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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두려워 하는 나를 위하여Letter from Kunner 2006. 1. 2. 07:12언젠가 "내일을 두려워 하는 너를 위하여"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어.
진로로 인해 한창 고민이 많던 친구에게 쓴 메일을 조금 고쳐 올린 글이었는데..
사실 그건 친구에게 뿐 아니라 내게도 하는 말이었거든.
나 역시 같은 고민, 같은 두려움과 절망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같은 대상에 대한 그것들은 아니지만 느끼는 감정과 그에 대한 불안은 다를 게 하나도 없었어.
친구를 위해 한줄 한줄 써내려 가면서, 동시에 나를 위해 한줄 한줄 써 내리고 있었지.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같은 글을 이번엔 온전히 나를 위해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때 난 이렇게 말했어.
나이가 삶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고.
나이를 먹을 수록 원숙미가 더해져 나이가 어릴 때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된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그렇게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야.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결코 시간의 버려짐이 아니라,
결코 죽음으로부터의 남은 날들이 하루 줄어든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주는 풍요로운 선물을 받는 날들이라고..
그래서 나이가 삶의 장애물이 아닌,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일거라 말했어.
이제 보니 참 자신감 넘치는 얘기다.
저게 정말 내가 한 말인가 싶게..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얘기들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자신감을 많이 상실해 버린 것 같아.
어쩜 2년 전만도 못한 건가..
저 글을 쓴 이후로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건데..
계획했던 일이 하나씩 하나씩 어그러 지는 걸 보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어차피 20대는 그렇게 실패하고 깨어지는 시간이라지만..
그렇게 무너지는 계획과 다짐, 그에 따라 쌓여가는 좌절과 한숨 덕분에..
지금 나는 숨이 막힌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태만하게 살아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어그러져 가는 꿈을 보고 있으니, 이젠 더 이상 계획 세우고 동기 부여 하는 일이 두렵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번엔 또 어떤 일들이 내게 밀어 닥칠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고 있으니..
이젠 무언가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일마저 버거워 진다.
어쩐지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퇴보한다는 생각마저 들어.
체력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에 들어 있던 얄팍한 지식마저도 하나 하나 옅어져 가는 것 같고..
그나마 나를 지탱하고 있던 자신감마저 나이를 먹을 때 마다 점점 사라지고..
어쩌면 최근, 내가 그렇게 오랜 동안 우울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가봐.
정말 겁에 질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일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은 말야.
해 놓은 것, 보여 줄 것 아무 것도 없는데 자꾸 나이를 먹는 다는 것..
"저 사람은 나이를 저렇게 먹고서도 왜 저러고 사는거지?" 하고 흉 보던 일들이 나를 향해 돌아 올까 무서워.
난 아직 갈 길이 너무 먼데, 자꾸 결과를 내 놓아야 할 나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힘들어.
"눈 감는 날 까지 삶에는 결과가 없다" 라는 말로 위안을 삼아 보려 해도..
자꾸만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눈이 의식 되고, 또 나를 재어 보려는 내 안의 내가 부담스러워.
"내 삶은 불공평 했다고요!"
삶은 언제나 내게 비열했다고, 늘 내가 원하는 것은 내게 주지 않았다고..
늘 나는 부족한 가운데 만족을 찾아야 했고, 늘 나는 내게 합당한 몫보다 적은 것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난, 여기까지 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수고 했는지 아느냐고.. 이 정도만 해도 나는 대견한거라고.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게.. 그저 변명일 뿐이란 걸 너무 잘 알아.
누구도 그런 말에는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걸..
심지어는 나 역시도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
그런 자기 위안, 자기 기만도 할 수 없는 나라서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어.
그게 누구라도 좋으니.. 그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나 잘 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친 맘을 달래고 상처 입은 과거를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해 버린 이상, 누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전가의 보도는 빼어든 후에는 의미가 없는 법.
주문은 이미 효력이 없어진 다음일건데...
그러니 결국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
그래서 고독한게 인생이라 하는 지도 모르지만, 그 고독한 인생이 더 이상 고단해지지 말았으면..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내게 하는 말처럼 내일은 정말 좋은 하루가 됐으면...
그리고 내일 밤에는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 하는 탄식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내가 원하는 미래를 열어 주는 밑거름임을 자신하는 말로 하루를 마칠 수 있게 됐으면..
내일의 나는, 더 이상 내일을 두려워 하는 내가 아니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자신감을 회복한 다는 것이 한 순간 확 이뤄지는 건 아닐거야.
그저 후회하지 않을 하루를 보내는 일 밖에,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어.
바로 몇십분 전, 무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하고 고민했는데..
그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일이 꽤 오래 걸릴거라 생각했는데 한시간도 못 되어 대답을 찾아 냈네.
바로, 더 이상 내일을 두려워 하지 않기 위해서야.
더 이상 패배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야.
더 이상.. 나를 죽이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해.
나는 좀 더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하고, 나는 좀 더 몸을 혹사 시킬 필요가 있어.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일이 두려워 지지 않기 위해서 말야.
나이를 먹을 수록, 무언가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은 점점 더 커져 갈테지.
그리고 그렇게 커가는 강박에 삶은 점점 더 고단해 지는 걸테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였네.
다른 이유가 아니었구나, 그냥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었구나.
더 이상 내일을 두려워 하지 않기 위해서...
내일을 두려워 하는 나를 위해서,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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