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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녀석아..Letter from Kunner 2005. 7. 10. 16:38*
요즘은 머리가 좀 복잡하다.
뭐, 고민에 둘러 쌓여 있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결국 또 잠을 설치고 PC에 앉아 이리저리 맘을 달래고 있다.
욕심을 줄여야 마음에 평안이 오려나..
**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와는..
이게 뭔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다.
녀석은 일을 배우고, 일을 하기 위해 올라 왔다.
가족들의 우려에도 불구, 나는 녀석을 집에 데리고 들어 왔다.
식구가 하나 늘어 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부담 되는 일이다.
단순히 밥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이번 달 전기세는 10만원을 크게 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윈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꿈에 빠져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정말 우려하고 화가 나는 것은..
정체성을 상실한 듯 보이는 녀석의 요즘의 생활이다.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조금이라도 더 해 봐야 할 텐데도..
잠, 식사, 배설 등의 생존을 위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과연 그가 집중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던가?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과 무의미한 웹서핑, TV시청, 낮잠에 보내고 있다는 데 문제는 시작된다.
그를 보는 나의 눈빛은 우려에서 분노로, 다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입을 열면 싫은 소리를 하게 될까봐서 아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물론, 침묵이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지금 상황을 타개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럴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결별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아주 냉정하게, 내가 너를 잘 못 보았다고.
아무 조건 없이 너를 받아 들였듯, 아무 조건 없이 떠나가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목표한 바는 저 멀리에 있는데,
그리고 그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최단거리가 여기 있다 보여지는데..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최소한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내일이 있을 것 인데..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여전히 유효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데.
그걸 아는 나는 여전히 그를 내칠 수가 없다.
***
누군가는 내게,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이 친구와 의 상하기 딱 좋은 일이라고.
그 많은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 언젠가는 원망 듣고 욕 먹기 딱 좋은 일이라고.
아무 필요도 없는 일에 너무 큰 값을 치르고 있는 거라 한다.
자신의 길은 스스로 걷는 것이지 누가 걷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며.
그를 향한 나의 조바심과 채찍질을 경계한다.
그런데, 과연 누가 나를 비난 할 수 있더란 말인가?
과연 누가, 아무 대가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생계를 대신 해결해 주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할 것인가 말이다.
그런 아주 기초적인.. 사리판단도 불가한가.
****
정말 사리판단을 할 줄 안다면,
정말 최소한의 개념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너는 눈 뜨고 있는 동안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너는 숨 쉬는 동안 한 발 더 움직여야 한다.
너의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공부와 일에 투자하고, 더 적은 시간을 무의미한 놀이에 쏟아라.
벌써 너무 많이 비슷한 화제로 얘기를 했고,
바로 옆에 앉은 네게 메일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짓도 했다.
때론 가볍게 농담처럼 얘길 건네보기도 했고,
때론 정색하기도 했다.
이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난 너의 친구이지 부모가 아니다.
조건 없이 애정을 쏟는 것은 친구의 몫이 아니라 부모의 몫이다.
가시가 많아도 내 자식이라는 고슴도치의 새끼 사랑은 나의 몫이 아니다.
너의 가시는 그대로 가시로 보일 뿐,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네가 그럴 수록 나는 너를 위한 나의 부담, 다른 가족의 희생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고, 이미 3개월이 지났다.
결국은 원망만 듣고 말거라는 주위의 우려에 적잖이 위축된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너의 눈치만 보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이 상황이 나는 무척 화가 난다.
하지만 그나마도 미련인지, 쌓인 정인지..
그닥 가망없어 보이는 너의 일상에도 나는 희망을 보려 애쓰고 있다는 것만 알아라.
결국 네 미래에 대한 선택은 나의 몫이 아니다.
이게 너의 길이 아니라 생각하면 주저없이 짐을 싸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열심히 할 일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엄마와 격일로 집에 오는 형에게 낯을 들 수 없게 만드는 요즈음의 일들을 이제는 그만 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
쓰다 보니 화가 또 치밀어..
격한 감정에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세월을 살아 가며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는..
나의 말들은 내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 온다는 것이다.
저 모든 말들에 내가 속하지 않는지 자못 경계할 일이다.'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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