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K리그는 전남에서 임의탈퇴된 이천수의 복권 문제로 인해 시끄럽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이천수의 팬이었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동국이지만, 천수도 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재능 때문이었다. 
동국이의 경우, 나락에서 떨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올라와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는다면..
천수는 실력 그 자체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가 K리그에서 활약한 2003년, 2005년의 이천수의 플레이를 직접 본 사람들은 아마 이의를 달기 어렵지 않을까..

뭐 여튼..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
어제 뉴스를 보니, 천수가 임의탈퇴를 풀어 달라고 전남 측에 요청했단다.
장문의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지.

일단, 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구단을 상대로(실은 그 뒤에 있는 거대 모기업을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하려는건가?
이놈 제정신인가..
예나 지금이나 주위에 사람이 참 없는 모양이다.
안타깝다.

아니나 다를까..
천수의 사과문에 대해 전남은 진정성이 없다며 딱 잘라 거절해 버렸더군.
아마 당분간 K리그 복귀는 힘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이천수에게 있어, 이번 사태가 아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대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일단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감히 말을 꺼내지도 못할' 상황에서 '일단 얘기는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는 건 나름의 수확이다.



***
일부 팬들은 그만 용서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동정론을 펴기도 하는데..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전남이 '몹쓸놈..' 하면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아량을 베풀어 주면 끝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데다..
그간 못된 짓 한게 한 두번이 아니었고.. 
더구나 이번 일은 그냥 못 된 짓이 아니라 아주 못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축구 실력에 매우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건 용서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뭐.. 화끈하게 용서해 줘라, 하고 말하기가 좀 뭐하다는 거다.



찾아 보니 예전에..
천수가 심판에 쌍욕 했다던 당시에 써 둔 글이 있었다.
자주 가던 축구 커뮤니티 - 사커월드에 썼던 글인데..
수년이 지난 후인데, 어쩜 이 녀석은 반성이라는 걸 모를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약 지금 내 의견을 묻는다면?

그의 재능이 무척이나 아깝고, 그가 플레이하는 걸 리그에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이동국 - 이천수 투톱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100 같지만..

내가 결정권자라면, 임의탈퇴를 풀지 않을 것 같다.
신의를 져버린 행위는 한 번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예전에 써둔 글을 가져다 올린 것이다.
당시 가졌던 관대함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것.
내가 변했다기 보다, 녀석이 더 이상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이천수 선수에 관한 이야기

2006·10·25 15:44 / Kunner


그다지 좋지 않은 주제를 두고 계속 새 글이 만들어지는것도 문제가 있겠다 싶지만 

다른 글을 쓰셨던 분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르기에, 죄송한 마음 무릅쓰고 새 글 올립니다.

양해 부탁 드릴께요.

회사에서 눈치 보며 글 써내리느라 중언부언 하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주말, 이천수 선수가 경기 중 심판에게 폭언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 무척 아끼는 선수의 일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수라 지칠 법도 하지만..

손이 많이 타는 만큼 애정도 많이 가는 법인가 봅니다.


요즘 제가 아끼던 선수들은 그야말로 암울, 또 암울이네요.

모쪼록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아야 할텐데...

(어여 동국이라도... 휴..)




아무튼 각설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무슨 핑계를 댄다 해도 잘못한 건 잘못한 겁니다.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욱,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정상 참작이 될 뿐, 죄 자체가 사라지거나 가벼워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달게 받는 것 뿐 다른 길은 없으리라 봅니다.

또,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무척 아끼는 선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엄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끼는 마음이 그만큼 크기에..


몇몇 분들은, "이렇게 욕 먹는 게 싫어서라도 빨리 유럽으로 가라" 라 하시지만..

그는 축구 선수 이기 전에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역시 그런 생각에도 절대 반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붐에 대해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이는 이유(감독으로서는 논외로 하더라도)가 비단 축구 실력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 이천수 선수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십니까?

왜 그에게 가능의 문이 아닌, 불가능의 문을 열어 보이십니까?

왜 이천수 선수가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선수가 되지 말아야 합니까?


이천수 선수는 그 잘못에 대해 징계를 받을 것이고(받아야만 할 것이고), 

나름대로 반성도 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겁니다.(보여 줘야만 합니다)

그가 함량미달의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리고 이런 시련 - 스스로 만든 시련이기에 시련이라 부르기가 무엇하지만 - 이 그를 더욱 성장하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

멈추면 또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닌 그 혼자만의 인생을 살게 될 뿐이겠죠.




또 하나, 언론은 이 주제를 가지고 선정적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야말로 철 모르고 날 뛴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흉기로 어쩌고..' 이런 기사, 과연 가당키나 한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언론에 같이 널 뛰고 있는 분들도 인상 찌뿌려 지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스무살 시절에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아,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군' 이라고요.

그래요, 실제로 그랬다 합시다.(그 사실에 대해 모르니)


그럼 이천수 선수는 평생을 개차반으로 살아야만 하는 건가요?

반성이나 갱생 같은 건 그에게 주어질 수 없는가 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구요?

오히려 그보다, 따끔한 질책과 함께 그가 고쳐야 할 점을 제시해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왜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 이야기 아시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면서, '너는 쓰레기야' 라고 하셔야 옳습니까.


물론 그는 프로고, 더 이상 학생이 아닙니다.

그러니 학교/학생에 대한 얘기는 필요 없을거라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가 더 잘 되길 바란다면, 진정한 팬이라면, Supporter 라면.

무조건 감싸 안거나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닌 그의 나갈 길까지 미리 비춰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팬이 아니야, 라고 하시는 분들 꼭 있을 겁니다.

나는 원래 그가 맘에 안 들었고,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는 분들 꼭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그가 매장 당해서

다시는 TV에 나오지 않고, 다시는 매스컴을 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도식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거듭 말하지만 이천수 선수는 잘못했습니다.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자숙, 또 자숙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격의 완성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성인 군자가 아닌 바에야 감히 누가, 인격이 완성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역시 자격이 없기에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따위의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완성의 잣대를 대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생각하지 않은가요?


그의 인격을 논하시는 분들 중 막무가내 식으로 인간성을 들고 나오시거나 아예 몰락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스스럼 없이 밝히시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의 인간성은 맑은 하늘 입니까?


중요한 건 그가 반성하느냐, 그가 달라질 것이냐의 여부가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그렇듯 시간이 변하게 해 줄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겁니다.

언제까지고 개차반인 인간성으로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딱한 일이지만, 

지금 이랬다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낙인 찍을 필요는 없잖겠습니까.


누구나 20대 중반의 나이엔 아직 턱없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거고,

아직 완성을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더 이상 비하할 필요도 없고, 있는 죄를 없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우리는) 아직 턱 없이 부족하며, 

아직 보여 줄 것이 보여 준 그것에 비해 너무나 많습니다.

해야 할 일이 한 일보다 더욱 많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안 그런 사람 있을까요?

완성이라는 단어로 그를(우리를) 가두지 말고, 완성으로 가는 채찍질을 내립시다.


그는 징계라는 채찍으로 다스려 질 것이고, 

언론과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다시 우호적으로 돌려 놓기 위해 그 전보다 곱절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여정 자체가 그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절대로, 피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자신의 죄 갚음을 다 하는 이천수 선수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을 응원하는 일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당신들을(무엇보다 동국아.. -_ㅜ) 응원한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 갈테니까요.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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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해 다짐으로 축구장에 좀 더 많이 가야겠다고 마음 먹곤 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몇번이나 축구장에 갔는지 꼽아 보고는 하지.
대개 그 횟수에 따라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는지, 아니면 조금 여유를 찾았는지.. 

올해는 단 한번도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공짜표를 잔뜩 받았었는데도 말이지.
뭐, 올해는 그나마 열심히 찾아 보던 축구 중계도 별로 못 봤으니.. 축구에 참 소홀했던 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다 마침 이번 수요일에 전주에서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이 열리기에 냅다 예매를 했다.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지난 해 역시 4강 2차전이었던 성남:조바한 경기 후 처음이다.
그때는 참.. 악에 받쳐 후기를 썼는데 말이지.

그러고보면, 5년 전도 그렇고, 바로 지난 해도 그렇고.. 그때 가지고 있던 열정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뭐 여튼..




전주성에는 스페셜 테이블존이라는 좌석이 있는데, 기자석을 개조해 뭔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란다.
가격은 일반 좌석과 달리 조금 비싸서 2만원 가량 하지만, 딱 61개 석만 예매할 수 있고, 예매하면 치킨도 한 마리 준다고 하기에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예매했다.
예매하고 나서 안건데.. 리그 경기와 달리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치킨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ㅅ-;
하지만 극장에서 3D영화를 봐도 16,000 원인 세상에 이 중요한 경기를 그 가격에 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다. (정말이지 예매 수수료가 아까워서 그런다고는 말 못한다.)



DSLR-A700 | Pattern | 1/320sec | F/3.5 | 0.00 EV | 200.0mm | ISO-250


사진 속 이 날은 전북이 수원에 원정 와 홈팀 수원을 5:1로 떡실신 시키던 날이다. -_-;;
아마 리그 최종전이렸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경기장 참관이기도 하고.
저 경기 보고 내년엔 좀 더 자주 와야지, 했는데 1년 내내 한번도 못 갔구나..

아무튼 동국아 더도 덜도 말고 딱 해트트릭 부탁한다. ㅎㅎ


다만 아쉬운 건 망원렌즈가 좀 딸린다는 것.
200mm 넘는 망원렌즈가 하나쯤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가지고 있는 건 135mm 뿐이다.
135.8을 믿고 가는 수 밖에 없겠지. 흐흣.


오랜만에 푸른 피치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아.. 얼른 수요일이 왔으면!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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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잘 보고 오셨나요?

    2011.10.26 23: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응~ 결국 알이티하드 발라주고 결승 안착!
      예전같으면 후기도 쓰고 그랬을텐데, 요즘은 왜케 무기력한지 모르겠다. ㅋㅋ

      2011.11.02 11:29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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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열린 수원과 전북의 2010년의 마지막 K리그 정규 경기.

경기가 끝난 후 으레 하는 선수들간의 악수, 그리고 유니폼 교환.
사실 축구 경기에서 이런 건 특별할 것도 없다.
쌀쌀한 날씨 탓에 유니폼 교환 같은 것도 없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동국과 리웨이펑.
그들이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는 저 사진을 보고 단순한 악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열혈 축구팬이다.

워낙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글이 있는터라, 내가 새삼 그들에 대해 자세히 썰을 풀 필요는 없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ivanz?Redirect=Log&logNo=40073178498
왜 저 사진이 특별한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혹여 관심이 간다면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이제 우리 슬슬.. 축구선수로서의 황혼에 접어 드는 나이.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자꾸나, 동국아, 웨이펑아..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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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0월 20일에 있었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를 보고 난 감상을 K리그 중심 축구 커뮤니티 사커월드에 올린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이 글은 사커월드에서도 볼 수 있고(
http://cafe.daum.net/soccerworldcafe/dp1f/95),
사커월드의 다음 편집 기사(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01023005438632&p=soccerworld)에서도 읽을 수 있다.

#1

비록 지난 시즌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전통의 명가요, 최근 십여 년간은 물론,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된 이래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 맞붙게 되었다.

1, 2차전을 홈 어웨이로 치르는 4강 경기. 7골이나 주고받은 난타전 끝에 1차전의 승리는 레알마드리드에 돌아갔다. 레알마드리드는 비록 경기에 이기긴 했지만 홈에서 3골이나 내준 게 못내 아쉬웠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서는 비기는 것만 못하긴 했지만 3골이나 넣었으니 나름 만족할 만 하다. 그것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에서!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언론은 매일 같이 이 희대의 빅매치에 관한 기사를 쏟아 낸다. 화끈한 성격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나라의 언론들은 어느 틈에 지나치게 과열되어 시시콜콜한 가십까지도 서로에 대한 공격성 기사로 만들어 내곤 한다. 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인터넷 기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벌어지는 감독간의 입씨름 - 예전 EPL에서 맞대결 할 때 마다 무수히 많은 기사거리를 쏟아내던 감독들 답게 이번에도 화끈하게 서전을 펼치고 있다. 선수들 간의 신경전도 대단하다. 마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숙적 리버풀에서 뛰던 선수가 올 여름에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칼을 겨누고 있다. 같은 리그에서 수차례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이미 상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1차전에서도 어찌나 열심히 뛰어대던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포럼에서는 그 선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들끓고 있을 정도다. 거기에 서로를 도발하는 선수들의 입씨름도 더해져 팬들의 투쟁심이 더욱 고취되고 있다.

 filename=DSLR-A700 | Pattern | 1/200sec | F/3.5 | 0.00 EV | 200.0mm | ISO-80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잔디는 아니지만.. 저 푸른 잔디는 언제 봐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지난 번 1차전 경기가 평일에 열리는 바람에 원정에 합류하지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하겠노라고 잔뜩 벼르고 있다. 전체 여석의 40%를 판매하는 온라인 예매는 개시 10분 만에 동나 버렸다. 온라인 예매가 40%인데도 현장 판매는 거의 구하기 힘들 예정이다. 어차피 남은 표들은 처음부터 시즌권 구매자들의 몫이었으므로.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암표를 구하느라 극성이다. 어지간한 호프집에서는 단관 예약을 받느라 아우성이다. 이제와 대형 스크린을 구매하는 가게들이 늘었다는 소문이다. 덕분에 뜬금없이 LCD 관련 테마주들이 일제히 급등할 정도.

