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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
    Letter from Kunner 2005. 10. 21. 13:35

    *
    생각해 보면, 살아 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엔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아.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투덜대고 짜증부리는 동안, 감사하는 마음을 종종 잊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모두 고마운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애듀미디어 사장님 내외.
    나랏님도 어쩔 수 없는 노사갈등, 가끔 속으로 욕을 퍼 부어 주기도 했지만..
    종종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나를 대할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 깜짝 깜짝 놀라곤 했는데..
    그만큼 나를 항상 믿어 주고 아껴 주신 분들이었던 거지.
    사실 난 참 모자랐고 부족했지만, 그분들의 믿음은 가끔 내 능력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했어.
    퇴사하기 며칠 전엔, 진심으로 아쉬워 하며 팔 벌려 안아 주시기도 했는데.
    그때 난, 별 것 아니지만 참 기분 좋았어.
    인정받는 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결코 나태해 질 수가 없으니..
    그 분들은 내게 참 커다란 선물을 주신거야.
    다시 회사로 돌아 오라는 주문은 받아 들기 어렵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더 나은 자리에서 함께 하고 싶은 감사한 분들.


    그리고, 글 쓰는 동안 떠오른 두 분의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

    난 반골로 가득한 사람이라 선생님들과는 대체로 관계가 좋지 않거나 관계가 좋더라도 그들은 직업인에 지나지 않는다며 특별히 존경하는 일은 없었는데.
    그 분들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직업인이 아닌 교육자셨지.

    1학년때 담임이셨던 김승제 선생님, 연극부 담당 선생님이셨던 이승태 선생님.

    언제나 내 편이었고, 설령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이 있어서 호되게 혼나더라도 항상 날 감싸 주시느라 애를 쓰던 김승제 선생님.
    언제라도, 날 보시면 멀리서도 크게 소리쳐 내 이름부르며 양팔을 벌리셨었는데, 난 부끄러워 고개 푹 수그리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1학년 겨울, 학교가 가기 싫어 며칠 무단결석을 했을 때 처음으로 나를 때리셨는데..
    절절한 말씀으로 훈계를 하시고 매질을 하시는 당신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어.
    그때 그 느낌을 뭐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나는 회초리의 아픔을 잊은 채 당신 얼굴을 바라 보기만 했었지.
    재수를 위해 원서를 쓰려 학교를 찾았을 때, 나와 관계가 좋지 못했던 선생들의 비아냥을 들으며 부끄러움과 분노로 벌개진 얼굴을 한 채 교무실에 서 있었는데.
    거목의 그루터기에 난 싹을 보고 비웃는 사람들이라며 다른 선생들을 호통하시던 게 생각나.
    나중에 저 싹이 자라 큰 나무가 되면, 그때서야 자기 안목이 모자랐음을 알게 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며 말야.
    그 말씀, 그저 듣기 좋으라 하신 말씀에 불과할 지라도.
    내겐 힘들때 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꺼내 보는 금언이 되어 남아 있어.
    선생님 말씀처럼, "정말 그레이트하게 살아 보겠습니다!" 라고 말야. 하하..
    이때껏 감사하다는, 고맙다는 말씀 한번도 드리지 못했던 나는, 참 바보같은 녀석.

    항상 내게 용기를 복돋아 주셨던 이승태 선생님.
    내가 하는 일이 당신 보기에 어리석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지.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해서도 엄하게 물으셨고.
    이승태 선생님은 선생님과 학생도 인간과 인간으로의 만남이 얼마든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어.
    수업 시간에 듣는 어떤 지식의 나열보다도 더 큰 가르침을 주신 그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지.

    스무살, 경험삼아 시작한 노점상이 무척 어렵던 그 때.
    우연히 빈곤한 내 노점을 보고 말 없이 어디론가 가시더니 당시로서는 거금인 이십만원을 선뜻 주머니에 찔러 넣고 아무 말씀 없이 돌아 서시던 분.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 황망히 달려가 저는 받을 수 없노라 했더니 크게 화를 내고 돌아서셨어.
    곧 죽어도 말은 잘 하던 나는, 그 잘하던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지.
    감사하다는 말씀 조차, 가식적으로 들릴까봐 할 수 없었던걸.
    나중에 돈을 갚아 드릴 때, 선생님의 득녀 소식을 듣고 아가 옷을 한벌 사 들고 갔었지.
    형편 뻔히 아는데 이런건 왜 사오느냐며 외려 화를 내시던 선생님.
    하지만 선물을 받으시며 입가에 띈 희미한 미소는, 한동안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어.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해 지는 감사한 내 선생님들.
    아무리 돌이켜도 너무 감사한 분들.


    **
    실제의 나는 그분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건지.
    아니면 현실의 무게로 아직 기를 펴지 못하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어.
    정말 난 거목의 그루터기에 난 싹일까, 아니면 그저 그런 풀잎새에 지나지 않을까.
    그저 너무 늦지 않아야 할텐데..
    너무 늦기 전에 찾아 뵙고 감사 드리고, 내가 받은 사랑만큼 베풀어 드려야 하는데..
    눈앞은 아득해 오고 마음은 조급해져만 가.
    이렇게 방황할 틈이 없는데.. 이렇게 시간 허비할 틈이 없는데.... 주문처럼 주절거리면서.

    하지만, 더디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걸거라 믿어.
    오늘의 나는, 육신으로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을지 몰라도, 내 정신은 점점 더 자라고 있을테니까.
    후회라는 것, 회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이느냔 말야.
    감사할 일이야.
    그리고 더욱 노력할 일이다.

    언젠가 손 맞잡고 말씀드릴 날이 분명 올거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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