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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Letter from Kunner 2006. 8. 19. 13:48
대략 6년만에, 내게 오디오가 생겼어.
CD를 넣고 Play 버튼을 누르는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인 것 같아.
컴퓨터 스피커로 듣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만 - 실은 오히려 훨씬 떨어지는 음질이지만 -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 자체로 반갑다.
*
고등학교 2학년때, 형이랑 용돈을 모아 오디오를 샀었어.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CD 체인지 5장이나 되고 이것저것 기능이 많은 녀석이었지.
뭐, 한참 지난 후엔 그런 기능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Play / Stop 만 했었지만.
그간 애지중지하던 낡은 카세트 라디오를 내다 버리고,
그 붉은 라디오가 차지하던 공간에 새 오디오를 올려 놓았을 때의 기분이란..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또 있었을까 하곤 했어.
서울로 올라와 처음 자취 할 때 쯤까지 갖고 있었으니 한 5년쯤 나와 함께 했었는데...
나는 간사한 사람 - 지금은 그걸 언제, 어떻게 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
지금이야 컴퓨터의 mp3 플레이어가 오디오보다 훨씬 나은 기능을 제공하는데다
꽤 비싼 5.1 채널 스피커를 달아 놓은 탓에 오디오의 비중이라는 것이 어린 시절 그만큼 되긴 어렵겠지만..
어쩐지 오디오 하나쯤 다시 갖고 싶다는 생각 들곤 했거든.
잘 때 음악을 틀어 놓는다던지.. 그 좋았던 옛기억 떠오르게 말야.
컴퓨터는 켜 놓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부담스러운데, 오디오는 그렇지 않으니까.
알아 보니 요즘 가격 정말 싸던데, 확 질러 버려? 하다가도..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하면서 참고 있는 중이었어.
하긴.. 꼭 필요한게 아닐 뿐더러,
컴퓨터 앞에 앉아 오디오를 따로 틀어 놓는다는게 더 이상하겠지.
그래, 그럴거야.
***
그러다 오디오가 생겼어.
컴퓨터를 켠 채로 오디오의 음악을 듣는, 참 어이없다 생각하던 짓을 하고 있어.
"짓" 이라 쓰고, 무어라 읽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게 돼.
그걸 뭐라 부르던, 오디오를 켜고 듣는 게 너무 즐거워.
****
꽤나 오래간만에 CD 장식장을 열어 CD를 고른다.
까마득히, 그 존재조차 잊고 살던 앨범들에 눈을 맞춰봐.
그러고보면 옛날엔 CD를 참 많이도 샀었네..
MP3 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 방 한가득 음악 CD로 가득했을런지도 모르겠구나.
임창정 6집 앨범을 꺼내 들었어.
오랜만에 앨범 자켓도 펼쳐내 묵은 세월을 햇볕에 말렸어.
MC the max의 노래들은, 따로 CD를 가진 게 없어 새로 구웠지.
참 오래간만이구나, 내 방에서 오디오에 CD를 넣어 보는 건.
생각해보면 차에서 항상 들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데도,
차에서 듣는 CD와 내 방안에서의 그것은 참으로 느낌이 달라.
*****
하지만 아쉬운 건, 리모콘이 없다는거야.
현재 시간을 맞추지 못하니 알람이나, Sleep time 같은 기능을 사용하지 못해.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본체의 Repeat 버튼이 눌리지 않아 CD의 트랙이 모두 돌고 나면 멈춰버린다는 거야.
리모콘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긴 한데...
Sanyo A/S 센터에 문의해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포기하기로 했지.
음악이 멈추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디오로 다가가 Play 버튼을 눌러야해.
무척 귀찮지만, 이렇게 시간 가는 것도 알게 되고 잠시 쉬기도 하고.. 나쁘기만 한 건 아냐.
******
비 오던 날, 연한 핑크빛 커튼이 쳐진 내 방이 떠오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던 그때가 생각난다.
문득 헤아려보니 그게 꼭 십년 전 일이구나.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네 인생은 도무지 과거로의 회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맘 뿐이더라도, 약간 잠긴듯한 오디오 스피커의 음악 소리와 함께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그래, 언젠가도 했던 말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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