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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람들에게.Letter from Kunner 2007. 3. 3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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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벽 4시가 가까오는 시간, 꼬박 하룻밤을 새웠다.
아니, 이제 이틀 째 새고 있다고 해야 맞을까.
회사의 일들이 잔뜩 밀린 탓에 바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차라리 프리랜서일 때는 참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할 일만 처리하고 말면 그만이니까... 누가 발목잡는다 해도, 결국 내 몫만 챙겨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조직의 일은 또 다르다.
내 할 일만 하고 말면 그만인게 아니라,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참으로 많다.
나는 다르다, 생각했지만 아마도... 그래, 다들 그랬겠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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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며칠 애쓴 덕에 일처리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마감에 쫓겨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부족하기만한 시간과 열악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다들 잘 해냈다.
수고하고 애써준 작업자들에게 박수를.
하지만, 그렇게 수고했는데도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꼭 유형의 보상이 아니더라도, 그저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 듣지 못하는 걸 보며 이래저래 마음이 쓰인다.
그 축 처진 어께를 두드려 주는 것은 참 공허한 느낌이다.
힘들게 일을 끝낸 다음이라면, 다 같이 파티라도 해야건만..
워낙 피곤한 탓인지, 축 처진 분위기 탓인지.. 파티는 커녕 잠 잘 곳을 찾아 들어가기 바쁘다.
아쉽다, 이런 분위기.
게다가 하나의 일을 마친 후, 바로 다음 일을 고민해야 하는 끝 없는 허덕임.
일을 지시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네들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안쓰럽다.
맘 같아선 하루씩 더 쉬라고 몇번이나 말하고 싶지만, 사정 딱하기로는 어떻게든 마찬가지다.
오늘 하루를 쉼으로 해서, 앞으로 며칠을 더 괴로워야 한다면..
쉬라는 말은 그저 무책임한 부추김일 뿐일 것이다.
무력한 나는, 그저 수고했다고 그대들이 자랑스럽다는 공염불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다.
하지만 약속하마. 우린 점점 더 좋아질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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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저 사람은 저런 이유로 힘들다.
한 두번이면 괜찮겠지만,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다들 지친 모양이다.
그렇게 배려가 사라진 곳에서는 누구도 서로에게 좋은 얘기를 해 주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상황이 제일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노력에 대한 보상도 하려 하지 않는다.
둘러보면 "나만 힘들다", "내가 더 힘들다", "정작 수고한 사람은 나다"라는 인상이 강하다.
적어도 개발팀 내에서라면, "나"의 자리에 "우리"를 대신하게 하고 싶다.
그게 내 의무이고, 내가 녀석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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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빠지는 것은 무척 이른 일이다.
처리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아 - 아직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쁜 숨 몰아 내는 사람들에게 채찍을 가해야 하는 때다.
지금 늘어져서는, 언제나처럼 반복되는 악순환이 가중될 뿐임을.. 모르지 않겠지.
부쩍, 가치관이라던가 비전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그것들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채찍질은 가혹한 사디즘의 표출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에, 한 명 한 명 손 부여 잡고 눈빛 맞추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아마 다들 그러지 않을까.
"이럴땐 그저 채찍질을 한번 더 하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때가서.." 라고 말이다.
그게 엄밀히 말해,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냉혹한 현실이 변명에 변명을 더하게 만들 뿐임을, 아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 - 늘어진 호흡에 생기를 불어 넣을 방법을 찾아 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는 아직 뚜렷이 알 수 없다.
"
하지만 약속할께. 조금만 힘을 내면, 분명 더 좋은 날이 오게 될거야.
그게 꼭 여기가 아니면 어때, 하루 하루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걸로 되는 것 아닌가.
다시 한번 분명히 약속할께.
함께 노력한다면, 내일은 더욱 자란 모습의 우리가 되어 있을거야.
함께 조금만 참고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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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람들에게 -
나는 "동료"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왠지 동료라는 말은 참으로 정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분히 목적 지향적인 것만 같아서 말이다.
서로의 이익이 부합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처럼 들린달까.
물론 사회에 발을 디딘 후 지금껏, 그게 당연한 거고 원래 그렇다는 걸 깨달아 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 속의 나는 여전히 동료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가 속한 회사, 개발팀의 이야기.
우리 개발 팀원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그저 동료가 아닌, 나의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