2010년 10월 20일.
유럽 클럽 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이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2
비록 지난 시즌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전통의 명가요, 최근 십여 년간은 물론, K리그가 출범된 이래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인 성남 일화.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2006년 챔피언스리그의 우승팀이자 지난 시즌 K리그 우승팀인 전북현대를 꺾고 4강에 합류한 알샤밥이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 맞붙게 되었다.

1, 2차전을 홈 어웨이로 치르는 4강 경기. 7골이나 주고받은 난타전 끝에 1차전의 승리는 알 샤밥에게 돌아갔다. 알샤밥은 비록 경기에 이기긴 했지만 홈에서 3골이나 내준 게 못내 아쉬웠고, 성남 일화로서는 비기는 것만 못하긴 했지만 3골이나 넣었으니 나름 만족할 만 하다라고 말해야 맞을 어웨이 경기인데.. 어째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그렇지 않다. 시즌 중 중동 까지 날아가서 치른 경기라는 사실은 생각도 않고 K리그의 수준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얘기가 나온다. 왜 이기지 못했느냐, 중동의 침대축구를 어떻게 견디려고 하느냐, 탄천에서 2004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얘기는 차라리 고마울 정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랬다면 역시 강팀이라는 소릴 들었을 텐데…….


 filename=DSLR-A700 | Pattern | 1/60sec | F/2.8 | 0.00 EV | 35.0mm | ISO-640

<경기 시작 1시간 30분전 - 너무나 한산한 경기장. 오늘 경기를 알리는 안내문 조차 한장 없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 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경기 관련 뉴스를 찾는다. 혹시 흥미로운 기사를 놓치지는 않았을까, 새로 올라 온 기사는 없을까. ‘축구는 NEXT’라는 슬로건을 내건 포털의 뉴스기사를 뒤지기 시작한다. 스포츠 섹션을 눌러 국내 축구를 누르고, 다시 K리그를 누른다. 딱히 새로운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데라고 특별할 리가 없다. 다른 포털을 가 봐도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은 평소의 학습효과로 잘 알고 있다. 여기 없으면 없는 거다.

어차피 나는 마이너리티. 고매하신 기자님들이 이런 소수파들이나 좋아하는 경기 따위에 눈길을 줄 리가 없다. 그냥 평소 자주 가는 K리그 커뮤니티에 들러 혹시 뭔가 얘기 거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안티풋볼 논쟁으로 축구판을 들썩이게 했던 과르디올라와 무리뉴의 설전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흥밋거리가 되었는데.. 신태용 감독과 상대 감독이 치열하게 설전을 벌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알샤밥 감독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나 해서 “신태용 알샤밥 설전” 등의 검색어로 포털을 뒤져봤지만 고작 ‘꼭 이기고 말겠다’ 따위의 당연한 얘기가 설전이라며 기사 한 두 개 올라와 있을 뿐이다. 그럼 누구는 기자회견에서 ‘곱게 져드리겠습니다’ 한다는 건가? 저게 설전이면 헤이날도도 호날두다.

올 시즌 중반에 송종국이 알샤밥으로 이적했다. 2002년 월드컵의 영웅이자 바로 얼마 전까지 성남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鷄馬!!) 수원에서 뛰던 송종국(심지어 수원의 주장까지 역임했던 선수다). 올 여름에 알샤밥으로 이적한 송종국은 8강 전북전에서도 교체 출장하여 팀의 승리에 일조했고, 성남과의 4강 1차전에서는 선발 출장해 82분 동안 성남을 줄기차게 괴롭혔다.

하지만 그 뿐.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이런 내용을 조명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고 해야 맞겠다. 어쩌겠는가, 그대는 마이너리티인 것을.

 filename=DSLR-A700 | Pattern | 1/20sec | F/2.0 | 0.00 EV | 35.0mm | ISO-800

<2시간 넘게 찾은 끝에 딱 하나 발견한 이 날 경기 광고판 - 탄천운동장 버스에 붙어 있는게 내가 찾은 유일한 광고였다.>

어차피 중동까지 원정경기를 참관한다는 것은 무리다. 물론 개중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가장 먼 곳이라 봐야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 땅에서 매주 펼쳐지는 K리그 경기의 원정 참여자가 그렇게 적은 수 인 것을 생각해 보면, 중동으로 떠나는 원정은 중동 여행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탄천에서의 경기라면 다르다. 이 엄청난 빅매치를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 경기를 뛰고 있는 팀은, 이 경기장을 채운 선수들은 아시아 전체에서 4강안에 든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마드리드의 경기는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슴이 뛸 만 하다.

하지만 그 뿐. 그래봤자 세계축구의 변방인 아시아 클럽 간의 별 볼일 없는 경기일 뿐이다. 어차피 마이너리티의 스포츠 - 또 한번 그들만의 축제가 벌어지고 말 뿐이다.

2010년 10월 20일. 굳이 이렇게 적지 않아도 어차피 기억할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름을 불러야 꽃이 된다는 시구처럼 사물은 인지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한다.
아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리그. K리그의 다른 이름이다.


 filename=

<우리 K리그와 그 팀들의 홍보 전략이 딱 이렇다. - 오지 마라.>



#3
축구가 관중 수와 인지도, 관심도와 애정만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게임이었다면 우리는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일 테지만, 다행히도 축구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2006년의 전북이 그랬고, 2009년의 포항이 그랬다. 우승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항상 다른 리그 팀들을 압도해 내던 이천수의 울산 역시 그랬다. 아무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도 그들은 늘 잘해냈다. 그리고 이 날의 성남 역시 그랬다.

어차피 알샤밥은 비기기만 해도 결승에 올라간다. 반면 성남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이런 조건은 언제나 아군에 불리하게 느껴진다. 성남이 알샤밥의 입장이었다면 “비기기만 해도” 라는 전제가 부담스럽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또 그래서 부담스럽다. 이 날도 그래서, 킥오프 직후 성남 선수들은 둔해 보였다. 비기기만 해도 결승행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는 알샤밥은 수비 지향적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사우디 팀이라고는 결코 믿어지지 않는 압박을 구사했다. 지난 8강 전북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알샤밥은 홈에서보다 원정에서 더 동기부여가 잘되는 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정에서의 그들은 참 단단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남의 공격이 매서워졌고, 몰리나가 막힌 틈을 타 라돈치치와 조동건이 활발한 공격을 펼쳐냈다. 전반 중반 이후, 계속 두드리던 골문이 드디어 열리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1, 2차전 합계 4-4. 원정골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성남이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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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고 기뻐하는 성남 선수들과 비통해 하는 알샤밥 선수들의 대조. 승부의 속성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라돈치치는 그간 봐왔던 것 중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투쟁심과 몸싸움, 볼컨트롤, 공중 장악력에 헌신적인 플레이. 그야말로 포스트 플레이어의 교과서적 모습이었다.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자신에게나, 소속팀에게나, 팬들에게나 모두 안타까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결승전에도 함께 라커룸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무척이나 운이 없긴 하지만, 분명 그는 즐길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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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경기에서 압도적인 피지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라돈치치.>

반면 몰리나의 몸은 다소 무거워 보였다. 시종일관 상대의 강한 압박과 집중적인 견제로 고전하는 모습이었는데, 프리킥이나 코너킥에서 보여 준 킥력만큼은 역시 좋았다. 후반 막판에 상대의 거친 태클로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이었는데,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성남의 에이스는 몰리나가 아닌가. 결승전에는 꼭 이름값을 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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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경기에서 평소의 10% 정도의 모습만 보여준 몰리나.>

긴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헤맨다던 조동건은 아직 폼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아 보였지만, 멋진 하프-발리 슈팅으로 자신을 믿어 준 감독에게 보답했다. 이 날 경기가 시작하기 전, 함께 경기장을 찾은 지인들에게 조동건과 전광진을 두고 이동국과 김상식을 버릴만큼의 카드였는가를 성토했었는데, 둘 다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덕분에 경기 내내 머쓱해져야 했다. 김철호의 활동량과 강한 압박은 경기를 성남이 주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카마초를 꽁꽁 묶어 버린 김성환의 보직변경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조병국이나 사샤의 플레이야 늘 그렇듯 물샐틈 없었고, 홍철과 장석원의 플레이는 저들이 과연 리그 새내기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정성룡 - 후반에 펼친 정성룡의 선방쇼는 왜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No.1 골키퍼인지 여실히 증명해냈다. 후반 교체된 송호영은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은 뭔가 좋지 않았다.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경험의 한 페이지. 오늘의 경험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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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주역들. 하나 같이 탐나는 선수들이었다. 신태용 감독, 정말 무서운 팀을 만들어 냈다.>

알샤밥의 선수들은 온통 모르는 선수들 일색이지만, 이미 전북전부터 4번이나 경기를 보다 보니 얼굴과 이름 정도는 익숙해져 버렸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는 카마초.
비록 팀을 패배로부터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이 날 경기에서도 그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 유연한 몸놀림과 정확한 킥력, 넓은 시야는 당장 K리그로 이적해 와도 충분히 정상급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탐나는 선수였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수원에서 뛰던 송종국. 파란 유니폼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던 선수였다. 여름 휴식기 동안 갑자기 터져 나온 이적설, 그리고 느닷없는 사우디로의 이적. 그리고 어이없게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송종국.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전북전에서 슬슬 몸을 풀었던 송종국은 성남과의 4강전에서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는데 이날 경기에서 송종국의 플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래선 안 돼!’ 하는 우스갯소리를 경기 내내 해야 했을 정도로.
그리고 침대축구의 히어로 따바레즈. 전북과의 경기에서 저 따바레즈 때문에 혈압 올랐던 걸 생각하면.. 정말 보기보다 몸이 약한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날 경기에서는 팀이 지고 있다 보니 침대축구는커녕 넘어져도 벌떡 벌떡 잘만 일어나는 그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매너 좋게 성남 선수들과 악수하며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긴, 승리를 위한 그 마음에 침대축구 아닌 뭔들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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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카마초, 조율의 송종국, 침대축구의 달인 타바레즈>

1-0 이라는 스코어는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날 경기는 몹시 박진감 넘쳤고, 함께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만 했다. 이 정도의 경기를 보여 줄 수 있는 팀이 15개(?)나 있는 리그. 그 리그를 사랑하는 - 나, 이런 사람이다. K리그 팬이어서 참 다행이다, K리그를 좋아하길 정말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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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싸웠다!>


#4
나는 성남의 팬이 아니다.
오히려 성남은 내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리그 내 독보적인 존재였던(특히 차경복 감독 시절) 때의 성남은 보통 이상의 긍정적 의미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팀 최고의 레전드인 신태용을 내쳤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내가 지지하는 팀도 아니었고, 내게 그다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수도 아니었지만, 신태용의 은퇴에 대해 한동안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그 후로 성남은 보통 이하의 그저 그런 팀 정도로 밖에 인식이 안 됐다. 거기에 2006년 챔피언결정전의 상대였던 성남에 빼앗긴 리그 우승컵 덕분에 성남은 부정적인 이미지 가득한.. 마치 게임에서 끝판왕 같은 느낌으로 남고 말았다.
최악이었던 것은 지난 시즌 신태용 감독이 취임하자마자, 자신 바로 다음 쯤일 팀의 레전드 김상식을 내친 것. 그로 인해 반감은 더욱 심해졌다. 물론 신태용 감독의 의중이 어떤 것일지는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으로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차피 축구를 보는 데는, 그리고 무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작용하기 마련.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팬심으로 - 오자마자 이동국을 내쳤다는 사실이 대략 2730배 쯤 반감을 키웠다는 데 부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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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승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건 '동질감'일 것이다.>

지난 시즌 전북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성남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고 이동국이 득점왕을 했을 때는 성남과 신태용을 향해 혼자 히죽였다. 김상식이 자신이 있고 없음이 1위와 2위의 차이라고 말한 인터뷰가 너무나 속 시원해 한참을 즐거워했다. 정작 내가 지지하던 팀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2자리 수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무너져 내렸는데도, 지난 겨울이 마냥 즐거울 정도로 괜히 좋았다. 성남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신태용 감독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렇듯 나는 성남에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사실 딱히 반감을 드러낼 일이 없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평균 이하의 호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했다. 내 팀도 아닌데, 괜히 맘이 쓰였다. 그다지 좋아하는 선수도 없는데 괜히 선수들에게 미안해졌다. 이제 곧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인데.. 이미 포기한 언론은 둘째 치고 K리그 커뮤니티조차 썰렁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 성남 일화가 이 정도로 비인기 팀이었구나. 성적은 늘 앞에서 놀고, 평균 관중 순서는 늘 뒤에서 논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피부로 느껴졌다. 함께 관중 동원에 열과 성을 다할 것도 아니면서 웬 오버고 웬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같은 마이너리티의 동지로서, 같은 리그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런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렷다. 다소 숫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나 성남이나 K리그 다른 어떤 팀을 보나.. 결국 이게 외부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한 수준일 테니 말이다.

