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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자.Letter from Kunner 2005. 7. 30. 18:01*
열어둔 창문으로 들려오는 부산한 아침을 여는 소리와 함께 오늘도 하루가 밝는다.
어떤 집에선가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어디선가는 생선을 굽는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빌라는 너무도 많은 것을 공유하는가보다.
간밤에 자지 않았으니 분명 잠을 자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눈을 뜨고 가만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데,
괜스레 서글픈 생각이 든다.
뭘 하고 있는걸까 나는..
**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서 연극부에 가입해 활동했다.
여학교에서는 인기라지만, 남학교에서 연극의 대사나 읊고 있는 것은 참 딱한 일.
더구나 질풍노도의 극을 달리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저 학교 축제를 위해 존재하고, 축제가 끝나면 다음 축제 때 까지 유명무실해 지는 곳.
그러다보니 고작해야 클럽활동 수준을 벗어 날 수 없는 곳.
나는 사실 연극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처음 연극부를 가입하게 된 것도, 형이 있던 관악부를 덜컥 가입했다가 팽 당해서였지, 어떤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관악부는 규율이 엄하고 학년 간 체벌이 심해 형은 내가 관악부 활동을 하는 게 너무도 싫었던 거다.
매일같이 맞고 기합을 주고 받는 일이 벌어지는 곳에, 동생을 데리고 들어 갈 형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일주일 만에 관악부를 그만 두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나는 형의 권유로 생각도 없는 연극부에 가입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야구부(북일고의 야구부는 이름이 높다)와 관악부 정도를 최고 서클로 인정했었다.
나는, 최고 서클의 부원이었다가 하루아침에 클럽활동이나 하며 유치한 대사나 읊으러 다니는 녀석이 된 것이었다.
"넌 어떤 서클에 가입했어?"
"어, 연극부라고..."
"풉.."
당시 분위기는 대체로 이랬다.
하지만 둘러 봐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서클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중창단에 가입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상만 해도 우스웠고,
문예부랍시고 되지도 않는 글을 써 대는 것은 그야말로 비웃음만 나왔다.
응원단 같은데 들어가서 춤이나 추고 있기엔, 나는 몸을 쓰는 일을 너무 싫어하며
매일같이 헬스기구 앞에 앉아 땀을 빼고 사람들 앞에서 근육을 과시하는 트레이닝부는 머리가 모자란 마초들이나 가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하.. 싫은 것 참 많아.
결국 나는, 이미 속한 연극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다.
지금은 그저 클럽활동에 지나지 않는 초라한 서클이지만,
졸업할 때 쯤 되면 적어도 이런 비아냥은 듣지 않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은
나를 그야말로 에너지, 그 자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1학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1학년인 내게 주어진 역할은 선배들 만나면 깍듯이 인사하는 것, 매주 클럽활동 시간에 모이면 선배들과 잡담하는 것.
연극에 대해, 클럽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나 역시 더 이상 그들에게 무언가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당시에는 클럽활동 시간이라는 것이 시간표에 배정되어 있어,
매주 수요일 마지막 시간, 각 학생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클럽으로 이동해 클럽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어떤 녀석은 바둑부에 들어가 한 시간 동안 바둑을 두다 오기도 하고,
만화부 같은 것도 있어서 만화를 보거나 그리다 오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건 차라리 나았다.
연극부는, 일주일에 한 시간으로는 도저히 연극을 감상할 수도, 연극을 연습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는 모여서 살아가는 얘기, 학교 얘기, 진학 얘기로 시간을 떼우다 갈 뿐이었다.
매점에서 라면이며 이것 저것 사다가 모여서 그거나 먹다 헤어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랴.
클럽활동을 마치고 내 반으로 돌아 오는 동안, 여러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클럽 얘기를 하며 오늘은 무얼 했고 오늘은 무얼 했단다.
내가 오늘 한 것?
여자 친구 소개해 달라는 못 생긴 선배의 주문을 마지 못해 들어 주는 척 한 것 말고 무엇이 더 있는가?
아하하.. 나는 정말 빨리 2학년이 되고 싶었다.
빨리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연극부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 다음 해, 나는 의욕적으로 연극부 활동에 들어 갔다.
1학년 교실을 돌며, 너희들 주위에 여자와 오락이 끊이지 않는 3년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언을 했다.
결과는 대 만족, 10명을 뽑는데도 반년이 넘게 걸리던 연극부는 하루만에 50여명.
당일 모집 결과를 따지면 모든 클럽을 통틀어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가지 문제는, 그저 젯밥에만 관심 있는 녀석들을 걸러내고 나니 그 반도 안 되더란 것이었지만
그래도 첫 단추를 꿰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그 후로 일주일간 한명씩 오디션을 보며 총 12 명을 걸러 내는데, 그 일이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연극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클럽을 조직하고 이끌어 나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부원들의 난색에도 불구, 나는 매일 저녁 연극부 소집을 "명령"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점심시간에도 우리는 모여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 클럽 활동시간에만 모이던 것은 이제 옛날 얘기.
