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책이란 분류에 올려야 하나? 뭐 여튼 공산단 선언도 출판되긴 했으니 책은 책이다. :)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수업 중에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였던 독일지성사.
독문과 전공 수업 중 독일의 사상사를 따라 매주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하나씩 알아보는 수업이었는데..
사실 한 명의 사상가를 한 학기 내내 다뤄도 부족할텐데 매주 한명씩이라니 얼마나 수박 겉 핥기였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겉만 핥았는데도 너무나 맛있었다!
수업은 한 시간은 주어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교수님의 보강으로 진행됐다.
나는 여섯번째 주의 발표를 맡았고, 주제는 마르크스공산당 선언이었다.
대학생이라면, 지성인이라면 공산당 선언 쯤은 읽어 봐야한다는 지적 허영이 상당부분 작용한 탓이기도 했지만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동안 너무나 즐거웠고 재밌었다.

문득 생각나 발표자료의 각 페이지와 주요 내용을 올려 본다.
사실 썩 잘 만든 PPT는 아니다.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에 그만 PPT에 나열된 내용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걸 공개하는 이유는..
아직 공산당 선언을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 자료가 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올려 본다.
선언이 나온지 200년이나 지났지만,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아.. 혹시나 마르크스나 공산당선언을 읽었다고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공산당선언을 읽어 보기는 커녕 마르크스가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계획은 페이지마다 내용을 적어 줄까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그냥 정리자료를 함께 올린다.
아,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 따위는 나도 잘 모른다. ㅋㅋ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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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러한 소중한 자료를 ^^ 잘 보고 갑니다. 덕분에 마르크스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던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ㅋㅋ 감사해용~

    2012.03.21 00: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 무언가 앎에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2.04.05 23:23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8.05.28 04:26 [ ADDR : EDIT/ DEL : REPLY ]


설맞이 책 읽기의 마지막을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이 쓴 『프리라이더』로 장식했다.
책이 표지 디자인 보다 훨씬 좋다. 둘러 쳐진 흰 종이를 벗겨내고 난 후의 표지는 참.. 안습이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듯 출판 디자인에서 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이렇게 좋은 내용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알고 싶어 지도록 표지 디자인에도 좀 신경을 썼으면 한다.

드디어 설맞이 책읽기 목표였던 3권을 다 마쳤다.
설 연휴가 꽤 길었으니 그 긴 시간 동안 책 3권 읽은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목표를 완수했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이번에 읽은 책들이 참 알찬 것들이라 그 의미는 배가 된다.


이 책은 지난 번 선대인 & 조국 북토크에 가기 위해 사둔 것이다.
이미 어제 읽은바 있는 『조국, 대한민국에 고하다』와 함께.
선대인 부소장을 트윗에서 follow 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애초에 내가 열혈 트위터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북토크와 이 책을 통해 선대인 부소장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기득권을 향유하는 일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알면서도 과감히 기득권을 버리고, 그 기득권이 얼마나 무서운 칼을 휘두르는지 잘 알면서도 그에 맞서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이라고 하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공공연한 비밀을 들추어낸 것이다.
아마 사회 경험 있는 사람들치고 여기 있는 내용을 처음 들었다고 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물론 정확한 수치와 같은 세세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이야기는 책의 내용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함부로 발설하기 힘든'이라는 뜻이고, 여기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가 아닌 '함부로 발설하기 힘들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니 이것을 책으로 써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오랜 시간 공공연한 비밀이 전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공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이 짜여져 있었을 것인가? 그들이 세워 놓은 성벽의 크기가 얼마나 될런지 알아갈수록 절망스럽기만 한데, 이런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는 도전한 것이다. 그 성문을 열어 젖히기 위해 단기로 뛰어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얘기를 공론화 한 그 자체로 저자는 박수 받아야 한다. 물론 박수 받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부조리를 해결하는 것이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그 부조리를 해체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사업제안 및 사업관리다. (물론 프로그램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디자인 툴도 직접 건드리는 등 그 외 다른 일도 하긴 한다. 누가 나의 직무가 무엇이냐 물어 보면 '잡부'라고 할 정도로..)
특히 우리 회사는 정부 기관과 관련된 사업들을 주로 하는데, 이를테면 정부 조달 사업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IT 분야와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설분야는 사업 규모가 현저히 달라서 동률 비교는 어렵다. 다만, 사업비 책정이 개판이고,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이뤄지는 건 매일반이다. 돈 되는 건 이미 대형 사업자들이 다 챙기고, 하청의 하청들만 죽어 나는 현실도 닮았다. 대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입찰 제한이 걸린 작은 사업도 마찬가지다. 경쟁자만 다르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지저분한 암투와 로비가 얼마나 심한지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이게 다 우리들 세금이야." - 내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이들에게 자주 하던 얘기다. 그런 세금을 가지고 대부분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허접한 수준의 사업들을 진행한다. (왜 해야 하는지 물으면 예산이 남아서, 라고 대답하는 공무원까지 있을 정도다. 사실 애초에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뻔히 다 아는 것을..) 이렇게 진행되는 사업이 허접하니, 또 다른 사업을 해야만 한다. 애초에 제대로 된 호미질 한번이면 될 것을 가래로 퍼낼 사업거리로 만들고, 가래로라도 제대로만 하면 될 것을 눈 먼 돈 빼돌리느라 혈안이 되어 하청에 재하청을 통해 가래도 호미도 아닌 숟가락으로 퍼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당연히 한번이면 끝날 일이 몇번이나 반복되는 사업이 되는거고, 그렇게 하니 당연히 사업은 산으로 가고 이미 돈은 엄한 놈들이 다 먹고, 실제로 사업 수행하는 사람들만 죽어나는거다.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이유를 이 책은 정확히 짚어 내고 있다. 그리고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지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섬뜩하고 짜증스럽고 얼른 책장을 덮고 잊고 싶어진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은 지나치게 잔인하게 읽히는 법이다. 이 책이 딱 그렇다.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들추는 이유는, 단지 뒷담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현실이 이러니 두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자는게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는 이 책에 없는데, 그건 2권에서 다뤄질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나라는, 이 나라의 정치는 - 보수도 진보도 모두 기득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불과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득권은 자본이 온통 틀어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해 우리 사회는 정의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요동 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부질없다. 부정한 기득권을 인정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의 책을 읽으며 했던 질문을 또 다시 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이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프리라이더를, 
아니 그저 무임승차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삥 뜯는 이 불량배들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 것인가?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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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서평입니다. 저 역시 요즘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건설의 한분야에서 일하는데 사업비는 설계자가 아닌 행정가가 책정하는데 그 타당마저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라서요.. 책 내용이 궁금해 지네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2018.02.21 13: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난 번 선대인&조국의 북토크에 갔을 때 저자 사인을 받기 위해 샀던 책.
간만의 여유로 이제야 읽게 됐다.
나의 나태함에 철퇴를!!

