 좋지 않았다는 점.
    이운재의 상황판단은 김영철과의 호흡 불일치로 봐도 좋을 것이다.

    화면에 피스터 감독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 마다 "교활한 늙은이"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짜증스럽게 여유있는 표정은 불과 한시간도 되지 않아 완전히 일그러지게 되지만 말이다.

    어이없는 실점 상황 이후, 우리는 여전히 극도로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고 상대 토고도 크게 다르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다.
    간간히 토고가 날카롭게 역습을 해 왔으나, 극단적 수비축구를 하는 토고팀으로서는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이는 잠그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려 퍼진 다음 나는 망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년간, 아시아권 팀들을 상대로 수없이 맛 본.. 극도의 수비축구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반 - 안정환은 게임을 바꾼다, 그리고 박지성은 게임을 만든다.

    이번 월드컵의 테마는 가히 역전 드라마라 하겠다.
    "상대가 잠글 때, 우리는 희망을 본다." 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 잠그기에 들어간 팀은 처절한 끝을 맛 보아야 했다.
    아.. 이러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뭐냐 싶기도 하지만 대세가 그렇다는 뜻이다 -_-;

    며칠 전 어떤 경기에서 서형욱 해설위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법사가 필요하다. 팀을 바꾸는 것은 단 한명이면 충분하다."
    이런 한 명의 마법사로 게임의 양상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제 우리의 마법사는 분명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의 투입으로 인해 게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으며, (전반의 그것에 비해) 우리 팀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후반 시작 후 안정환이 투입된 것을 보고, 으레 조재진이 교체되어 나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김진규와의 교체.
    우리 팀의 포메이션은 다시 4백으로 돌아선다.
    그런데, 4백은 4백이되 좀 재미있는 4백이다.
    그간 우리가 곧잘 쓰던 433이 아닌, 442 였던 것이다.
    (4-2-3-1이나 4-2-2-2 모두 442의 한 전형으로 볼 때)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처진 스트라이커의 위치로 뛰었는데 안정환이 이런 위치에서 경기 하는 것을 보는 일은 사실 무척 오랜만이다.
    그가 역전골을 넣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이런 포지션으로 뛰는 것을 보는 일은 충분히 즐거웠을 것이다.
    안정환의 투입은 우리 팀의 공격 전개력을 180도 바꿔 놓았으며, 이는 고립된 공격진이 아닌 미드필드와 유기적인 연계를 맺는 공격진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조재진이 홀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에서, 안정환이 미드필드와 공격진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아 나선 것은 실로 훌륭한 대처였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게임을 박지성이 "만들었다."
    무엇보다 박지성의 저돌적인 돌파.
    그렇다, 우리는 박지성에게 저런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박지성은 아주 유리한 위치에서의 프리킥 기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상대팀의 중앙수비수이자 주장인 아발로의 퇴장을 이루어내 팀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만들었다.

    연이은 이천수의 예리한 프리킥 골.
    전반전의 프리킥 찬스를 수비벽에 막혀 땅을 쳐야 했던 이천수는, 절치부심하여 다시 찾아 든 프리킥 기회를 골로 만들었다.
    이동국에게 보내는 골세리모니와 아드보카트에게 몸을 던진 그를 보며, 지난 해 스페인에서 복귀해 축 쳐져 있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코끝이 찡해왔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구나, 하고 괜한 생각(?)을 해 본다.
    이후 이천수는 몇몇 날카로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실상 기대하던 것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끌려가던 상황에서의 동점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제는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었다!

    안정환이 바꾸고 박지성이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화려한 카드가 있었다.
    후반 22분,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던 이을용과 김남일의 교체.
    후반 시작과 함께 칼을 빼어 든 아드보카트는 김남일의 투입으로 예봉을 더했다.
    확실히 베테랑들은, 그들이 왜 베테랑인지를 그라운드에서 충분히 보여 주는 듯 하다.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미드필드진을 지휘하고, 위치를 점검하는 김남일의 모습을 보며 믿음직하다고 느낀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김남일의 투입으로 미드필드는 다시 생기를 찾게 되었고,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압박이"가 돌아왔다.(압박아.. -_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날카로운 패스를 날리는 김남일을 보며 저게 정말 컨디션 난조라는 선수 맞는가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16강 이후 토너먼트를 준비하기 위해, 선수를 보호하려는 아드보카트의 전략이라고도 하던데 그 말이 그리 허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두드리면 열리리라.
    김남일의 투입 효과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격진은 안정된 미드필드를 바탕으로 토고 수비진을 흔들어 댔으며, 미드필드를 손에 넣은 우리 선수들은 볼배급이나 공격 차단에 있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후반 26분, 드디어 기다리던 역전골이 안정환의 발끝에서 터졌다.
    혹자는 수비수 맞고 들어갔다며 "뽀록슛" 운운하기도 하지만, 수비수를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위력적인 슛이었음에 틀림없다.
    더구나 그물에 맞고 튀어 나올 정도로 강력하고 호쾌한 슛.
    비하할 필요가 없다, 승리를 즐겨라.

