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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쉼을 위한 이야기/영화 2004. 11. 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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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의 아니게 회사를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 와서는..
    갑작스레 닥친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간 미루고 미뤘던 영화를 보는데 쓰기로 했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영화라기 보단 일종의 다큐멘터리 같은 이 영화는 라틴 아메리카 혁명의 전설적인 지도자, 체 게바라의 여행기를 담고 있어.
    영화는 참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흘러가지.
    게바라와 알베스토의 여행에선 간간히 익살스런 장면도 나오지만 그 역시 그저 살포시 웃게 되는 정도고..


    내게 있어 이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다가왔어.

    하나는 물론 체 게바라의 각성 과정.

    영화의 그 밋밋한 흐름 내내 일관성 있게 보여 주는 것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의 하층민들의 삶이었던 듯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 중 하나는 알베스토가 오토바이를 잃고 도보로 여행하던 중, 산길을 걷다 쓰러지면서
    "이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냐" 라고 할 때.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고 알베스토 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 사람이 자기 몸 만한 배낭을 세개나 짊어 매고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기는 장면.
    아마도 감독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그렇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일들을 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하층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 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가는 부부를 만난 일을 보자.
    실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시작은 이 때 부터였던 듯 해.
    극심한 빈곤과 부조리한 현실, 군경을 동원한 정권과 자본가의 수탈.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억압받는 라틴 아메리카나를 게바라는 정면으로 목도하게 되는거지.

    실제로 게바라는 상 파울로의 나환자 촌에서 각성이라 불릴 만한 것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 생일을 맞은 게바라가 나환자 병동으로 헤엄쳐 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야.
    그보다 조금 전, 게바라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병원 동료들에게 하는 감은사에서
    게바라의 남은 평생을 암시하는 듯 한, 민족의 진정한 해방에 대해 말하는데 게바라의 전기적 측면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장면이지만, 영화의 스토리 내에서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란 느낌일까.

    어쨌던, 게바라는 이 여행을 통해 중대한 결심의 초석이 자라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거야.
    뭐.. 이 정도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얘기로서는 기본일테지.



    그리고 남은 하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야.

    인생의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는 의대졸업을 한 학기 앞 둔 스물 네 살의 게바라.
    그 게바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힘은 무엇이었을까?
    보랏빛 미래를 뒤로 한 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혁명전선에 뛰어 들어 게릴라로 살아 가다 끝내 처절하게 목숨을 앗기게 한..
    하지만 그의 일생껏 단 한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를 그렇게 만든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여행의 끝에 그가 얻은 것들을 나도 느끼고 싶다는 목마름.
    여행에 대한 끈적끈적한 갈증을 나는 느끼고 있어.
    사회주의나 혁명, 자본이나 계급 따위의 말은 관계없이..
    나도 진정 남은 내 삶의 지표가 될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싶어.
    희망없는 나의 청춘에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주고 싶어.

    언젠가 홍기 누나가
    "너라면 정말 여행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던 말.
    "여행에서 얼마나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는 줄 아니?"
    하던 물음.
    그 얘기를 처음 듣던 날 만큼이나 알 수 없는 느낌이 나를 한참이나 휘감고 있어.

    하지만 난,
    아직은 나를 짓누른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듯 해 여행을 떠나는 나를 쉽게 상상할 수 없어.

    체 게바라... 친구(형)를 의지하여 바이크 하나에 몸을 맡긴 그 스물 넷의 게바라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훌쩍 떠나기엔 나는 용기가 부족한가봐.
    하기야.. 가진 게 있어야 포기할 것도 있는 걸텐데.
    쥐뿔 가진 것도 없는 나는 그나마 손에 쥔 것 마저 잃을까봐 두려워 더 큰 것을 가지지 못하는 우를 범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아.. 나는 당분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열병에 취해 있을 것 같아.
    게바라의 "체" 로, 또 역마살 낀 방랑자의 가슴으로..
    나는 취해 있을 것만 같아...

    2005-02-24 오후 9:12:22에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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