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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만..Letter from Kunner 2005. 7. 20. 12:16*
지난 며칠, 심신이 고단해 그저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물처럼, 나를 지나쳐 흘러가는 듯한 시간을 바라보며..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어.
오늘 아침, 애독하는 예병일의 경제노트를 보니
매일을 생의 마지막처럼 살라는 스티븐 잡스의 말이 있던데..
그걸 보고도 별 감흥 없이 하루를 그냥 보내버리고 말았네.
하루가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가 없다. 하..
**
월요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일은 그 회사 내부 사정으로 수요일, 바로 오늘로 연기 되고..
나는 이제 자고 일어나면 회의를 하러 가야해.
매번 하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웬지 너무 하기가 싫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싫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은데..
괜히 마음이 안 내켜 짜증부터 부리고 있다.
일이니까..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니까..
안 하면 안 되니까..
이런 생각 하면 더 안 좋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은 별 수 없이, 그저 해야 하니까.. 하고 달래는 수 밖에 없다.
당장 내일 오후에 회의를 하러 가야 하는데,
회의석에 마주 앉아 있을 그네들이 너무 보기가 싫다.
세상에 돈 벌기가 쉽느냐고, 남의 돈 벌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고..
돈 주는 일이니 주절대지 말고 하라면 하라고.
아.. 나는 이런 일이 너무나 싫다.
좀 더 재미있는 일, 내가 가치있어 지는 일.
그런 일을 나는 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니, 지금은 내게 속한 의무를 풀어야 할 때 겠지.
고개는 끄덕, 마음은 여전히 짜증이다.
***
내 맘은 그렇지 않은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는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오늘도 엄마와 말다툼을 심하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 한게 아냐.
하지만 고집불통,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를 쓰고 엄마를 이기려 했다.
정말 속상해.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말야.
돌아서 내 방으로 와선, 후회로 한참 신음하는데..
결국 죄송하단 사과의 말씀도 못 드리고 말았다.
그러려 한게 아닌데..
엄마도 내게 그러려 한게 아닐텐데..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가끔 서로의 맘을 너무 잘 알면서도 빗나가는 경우가 있는가보다.
좀 억지스럽더라도 이렇게 일반화를 시켜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
비단 엄마뿐 아니라 형을 비롯해 친구, 동료들..
모두와의 관계에서 나는 때로 빗나가고 실패하고.
나는 점점 그런 실패가 두려워진다.
아마도 한호형 말처럼, 집에 오래 있어서 의기소침해 진 걸까.
어께가 축 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거울을 다시 돌아 보게 된다.
****
애니어그램, 지난 날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된 성격 유형에 관한 설문인데.
원래 사이트에서 유료로 테스트해야 하는 걸, 몰래 빼 와서 하나 만들어 둔 게 있다.
정말 오랜만에 문득 생각이 나서 144 문제나 되는 테스트를 시행해봤는데.
그동안 나는 3번, 4번 날개를 가진 3번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3번 날개를 가진 4번이 나왔다.
3번은 성취자, 4번은 개인주의자.
3번의 특징은
성공지향적이고 실천적인 타입, 적응력이 뛰어남.
또 동기지향적이며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쓴다.
자신이 쓸모 없다 생각 되는 걸 가장 두려워 하고,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낄 때 만족한다.
4번의 특징은
회피하고 자기도취적임, 드라마틱 하고 자기 몰입적임.
자기 가치를 상실하는 일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중요성을 찾는 일에 욕구를 느낀다.
설명처럼, 3번과 4번은 어떤 면에서는 참 비슷해.
그리고 지금처럼 내 가치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시점에서, 나는 4번 유형의 사람처럼 된 것일거란 추측을 해 본다.
아무래도, 내 요즘 상태가 좋지 못한 모양이야.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 해야 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겠다.
*****
시간은 벌써 새벽 3시를 훌쩍 넘어섰어.
이제 자야 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지.
비록 싫고 짜증나는 일이긴 해도..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조금만 더 웃으며 힘 내 보자.
쉽지 않은 인생, 어디 하루 이틀이었겠어?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고, 이 역시 마찬가지니 더욱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야.
오늘까지만이다, 오늘까지만이야.
해야 할 일을 미뤄 놓은 채 멍하니 시간 보내는 것, 오늘까지만이야.
자고 일어나면 정말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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