저자 사인을 받기 위해 수백명이 늘어선 탓에..
사인을 위한 사인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대면하는데 허락된 시간이 5초나 됐으려나..


그제 읽은 『진보집권플랜』에 이어, 어제는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읽었다.
오늘 새벽까지 읽었으니 오늘이라 해야 하나, 어제라 해야 하나.. 아무튼.


이 책은 조국 교수가 그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만든 시론집이다.
따라서 어떤 사안은 과거의 그것인 경우도 있고, 어떤 사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도 있고, 
또 어떤 사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말한 것도 있다.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도 구구절절히 동감하며 읽었다.
때로 무릎을 치고, 때로 가슴을 치면서..

한가지 재밌던 것은, 책을 읽으며 지난 계절학기 때 들었던 김병욱 교수님의 정치 수업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게 참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결국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법인걸까.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여섯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정부에 고한다.
2. 보수와 진보에 고한다.
3. 시민에게 고한다.
4. 자본에 고한다.
5. 법률가에게 고한다.
6. 올바른 법치란 무엇인가.

저자는 초장부터 MB와 그 측근들에게 쓴 소리를 가한다.
그러나 그 쓴 소리에는 일방적인 무시나 폄훼가 아닌 진짜 충고가 들어 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거짓 논리를 논박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잃어 버린 것들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개헌이나, 비리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잘라내지만 MB나 이재오, 박재완에 하는 조언은 진짜였다. 물론 그 진짜가 조언의 대상들이 가짜임을 전제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번째 장에 이르러 저자는 보수와 진보에게 각각 지향해야 할 가치를 말하고 있다.
먼저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수구꼴통', '반칙', '탐욕'이 아니라 '합리성', '윤리의식', '도덕', '안정'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땅에 왜곡되어 있는 보수는 진짜 보수가 아니라는 것을, 미국의 명배우이자 명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의 사례를 들며 이야기 한다. 또 사분오열된 진보에게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통합하라고 말한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집권을 통해 정강을 실현하는 것이다. 통합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고 싶지 않아 통합에 주저할 경우, 그저 지금까지 쌓아 온 한줌도 안 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것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다. 이건 민주당 뿐 아니라 다른 군소 야당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특히 민주당이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장에서 저자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딜레마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좀 더 큰 차원의 이야기에 흥미가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개개인이 생활을 통해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87년의 혁명을 이루어낸 386세대가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했던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이것이 우리 모두의 해결 과제라고 말하는 점은 인상 깊다. '여기까지면 됐어' 하는 순간 혁명은 동력을 잃어 버린 것이다. 조금 더 고삐를 쥐었어야 했다. 프랑스의 68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넷째 장에서 저자는 물질만능에 빠진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일찌기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 권력으로 넘어 갔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미 현대 사회에서 모든 권력은 자본이 틀어쥐고 있는 상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 것일까? 이건희더러, 정용진이더러.. '너 그러면 안 돼' 하고 백번 천번 말해봐야 소용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애완견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중산층 이하의 사회 구성원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실 이건 자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래로부터 늘 있었던 일이다. 다만 그 범위가 좀 더 넓어 진 것일 뿐. 하지만 나머지 전체 구성원은 그게 옳은 일이 아님을 알았고, 그에 대해 공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것에 대한 부정도 부정한다. 내 돈을 내가 쓰는게 뭐가 나쁘냐는 논리다. 사회 정의가 바로서지 않은 상태에서 축적된 부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정의일 것인데.. 자본의 정의는 그런 통상의 정의도 실현해 주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다섯째 장에서 저자는 법률가 - 특히 검찰에 대해 쓴소리를 가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부조리도 척결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나라 정치 지형의 왜곡이나, 정치 권력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사회 권력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급선무인 것이 검찰의 개혁이라는 것이다. 사실 검찰이 수사만 제대로 한다고 하면, 지금 이 땅에 떵떵거리고 사는 것들 중 제대로 남아 있는게 몇이나 될까? 강금원 씨는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것들이 이건희는 왜 그렇게 무른 방망이로 안마를 하며, MB와는 꼬리곰탕만 먹고 마는가 말이다(물론 꼬리곰탕은 특검이었지만). 저자는 사법부 - 특히 신영철 대법관이 법관의 독립과 스스로의 양심에 반하는 재판을 주문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법원 인사구조의 개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장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법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집행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약용과 이계심의 일화로 요약되며 자연스럽게 다음 장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 저자는 법률가(법학교수)답게 올바른 법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한다.
