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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에게..Letter from Kunner 2003. 11. 19. 22:40퇴근 무렵..
감기에 쩔고 피곤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깨다..
그렇게 지친 몸을 끌고 시계만 쳐다보며, 이제 몇분.. 이제 몇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
누군가.. 하고 보고 있다가 반가움에 잠이 싹 달아 났었지.
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던거야.
민정식.
천안에 있을 땐 늘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는데 내가 서울로 올라 오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래서 늘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친구.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녀석은 내 친구들답잖게 참 착하고 모범적이야.
꽤나 문제아였던 나랑은 너무 달라서 가끔 나조차도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던. ^^;
오죽하면 고등학교땐 담임선생이란 사람이..
진로상담 한답시고 나를 불러내서 정식이에게서 떨어지라고 했을까.
아무튼..
그런 내 좋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
이 녀석은 군대 제대하고 1년 휴학하다 복학해서 지금 대학 3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대고, 성적도 좋고.. 역시나 모범생이야.
괜히 내가 부끄러워지던걸.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서로의 진로에 대해 얘길 하게 됐어.
녀석은 지방대를 나와서 어디 좋은 데 취직하겠냐는 자조적인 얘기와 함께..
경제학과니만큼, 전공을 살려서 전공관련 자격증으로 지방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곳을 취직할 생각이라더군.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하고.
나는 취직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어.
회사 생활은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배불리기 위해 일을 하진 않겠다고.
원래 서로 성격이 참 많이 틀리지 우린.
녀석은 약간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 그리고 참 성실한 타입이고.
나는 그와는 전혀 달라서 모험을 즐기는 편이지.
그래서 그런지.. 녀석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거야.
금융관련 자격증을 따서 취직하겠다는 그를 내가 이해 할 수 없듯이.
차라리 그런 금융지식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하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그는 분명 나완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바라보니까.
내 잣대로 그를 다루려 해선 안 되겠지.
그게 바로 "다름" 이란 거겠지. 늘 같을 순 없으니까.
우린 격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남이 들으면 심하게 기분 상할만한 얘기도 스스럼 없이 하곤 하는데..
내가 더 이상 취직할 생각이 없다. 난 나만의 일을 할 거다. 하고 얘길 하니
바로 아직 정신 못 차린거냔 말이 나오더군. 하하..
물론 농담으로 한 얘기겠지만..
넌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고 내 미래를 축복할 사람 중 하나임에 틀림 없지만..
그 "다름" 이 널 걱정스럽게 만드는 거겠지.
학교 다닐 때 늘 사고를 치고, 문제 일으키고..
졸업해서도 내가 하려던 건 일반적인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좀 있는..
좀 별난 일들을 많이 해댔으니.. 걱정이 되기도 했을거야.
넌 아직도.. 아직도 철이 덜 들은거냐. 하고 묻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난 내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바꾸고 싶지 않구나.
좀 위험해 보이더라도, 좀 어렵게 보이더라도..
그리고 좀 허황돼 보이더라도..
난 나답게 살고 싶어. 지금처럼 회사라는 조직 속에 부속품이 되어 살고 싶진 않아.
그게 철 드는 거라면, 그게 정신 차리는 거라면..
난 그냥 꿈에 젖어 살고 싶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누구나 저마다의 조직 속에 살고 있어.
그건 나 역시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조직의 부속품 따윈 되지 않을래.
조직에 속해야만 하는 거라면 차라리 내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부속품을 구해 조직을 조립하겠어.
쉽지 않은 일이란 거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엔 아직 부족한게 너무도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난 그렇게 하겠어.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이제껏 우린 그런 문제들로 티격태격 한 게 한 두번이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것들이 결코 우리의 우정에 장해가 된 적은 없었다고 믿는다.
그 많은 "다름" 속에서도 늘 우정이 돈독했던 것처럼, 앞으로 가야 할 많은 길들과 시간 앞에서도 우리 변함 없었으면 해.
아니, 이젠 그만큼 더 자랐으니 예전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서로에게 줄 수 있을꺼야 우린.
학교 다닐 때부터 내가 하려는 것들은 늘 좀 이상해 보이고..
뭔가 불안해 보이고 그랬을거야.
난 늘 보통사람들관 다른 길을 바라보곤 했으니까.
그게 때론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때론 엄청난 좌절을 안기기도 했지.
아직 난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어.
그리고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어.
그래서 늘 불안하고 막막하고, 힘들고 그래.
그래서 난.. 네 "아직 정신 못 차렸냐"는 말, 농담인거 알면서도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건지도 몰라.
나, 정말 잘 해 보일께.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널 포함해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정말 잘 해 볼께.
앞으로 나가는 일도 무척 힘들지만 돌아 가긴 너무 멀리 와 버렸는걸.
돌아 갈 생각은 꿈에도 없고 말야.
그러기 위해 열심히 살께. 약속하지.
나약해진 나를 추스르고, 매일매일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보일께.
언제고 내가 네 친구임이 또 네가 내 친구임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우리 그렇게 살자.
며칠 붕 떠 있던 내 정신을 다시 맑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늘 건강하기를...
사랑은 이성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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