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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들은 부모가 늙는 걸 받아 들이지 못하죠.
    쉼을 위한 이야기/영화 2003. 12. 23. 14:37
    영화 관련 정보를 좀 보려고 뉴스를 뒤적이다가..
    무심코 읽게 된 기사야.

    처음엔 신작 영화인가 보다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1989년작의 리뷰더군.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꼭 한번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글의 말미에 가서.. 울컥.. 눈물 나게 만든 좋은 글이야...
    한번 읽어 보고, 가족,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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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면 상냥한 아침 인사와 함께 먹어야 할 약과 물 컵이 머리맡에 놓이고, 옆에는 오늘 입어야 할 속옷·양말·바지·스웨터 가 순서대로 죽 정리돼 있다. 식탁에 앉아 빵을 집어 들면 빼앗아가 버터를 적당히 발라준다. 장보러 가서도 무엇을 고를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오고 갈 때의 자동차 운전은 물론 쇼핑 카트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닐 필요도 없다. 왜? 아내가 다 하니까.

    제이크 할아버지는 올해 78세. 아내 베티와 단둘이, 그것도 완전히 아내의 시간표대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쇼핑 중에 아내 베티가 심장 발작을 일으켜 그만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다. 소식을 들은 아들과 딸이 달려오고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 아버지 때문에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멀리서 사업을 하느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 존. 혼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큰 충격을 받는다. 그 때부터 아버지를 위한 아들 존의 집안일 개인 교습이 시작된다. 세탁에서부터 설거지·침대 정리·청소·운전…. 다행히 아버지는 열심히 배우신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해 어머니의 퇴원, 아버지의 암 발병과 오랜 혼수 상태, 아들 존의 지극한 간호,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아버지의 정신적 혼란과 가족들의 고통 등으로 이어진다. 한 인간의 노쇠와 그것을 지켜보며 여러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의 모습을 잔잔하지만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 제이크와 아들 존, 존과 존의 아들 빌리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파고 들어간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 그것도 싫어하는 일을 평생 해온 아버지를 존은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고 미안해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 빌리에 대해서는 또 힘들어한다. 아들 빌리가 어릴 때 자신은 아내와 이혼했고, 아내가 빌리를 맡아 길렀기 때문이다. 제이크, 존, 빌리로 이어지는 3대는 각자 다른 곳에 서서 서로 바라보며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냉정히 거부하기도 한다.


    혼수 상태에서 고맙게도 다시 깨어난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들을 엄청난 충격 속으로 몰아 넣는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자신의 생각 속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온 것으로 드러난다. 일종의 정신 분열증으로 일상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자 상상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인물을 창조하고 복사해 온 것이다.


    그러니까 가족이 알고 있는 현실의 아버지 따로, 아버지 혼자만의 상상 속의 아버지 따로, 이렇게 살아온 것. 그것도 50년의 결혼 생활 중 뒤쪽의 20년을 말이다. 아들은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인생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만들어 온 그 상상을 현실로 느끼며 사시도록 도와드리자고 한다.


    그러나 같이 살아온 아내는 자신과의 생활을 완전히 무(無)로 돌리는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게 되면서 어린 아이 같기도 하고 젊은 사람 같기도 한 남편의 모습은, 이전의 남편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 같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아내도 그런 남편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편은 결국 병의 재발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러는 동안 존과 빌리 부자도 이런 저런 감정의 변화와 갈등, 화해를 경험한다. 존은 빌리에게, 기르지도 않았고 같이 살지도 않지만 아버지로서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용서"를 이야기한다. 마지막 제이크의 장례식. 남은 가족들의 마음은 다 순하게 풀려 있다. 그들의 가슴속에 세상 떠난 제이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의 원제는 아빠, 아버지라는 뜻의 "Dad"이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었다고 한다. 비디오로 내놓으면서 "황혼"이라는 제목을 붙인 듯한데, 아버지가 들어간 제목이 훨씬 더 잘 맞는 영화다.


    아버지의 병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 존에게 의사는 "자식들은 부모가 늙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죠"하고 말한다. 맞다. 자식이 노년의 부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노인 복지를 한다는 나도 부모님에 대해서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화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제 많은 경험을 하고 있어도 막상 내 부모님의 그런 모습과 맞닥뜨리면 모른 척하고 싶고 어떤 때는 울컥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내 부모님의 노화가 슬프고 믿어지지 않아 피하고 싶은 마음 탓일 것이다.


    인간의 운명이며 숙명인 죽음이 죄가 아니듯, 늙어감 역시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노년의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을 편안한 심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들 빌리를 향한 존의 "난 네 인생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는 말은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존이 아들에게 "네 인생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아버지 제이크에게서 얻었다고 믿는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드리며 깨달았던 것이다. 그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늙은 아버지 역시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이란 얼마나 무거운 짐이며 또 얼마나 든든한 울타리인가. 서로 짐인 동시에 울타리가 되기도 하며 때론 짐과 울타리 역할을 서로 바꾸어 가며 하기도 한다. 힘없는 노년의 부모는 자식의 어깨에 얹힌 짐이 되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심 자체로 자식의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시기도 한다. 비록 그 울타리 한 귀퉁이가 이미 무너져 내렸다 해도 말이다.


    며칠 후면 우리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나누어 가질 것이다. 노년의 부모님 역시 또 한 해를 당신의 생에 덧붙이실 것이다. 주름은 더 깊어질 것이고, 몸은 더 약해지실 것이다. 부모님을 위한 다른 그 무엇에 앞서 그 주름과 그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 부모님의 늙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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