법치를 확립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이 확립하고자 하는 법치가 과연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일례로 공정사회, 법치가 바로선 사회를 만들겠다고 연일 떠드는 MB는 이미 본인이 불법과 전횡을 일삼고 있고, 그 측근들은 사실 공직자가 아니라 수감자가 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저지른 패악이 하도 심해서 민간인 사찰이나 대포폰 같은 것들은 예로 들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치란 法治인데, 그들이 말하는 법치는 아무래도 法恥인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은 통쾌하지만 그만큼 슬프다. 뿐만 아니라 약자에게만 강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게는 알아서 기는 법 집행. 반대파는 철저히 숙청하여 다시는 딴 생각을 못 하게 하고, 아군에게는 합법적으로 면죄부를 주어 날개를 달아 주는 걸 법치라 한다면 그 법은 부끄러운 법이 맞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적어도 법률가라는 사람들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 아닌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엘리트들이 아니냔 말이다 - 사법고시라는 좁은 문을 뚫은 사람들이니까.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법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조국교수의 글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건강하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말하고, 이것은 진보의 논리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건 진보의 논리라기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얘기들일 뿐이다. 바름이 진보라면, 그 반대에 있는 보수는 틀림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를 무지를 것이 아니라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국교수의 글은 상당부분 평소에 가진 생각들과 많이 닮아있다. 그의 다른 저작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나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끝으로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이 책의 참고문헌들을 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바빠서, 피곤해서 라고 변명하며 게으름 부렸는데 참 부끄러웠다. 누구는 그렇게 많은, 그렇게 방대한 책과 매체를 접하며 지식을 습득하는데 누구는 고작 책 한권 읽기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부끄럽다. 그리고 달라지자. 

이제 설 맞이 책읽기 목표 도서는 1권 남았다. 자, 또 시작이다. 읽자. 배우자.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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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 조국 著, 오마이북 출판

지난 달, 옥녀사가 새해 선물로 사준 '진보집권플랜'을 근 한 달이 지나서야 읽었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나의 게으름과 지적 나태함에 한없이 반성 중이다.

좀 더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좀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 담고 살아야 한다고..
좀 더 가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걸 실제로 행하는 일은 생각 외로 어려운 것 같다.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책은 진보가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플랜은 집권을 위한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진보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 - 특히 진보가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 한권으로 사회 전반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수박 겉핥기 식의 문제 진단과 현실을 외면한 해법 제시에 머무르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지난 번 조국 교수의 강연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드는 아쉬움이었다.
아마 대중의 수준에 맞춰 주느라, 물꼬를 트기 시작하느라 그런 것이겠지?

다음 책 역시 조국 교수가 쓴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이다.
이 책은 어떨지 기대가 되지만, 아마도 일반 대중을 향한 메시지니만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밀려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좀 더 전문적인 학술서를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내리는 동안 내내 든 생각은, 어쩜 이렇게 생각이 같을까 하는 점이었다.
조국 교수 같은 시대의 지식인과 견줄 생각은 아니지만, 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 하던 얘기과 너무 닮아 있었다.
만약 형이나 옥녀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평소의 내 이야기를 한번은 떠올려 주지 않을까?