결국은 모두 마이너리티로서의 설움이자 동질감.



#5

자고로 맛집은 입소문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법이다.

회사가 있는 구로 디지털단지 근처에 재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허름한 낙지집이 하나 있다. 소문난 맛집들이 으레 그렇듯 몹시 지저분하고 낡아 빠진 그 식당은 처음 갔을 때는 불쾌함마저 느낄 정도다. 처음 가 본 사람들이라면 신발을 어떻게 벗어야 할지도 모르게 입구는 좁고, 간신히 가게 문지방을 넘어서서도 도무지 어떻게 엉덩이를 내려야 좋을지 몰라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된다. 주 메뉴는 떨렁 하나 - 주문을 받는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머리수를 세고 가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다들 뭐 이런 데를 다 왔느냐고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 무쳐낸 빨간 낙지를 한번 맛보고 나면 그런 불평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역시 맛집의 최우선 조건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음식 맛이다.

그런 점에서 K리그는 분명 맛집이 될 자격이 있다.
다만, 아직 맛집으로 소문이 나지 못했을 뿐이다. 주방장들이 요리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온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선뜻 허름한 식당 문을 들어설 용기가 나진 않는다. 누군가 그 맛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한번 맛보라고. 마치 그 낙지집을 누가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결코 가지 않았을 것처럼. K리그에의 관심 역시 누가 누군가에게 - 그렇게 주의를 환기해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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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집계된 관중은 1만을 살짝 넘겼다고 한다. 경기장 분위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자국리그의 발전이 있어야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을 담보할 수 있다는 등의 계몽적인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이런 즐거움을 함께 해보자고 손 내밀어야 하는 건 아닐까? 비록 주급을 몇 억씩 받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뛰지는 않지만, 나름 재미있고 수준 있는 리그라고. 입단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한 박지성은 논외로 하고(물론 이건 웃자고 하는 얘기), EPL에서 가장 저평가 됐다고 하는 이청용이 도움왕 한번 못 해본 리그라고. 지구 반대편, 그래봐야 짝사랑일 뿐인 남의 나라 경기가 아니라, 여기 내가 나고 내가 자란 이 동네에 나와 함께 숨 쉬는 선수들이 있는 팀의 경기라고. 언제나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내 팀이 있다고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게 어쩌면.. 조금 먼저 알게 된 사람들의 의무 같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 반면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지독하리만큼 외로운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현실이다, 괴짜 취급 받는 것도 이제는 싫어 일부러 축구 얘기 하지도 않고, 더 이상 K리그 봐 달라는 따위의 구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하는.. 그런 현실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의 숙명일 것이다.

어린 시절, 흉측한 생김에 어쩐지 이상한 냄새도 나는 - 그저 보기만 해도 질려하던 순대를 처음 먹어 보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당시 순대를 먹으면서 했던 생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뭐야, 이렇게 좋은 맛을 왜 몰랐던 거지?’

조금 더 머리가 굵어져 약간은 현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쯤, 나는 그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진귀한 경험들을 다 해보지도 못하고, 정작 그런 즐거움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무언가에 대한 나의 호오는 그저 무지에 따른 결과는 아닐까?’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리는 게 많고 호오가 분명한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분명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 반대로, K리그의 즐거움을 - 1년 중 8개월, 매주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지는 그 축제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다행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니 그걸 몰라준다고 속상해 할 필요도 없고, 그 재미를 알아 달라고 떼쓸 필요도 없다. 결국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때 돼서 왜 이렇게 맛있는 순대를 이제야 먹게 되었는가에 대해 후회해도 소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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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와 팀을 홍보하는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연맹과 구단에게 있다.>


#6
2010년 11월 13일 도쿄에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챔피언스리그로 확대 출범한 이후로만 따져도 성남에게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이 낯선 무대는 아니다. 홈 어웨이로 치러졌던 지난 2004년과는 달리 도쿄에서 단판으로 치러진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더구나 도쿄라면 우리에겐 홈이나 다를 바 없다. 시차에 고생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중동팀과는 달리 기후가 달라 고생할 이유도 없다. 밥상은 차려져 있다.
이제까지 그랬듯, 성남은 그 밥상 안 차내고 잘 먹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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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치치를 위해서라도, 그대들은 우승컵을 거머쥐어야만 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리 악에 받쳐 있을 것도 아니다.

2006년에 우승한 전북의 관중이 만원을 기록했다는 얘기 같은 건 들어 본 적 없다. 2009년의 포항은 평균 관중이 적지 않은 편이었고 간간히 매진을 이루기도 했다지만, 주중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그랬다는 얘기 역시 들어 본 적 없다. 비록 성남의 평균 관중이 전북과 포항보다 더 적긴 하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올해도 그런 경기가 하나 더 있었을 뿐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해도 우리네 K리그 팀들은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별을 달아 나갈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우승을 기록한 적이 있긴 하지만 올 시즌 역시 K리그에 한 수 아래임을 여실히 드러낸 J리그나 아직 턱없는 실력의 차이가 있는 C리그는 물론, 동남아나 멀리 중동팀들에 이르기까지. K리그는 아시아 최고 리그임을 자부한다. 그리고 이런 K리그의 위상이 언제까지고 굳건할 것을 나는 믿고 있다. 물론 꼭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마이너리티의 소박한 소망 -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그냥 이렇게 늘 가까이 숨 쉬고 있어 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가 도쿄에서 열리는 탓에 K리그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이자,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우승팀을 배출하게 되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이번 결승전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렇지만 TV로나마 성남이 모든 K리그 팀을 대표해 우승컵을 들어 올려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응원할 것이다. 덧붙여 이번 주말 FA컵을 거머쥐고 내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 성남으로부터 우승컵을 받아 오는 수원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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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CHAMPION K-LEAGUE : 이렇게 좋은 콘텐츠로도 흥행을 못 내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재주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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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K리그 올스타 경기를 보고 사커월드에 올린 글입니다.
사커월드: http://cafe.daum.net/soccerworldcafe/docO/1572

같은 내용으로 다음 스포츠 섹션에도 노출되었습니다.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00805204952040&p=soccer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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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르샤와의 올스타 경기는 이미 예고되었던 재앙이었습니다.

클럽팀 vs 리그 올스타 라는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는 매치업은 말 할 것도 없고
이미 지난 04년에 수원이 그랬듯 바르샤를 상대로 이겨도 욕 먹을 거고, 져도 욕 먹을 경기.
더구나 엊그제 경기 뛴 선수들, 며칠 후 또 경기에 나가야 하는 선수들 데리고 무려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펼치라니요.

게다가 감독 역시 며칠 후 다음 경기를 가져야 하는 입장.

무슨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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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였을까요? 연맹의 복안은>

연맹이 보도자료로 배포한 사과문을 보았습니다.
K리그 팬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서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용을 살펴 보니 클럽팀 vs 리그 올스타, 무리한 경기 일정 과 같은 K리그의 위상과 연맹의 행정과 같은 부분에 대한 내용은 없고, 오직 태업한 바르샤에 대한 얘기만 있더군요.
K리그 팬들이 여기서 또 한번 좌절하고 자존심에 무척이나 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연맹에서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오기로 한 바르샤였다면.
어차피 변경할 수 밖에 없는 일정이었다면.
지난 해 우승팀과 붙였어야지요.
K리그 챔피언 vs 라리가 챔피언 또는 세계 챔피언.
차라리 이러면 구도라도 잘 맞지 않았겠습니까.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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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전혀 관심 없던 경기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은 방송 중계 조차 보이콧 하겠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표가 생기게 됩니다.
막상 이래 놓으니 그 관심 없던 가슴에도 불이 지펴지긴 합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축구를 보러 가게 됐으니까요.
2002년에 가 보고, 상암에 새 주인이 생긴 후로는 한번도 안 가 봤는데.. 무려 8년만에 가 본 상암이었습니다.

 
**
가는 길에 온통 바르샤 유니폼과 마주칩니다.
K리그 올스타와 바르샤가 경기를 펼칩니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임에 분명한 그 사람들은 K리그가 아닌 바르샤를 응원합니다.

Here is another ~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튼 그들의 정체성은 바르샤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고. 그렇기에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에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지난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아닌 대한민국을 응원했느냐고.
왜 당신들의 심장에 붉은 악마가 함께 한다며 샤우트(-_-) 했느냐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보다 더 아름다운 축구를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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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는 주인공들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들러리였지요.>
 

***
솔직해집시다.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것이 어떤 팀을 응원하는데 있어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K리그에 일체감을 갖지 못한 탓일 뿐입니다.
자국 리그에 일체감을 갖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고, 리그의 문제일 수도 있고 둘 다 일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문제이냐가 아니라,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그 사실 자체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단계 조차 오지 못했습니다.

 
****
(잠시 잡담)

회사에서 일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채 뛰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막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는데.. 저녁을 못 먹은 탓에 배가 너무 고파 매점에서 요기거리를 샀습니다.
피크 일텐데.. 요금이 크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문득 빅버드의 그 맛없는 핫도그와 식어 빠진 치킨이 생각납니다.
훼미리XX와 XX25의 차이인건가요? 흠..

상암과 빅버드의 비교는 계속 됩니다.
상암 화장실은 빅버드보다 훨씬 많고 훨씬 깨끗하더군요.
개당 크기는 작아도 개수가 많고, 더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빅버드에 가면 항상 화장실 바닥에 고인 물과 더러운 개수대로 기분이 나빠지는데 수원은 이런 점 좀 고쳐야 할텐데요.

 
*****
경기는 별거 없고...
함께 오기로 한 일행을 기다리고 하다보니 경기가 시작된 후 몇분이 지나서야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전광판을 보니 1:0.
아아.. 아까 사람들의 환호성은 킥 오프 사인에 대한 호응이 아니라 저 골에 대한 환호였던가봅니다.

 

경기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즐라탄의 만회골과 이동국의 역전골, 그리고 메시의 투입과 함께 폭풍 같은 두 골에 힘입어 2:3 재역전된 채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에 2골을 마저 넣은 바르샤가 5:2 로 대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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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헤딩골. 그렇지만 까들에게는 받아 먹기에만 급급한, 국내용일 뿐이다.>

무려 일곱골이나 난 경기였습니다.

흔히 골이 많이 나면 재미 있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그랬는가요?

아마 제 인생 통틀어 경기장에서 본 가장 재미 없던 경기 중 하나임에 틀림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동국이가 골 까지 넣었음에도 불구하고...(-_-)
이런 경기에서 경기력에 관한 얘기는 할 가치가 없는 얘기라 skip, skip..

그저 역시나 정말 재미 없었다는 얘기 밖에 할 얘기가 없네요.

 
******
부끄러웠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홈X러스에 들러 무언가를 사고(주차장을 통과하기 위해 -_-)..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무척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마치 듀어든처럼 생긴 사람과 그의 친구들 두 명이 바르샤 유니폼을 입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둘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더군요.

막귀에도 그 영어는 또렷하게 잘 들립니다.

"Don't have a shame?"
"Have a shame!"
"Shame on you!"

왜 저래? 하고 보니 바르샤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의 팔을 붙잡고 한참 퍼붓습니다.

외국인들이 자신들이 입고 있는 KFA 티셔츠의 호랑이를 짚으며 소리 칩니다.

"Here is korea. K!O!R!E!A!"
"Not Barca!"
"Barca? Buxx shxx, Fuxx!" 

여기는 분명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외국의 팀을 Support(지지) 하고, 오히려 외국인이 여기는 한국이라고 소리 치고 있더군요.
부끄러웠습니다.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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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경기. 유쾌하지도 않은 이벤트>

 
*******
사실 저 역시도 바르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참 배알이 틀렸습니다.
비비꼬였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괜히 참 꼴보기 싫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게 꼭 그 아이들만의 문제일까요?
리그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리그 일체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리그 정체성과 리그 일체감에 대한 의무를 각 개인에게만 지우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국빠, 유빠, FC 리모콘, FC 코리아 등등..
이런 괴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오히려 각 개인은 희생양이 아닌가요?
우리 가까이에서 생생히 살아 있는, 함께 숨쉬고, 함께 뛰는 축구를 즐기는 방법 조차 배우지 못한게 왜 그들의 잘못인가요.
어차피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걸요. 


