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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다짐.Letter from Kunner 2005. 12. 22. 08:00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말야.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려울 지 몰라도,
그때 난 정말 개구장이인데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이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는 녀석이었어.
윤희 결혼식에 다녀 오면서, 한 친구와 같이 서울을 올라 왔는데..
이 녀석에게 어렸을 때의 난 악몽같았다더라고.
내가 너무 싫고 미워서, 내내 내가 없어져 버리길 바랬대
내가 전학을 가게 되서 너무 기뻤을 정도였다나..
십수년의 시간이 지나, 이렇게 같이 얘기하고 차를 마시는 일 따위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말야.
역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지.
서로 지난 십수년의 삶을 말로 풀어내느라 열심이었는데, 왜 그런 얘기를 서로 주고 받았는지 모르겠어.
둘 다 말은 안 해도, 다시 또 만날 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몰라.
어쩌면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대화가 편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계하지 않으면 책 잡힐 일도, 흉이 될 일도 없으니까.
그러니 평소에 말하기 어려웠던 일들, 주위 사람들에겐 할 수 없던 고민들을 풀어내기도 했던가봐.
마치 배설을 하는 듯 말야.
그렇게 신나게 떠들다 헤어졌는데..
시원하기는 커녕 기분이 내내 좋지 않았어.
그 녀석의 살아 온 얘기들을 들으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어.
하지만 감히 동정이나 연민 같은 이름을 붙이지는 말자고.
그런 이름을 붙이는 건, 진지하게 살아가는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닐테니까.
평소에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어려운 것이.. 또 정말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거든.
정말 힘들 때는, 힘들다는 말 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해 그런다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는 커녕..
오히려 그간 내가 복에 겨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던걸.
나는 대체 왜.. 왜 그렇게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내 답답해했어.
그러다 보니 헤어져 집에 돌아 오는 길은 그야말로 완전히 groggy 상태였어.
너무 우울해 견딜 수가 없어서 누구라도 붙잡고 펑펑 울고 싶었어.
시간이 좀 지나, 지금은 왜 그리 우울해 했는지, 왜 그렇게도 가슴 아파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더 흘러, 또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또 상상도 하지 않던 시간을 갖게 된다면, 그땐 더 즐거운 얘기가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친구에겐, 그동안 부족했던 신의 가호가.
내겐 그동안 부족했던 삶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하기를.
그래서 다음에 만나게 되면 즐거운 얘기들로만 함께 하기를 바래.
좋은 얘기들 감사했고, 무엇보다 나를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이젠.. 정말 더 열심히 할 테니, 언젠가가 됐던 지켜 봐 달라고!'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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