그게 너무나 보편 타당한 가치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인지 - 그러니 대수로울 것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생각이 역시 틀리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마음껏 담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책을 읽는 동안 또 하나 든 생각은, 역시 나는 제도권 정치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 투성이의 20대를 보낸 탓에 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안에 내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더 큰 세상에서, 더 큰 배움을 얻어 보고 싶다.
하지만 일단은 더 열심히 공부하자. - 목적을 가진, 쓰임을 위한 공부를.
남은 나의 삶은 그 자체로 공부가 되어야 한다.


그럼, 잠시 쉬고 다시 두번째 책을 펼쳐 들어야겠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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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아니니..
하물며 삶의 무게와 깊이, 
그 모든 것이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이 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어제와 오늘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어린 시절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언제일지 모를 미래의 내 생각이 같지 않을 것임도 당연한 일이겠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세상을 배워 가면서..
기억의 오랜 언젠가, 고까움이라는 단어와 연결짓곤 하던 무소유의 의미를 배워 가고 있다.


그 뜻에 조금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무소유 전문을 타이핑 해 본다.




무소유 - 법정.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 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 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마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찌기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정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 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 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 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난 유정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이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 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거리던 나라끼리 친선 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향(向)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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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책을 하나 알게 되었어.
알랭 드 보통의 『불안』.

간만에 발견한 읽고 싶은 느낌이 팍팍 나는 책이랄까?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 완벽히 공감한다고 하기엔 어려워.
책장을 넘기는 중에도 "그래서 어떻다는거지?" 하는 생각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으니까 말야.

단적으로 말하면,
결국 사회가 제시한 지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불안"의 해결이라 역설하는 저자는..
"불안"을 일반화 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를 제거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주제의 특성 상 어떤 명쾌한 해답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고,
아니..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지.

지위를 제시한 것은 사회이나, 그를 해결하는 것은 각 개인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로 귀결되는 이 책은..
명쾌한 해답이나 참신한 이론 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책임에 틀림없다.

첫 장을 넘기면서의 부푼 기대가 무색하게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조금 실망스러워 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주제를 논리로 풀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다음 장을 빨리 넘기고 싶게 만드는 능력은 쉽지 않으니까 말야.

아마도 그는 누구나 생각해 오던 것,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것들을 글로 풀어 내는 데 소질이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책의 카피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적어도 이 부분에만큼은 전적으로 동감.

해박한 그의 지식에 혀를 내두르게 되기도 하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을까 싶기도 하고.

실제로 그럴지는 의문이지만,
읽고 나면 조금은 똑똑해지는(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총평을 하자면..
"누구나 생각해 오던 것,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것을 글로 풀어내는 재주" 를 가진 그에게
어떤 참신하고 혁명적인 생각들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책, 매력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별 네개 드리오리다.  s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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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주문했다.
이르면 토요일, 늦으면 월요일쯤 오겠지.

그냥 갑자기 번역소설이니 원어로도 읽어 줄 필요가 있겠군! 하는 생각에..
영문+국문 한권씩 한질을 구입했어.
나도 몰랐는데 인터넷 서점에 포인트가 좀 있어서.. 껌값 정도에 책을 사 버렸어.
그랬는데도 천원이 또 포인트가 생겼네.
포인트 쌓이는 거.. 꽤 재밌는데?
앞으로 책은 Yes24 에서 사 주마. 인터파크는 이제 안녕이다.. 하하..


아직 영화로도, 책으로도 접해 본 적이 없어.
예전에 얼핏.. 추천을 받았었는데, 역시 얼핏.. 들은 그 내용은 영 탐탁찮더라고.
대체 어디가 어떻게 위대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아마 한창 열애중일 때라, 모든 사랑은 예쁘고 착하기만 해야 한다고 믿었던지도 모르겠어.
물론, 그런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긴 하지만..

제목과 작가는 머리 속에 자리 잡혀 있는데도..
계속 읽을 기회가 없던 책.
이제서야 읽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의 삶을 들여다 볼 일이 기대된다.
어떻기에 위대한(Great -ㅅ-?) 개츠비인지.


==============================================================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받는 다는 일은, 더욱이 나와 관계한 사람에게서 책을 추천받는 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나는 책을 읽는 걸 참 좋아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추천한 책을 읽는 일은 힘들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각을 좇는 것만도 벅찬데, 책을 추천한 사람의 생각을 좇고 그와 같은 것을 보려고 애쓰다 보면..
정작 즐거워야할 책읽기는 어느새 고역이 된다.
비단 책 뿐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말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읽고 난 후 어떤 감상을 말해야 그가 좋아 할까?
이런 생각들마저 하다 보면, 그야말로 책은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가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책 읽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일인데..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사랑 받기 위해 가짜 자아를 내세우려다 보니.
책을 좋아하는 진짜 자아는 숨어 버리고, 책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 내려 안간힘 쓰는 가짜 자아만 남아 버린다.