********
좋습니다.
그런 것 다 떠나서.. 이건 그냥 축제였고, 사람들 즐기라고 깔아 놓은 이벤트에 불과하니 너무 많은 의미를 갖다 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K리그 올스타 전이라면, 진정 K리그 팬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심장에 바르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K리그의 각 팀을 가슴에 아로새긴 사람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제 경기는 연맹 스스로 K리그의 권위를 낮추고, K리그를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filename=

<누구를 위한 K리그 올스타전이었을까요?>

아마도 연맹은 팬의 저변을 확대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인기팀 중 하나인 바르샤를 이용하려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스스로의 경쟁력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려다 보면 팬 저변의 확대는 커녕,

있던 팬도 돌아서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연맹은 반드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르샤는 이제 곧 중국으로 떠나 베이징궈안과 경기를 갖게 됩니다.
베이징궈안은 참 대단한 팀입니다.
연맹의 셈법대로라면 K리그 전체의 위상과 동등하니 말이지요.

 
********
연맹은 이번 경기로 인해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리그 팬을 자처한지 1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연맹이 잘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습니다.
팬과 연맹의 역할과 입장의 차이가 있을것이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연맹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몇년은 스폰서도 제대로 못 구해 쩔쩔 매는 걸 보면서 무능함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껴주자, 그래도 우리 K리그는 아직 분열이 아닌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올스타 사건을 보면서..
참 많은 분노를 느끼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filename=

<"초청" 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초라해 보입니다. 주인공은 우리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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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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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ename=Canon EOS-1D Mark IV | Pattern | 1/800sec | F/2.8 | 0.00 EV | 300.0mm | ISO-1250

아쉽기만 한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마치고.. 몇 시간 동안이나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쉽다. 참 아쉽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아쉬움은 우리나라가 8강에 오르지 못해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게 있어 대표팀의 성적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2006년을 기점으로 점점 대표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사그라들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대표팀의 경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A팀은 물론 올림픽이나 청소년 대표팀은 말 할 것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대표팀에 이동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게 아니라 이동국을 좋아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
그렇지만 K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여전한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닌 듯 하다.
더구나 내가 지지하는 팀은 전북이 아니라 수원이니까..

그러다 지난 해 부터 이동국이 다시 대표팀에 들어오게 됐다.
대표팀에 대한 나의 관심도 다시 살아났으나..
그 관심은 대개 이동국의 출전 여부에 따라 갈렸다.
보통 전반전에만 투입되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교체되기 일쑤인 당시에는.. 전반만 열심히 보고 후반은 아예 안 보기도 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 역시 스스로 돌이켜봐도 좀처럼 이해가 되진 않지만..
내게 이동국이란 그런 존재다.

속된 말로 동빠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아니라고 부인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나는 그를 격하게 지지하기 때문에.

**
나는 언제나, 그가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1로 지고 있는 후반 41분의 결정적 찬스를 날려 버려, 많은 사람들에게 원성을 받고 있는 지금에도 말이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대개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히 반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깬다는 것은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실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닐테고, 더구나 이동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깬다는 것이 어떤 것으로든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동국에 대해서만큼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도 아쉽고 아프다.
뉴스에 달려 있는 저마다의 댓글에서 마치 이번 패배의 모든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처럼 물어 뜯고 달려 드는 것은.. 참 아쉽고 아프다.


***
언젠가 누군가.. 내게 왜 그렇게 이동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패한 선수 중 하나 일 뿐이라며 말이다.
그래. 그 말처럼 이동국은 실패한 선수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분데스리가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실패, 2002년 월드컵 엔트리 탈락, 2006년 월드컵 부상으로 인한 엔트리 탈락 등 그의 인생에는 참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선수가 아니며, 그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실패했는지의 여부는 그의 인생의 끝에서나 결정될 문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지 실패나 성공의 이분법으로 재단될 수는 없다.
하물며 극한까지 내몰린 상태에서도 꾸역꾸역 다시 정상을 위해 올라 온 한 선수의, 한 인간의 인생이 어떻게 실패라는 말로 규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가 축구 선수로서 보여 준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지만, 같은 세대를 살아 가는 한 인간으로서 보여 준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딛고 일어나는..
나 같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나락에서 다시 올라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힘을 얻는지 모른다.

나는 그를 단순히 축구 선수로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
나의 2010년 월드컵은 30분이었다.
고작 30분이었다.

10분 남짓하던 아르헨티나 전은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대체 뭘 하란 말인가.

그리고 두 경기 만에 그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그에게 기회는 왔고, 다시 갔다.
그렇게 기회는.. 진한 아쉬움만 남긴 채 가 버렸다.

그 30분이 참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아니.. 어쩌면 바뀐 것은 별로 없고, 그나마 남은 것도 다시는 바뀌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패배는 쓰리고 아픈 결과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결과가 앞으로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 지 모르므로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우리가 이제 30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이제 슬슬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경험이, 오늘의 쓰라림이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그걸 축구 경기를 통해 풀어 낸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그 30분 밖에 안 되는 시간이 너무도 아쉽고, 아쉬운 것이다.


*****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하던데..
아플거다.. 혼란스러울거다.

그렇지만..
인생은 끝이 아니다.

나의 인생이 그렇듯, 너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게 마련이며, 그라운드와 공은 언제나처럼 너를 맞아 줄 것이다.
심약한 성격이라.. 금방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보여 준 모습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위로는 꼭 해 주고 싶다.

힘내라, 동국아...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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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po

    저와 같은 증상을 가진 분이 계시다니 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경기장 가서도 후반전에 가서 출전하지 않으면 갈까 고민한답니다. 허허. 다음 월드컵에도 보고 지도자 길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 때는 꼭 모든 걸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도 많이 까이니까 아들을 낳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무척 힘들 텐데 힘내었으면 좋겠어요.

    2010.06.27 19: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filename=NIKON D3 | Spot | 1/500sec | F/2.8 | 0.00 EV | 400.0mm | ISO-1250

길게 글을 쓰고 싶지만..
이제는 글쓰기에 대한 취미가 시들해졌다.
그래도 축하는 해야 할 것 같아.

날아라, 동국아.
더 높이 날아라.
우리에게 도전을 위한 내일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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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장에 못 가본지 꽤 된 것 같아.
어제는 일하다 말고, 인터넷으로 K 리그 중계를 봤다.

울산과 대구의 경기.
울산은 원래 좋아하는 팀이고, 대구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박종환 감독 특유의 헝그리 축구가 인상 깊은 팀이다.

울산 홈에서 치러진 경기.
울산을 만나면 유독 강해지는 대구이기에, 경기가 무척 타이트하게 펼쳐질거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대구는 울산 앞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이제는 잊혀진 유망주가 되어 버린 최성국이 2골.
내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 천수가 한골.
박규선의 크레이지 모드와 이종민의 부상 회복 모드.
박종환 감독의 잔뜩 찌뿌린 표정은 안타깝지만, 울산이 다시 기지개를 펴는 게 너무 반갑다.
하지만 천수와 함께 사기유닛 중 하나라 생각하던 마차도는 여전히 부진해 그게 좀 아쉽다.
레안드롱이 잘 해 주고 있긴 하지만, 마차도 없이 우승은 어려울 건데...


하지만 참 재밌었어.
K리그가 재미 없다는 녀석들, 이 경기 보고도 그런 말 나올까 싶다.
땀 흘려준 선수들에게 감사, 인터넷으로 중계 해 준 리그 관계자들, 방송국 직원들에게도 감사.
당신들 덕분에 이리도 멋진 경기를 보게 되었다.



**
인터넷으로 조악한 중계 화면을 쳐다보다..
문득 화가 벌컥 났다.

대체 축구장 가 본게 언제더란 말인가.
더 많은 여유를 위해 회사도 안 들어 가고 있다, 하고 말하던 나는..
정말 여유라는 걸 갖고 살긴 하는건가?

차 끌고 나가면 빅버드는 30분 안에,
탄천구장은 1시간 안에, 문학도 20분 안에 닿을 수 있는데.

대체 난 왜 축구장을 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화가 팍팍 난다.

"괜찮아, 지금은 컵대회일 뿐야. 후기리그가 시작하면 그때 가자." 하고 달래도 소용 없다.
아.. 나는 그저 축구장의 함성이 듣고 싶다.
피치위의 푸른 잔디가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수원과 성남의 경기는 더욱 재미있어질 듯 하다.

이관우가 수원으로 온단다.
백지훈도 수원으로 온단다.
백지훈은 아직 더 배워야겠지만, 이관우와 김남일이 버티는 수원의 미드필드에 누가 대적할 수 있을까?
차 감독이 이번에 독일 가서 참 많은 걸 배워 온 모양이다.
뻥축구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들을 30억이나 주고 영입해 오다니.

전남의 네아가는 성남의 노란 유니폼을 입었다.
네아가 처럼 대단한 용병이 어쩜 이 나라 리그에, 그것도 전남이란 하품 나는 팀에서 뛰고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남이 아니라 성남이면 그런 소리 들을 일은 없겠지.
네아가는 어쩌면, 내년 시즌 득점왕 예약을 해 놓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은 동국이가 10월이면 복귀한다.
고작 두달하고 반 남았을 뿐이다.
빌어먹을 자식. 
이번엔 몸 조리 잘해서 되지도 않을 몸상태로 풀타임 뛰는 바보짓은 안 했으면..

아.. 집에서 포항이 너무 먼게 아쉽다.
포항까지 원정을 다닐 열정이 없는 걸 더 아쉬워 해야 하려나? ^^;

꼬박 밤을 새고 아침 해가 떠올랐는데..
축구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축구장 가자, 축구장 가자, 축구장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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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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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얘기가 마무리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우리는 3부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의 역할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감독의 역량이 어떠했느냐를 짚었다.
내 의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다만 이 글을 읽고 감독에 대해 평가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아드보카트를 말하는 이유(I)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부진에 대한 원인을 해외파의 숫자로 말한다.
심지어는 
"토고조차 17명이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 대부분 K리거인 우리 대표팀이 상대가 될 리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정작 그들은 그 토고 선수들이 대부분 프랑스 2부에서 뛰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과연 우리 K리그가 프랑스 2부리그에도 비교되지 못할 만큼 도매금으로 처리되어야 옳은가?

2002년 월드컵 이후, 몇몇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이뤄지면서 그네들과 우리 리그간의 간접 비교가 가능해졌다.
김남일의 엑셀시오르, 이천수의 누만시아, 안정환의 FC메츠나 뒤스부르크 같은 팀들이 과연 우리 K리그 팀들과 얼마나 다른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 주었던가?

에레디비지나 르샹피오나는 말할 것도 없고, 프리메라리가 조차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던가 그 말이다.

설령 저 팀들이 K리그에 편입된다 한들, 그들이 과연 상위권을 도맡아 자리잡을 수 있을까?
비록 홈이었고, 상대팀에겐 비시즌 동안의 투어에 불과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바르셀로나를 1:0 으로 제압한 수원이 최하위를 마크하고 있는 리그이다.
결코 그들에 비해 쉽고 만만한 리그가 아니라는 말이다.


선수들에 화살을 돌리지 말라.

단순히 K 리그에서 뛴다는 것이 선수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의 원인이 되고,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도매금으로 매도해 버리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 도약의 발판은 해외파가 아닌 자국리그의 육성에 있다.
자국리그가 대표팀의 인력 POOL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이 얘기를 덧붙이는 것은 대표팀의 전력을 말할 때 K리그가 폄하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K리그에서 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해외파의 숫자가 경기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겨우 유럽리거 두명으로 올림픽 8강에 이른 김호곤 감독도 있다.(그를 명장이라 부르는 데는 이견이 있겠지만)



아드보카트를 말하는 이유(II)

앞선 3부에서도 밝혔듯, 내가 아드보카트를 평가절하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게 세계축구의 벽이고, 그건 선수들의 능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논리를 파해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세계축구와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할 것이고, 선수들의 기량 차이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상쇄하기 위해 우리는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잊은 채, 선수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감독에 어떻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가 보여 준 경기력이 그가 말하는 세계수준에 얼마나 근접했다는 것인가?
그 정도 수준의 경기력이라면 우리 국내 지도자들이 했어도 훨씬 나았을거라 생각하는 것은 나 뿐인걸까?


문화 사대주의는 축구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분명 유럽의 선진 축구 시스템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 축구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유럽파 맹신은 곤란하다.
1부에서도 했던 얘기지만 똑같은 성적을 국내 지도자가 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지금처럼 훈훈한 얘기들로 도배가 됐을까?
겪어 보지도 않고, 그 반대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나의 피해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국내 지도자 양성과 경험 축적이란 얘기는 그저 허튼 소리일 뿐이다.

일부에서 회자된 홍명보 코치의 2010년 감독설 역시,
이런 얘기에서 한 발자국도 앞서 나가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아드보카트를 말하자

내가 냉정하게 아드보카트를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그저 짧은 임기에 따라 나름대로 좋은 성적 내고 간 감독, 고마운 감독 정도로 얘기를 끝맺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4년을 덮어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임기와 관계 없이, 
잘한 점은 잘 했다고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해야 옳다.