    이후, 화면에 잡히는 두 감독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교활한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있던 피스터는 굳은 표정이 되어 큰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당황하는 표정과 분위기에도 불구, 나는 그의 표정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로즈업 좀 자제해 달라고 들리지도 않을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후 경기는 한명 부족한 토고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역습하는 형태로, 우리는 큰 체력 소모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후반 37분, 마지막 교체카드로 조재진이 나가고 김상식이 들어 왔으며 이는 곧 감독이 잠그기 모드를 천명한 것과 같다.
    전형은 다시 3백으로, 아니 양 측면 수비수를 포함해 5백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양팀은 의미없는 공방을 벌이다 그마저도 잦아진 상태로 후반 종료 휘슬을 맞게 된다.


    대한민국 월드컵 원정 첫승.
    그 감격적인 역사의 순간에 함께 숨을 쉰다, 꿈이 아니다.





    경기 후 - 승리의 기쁨, 그러나 경계하라.

    상대의 퇴장으로 수적, 체력적으로 열세인 상태 - 왜 좀 더 공격의 고삐를 당기지 않았느냐 하는 불만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포츠맨쉽이니 페어플레이니 하는 거창한 얘기는 집어 치우고, 당장 남은 경기에서 골 득실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갈 길이 멀다.
    선수들의 체력은 비축되어야 옳고, 승점은 3점이면 족하다.
    더구나 잔뜩 웅크리고 있던 토고의 역습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10분도 안 남은 상태에서 굳이 무리수를 띄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경험 부족인지, 안전한 선택이었으나 영리하게 대처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프리킥 찬스에서, 10Cm 패스가 아니라 최소한 10m 짜리 패스만 했어도 야유를 들을 일은 없었을텐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우리는 승점을 3점 획득했다는 것이고, 역전극으로 선수들의 사기도 팽배한 상태.
    그리고 체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고무적인 것은, 상대의 전술에 대한 대처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간 아드보카트 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의 노림수에 대한 대처가 지극히 모자랐다는 점이었다.
    당장 지난 노르웨이전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우리의 코칭 스탭이 선수교체나 전술 변화로 흐름을 바꿔 내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누구나 예상한 것이 빗나갈 수 있다.
    또는 감독의 구상에 선수들이 맞춰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감안해야 하고, 또 빗나간 예상을 최대한 빨리 수정/보완해 내야 하는 것이 코칭스탭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경기에서 예상이 빗나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매우 미욱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아드보카트호의 불안요소는 선수의 기량도, 포메이션도, 평균신장 도 아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의 부재" 라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어제 경기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뻔한 선수기용과 의도적 잠그기 라는 오명을 뒤로하고, 어떤 마법을 부려 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경계하라, 문제는 항상 상대가 아닌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진정한 실력이 이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긴장했던 어쨌던 보여 줄 수 있는 실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다.
    남은 경기는 19일의 對프랑스전, 23일의 對스위스전.
    두 나라 모두 탄탄한 수비와 강력한 중원, 날카로운 공격을 갖추고 있어, 어느 위치를 보더라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당장 어림짐작으로만 봐도 두 팀 모두 토고보다는 강팀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플레이를 펼쳐 보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
    당장 토고전만 보더라도, 전반의 무기력한 모습으로는 절대 역전극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드보카트는 정말 토너먼트 이후를 노리고 있는가?
    우리의 모토인 압박과 빠른 2선 공격이 사라진 것은 체력안배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는가?
    그렇다 하면, 다음 프랑스 경기를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게 토너먼트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고 싶다.
    02년,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맞아 싸울 때의 우리의 모습처럼..
    월드컵 직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평가전에서의 우리처럼.(잉글랜드 제외-_ㅜ) 
    월드컵이 끝난 후 브라질 정예와 3-2로 박빙의 승부를 내던 그때의 우리처럼.
    어디를 보더라도 우리 유니폼만 보이던 그때의 우리를 다시 보고 싶다.
    02년에는 3-2로 패했지만 지금의 프랑스라면 3-0 으로 제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의 기량만 되찾는다면, 더구나 압박의 아류 격인 스위스 따위는 말 할 것도 없이 말이다.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게 되길 바란다.
    태극기의 물결이 독일땅에도 펼쳐지게 되길 바란다.
    세계인들이 우리에게, 우리 선수들 - 형제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내밀게 되길 말이다.

    잊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미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23인의 대표 선수들이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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