예전에 읽을 때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게 곤욕스럽고, 무슨 힘든 과제를 하는 것만 같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이제는 너무 쉽게 읽어 내려가는 나를 보며 씁쓸한 웃음 짓는다.
이런 내가 참 우스워 보인다.
그리고 지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를 정말 어렵게 읽고 있는 나는, 언젠가 이 책이 너무 쉽게 읽혀 내려갈까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 우습고, 다른 한편으론 슬프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너무 쉽게 읽혀 버릴 것만 같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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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볼 만한 영화가 없나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몇편의 시놉시스를 읽게 됐다.


그 중 "밀애"란 제목을 가진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게 됐는데, 그 스토리며 상황설정에 구역질을 느꼈다.


그러다 아주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는데..
"전경린".
나는 저 작가가 쓴 글을 한번도 읽어 본 적이 없지만, 최근 그 이름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밀애" 란 영화는 그 작가의 "내 생애 꼭 하루 뿐인 특별한 날" 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한다.


제목은 참 예쁘다.
내 생애 꼭 하루 뿐인 특별한 날이라니...
하지만 그 책의 메인 스토리가 불륜과 이혼이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분명 전경린이라는 작가가 삼류 야설 작가가 아닐테니 저 소설의 주제가 불륜과 이혼 뿐은 아니겠지만..


혹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자유인가?
그렇다면 하필 왜 그 자유가 불륜과 이혼이라는 코드로 표현되어져야 했는가?
꼭 하루 뿐인 특별한 그 자아를 찾는 방법이 개방된 - 난잡한 -  성 뿐이었던가?
그러다 "전경린"이란 검색어에 의한 검색결과로 한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게 됐다.
최근 한국소설의 주류가 불륜과 이혼이라나?
그리고 그 선두에 전경린이 서 있단다.
거 참, 대단하다 해야 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판 역시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는 얘기인데..
불륜과 이혼, 그 극단적인 코드에 공감하는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다.
두쌍 중 한쌍이 이혼한다는 세태 속에서 안타깝다 해야 하나, 당연하다 해야 하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내 생애 하루..."의 일부를 발췌해 올린 블로그의 게시물을 보았다.
글 잘 쓴다는 작가답게 글이 참 윤택하더라. 그래, 윤택하더라.
그런데 구역질이 났다.
아마 내 선입견과 편견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구역질이 나더라.


그 윤택한 글이 흔들리는 믿음을 정당화 하고 아름답지 못한 사랑을 아름답게 교묘히 위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결코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가의 글을 많이 읽은, 또 즐겨 읽는 듯 하던 어떤 사람을 기억하곤 무척 마음이 안 좋았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위험할 지 모르지만,
시놉시스만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소견으로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이 과연 "일탈"과 "방종" 이어야 할까?
여성의 욕망의 틀을 깬다 하는데, 그렇다면 여성의 욕망은 그저 성적욕망일 뿐이더란 말인가?
우리네 가족관이 성을 억압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방종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성적욕망 보다는 절제하는 삶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나 뿐인가?


역사를 무대로 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황진이란 이름의 책을 알게 되고 한때 읽고 싶다고 생각이 들 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책도 전경린이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으로선 글쎄...
조선이란 무대에서의 억압된 여성.
자유로운 여성이라 일컬어 지는 황진이.
그리고 전경린.
내 선입견은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어 결국 그 책도 뻔한 그녀만의 결론을 낼 거라 예단해 낸다.
그리고 결코 유쾌하지 않을 그 소설을 나는 읽을 생각이 없다.


꽉 막힌 나로서는 전경린이란 작가가 그저 난잡한 성을 말하고자 그 책을 썼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럴리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럼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와 자아로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그녀는 그런 글을 써야만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녀"는 그런 글을 읽어야만 했는가?


나는 일본영화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그들 영화에 보이는 상황설정이 구역질 나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참으로 난잡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들의 영화에서 감동과 열정을 느끼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의 극도의 잔인함과 지저분한 사랑, 극악의 광기,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의 "미학"이 난 딱 질색이다.
흔히들 천재라 말하는 기타노 타케시에게 극렬히 묻어 나는 짙은 허무가 나를 휘청이게 만든다.
너무도 일본적인 것들이 당연하게도 너무도 자연스레 묻어나는 그네들의 영화가 불편하고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런데 요즘 그것들을 외래문화 뿐 아니라 우리네 문화에서도 보게 된다.
위선일 뿐이라 욕할지 모르겠지만, 저런 것은 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마치 올드보이를 보고 난 후 처럼 참 씁쓸하다.