그래야 왜 잘못 됐는지 파악하여 다시는 그러지 않을 수 있고,
뭘 잘했는지 알아야 그걸 장점으로 계승해야 할 지 그러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만약 그저 짧은 임기였으니까.. 하고 말아 버리면, 지난 4년은 정말로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앞으로도 계속 그때는 임기가 짧았잖아! 하고 말텐가?
그때의 실험이 무엇이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또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알아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못 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매체에서도 POST 아드보카트를 논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후임인 베어벡에 대한 얘기도 앞으로 그가 아시안컵 예선을 위해 뛸 것이라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아직 아드보카트에 대한 평가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인데 아직도 첫 단추조차 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 역시 대안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다.
나는 단추를 꿸 능력이 되지 않으니, 이렇게 옷감이나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단추 꿰기에 앞서, 구멍이나 뚫어 볼까 노력 중인 것이다.

또 이 글이 아드보카트의 잘한 점이 아닌, 잘못된 점만 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그 이유는, 잘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더 보태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한 것만 얘기하면,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 없다.
지금 이 분위기에서는 잘못된 점을 얘기해야 그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부디 아드보카트 감독과 2006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이뤄져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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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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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부 까지 왔다.
1부에서 문제제기의 적절함에 관해 말했다면, 2부는 감독의 전술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를 주로 다뤘다.
전술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끝맺음 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전술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니, 대충 겉 핥고 넘어 가도록 하자.

이번 3부에서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그의 역할에 대해 짚고,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말들에 대해 반박해 보고자 한다.


길고 지루한 여행, 나 혼자서는 갈 수 없다.
읽히지 않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하..
자.. 함께 떠나보자.
-----------------------------------------------------------------------------------



국가대표팀 감독의 역할

방송에서 아드보카트를 비호하는 입장에 섰던 한 패널은, 
국가대표팀 감독의 역할이란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기량을 충분히 끌어 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코칭스탭과의 커뮤니케이션 및 언론, 선수단 장악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의견에 대해 나 또한 동의한다.

다시 말하면,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훈련과 실전을 통해 조직력을 배가하며,
선수들의 특성과 능력을 고려해 엔트리를 선발하고 전형을 구축하는 것

감독의 일차적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는 과연 얼마나 이런 역할과 기대에 부응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1.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아드보카트의 짧은 임기와도 맞물리는 얘기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조직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대표팀은 혹독한 일정을 소화해 내야 했다.
이 무리한 일정에서 선수들의 부상과 컨디션 저하가 일어났으며, 이런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대표팀의 핵심전력이던 이동국과 같은 선수들의 전력 이탈마저 발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드보카트는 과보상 효과를 노린다며 월드컵 직전까지 혹독한 일정을 대표팀에 주문했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조금 벗어난 아드보카트의 노림수가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2. 훈련과 실전을 통한 조직력 배가

훈련과 실전을 통해 전술 이해도를 높이고 조직력을 배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2부에서 주로 다룬 이야기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3. 선수 선발과 기용

선수 기용 문제에서 부상으로 인해 아직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를 엔트리에 선발하고 기용하는 등, 아드보카트가 선수들을 적재 적소에 활용했다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본프레레 시절 사람들이 자주 비판하던 것 중 하나는, 박주영의 왼쪽 측면 기용과 김동진과 이영표의 배치 등에 대한 문제였다.
아드보카트가 김동진과 이영표를 함께 출격 시킨 것은, 나름대로의 고육책이었을 것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수비력의 문제를 지적받는 선수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를 무리하게 출장시킬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결론적으로 오른쪽 풀백의 대체자원을 충분히 선발하지 못한 아드보카트의 자충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선수들을 엔트리에 선발한 것은 다름아닌 감독 자신이기 때문이다.
3류감독 본프레레나 1류감독 아드보카트나 이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본프레레는 동아시아 대회에서 취약 포지션에 대한 선수 선발을 위해 테스트라도 해 보지 않았는가?


선수를 적재적소에 선발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다른 선수가 아무리 못해도 부상당한 선수만 하겠는가?
결코 특정 선수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를 무리하게 선발해 그 능력의 반도 활용하지 못한 무능한 코칭스탭에 두고 하는 말임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아드보카트가 떠나며 남긴 4년간 발전 운운하는 얘기를 짚고 넘어가 보자.
사실 이 말은 내가 이렇게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감마저 느끼며 글을 써내려 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선수들이 태업을 하지 않은 이상, 패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선수가 아닌 감독이 져야 마땅하다.
감독은 마지막 순간 자신과 함께 땀 흘린 선수들을 배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 있다.
4년 간 발전하지 않은 선수가 물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선수의 성장 곡선이 언제까지고 우상향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선수 테스트 따위는 의미가 없다.
그냥 이름값으로만 선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감독이 말한 발전없는 선수들을 선발한 것은 다름 아닌 감독 자신이다.
이번 엔트리를 살펴보면, 02년 멤버들은 총 10명이다.
그리고 이 10명 모두가 선발 또는 교체 멤버로 본선에 출장했으며,
컨디션 난조에 시달린 이을용과 송종국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핵심전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의 선수 발전 발언이 사실이라면, 감독은 기량이 전혀 향상되지 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진행해 나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름값으로만 선발한다, 이는 너무도 익숙한 비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탓하기 전에, 그런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한 감독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다.

결국 감독의 이 말은, 누워서 침 뱉는 식의 변명에 불과한데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무척 유감이다.



다시 원점으로 얘기를 돌려 보자.

자신이 선호하는 전술에 따라 선수들을 선발하고 경기에 출장시키는 것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선수들의 기용 문제 역시, 결국 감독의 뜻이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기 때문에,
감독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가에 대해 평가해 보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좋은 감독이란 주어진 선수들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감독을 일컫는 말이지,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끼워 맞추느라 급급한 감독을 칭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제에 따라, 아드보카트를 좋은 감독이라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아드보카트의 전술이 4-3-3 이라는 이름에 걸맞기 위해서는 포워드진의 3과 미드필더 진의 3이 유기적인 연계를 가져야 한다.
앞서 2부에서도 말했던 것이지만 4-3-3이 효율적인 전술이 되기 위해서는
윙포워드와 원톱, 중앙미드필더 들간의 연계 같은 것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부의 오해를 바로 잡자면, 4-3-3 에서 윙포워드가 전통적인 윙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첼시와 함께 4-3-3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윙포워드 측면을 파고 들어 크로스를 날리는 전통적인 윙포워드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주영의 왼쪽 측면 기용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얘기다.

다만 수비력이나 미드필더와의 연계가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박주영을 윙포워드로 기용하기 위해서는 중앙미드필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박주영이 선발 출격한 스위스전에서는 이 역할을 이천수가 맡았으나, 이천수 개인의 능력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감독의 의중이 적중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덕분에 아드보카트의 어설픈 4-2-3-1 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그 위치에서 뛰어야 했던 선수들의 컨디션이 충분치 못했던 점은 박주영의 선발 기용을 두고 논할 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축구 경기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허용될 수 없지만, 
이을용의 컨디션이 충분하여 이 역할을 이을용이 해 주었다면.
이호가 지난 해 보여 줬던 절정의 컨디션을 본선에서도 보여 줄 수 있었다면.
박지성의 컨디션이 평상시 만큼만 되어 줬더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감독의 선수 기용은 허점을 드러내었다.
굳이 아드보카트에 호의를 베풀자면, 선수기용의 적절함에 대한 평가란 경기 결과에 기인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불리했다 말해 주는 정도일 것이다.
주제와 관계없지만, 감독의 농단으로 가슴에 대못이 박혀 버린 어린 선수는 어디서 보상을 얻어야 할까?



4. 위기 대처 능력

감독은 경기 중 자신의 전략/전술이 효과적이지 못할 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처능력이 있어야 한다.

앞선 토고전 리뷰에서도 밝혔듯, 나는 이번 대표팀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코칭스탭의 위기 대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선수비 후역습이란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그의 역습을 위한 카드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는가 의문이다.

토고전과 프랑스 전의 경우 결과적으로 감독의 후반 교체가 적절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의도된 노림수였는지 아니면 토고전의 성공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안정환과 설기현의 투입 이라는 것 외에 과연 아드보카트의 카드에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 역시, 그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이유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 라는 속담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5. 코칭스탭과의 커뮤니케이션

코칭스탭의 활용에 대해서는, 히딩크 이후 이번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전임 감독들에 비해 얼마나 나았는가 하는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도 굳이 판단을 해야겠다면 감독을 보좌했던 코칭스탭의 면면을 비교해 보라고 하고 싶다.
결국 외국인 코칭스탭과 내국인 코칭스탭의 차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러니 코칭스탭을 다루는 능력 차이라면 앞선 두 외국인 감독의 성향을 떠올려보자.
본프레레야 워낙 인간이 독선적이어서 그랬다 치자, 쿠엘류의 성격도 그랬던가?


물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코칭스탭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역시 능력일게다.
그러니 굳이 이 부분을 문제 삼으려거든 자신을 보좌해 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한 전임감독들에 화살을 돌리자.




위에서 한 얘기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종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아드보카트호가 비교적 양호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아드보카트의 어떤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기 보다
해이했던 선수단의 기강이 새 감독의 부임으로 자연스레 쇄신되었고,
짧은 임기라는 일종의 면죄부와,
그에 따른 축구협회와 언론, 팬들의 전폭적 지원 등 외부적 요인이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카리스마 역시 아드보카트가 칭찬 받는 이유 중 하나지만,
공항 첫 대면에서 "당신은 3류감독이라면서요?" 하는 질문 따윈 받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이 역시 매스컴에서 만든 1류와 3류의 차이일 뿐이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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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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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1부니 2부니 나누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자칫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을 우려해 글을 나눈다.

지난 1부에서 떠난 감독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얘기했었고, 그에 따라 이번 편 부터는 감독의 능력에 대해 평가하기로 한다.
내가 감독을 평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이 시리즈들의 마지막 편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이번 2부에서는 그의 전술적인 문제에 대해 짚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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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보카트 - 전술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없다

다소 과격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말을 지금 처음 하는 것이 아니다.
XTM의 방송에서도 나는 이와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전술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얘기다.
언뜻 보면 비난에 가까운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제 그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감독은 지난 9월 우리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은 뒤 바로 4백에 대한 조련에 들어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4백 실험을 두고 기대와 의구심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히딩크도 실패한 4백이라는 얘기(사실여부와 관계없이), 9개월 남은 시점에서는 무리라는 얘기.
그에 반해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높아져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와 우리 대표팀에서 4백을 보고 싶다는 막연함 기대감 등.

감독의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어느새부턴가 우리 대표팀의 기본 전술은 4백을 기반으로 하는 4-3-3 이나 4-2-3-1 등이 되었으며 
오히려 오랜 기간 우리와 함께 했던 3백이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감독의 이런 실험은 정작 본 대회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실험으로 전락해 버렸다.
감독은 지난 수차례의 평가전과 전지훈련에서 집중적으로 연습한 4백이 아닌 우리의 오랜 전술인 3백을 들고 나왔던 것.

물론 감독은 상황에 따라, 또 상대의 전술에 따라 전술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술적 유연성이란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언발에 오줌 누는 식의 임기응변으로는 곤란하다.
전형이란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충분히 준비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얘기이다.

본선에서의 3백, 4백 선택이 임기응변에 불과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에 대한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전지훈련이나 평가전 등에서 3백이 아닌 4백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는 점.
그리고 선수 구성에 있어 3백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대표팀으로 선발된 수비수들 중 3백에서 측면수비수들에게 필수적인 "준족" 이라는 특질을 가진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3백과 4백을 넘나드는 전술 유연성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하지만 전술적인 유연함이라는 것은 오늘 3백을 쓰고, 내일 4백을 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 유수의 팀이라 할지라도 전형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흔치 않다.
만약 전술변화가 이뤄진다면, 조직력 배가를 위한 훈련과 변화된 전술에 맞는 선수의 기용이라던가 하는 요인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어설픈 전술의 유연함은 수비 조직력에 혼란만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본선 첫 경기인 토고전에서 전반보다 후반의 수비 조직력이 훨씬 안정되었던 점, 코칭스탭이 남은 두 경기에서 4백을 기본으로 하는 전술을 사용했던 점이 이를 입증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전술적 유연함이란 경기 중 상황에 따라 선수들의 위치가 이동되어 필요에 따라 전형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술의 유연함은 현대 축구의 기본적인 특징이며 수비 시에나 공격 시에 더욱 효과적인 경기 전개를 위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3백을 쓰고 내일 4백을 쓰는 것은 전술의 유연함이 아니라 수비 조직력을 흐트리는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는 왜 본선 첫 경기에서 자신의 전술과는 거리가 있는 3백 시스템을 사용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감독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의 전술가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드보카트에 대해 논한 기사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amp;office_id=071&amp;article_id=0000004220&amp;section_id=107&amp;menu_id=107

지난 9월, 감독이 선임된 후 기고된 컬럼인데 읽어 보면 알겠지만 감독으로서의 그의 역량에 의문을 품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 기사는 내가 전술적인 문제로 그를 비판하는데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점도 함께 언급해 둔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토고전에서 보여준 난데없는 3백으로의 회귀가,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사에 따르면, 유로 2004에서 네덜란드를 이끈 아드보카트는 본선 대회 직전까지 4-3-1-2 를 기반으로 하는 전술을 기본으로 하다 본선에서 갑자기 4-2-3-1 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기 결과는 역시 신통치 않았고, 그 후로 네덜란드는 4-3-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그가 대회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조련한 4-3-1-2 와는 거리가 있다.
감독의 선택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얘기는 결과론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네덜란드의 강점을 말할 때 선수들의 능력 외 감독의 전술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대회 4강에 올랐는데도 졸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또 오죽하면 무전술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을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드보카트는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월드컵 대회에 나섰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아드보카트는 2년 동안 변한 것은 2004가 2006이 되었다는 점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모든 것이 유로 2004와 판박이였다.
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네덜란드 선수들의 면면에 비해 한국 대표팀의 그것이 조금 달랐다는 점과, 유로 2004와 같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점 뿐이다.


