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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Letter from Kunner 2016. 7. 28. 01:53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와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던 즈음.

    나는 아내를 심하게 울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녀 계획으로 옮겨 갔던 차인데, 나는 필요 이상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원치 않노라고. 

    딴엔 그게 대단한 가치관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그리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얼마나 떠들어 댔던가. 아무리 민주주의고 자본주의고 하더라도 단지 3세대만 거쳐도 신분은 고착화 되고야 만다든가(그러니 낳아봐야 개돼지...), 순간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운 젊은 날이라든가(감성적인 접근이다) 하는 류의 이야기를 그녀의 앞에 마구 쏟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어떤 대단한 가치관이 아니라, 또 어떤 깊은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두려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라는 걸 말하는 나도, 듣는 그녀도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어린 시절에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나는 늘 쉽게 지루해 했고, 좀처럼 감탄하는 법이 없었다. 열살 어린아이의 삶은 너무 뻔했고 한심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나보다 그다지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었다. 올곧이 내 생각대로 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비록 어른이 되고 난 후 - 적어도 생물학적으로 - 의 삶이 그 시절 동경했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의 삶보다는 어른의 삶이 낫다고 생각했다. 얼마간은 실수도 하고, 또 얼마간은 좌절도 겪고, 또 얼마간은 여전한 내 삶의 문제들에 부끄러워 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꽤 괜찮게 살아가는 나름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비해 여전히 곤궁하고, 이렇다할 성과를 내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해낸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니, 실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걸 인정하고 입밖에 내는 데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던 나는 실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가치관이라며 말하던 것들은 그저 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히 공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세상은 이해 가능한 것과 이해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뉜 것.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어찌 모두 그렇기야 하겠느냐만, 적어도 아이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할 여지가 없다. 나는 두려웠을 뿐이다.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누군가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내 부모에게 그렇듯, 너무나 큰 희생을 너무나 작은 감사함으로 덮어 버리곤 하는 이 비합리적인 부모-자식 관계, 그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법칙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다, 과연 그걸 해낼 수 있을까. 그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웠고, 여전히 두렵다. 

    그런데 어쩌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어른으로서 자신하던 나는 실은 여전히 치기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때로 나는 무언가 완벽한 상을 그려놓고 내가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힘들어 하곤 했다. 자학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 덕분에 성장한다는 개떡같은 위안을 받곤 했다. 어쩌면 아버지로의 삶에 대한 나의 두려움도 그럴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제멋대로 지도를 만들어 놓고, 그 지도대로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있다랄까. 


    오늘 - 이제 12시가 지났으니 어제, 내 딸이 세상에 태어났다. 두려움을 극복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아이의 방긋 웃음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다가도 다음 순간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대신, 그 두려움을 가치관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는 대신, 두려움 앞에 온전히 나를 내던질 생각이다.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공허한 질문 대신 딸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갈 궁리를 해 볼 참이다.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있다. 


    라고 거창하게 의미를 붙여 보고 싶은 밤이다. 

    어떻든 오늘은 내가 아버지가 된 첫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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