파격이라는 것.
기존의 관념을 깬다는 것.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때론 바람직하고 장려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저 관념을 깨기 위한 파격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건 그저 사회적 약속을 위반한 행위일 뿐이며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야 할 사회를 어둠으로 끌어내는 공해일 뿐이다.
정반합의 원리를 끌어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문제제기로 받아 들이면 좀 편해질까?
그런데 내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그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바람직한 어떤 것"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업과 연계되어 특히 더 그렇다.
만든 영화 더 많이 보게 해야 한다. 만든 책 더 많이 읽게 해야 한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하고, 그게 새로운 주류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자본의 논리이다.
그리고 빗나간 자극은 사람들을 쉽게 파고든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문화평론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닌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은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부분도 얼마간 혀끝을 차게 만들지만, 그것이 맘 속에 불안함을 가져 오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다.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아는 어떤 소중한 사람 때문이다.
그의 사고방식이, 그리고 그의 인생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 있을까봐 두렵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일까 두렵다.
채찍질해 달리는 나의 극단과 우려가 빗나간 것이기만을 바란다.


머리나 좀 식힐까 하고 영화를 뒤적거리던 중 예기치 못하게 전경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머리를 식히기는 커녕 더 아파온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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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스승의 날 특집으로 나온 기사들 중 하나가 유난히 뇌리에 오래 남아..
결국 긁어 오기에 이르렀다.

정말, 이만큼이나 가진 걸 행복해 할 줄 모르고 얼마나 많은 푸념과 투정을 부리고 살고 있는가.
힘들기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함을 종종 잊고 사는 나는, 이 글을 읽고 참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


1960년대는 초등학교에도 기성회비라는 것이 있었다. 그 전엔 월사금이라고 했는데 3공화국이 들어서고 용어가 기성회비로 바뀌면서 아마 납부도 분기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마 일년에 한 2000원쯤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나는 단 한 푼도 그 기성회비를 낼 수 없었다. 6학년 때까지 밀려 있는 기성회비가 5000원도 넘어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와 교감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께 매달 500원씩이라도 갚다가 장사가 좀 잘 되면 1000원도 갚고 그렇게 졸업 전까지는 무조건 기성회비를 다 갚기로 각서까지 쓰고 가까스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우리 세대 거의 모두가 겪은 쓰라린 삶의 추억이겠지만 이렇게 나의 유년시절은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들

"입학원서대 50원 전형료 200원"

초등학교 6학년이던 11월 어느 날 조용히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중학교 어떨게 할 생각이냐?"
"못 가죠 뭐."
"혹시 목포에 아는 사람이나 친척 없니?"
"왜요?"
"이건 순전히 선생님 생각인데 목포에 어떤 사립중학교가 있는데 거기서 장학생을 50명이나 뽑는단다. 너 정도면 거기 장학생 되겠는데."
"먹구 자는 것은요? 그리고 우리 집안일 때문에도……."
"10등 안에만 들면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문제가 다 해결 된단다. 후회하지 말고 시험이나 한 번 쳐 볼래?"

선생님은 이미 원서를 사 오셔서 작성까지 끝내고 우리 어머니 도장만 받으면 접수시키겠다고 하셨다. 내 공부 욕심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원이라도 없게 시험만 한 번 쳐보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원서에 도장을 찍고 원서대나 전형료 얘기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12월 5일 원서마감 우편접수였기에 12월 2일까지 250원을 가지고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250원을 그날까지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12월 2일은 우리 졸업생 특활 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기악부에서 작은북을 쳤는데 기악부의 발표회 복장이 까만 교복에 금빛 단추로 광을 내고 모자에 하얀 덮개를 씌우는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5남매를 키우시느라 늘 바쁘신 우리 어머니는 아들의 발표회 의상은 전혀 생각밖의 일이어서 나는 그 발표회 복장도 준비하지 못했다. 열세 살 소년이 중학교 원서대 전형료 250원도 준비를 못해 선생님께 부탁해야만 하는데, 그 담임 선생님이 지휘하시는 특활발표회에 의상마저 준비하지 못했으니.

나는 집에서 학교에 간다고 나와서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들로 산으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울분을 토하고 뛰어다니다가 오후 늦게야 목이 쉬어서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원서접수에 대하여 물어도 목이 쉬었다는 핑계로 어물어물 넘어갔고, 그날 그 후유증으로 열병이 나서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 날로 내 초등학교 생활은 끝났다.

그 며칠 후 친구들 몇 명이 선생님 심부름으로 찾아와서 학교에 나오라고 설득을 했지만 그때까지 나는 기성회비도 아직 3000원쯤이나 밀려 있는데다 원서대도 내지 못했고, 특활발표회까지 망쳐놨다고 생각해 도저히 학교에서 선생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는 방학을 했고, 방학 기간 중에 아이들이 졸업사진 찍는다며 데리러 왔고, 사은회를 한다고 데리러 왔으나 나는 한 번도 그 자리에 가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동네의 친구들이 졸업식을 했다고, 누구는 어느 중학교 누구는 어느 중학교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 줬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들은 나와는 아주 멀어진 이야기였다.

우리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2월 어느 날.