비록 대표팀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감독 개인은 철저히 행운과 함께 했다.
짧은 임기라는 면죄부와 스위스전의 오심논란으로 감독의 전술적 능력에 대한 분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만약 네덜란드에서처럼 9개월이 아닌, 그 이상의 시간이 아드보카트에게 허락되어 있었다면..
결과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글쎄,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라고 믿는 편이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지만 아드보카트의 능력에는 고개를 갸우뚱했기 때문이다.


논지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 
이제까지 즐겨 쓰던 전술을 마다하고 자신이 부임하기 전 선수들에게 익숙했던 전술로 대회 첫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며, 전술가로서의 그의 소신과 철학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의문이다.





아드보카트의 축구 = 토털사커?


감독은 늘 공격축구를 표방한다고 말했다.
그래, 그 말 자체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세상 어떤 감독도 나는 수비적이고 소심한 축구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심지어 우리네 리그의 몇몇 팀의 지도자들께서도 항상 공격축구를 주창하니 아드보카트의 이런 말은 그냥 넘어가 주어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화끈한 공격 축구를 했다고 믿는 사람들,
또 본선에서 보여 준 선수비 후역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원래의 아드보카트 축구는 공격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건 단지 아드보카트의 립서비스에 홀렸을 뿐이라 말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드보카트가 부임한 이래로 지금까지 펼친 여러 경기들 중에,
상대를 압도하고 공격을 퍼부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만 여기서 지난 해 펼쳐진 이란전이나 스웨덴, 세르비아 전은 언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9개월이 터무니없이 짧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임 5일 후의 이란전을 두고 감독의 능력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흔히 네덜란드의 축구를 두고 토털사커라 말하고, 가장 현대적인 축구를 구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토털사커의 중심에 아드보카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경기가 실제로 그랬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아드보카트의 주요 전술이라 할 수 있는 4-3-3 에 대해 짚어 보자.
성남일화의 김학범 감독은 4-3-3의 키워드는 중앙미드필더와 윙포워드에 있다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에 따르면 4-3-3 시스템은 공격 시 양쪽의 윙포워드와 원톱이 유기적으로 위치를 변화하고 빈 공간을 노리며, 중앙미드필더들이 줄기차게 상대의 허점을 노려야 한다.
또한 수비시에는 윙포워드들이 미드필더진에 가세해 수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
다시 말해 4-3-3은 선수들의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여 미드필드 에서의 수적 우위를 점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드보카트가 보여 준 경기에서 우리의 4-3-3 은 어떠했는가?
과연 어디에서 우리는 중앙에서의 힘싸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본선에서 4-3-3 이라 불릴만한 전술을 제대로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간 중 박주영 선수의 인터뷰나 최근 최진철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후방에서 전방으로 올라오는 긴 패스 연결은 코칭스탭의 지시였다고 한다.
그 결과 공격진과 수비진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미드필드진은 철저히 와해되었으며 
아드보카트가 내세운 전술은 굳이 말하자면 4-2-1-3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후반 들어 승부수를 띄울 때 쯤이면 4-2-3-1 로 변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자주 보여 준 덕분에 우리에게도 낯익은 포메이션이 된 4-2-3-1 은
유로 2004에서도 그랬듯 아드보카트가 위기 때마다 들고 나온 바로 그 전술이다.
아무래도 4-2-3-1은 아드보카트의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인가보다.

4-2-3-1 이란 전술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자면,
토털사커의 대명사인 요한 크루이프가 피파매거진에서 4-2-3-1 을 두고 관중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전술이라 평한 적이 있다.

(피파매거진 2005년 10월호, KFA 홈페이지 인터뷰 참조)


우리의 지극히 수비적이고 뻥축구에 가까운 전술은 이 4-2-3-1 포메이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드보카트의 축구는 4-3-3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4-2-3-1 이었고 같은 이유로 그의 축구가 토털사커라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려 공수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지고, 이로 인해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번에 날아 오는 긴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
이게 바로 우리가 그토록 신물내는 뻥축구 아니던가?
대체 어딜 봐서 이게 토털사커며 현대 축구라 할 수 있겠는가?


공격 축구가 아니라도 좋다.
단순히 수비 지향적인 경기를 풀어 나갔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축구는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경기 전개에 주력하며, 이에 대한 예로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 같은 걸 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감독이 자신의 전술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느냐에 있는 것이다.

오토 레하겔이 하면 현대축구고 효율적인 축구지만, 아드보카트가 하면 뻥축구가 되는 이유는
그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준비란, 시간이 모자랐다는 변명만으로는 덮기 힘든 아드보카트의 문제점 그 자체다.

전술가로서 자신의 전술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없는 감독이 대체 어떻게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3부에 계속)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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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회가 닿아 XTM의 X-ray라는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었다.
100분 토론 수준의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기를 바랐으나
사실은 그런 바람과는 관계 없는 개그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최양락과 김흥국의 오버로 개그 중에서도 정말 재미 없는 저질 개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해야 할 말도 참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비했던 얘기의 십분의 일도, 허용되지 않았고 그걸 감내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과 말을 하는 것, 결코 같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 간다해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해야 할 말, 하고 싶던 말들이 이대로 묻혀 버리기 싫다고 자꾸만 징징거린다.
이에, 준비했던 얘기들을 정리해 글로 올린다.

글이 길어 몇편으로 나누어 올리고자 한다.
이 글은 그중 첫번째인 토론의 타당성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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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며칠 전, "아드보카트는 한국 축구의 X맨이었다?" 라는 타이틀을 가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난잡했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은,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한 나로서도 꽤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항시 비판이란 균형적인 시선을 가져야 하는데..
일단 X맨이라 하면, 이건 이미 비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충분히 다뤄 볼 만 하다고 생각했고, 주제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핌 베어벡 코치는 월드컵 16강전이 좌절된 뒤 가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실패에서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굳이 베어벡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2010년 월드컵 그리고 우리 한국 축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하여 이번 실패에 대해 반추해 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또 베어벡은 
"세계축구수준이 한국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충분히 강하지 못했다." 라고도 말했다.

축구의 수준이라 말하는 것들, 그리고 충분히 강하지 못했던 원인들.
이런 것들을 알아야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 마지 않는 축구 강국으로서의 길이 도래할 것임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충분히 강하지 못했던 원인, 즉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기량, 전술의 완성도, 선수단 운영 등의 행정력, 경기 당일의 운, 심지어는 심판의 자질 문제까지..
그리고 감독의 역할이 적절했는가의 여부 역시 그 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실패에서 배우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이 지난 쿠엘류와 본프레레의 일 때문인지 아드보카트 감독의 공과를 논하는데 있어 주저함을 보이며, 감독으로서의 그의 역량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내려지지 못하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이는 결코 떠난 자의 등에 칼을 꽂는, 그런 파렴치한 행위가 아니다.
월드컵 16강이라는 당면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워 희생양을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월드컵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강호 프랑스에 대등한 경기를 했고(비록 스코어 상이지만)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제외하고 월드컵 도전사 최초의 1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이유야 어떻든, 경과야 어떻든.. 분명 이는 칭찬 받을 일이다.
하지만 감독을 평가하는 것은 성적만 놓고 볼 일이 아니며, 이에 대한 얘기는 차후에 진행하기로 한다.

또 이미 지난 일이고, 무엇을 말하더라도 결과론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평가란 결과를 두고 하는 것이지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서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는 말은 실패라는 결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테니 말이다.





국내파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의 벽을 허물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이유는, 첫째로 대표팀 성적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진 축구의 노하우를 전수 받아 내국인 지도자들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도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과연 아드보카트는 무엇을 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선진축구의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것은 꼭 지도자들에게 어떤 강연이나 강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선수단의 운영, 정보 수집력, 전략/전술의 수립, 훈련 방법, 언론과 선수를 대하는 태도 등 감독의 일상적 직무 자체가 다른 지도자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평가는 짧은 임기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평가가 쉬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바로 그가 보여 주는 경기력에 초점을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다.
축구는 상대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싸움을 하기 전에 이미 이긴다" 라는 점에 대해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 주기 위해 감독은 싸우기 전에 이기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보여 주는 경기력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그가 보여 준 경기력이 우리가 불신해 마지 않는 국내 지도자들의 경기력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얘기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아드보카트감독의 성과와의 비교우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2000년 시드니 월드컵에서의 허정무 감독과 2003년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의 박성화 감독,
2004년 아테네 월드컵에서의 김호곤 감독 등의 성과가 저평가 받는 것이
히딩크의 성공 이후 생긴 외국인 감독에 대한 편향적 시각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약 아드보카트가 저런 경기에 나가 똑같은 성과를 거뒀다면, 
앞선 평가와는 사뭇 다른 얘기들이 전해질 것이라 생각하니 실소가 머금어진다.

국내 축구인들이 외국인 감독에 대해 비판을 가할라치면 
어김없이 근거 없는 음모론이 제기 되고 
한심한 밥그릇 싸움쯤으로 치부해 버리곤 하는 우리네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외국인 감독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에 대해 국내 지도자들의 경험과 실력이 미숙한 탓이라 해 놓고, 
왜 그걸 개선해 낼 방도는 찾지 않고 감독 사대주의에만 빠져 있는가 말이다.
언제까지 3류 감독들을 불러다 앉혀 놓고, 명장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을텐가 말이다.


모쪼록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외국인 감독이 수행해 내야 하는 책무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짧은 임기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실 9개월이란 시간은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본프레레의 중도하차 후 앞으로 감독이 어떤 성적을 내더라도 거기에 대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생긴 것은 당연하고, 또 어떤 점에서 이런 시각은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비난이지 비판이 아니다.
건설적 대안을 찾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제언까지 원천 봉쇄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쿠엘류 감독 1년 2개월, 본프레레 감독 1년 2개월, 아드보카트 감독 9개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졌을 때, 아드보카트는 다른 두 감독에 비해 현격히 적은 시간만이 허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짚어 보면 조금 다른 계산이 나온다.

우리가 모두 잘 아다시피, 쿠엘류 감독 때는 선수단 소집과 훈련이 용이하지 못했다.
쿠엘류 감독의 퇴임사에서 "72시간 훈련" 등과 같은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본프레레 감독의 경우, 임기의 대부분을 성적을 내야 하는 경기를 치르는데 보냈다.
부임하자마자 아시안컵 본선을 수행해야 했으며, 그 이후 내내 월드컵 예선을 향해 걸었다.
그가 팀 체질을 개선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전술을 시험해 보는데 시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상 그의 마지막 대회 참가가 된 동아시아 대회가 전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본프레레를 명장급으로 치켜 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짚고 넘어 갈 것은 확실히 하자는데 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임기를 지냈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9개월이었으나, 앞에서 말한 두 감독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9개월은, 앞선 두 감독에 비해 그다지 짧은 기간이 아니다.


두 감독에 비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기간이 충분했다고는 볼 수 없음을 인정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제 색깔을 보여 주는데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지, 모든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아드보카트가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 이런 얘기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애초에 9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며, 16강 진출이라는 당면 과제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 역시 모두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주지의 사실에도 아드보카트는 감독 계약에 사인했고 모든 결정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항상 결정에는 책임이, 책임에는 비판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아드보카트가 이번 월드컵 대표팀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책임과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적이 좋은데 왜 비판을 하는가?


분명히 말해 둘 것은, 원정 첫승과 프랑스 전 무승부 등 이번 월드컵에서 이뤄낸 우리 대표팀의 성과에
대해 코칭 스탭 이하 선수단 전원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을 제외하고, 늘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던 월드컵 무대에서 1승 1무라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 든 것에 대해서는 칭찬받아야 한다.
굳이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스위스 전에서의 판정 문제 같은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월드컵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과
본선 3경기에서 보여 준 경기력에 대한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16강에 진출했던, 그렇지 않던.. 
우리네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미 성적에는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역시, 16강에 진출했던, 그렇지 않던.. 
그가 보여 준 경기력과 전술 실행은 비판 받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2승 1패라는 호성적에도 불구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허정무 감독이나
2003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한 박성화 감독,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8강에 진출한 김호곤 감독 역시 성적으로만 놓고 보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당장 아드보카트 이전의 본프레레만 봐도 어쨌거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당면 과제는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판받아야 했던 것은, 비판의 대상이 단지 성적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드보카트가 보여 준 본선에서의 경기력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지난 여러 감독들에 비해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제대로 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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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축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매니아도 아니다.
어디에나 흔한.. 일개 축구팬에 불과하며, 그저 관심이 조금 많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두드리는 것은..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평가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할지는 알 수 없으나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한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첫 글을 마친다.