사실 아직은 모여서 뭘 해야 할 지도 몰랐지만, 나는 주문했고 부원들은 그래야 했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대로였다.
우리 학교는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따로 모아 일과 후에 과학반 수업이라는 걸 진행했었다.
학교의 규율은 무척 강했고, 과학반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일은 다음 날 죽도록 매맞아야 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차례도 과학반 수업을 듣지 않았다.
나는 매일 맞았고, 또 맞았다.
결국 내게 지친 담임 선생님은 나를 과학반 수업에서 제외시켰다.
당시의 나는 그랬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미친 듯 달려 가고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리고.
런닝 타임이 20분을 넘기지 못하는 학교 단막극 특성 상, 시중에 돌고 있는 대본은 적절치 못했다.
덕분에 나는 매번 연극을 올릴 때 마다 직접 대본을 써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에 제출한 연극 대본이 학생과의 검열에 걸려(!) 무산됐던 일이 있었다.
80년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한 학교의 이야기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좌익 성향의 냄새가 너무 짙다는 이유였다.
그 다음으로 내가 써간 대본은 나다니엘 호손의 "켄터베리 순례자"들을 각색한 "켄터베리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학생답게 순수하고 즐거운 얘기를 꺼내라는 이유로 학교 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결국 반쯤은 강요에 의해, 학교 단막극의 단골 메뉴인 신파극을 써내야했다.
대본이 두번이나 반려된 탓에 축제는 2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는 낮에는 학교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대본을 쓰는 일을 반복해 다시 3일 만에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물 판 이야기를 써냈다.
결과적으로 그 연극은 축제 당일 음향시설 고장으로 인해 완전히 망쳐 버렸지만, 그렇다 해도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연극의 연자도 모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기에 뜻을 두고 길을 밟았던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게 중요한 건 에너지를 분출할 장소였지, 그 대상이 아니었다.
굳이 연극이 아니었으면 어땠으랴.
그래도 우리 학교 최초의 예종 진학이 내가 이끌던 연극부에서 나왔음은,
또 내 후배들이 줄줄이 연극영화과에 입성하게 된 것은 그 과정에서 나온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조차 잊고 지내는...
가끔씩 떠오를 때 마다 "아, 그땐 그랬었지.." 할 뿐인 그 시절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꺼내는 것은...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무척이나 그립다.
***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장님은 내게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즐겨했다.
활력이 넘치고, 의욕적이라며.
실은 내가 가진 뜻과 꿈은 그 회사의 비전과 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 나는 그렇게 보였나보다.
나는 늘, 내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아 헤매고
이내 싫증을 느끼고, 또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매는 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염원하기는 하는데, 그게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하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오랜동안 찾아 헤매는 데도,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
문득, 이렇게 숨 쉬고 눈을 들어 주위를 보고 소리를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일이 너무도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아니, 죽는다는 것.
나도 언젠가는 꺼져버릴 육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정말.. 어느 날 거울을 보았을 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나뭇가지 하나 꺾지 못할 정도로 나약해 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까.
눈을 감고 잠에 들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시 날이 밝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아무리 피곤해도 좀 자고 일어나 무언갈 집어 먹으면 다시 활기가 솟는 것처럼.
내 삶이 늘 그럴 것이라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언젠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나는 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모르겠다.
여름의 절정에 서 있는 요즘은 정말 무덥다.
이렇게 덥다, 덥다 해도 조금 더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두툼한 옷을 수없이 껴입어도 견디기 힘든 추위가 올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어떤가.
나는 한번도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
또 이미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나는 죽음이 너무도 두렵다.
옛 로마인은 죽음 앞에 초연하는 것.
자신의 의지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았다고 하는데 죽음과 그렇게 가까워 질 자신이 내게는 없다.
너무 소중하다.
삶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내 의지로 손가락을 놀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내 생각을 전하는 일이, 하다 못해 간밤에 형과 했던 컴퓨터 게임까지.
내겐 너무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몸이 고되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포기하며 살아 가는가.
또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시간들을 흘려 보내고 있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언젠가 더 이상 눈꺼풀을 들 수 없을 때가 오면, 나는 무심코 버린 그 시간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야말로 두려운 일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하자는 상투적인 얘기는 더 필요 없겠고...
내게 주어진 삶을, 이 소중한 시간을.
올곧이 소유하자.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의지도 아닌, 온전한 내 것이어야 하자.
그렇게 살자.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이 아깝고 아까운 세월을.
온 힘을 다해 살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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