예전 시골 초가집은 여름 장마에 썩어 들어간 지붕의 이엉을 벗겨내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나오는 볏짚을 이용해서 새로운 이엉을 엮고 그 이엉으로 집 지붕을 덮어야 이듬해 여름에 지붕에서 비가 새지 않는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다시 덮어야 했지만 우리 집은 그 해 한반도 남쪽 지방을 휩쓴 한발(旱魃)로 볏짚 벼 한가마도 수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지붕 덮을 이엉을 엮을 볏짚이 없었고, 새해 2월이 되도록 썩은 이엉을 이고 있었다.

딱한 형편이 안 되어 보였던지 이웃에서 볏짚을 빌려줘서 지붕을 덮으려고 마당 햇빛이 드는 곳에서 이엉을 엮다가 찐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고 있던 때였다. 그 날 갑자기 선생님이 친구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밀린 기성회비를 끝까지 받으러 오신 줄 알고 가슴이 내려앉았으나 태연하게 하던 일을 접고 선생님을 맞았다.

"힘들지?"
"아뇨 괜찮습니다."
"공부는 더 안할래?"
"도저히 형편이 안됩니다."
"이것 받아라."
"……"
"풀어봐라"

초등학교 졸업장이었다. 그리고 해남군 교육청장상, 6학년 우등상, 6년 우등상, 새 국어 대사전, 동아 영한사전, 대학노트 열 권 등의 부상(副賞)들. 선생님의 나직한 말씀이 이어졌다.

"공부해라, 어떤 방법으로든지 공부해라."
"……"
"지금 이 가난은 잠시다. 그러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 가난은 너와 네 후손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
"더 중요한 것은 너처럼 영리한 사람들이 공부를 해서 국가나 사회에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에 아주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
"언제 어디서든 공부를 하다가 어떠한 도움이라도 필요하면 내게 오너라. 내가 큰 도움은 못 주겠지만 힘은 되어주마."

선생님은 그 말을 남기시고 총총히 친구들과 함께 되돌아 가셨다. 그리고 그 해 2월이 다 가기 전에 선생님이 다시 오셨다.

처음 내게 추천했던 그 중학교가 미달이 되어서 추가시험을 보는데 점수가 좋으면 장학생이 된다며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다시 진학 얘기를 하셨고 우리 어머니는 그 선생님의 설득에 감복해, 꼭 장학생이 된다는 약속을 하고 내가 목포의 그 중학교에 시험 치는 것을 허락했다.

목포항의 휘황찬란한 불빛

시험 전날 아침,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한 시간 쯤 걸어서 해남 가는 버스에 올랐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 길이지만 당시에 해남에서는 목포로 직행하는 버스길이 없었다. 면사무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해남읍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해남군의 서쪽 끝자락에 붙어 있는 산이면 상공리라는 곳까지 가서 또 배를 타고 목포에 가야 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여행길도 나는 즐거웠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내가 목포항에 도착한 것은 해가 다 넘어간 저녁이었고, 바다의 배 위에서 휘황찬란한 항구의 불빛들을 난생 처음으로 접한 해남 촌놈에게는, 호롱불에 눈 익은 그 깡 촌놈에게는 그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은 기대하던 중학교 입학시험과 앞으로 내가 헤쳐나가야 할 모든 난관이나 시련 등은 전혀 생각나지 않게 했다. 그저 "나도 저 불빛 아래서 기필코 성공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각오만이 생길 뿐이었다.

시험 결과는 뜻밖에 아주 좋았다. 추가 시험 응시자 120여 명 합격자 74명 중 1등 합격, 입학금 및 수업료 전액 면제. 그러나 기숙사 입소가 어려웠다. 기숙사는 이미 만원이었으므로.

다행히 목포에는 우리 마을에서 시집간 친구 고모님이 당시 목포에서 제법 알아주는 큰 빵집을 하고 계셨고, 그 빵집 공장장이 내 친구의 형이어서 나는 그 형에게 신세를 말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그 형은 공장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빵 공장에서 자는 것을 허락했으며, 아침은 팔다 남은 빵 조각으로 저녁은 공장 직원들 틈에서 해결하는 아주 좋은 숙식처가 생기게 됐다.

내 나이 어언 쉰 셋.

나는 한 여자의 남편과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26년을 살아온 중년의 보통 남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언뜻언뜻 내 유년의 날을 뒤돌아보면 초가집 마당 한 켠에서 이엉을 엮으며 가난의 회한과 배움의 열망으로 눈물을 곱씹던 소년에게 나타난 한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분에게 진 빚을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제 그 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의 심성으로 봐서, 그 분에게 은혜를 입은 제자가 비단 나뿐은 아닐 것이다. 그 분은 선생님으로 봉직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나 같은 제자들을 길러냈을까? 그 제자들은 지금 다 어디선가 또 나처럼 그 분의 은덕을 그리며 이 땅의 충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한 분의 훌륭한 선생님이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과연 어느 만큼일까?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2월의 어느 날 가난한 제자를 찾아오셨던 선생님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오마이뉴스 /임두만 기자 (limdo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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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현

    공부.....해야 할텐데 " " "ㅁ " " ";;

    2004.05.21 09: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냉정과 열정사이..
책으로 보면 더욱 감동이 깊을 거란 말에..
꼭 한번 읽어 보기로 맘 먹고 내친 김에 인터파크에서 주문했다.