다음 글은 아드보카트가 보여 준 감독으로서의 능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해보고자 한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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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니

    너의 글이 기대되는걸... 솔직히 관심이 없던 축구에 관심을 가져볼까하는 생각도 드네...

    2006.07.07 03: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Kunner

    음.. 이 글과는 관계 없지만. 축구는 참 재밌어 ^^
    가장 재밌는 건, 역시 축구장 가는 거지.

    신혼이라 많이 놀러 다니고 그럴테지?
    축구장을 한번 가봐 ^^
    사실 가자마자 축구 자체에 대한 재미를 느끼긴 어렵겠지만..
    축구장 가는 길 자체도 데이트의 일부일테니.

    2006.07.07 21: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유니

    웅... 덕분에 울 신랑과 데이또를~~~~

    2006.07.07 23: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우리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이자 2006년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가 된 對 스위스 전이 막 아쉽게 끝났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라는 말보다 더 어울릴만한 얘길 찾을 수 있을까?
분명 심판은 스위스에 우호적이었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 사실 절대적으로 불리한 판정 속에서 90분간 싸워야했다.
차두리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사기라며 흥분했던 것이 지나쳤다면, 적어도 그게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가 아니라는 것 쯤은 확실했다.

판정은 결코 번복되지 않는데다 오심도 축구의 일부이므로 우리는 이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패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친 우리 선수들에게 앞선 두 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오늘은 앞선 두 경기와 달리 좀 씁쓸한 관전평을 써야만 할 것 같다.
씁쓸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경기 결과가 [0:2 패] 이기 때문이지만 경기결과로서 선수들을 도매급으로 처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차 말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히 시합에 임해준 선수들에게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어렸을 때 시험을 치르고 나면,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틀린 문제를 다시 짚어 보라."
천성적인 게으름 탓에 틀린 문제를 되짚어 보는 일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적어도 그 이유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다.
잘 되지 않았을 때, 왜 잘 되지 않았을까를 분석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니까.
시계는 계속 돌아 가고, 월드컵은 다시 찾아 오고..
무엇보다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축구는 결코 오늘만 하고 말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늘 그랬듯, 전/후반과 실점 상황에 대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는 것이 맞겠지만..
오늘 경기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잘 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에 초점을 맞춰 관전평을 써내려갈 계획이다.
지난 토고와 프랑스전과 달리 시간의 흐름 - 선수의 교체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바뀐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관전평은 우리의 2006 월드컵을 마무리 짓는 결산이기 때문이다.


1. 선발 라인업 -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을까?

지난 두 경기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이라면, 일단 선발 라인업에 있다.
일단 앞선 두 경기의 선발 라인업을 보자.

[對 토고전] 3 - 4 - 3
........................조재진........................
............이천수............박지성............
........................이을용........................
........................이  호........................
이영표....................................송종국
............김진규 김영철 최진철............

[對 프랑스전] 4 - 3 - 3
........................조재진........................
............이천수............박지성............
........................이을용........................
............이  호............김남일............
김동진  김영철  최진철  이영표


그리고, 오늘의 선발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對 스위스전] 4 - 2 - 4
........................조재진........................
............박주영............박지성............
........................이천수........................
............이  호............김남일............
김동진  김진규  최진철  이영표


박주영을 제외하고, 선발로 나온 선수들의 면면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이천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 온 것이 그렇다.
방송사의 경기 시작전 라인업에는 박지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박지성이 오른쪽 측면에 위치하고, 이천수는 프리롤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선발 라인업만 놓고서는 0:2 패배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스위스에게 이렇게 억울한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실제로 선발 라인업 때문에 경기를 그르쳤다고 말하는 것은 애매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쉬웠던 점에 대해 몇가지 짚고 넘어가자.


박주영, 아직 미완의 대기인가?

박주영의 선발 기용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그간 한번도 출장하지 못한 - 심지어는 교체 투입도 되지 못한 선수를 선발 기용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어린 선수는, 아직 월드컵을 감내해 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했다.
그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공간 활용과 정확한 슛이 이번 경기 내내 한번도 연출되지 않은 점은, 단순히 그가 함량 미달이어서가 아니라 월드컵 첫 출전의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다.
이는 지난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의 그의 플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앞으로 그가 더 큰 선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부담감을 빨리 떨쳐내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어쩌면 그는, 지난 청소년 대회로부터 1년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 스물 두살, 앞으로 미래가 창창하다.
부디 더 큰 무대로 나가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할 그를 기대해 본다.
어쨌거나 - 그런 바람과는 관계없이, 그를 선발 기용한 코칭스탭은 낙제점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천수의 프리롤?

나는 이천수에게 최적화된 자리는 측면이 아닌 중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천수가 측면을 빠르게 돌파하여 크로스를 날리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예전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페인에서의 복귀를 시점으로 그런 변화가 두드러진 듯 하다.
측면에서 죽어라 크로스를 올려봐야 아무도 골을 넣지 못해, 직접 해결하는 법을 익혀야 했던 누만시아 임대 시절의 영향일까?
아니면 원래 이천수라는 선수가 측면보다는 중앙을 선호하는 타입의 공격수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측면이 아닌 중앙 - Big과 보조를 맞추는 Small 의 역할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드보카트가 이번에 이천수를 중앙으로 기용한 것은 대략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중앙에서 공간으로 침투하는 회수가 지난 두 경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것.
전반에 센데로스에게 통한의 헤딩골을 허용한 후에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지난 두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에서 공격진들의 침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침투의 한 가운데 이천수가 있었다.
또 슛팅을 아끼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몇번의 유효한 슛팅을 만들어 낸 그의 플레이에 절반의 성공이라 평하고 싶다.

하지만 이 성공이 절반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골을 넣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공격수들과의 유기적인 조합이 이뤄지지 못한 채 홀로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격수들의 유기적 조합이 미흡해, 2:1 월패스나 공간으로의 쓰루패스가 연출되지 못한 점은 두고 두고 아쉬운 일이다.
조별리그가 세차례 펼쳐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의 조직력을 높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특히 아쉬웠다.

스위스의 공격수들이 감각적인 힐패스나 2:1 패스를 통해 우리의 문전을 위협하던 것과 대비해 볼 때, 우리의 조직력 결여는 가장 큰 패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세 경기 모두 다른 선발진으로 모두 다른 방식의 경기 운영을 했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체, 우리 팀의 플레이에서 주안점은 무엇이었을까?


박지성 원맨팀

가장 나쁜 팀은 멤버 한 둘이 팀을 이끄는 이른바 "원맨팀"이고, 
가장 좋은 팀은 베스트 일레븐과 벤치 멤버의 수준차가 적은 팀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대로,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팀은 흡사 박지성의 원맨팀과도 같았다.
어딜 가도 박지성, 무얼 해도 박지성.
우리 팀은 오직 박지성만 막으면 되는 팀이 되어 버렸다.
컨디션 난조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박지성은 3경기 내내 풀타임을 뛰어야만 했고, 선수들은 공만 잡으면 더 좋은 위치에 다른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박지성에게로 볼을 던져 주느라 급급했다.
심지어 두겹, 세겹으로 상대 수비수들에게 에워 쌓여 있는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게 선수들의 문제인지, 코칭스탭의 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현재 우리 대표팀의 키플레이어이다.
하지만, 정말 좋은 팀은 특정 멤버의 유무로 얘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은 아직 좋은 팀이 되지 못한다.

박지성 원맨팀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제2, 제3의 박지성이 등장해야 한다.
그저 박지성에게 슬쩍 볼을 밀어 넣고 "나는 할 일 다 했다" 는 식의 플레이는 곤란하다.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팀의 에이스는 박지성이 아닌, "나" 라는 점을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이기적인 플레이를 원하는 말이 아님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2. 흐트러진 수비 조직력 - 무엇이 문제인가?

전반 킥오프 후, 우리 수비수들이 서두르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스위스 선수들이 전방에서부터 압박을 가하자 공을 걷어 내는데 급급했던 것 같았다.
시작 후 얼마 안 되어, 오른쪽에서 이영표가 걷어 내는 공이 거의 터치라인을 넘어가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야 했던 점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이영표라는 선수의 능력을 감안하면, 이는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흡한 맨마킹 -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다.


코너킥이나 프리킥등의 찬스에서 마크하던 선수를 놓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스위스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단순히 안도만 하기에는 우리 수비 조직력이 참 좋지 않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우리의 패배는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과 관계 없이 예고된 것일 수도 있다.
후반의 석연치 않은 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반의 골은 결국 마크맨을 놓치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위험지역에서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대인마크가 아쉽다.
기본적으로는 공간을 마크하는 존 디펜스를 한다 치더라도, 위험지역 -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에서는 1:1 전담 마크가 필요하다고 볼 때, 우리의 오늘 수비는 그렇지 못했음이 아쉽다.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굳이 누구누구라고 지적할 것도 없이 모두 그랬다.
다만 최진철만이 홀로 그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에 노장투혼을 발휘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경기가 진행될 수록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서서히 침몰하는 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불안한 위치 선정


미흡한 맨마킹과 더불어 선수들의 위치선정은 우리 수비의 큰 문제점 중 하나다.
특히 코너킥의 경우, 낮고 빠른 야킨의 킥이 우리 골대를 가로지르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수비수가 적절한 위치에 서 있었다면, 머리 위로 지나가지 않는 이런 공이야말로 차단되어야 마땅하다.
꼭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두 실점 상황이 모두 우리 수비수들이 위치를 선점하는데 미흡했다고 볼 때
수비 시 적절한 위치 선정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선수들의 잔실수

이런 전술적인 움직임과는 별개로, 선수들이 잔실수가 아쉬웠다.
바르네타 정도를 제외하면 "빨라서 못 막겠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불구, 우리 선수들의 볼처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걷어 내느라 급급했고, 공격진으로 연결되는 패스는 무작정 찌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걷어 낸 볼이 상대에게 연결되는 상황이 잦았고, 몇번은 중대한 실점위기를 자초하게 했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점점 좋아지긴 했으나 앞으로 우리 팀이 더욱 노력해 보완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전반 초반의 잔실수는 우리 팀의 정신력과 체력을 극심하게 갉아 먹기 때문이다.

역시 수비에 대한 문제는 조직력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데,
이 조직력이라는 것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문제지만, 손발을 맞춘 시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우리가 며칠 대충 손발 맞춰보고 실전에 임하는 "브라질스러운" 팀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수비에 대한 지적은 이쯤 하고, 이제 코칭스탭에 대해 지적해 보기로 하자.



3. 코칭스탭

단지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지난 경기에서 칭찬하게 했던 점이 이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어 내고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 하는 일은 그것과 조금 다른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9개월이라는 짧디 짧은 시간만이 허락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감독에게 내려지는 평가는 결과와 관계없이 다소 우호적이어야 마땅한지 모른다.
그 시점에서 감독을 맡는 일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의 이유로 전력 누수가 불가피했다는 점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토고전의 리뷰에서 했던 말과 마찬가지로, 그 점은 월드컵에 참가한 모든 팀이 마찬가지고 그런 점까지도 전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번 스위스전을 보고 느낀 코칭스탭의 문제점에 대해 논해보기로 하자.


선발 라인업에 대한 감독의 의도?

우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 경기의 선발 라인업과 전략 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 두 경기 내내 기용하지 않았던 박주영을 선발 기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위스의 좌우 측면이 약하다는 분석결과에도 불구, 윙포워드가 아닌 중앙 공격형 선수들로 공격진을 가득 채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조재진을 제외한 세 선수들이 서로 자리가 겹치는 상황에 대해 감독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감독은 대체 어떤 전략으로 스위스전에 임했던 것일까?
미드필드에서의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경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던 감독은,
수비력에 의심을 받고 있는 박주영을 선발로 기용했다.
또 컨디션 난조로 시달리고 있는 박지성을 지난 두 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풀타임 기용했다.


아쉬운 교체카드

아드보카트의 교체 타임은 토고전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한 것 외에, 조금은 느린 것이 아닐까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프랑스 전에서의 관전평에서도 후반 교체 타임이 좀 느리지 않은가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아서, 첫 교체가 후반 20여분이 다 되어서야 이뤄졌다.
교체 선수가 경기에 나와 경기의 흐름에 감각을 맞추는데 5분 이상이 필요하다고 보면 늦어도 너무 늦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약 5분 후, 후반 25분경 설기현이 교체되어 들어 왔는데 이는 지난 프랑스전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이다.
이 교체 선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여분.
무언가 보여 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게임의 흐름 상 교체투입을 하는 것보다 지금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는게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하더라도, 아드보카트의 교체카드는 어쩐지 미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격적인 축구 = 다수의 포워드?