여기저기 돌아 다녀 본 결과 배송료 포함해서 가장 싸게 파는 곳이기에 주저없이.. ^^

어제 점심에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배송되네.

위의 화물추적 화면에 따르면 지금 열심히 오고 있대.

아마 오늘 오후엔 받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잔뜩~ 부푼 가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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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많은 고민과 방황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거울을 보면 해 놓은 것 하나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던 내가 서 있고..
그걸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지.

현실의 고민들과 여러 문제들이 내 머릿속을 꽉 들어차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몰랐어.

나이는 자꾸만 먹어 가지..
대학졸업 후 취직이라는 일반적인 코스는 완전히 남의 얘기가 되어 버린터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얄지 막막하기만 하고..
지금이야 나이도 젊고 병역특례라는 변명거리가 있으니 박봉이라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만..
좀 더 나이를 먹게 되고 가정을 꾸려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 나의 경쟁력은 뭐가 될까 고민되고..

아침에 잠이 덜깬 얼굴로 전철에 올라 꾸벅꾸벅 졸다가 회사를 가서 하루 종일 사장 좋을 일만 하다가 집에 돌아와 또 그렇게 잠들고..
또 다음날 아침이면 피곤한 몸 이끌고 출근하고..
평생 이 짓을 반복하다 가게 되는 건 아닌가 많이 걱정스럽고 도무지 앞이 안 보였지.

하지만.. 요즘 나는 분명 이전까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일본계 미국인 로버트 기요사키가 지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라는 제목의 책이 있지.
직장인 열명 중 여덟, 아홉은 읽었다는 아주 유명한 책이야.
그 책이 출간된 지는 꽤 오래 됐지만 나는 여태껏 읽지 않고 있었어.
돈이라는 것에 관심쏟는 것은 왠지 경멸의 대상이어야 할 듯 하고..
그런건 다른 것을 잘 하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었고..
게다가 대부분 에세이들이 그렇듯.. 몰라서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을테지.. 하는 생각으로 기회가 있어도 의도적으로 읽지 않았었어.
그대신 나는 좀 더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싶었지.

그러다 이번에 형의 권유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랬다고 하던데.. 나 역시 강한 인상을 얻게됐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그 느낌은 너무도 강렬해서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하루 종일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될 정도였지.

부자가 된다는 방법 같은 현실적인 개념이 문제가 아니야.
내가 그간 당연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사회가 정해놓은, 그리고 나 역시도 일주일 전까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진로에 대한 강한 반론..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느낌이란.. 참 인상적이었지.
그간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들이다 보니 삐딱한 자세로 쓸데 없이 고집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후련하고 통쾌한 그 느낌에 자꾸만 다음장을 넘기게 되는 책이었지.

책을 읽기 전 나는 앞날은 암담하기만 했고 해 놓은 것 하나 없이 나이를 잔뜩 먹은 가여운 20대였고..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희망으로 가득한 앞날을 가진, 그리고 아직까지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 청년이 됐어.

내 마음의 변화, 그것이 결국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푸념과 한숨으로 가득하던 나의 어제는..
온갖 희망과 각종 아이디어들로 꽉찬 머리 속을 주체하지 못하는 활기찬 오늘을 맞고 있다.
이런 변화에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지.

새로운 출발선에 선 나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실패하고 또 주저앉고 또 포기하게 될까봐 두렵지만..
그런 걱정따위는 그동안 했던 걸로도 충분하지 않겠어?
하지만 난 확실히 믿고 있어.
나는 분명 달라지고 있고, 그 달라짐을 바탕으로 앞으론 더 잘 할 수 있을 것임을...

나의 이런 바람과 다짐들이 그저 "말"하기 위한 "말" 같진 않은가?
실재(實在)의 변화가 아닌데도 변화라고 믿고 싶은 몸부림일 뿐인거라 생각되진 않는가?

타고난 이상주의자인 나는 변화가 실재하지 않는 다짐뿐이더라도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이걸 보고 고개 저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때론 그래야 할 때가 있어.
進化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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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현

    점수는 언제쯤 進化할까요...-ㄴ-;;

    2003.10.03 13: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웃어라, 항상 웃어라.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얼굴을 붉히지 말고, 아무리 힘들고 속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찡그리지 말고 웃어라.
그런 일이 생길 때 마다 곧 숨을 서너 번씩 깊이 들이마시면서 웃을 일을 생각해내라.
그걸 자꾸 연습하면 웃음 속에 내심을 감출 수 있게 된다.
남자는 마음에 층이 많을 수록 크게 된다.

- 하야가와, 『아리랑』-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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