토고전을 승리로 이끈 다음, 감격에 찬 리뷰에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
사실 아드보카트호의 불안요소는 선수의 기량도, 포메이션도, 평균신장 도 아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의 부재" 라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어제 경기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코칭스탭의 전략/전술적 대응을 두고 말한 것이다.
결국 앞선 두 경기와 스위스 전의 차이는 교체투입된 선수가 제 몫을 다해 좋은 결과를 가져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안정환과 설기현을 투입하는 것이 정녕 아드보카트의 전략의 전부였을 뿐이란 말인가?
이래저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드보카트의 이번 용병술을 놓고, 포워드의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지난 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히딩크의 용병술에 깊이 매료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오늘의 교체가 지난 두 경기에서의 그것에 비해 아쉬운 것은 아드보카트의 전술 구상을 읽을 수가 없다는 점에 있다.
먼저 위에서 말한대로 선발 라인업에서 박주영과 이천수, 박지성이 서로 맞지 않았다.
또 후반에 교체되어 들어 온 선수들을 포함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안정환과 박주영, 이천수와 박지성.
모두가 오로지 중앙 - 중앙만을 노리고 달릴 뿐이다.
가장 늦게 투입된 설기현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측면 돌파 후 크로스를 날리는 타입의 선수가 없다.

과연 감독은 어떤 전술을 구상하고 있던 것일까?
그나마도 나머지 교체 카드 한장은 남겨두어서, 앞선 두경기를 포함한 조별리그 내내 감독의 용병술에 안정환과 설기현을 투입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것은 결국 결과론에 따른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그의 선수교체는 또 하나의 성공신화로 기억됐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에 패배했고, 어쨌든 그의 모험은 그저 모험으로 끝나 버렸을 뿐이다.


4. 심판의 부적절한 판정

핸드볼이나 오프사이드 논란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스위스 전의 판정은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전 對 독일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주심도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우리를 곤혹스럽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경기의 심판이 스위스 사람이었다는 것과 이번 경기를 연관시켜 우리와 스위스의 악연을 말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웃음)

오심은 축구의 일부다. 
하지만 편파판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가 아니다.
모 방송의 편집 영상처럼, 그 경기에서 축구는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경기에서 패배했다.
그게 오프사이드든 아니든 우리는 두골을 먹고 영패했다.
우리에겐 지나치게 가혹하고, 상대에겐 반대로 너무나 너그러웠던 심판의 판정은 선수들의 추격의지를 꺾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지만, 판정이 공정했다면 최소한 2:0 이라는 스코어상의 완패로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당시 후반전의 한껏 몰아치는 분위기가 그랬고,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선수들의 의지가 사그러든 것이 확연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경기 결과가 아쉽고 또 아쉬움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심판의 판정은 유효하고 결과는 번복될 수 없다.
그 심판의 옷을 벗기는 것이야 가능할 지 모르지만 말이다.
더럽고 아니꼽지만 어쩌겠는가?
외신이 우호적인 시각을 보인다고 나아질 것도 아니고, 설령 블래터가 읍소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칼을 갈자.
날카롭게 칼을 갈자.
심판의 호각소리보다 더 날카로운 실력의 날을 갈자.
토고와 프랑스, 스위스 따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지 않아도 좋을 실력의 날을 갈자.
쓰라린 상처는 오직 그라운드 위에서만 치유될 수 있는 법이다.



5. 관전평을 마치며

비록 16강의 대열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지난 그 긴 시간 동안 그저 두드리기만 해야 했던 월드컵 원정 첫 승의 문을 열었고, 언제나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프랑스와 대등한 게임을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승점자판기 정도로 치부되는 약팀이 아니라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임을 세계에 알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예비된 영광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월드컵을 준비한 시간 동안 - 감독 선임이라던가 선수 수급에 대한 문제 등을 떠올려 보면, 이런 아쉬움과는 별도로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한 코칭스탭, 선수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월드컵은 끝났다.
이제 남은 월드컵은 남의 잔치로, 그저 축구 잔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 시계는 계속 돌아 가고 그에따라 또 다른 도전과 과제가 있다.
같은 이유로 이런 경기 결과에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늘의 실패를 비추어 내일의 성공을 다질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눈물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축구도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자.

해야 할 일이 많다.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이뤄낸 것보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다.
꼭 국제무대에서의 성과 뿐 아니라 유소년 축구, 프로축구 등 기초적인 축구 토양의 발전은 아직도 "이제 시작이다."

먼, 하지만 그리 멀지만은 않을 미래의 영광 - 그 책임을 우리도 함께 지고 있다.
선수나 코칭스탭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고 있다.
매 경기결과에 일희일비 하지는 않는지,
숲도 나무도 보지 못한 채 결과에 대한 희생양을 지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의무는 제쳐둔 채 권리만을 부르짖고 있지는 않은지.
비판을 가하는 손가락을 자신에게도 돌려 볼 줄 아는 성숙한 팬 의식을 가지도록 하자.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 마지 않는, 축구강국으로 가는 중요한 열쇠가 우리 손에 들려져 있음을 명심하자.

쓰린 눈물과 한숨으로 그치는 오늘이 아니라,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살펴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2006년 독일 월드컵 관전기를 마친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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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6 월드컵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 對 스위스 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토고와 프랑스 전 경기 결과에 따라, 설령 스위스에 패한다 해도 16강 행 기회가 있긴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프랑스가 동네북이 되버린 토고를 잡지 못한다고 기대할 바에야,
우리가 스위스를 이긴다는데 거는 편이 현실적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스위스를 이기는 것만이 최선이다.
어떤 경우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중에 친구에게 했던 말을 다시 써 본다.
설령 끝나고 나서 좌절을 겪게 될런지도 모르지만, 경기 시작전엔 승리에 대한 염원 만이 있을 뿐이라고.

부디 기쁨으로 충만한 가운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 하게 되길 바란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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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조 예선 2차전, 對 프랑스전을 무승부로 마쳤다.
어려운 상대에도 불구,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 준 선수들 이하 코칭스탭에게 감사를 전한다.

경기를 마친 직후, 아직 감상이 채 걸러지기도 전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오늘이 아니면 이 경기를 바탕으로 한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글 쓰는게 결코 본업이 아닌데도 꼭 써야 한다는 강박감.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경기를 보고 난 후, 어떻게든 나도 거들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키보드 두드리는 일 밖에 없다.
어쨌든,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의 Review가 시작되었다.


전반 - 불운과 행운의 교차.

TV 전원을 켠 순간, 앙리가 클로즈업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전반 9분에서야 TV의 전원을 켜게 됐는데, 켜자마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앙리의 선제골이다.

대한민국 0 : 1 프랑스.
하필이면 TV 전원을 켜자 마자 골이라니, 우연이라도 이런 우연이 있나.

전반 10여분을 날려 먹은 탓에, 포메이션이고 출전 선수 명단이고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해설자가 선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그리고 TV 화면에 잡힌 선수들의 대형을 보며 눈짐작 할 수 밖에..

대충 눈 짐작 한 결과, 조재진/박지성/이천수의 3톱에 이을용/이호/김남일의 미드필드, 그리고 좌동진 우영표에 김영철과 최진철이 중앙수비 - 이렇게 4-3-3인 듯 했다.
전반 내내 거의 경기장을 반만 쓰다시피 하며 수비만 해야 했기에 포메이션을 구분하는게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경기가 끝난 후, 뉴스 기사에서 오늘 포메이션은 3-4-3 이었고 김동진이 왼쪽 수비수로, 이을용은 좌측 미드필더로 나왔다고 되어있지만 그다지 수긍이 가진 않는다.
어쨌거나.. 그랬다니 그렇구나, 할 밖에... 근데 정말 그랬나?

나같이 골이 들어간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첫 골장면에 대한 리플레이가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이제 보니 김남일이 윌토르의 슛팅을 걷어 낸 것이, 하필이면 앙리의 앞에 척 놓여졌던 것이다.
두 수비수 사이에 앙리가 쇄도하고, 타이밍 좋게 공이 들어와 세상 어떤 수비수와 골키퍼라도 막을 수 없을 듯한 골 장면이 연출되었다.

누굴 탓하랴? 비껴간 행운을 안타까워 할 밖에.


무엇보다도 상대는 우리보다 객관적 전력이 한 두 수는 우위에 있다고 해야 좋은 프랑스.
전반 초반의 실점으로 자칫 대량실점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우려됐다.
이기면 1:0, 지면 0:2, 비기면 1:1 이라 예상했던 나는 어쩐지 자꾸 한 골을 더 허용해 0:2로 지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자고로 축구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그리고 이 경기는 0:2 가 아닌, 1:1이 되었다.
그게 축구의 묘미고 그래서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나의 축구 사랑과는 관계없이, 전반은 완전히 프랑스의 페이스로 흘러간다.
하프라인을 넘는 게 숙제라 생각될 정도로, 또 간신히 넘는다 해도 위협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는 우리의 공격.
그렇게 내내 수비만 하다보니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벌써 전반 30분이 되었다.
(가뜩이나 전반 10분을 날려 먹었으니 시간은 더욱 빨리 가는 듯 하다.)


전반 30분이 살짝 넘을 무렵, 나는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바로 비에이라의 헤딩슛이 골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
이번에도 역시, 첫골 상황과 마찬가지로 계속 리플레이를 보여 주는데 여러 각도에서 본 영상으로는 분명 골라인을 넘었다고 보여진다.
이운재가 선방해 냈으나 이미 골라인은 넘어간 상황.
공의 들고 나는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였을까?
주심도 부심도 모두 보지 못한 듯, 이운재가 쳐낸 공을 수비가 차내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반칙.
다행스럽게도 경기는 그대로 속행됐다.

분명 오심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행복한 오심이다.
축구에서는 오심도 엄연히 경기의 일부이다.
혹여 누군가 이 상황을 놓고 오늘 우리의 경기를 비난한다면, "오심으로 얻은 골을 잠그느라 긍긍하던 어떤 팀" 도 있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적어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축구를 할 줄 아는 팀이라고 말이다. ^^
(리뷰를 다 써내리고 뉴스기사를 보니, FIFA 사이트에 오심이 아니었다는 기사가 떴다 하는데.. 카메라 각도 문제라고 하기엔 골라인을 많이 넘은 듯도 해 보이던데.. ^^ 아니라면 더욱 다행한 일이다.)


미처 가슴 쓸어내린 손을 내릴 틈도 없이.. 경기는 프랑스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된다.
프랑스의 그 거센 몰아침에, "근성을 보여 달라"는 말 뿐 -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맞게 되었다.
이천수의 프리킥, 거리가 멀어 직접 슛은 어렵겠다 생각한 순간 공이 빠른 속도로 골문을 향한다.
마치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의 경기에서 베컴이 가마라의 자책골을 유도해 낸 것과 같이, 날카롭고 빠른 궤적을 보였다.
역시 이천수, 킥의 감각이 농익었다.
이천수의 발끝을 떠난 볼이 다른 선수에게 제대로 맞았다면, 경기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쉽다.

전반 종료 휘슬이 가까워 올 수록 프랑스도 우리도 이렇게 전반을 끝내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미쳐 예상치 못한 가운데 한골을 허용했지만, 1:0 이라는 전반 스코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리드하는 상태로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상대는 프랑스다.
썩어도 준치인데, 하물며 뢰블레야.

드디어, 1:0으로 끌려가는 전반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참..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35분(^^;;)이다.
선수들.. 특히 4백라인과 이운재 골키퍼에게 박수를!


분명 전반의 우리 움직임은 좋지 못했다.
뭐.. 대단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짚고 넘어 갈 것은 짚고 넘어가 보자.

1.
우선 공수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었다.
언젠가 어떤 축구 컬럼에서, 현대 축구의 이상적인 공수 간격은 40미터 내외라고 나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의 공수 간격은 그 두배는 되어 보였다.
프랑스의 거센 공격에 수비진이 뒤로, 뒤로 물러 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앙리같은 빠른 공격수를 두고 수비가 전진하는 것은 상대적 열세인 우리에게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2.
그리고 좌동진, 우영표.

(기사에선 좌을용, 우영표의 3백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좌동진, 우영표의 4백으로 보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김동진 - 이천수와 이영표 - 박지성의 조합은 맞지 않는다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월드컵 첫 무대를 밟은 김동진이 약간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듯 하고, 김동진의 오버래핑이 없는 한 이천수 혼자서는 왼쪽이 원활히 돌아갈 수 없다.
또 오른쪽의 박지성은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를 올리는 윙포워드라기 보다 중앙을 향해 치닫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때, 오버래핑을 하는 이영표와의 유기적인 공격을 기대할 수가 없다.
무조건적으로 좌동진, 우영표가 안된다는게 아니라 이런 식의 좌동진, 우영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천수가 오른쪽을, 박지성이 왼쪽을 공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추가 실점이 없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무엇보다, 이영표의 분전이 돋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마지막으로, 실종된 미드필드.

4-3-3 포메이션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 미드필드가 실종되기 쉽다는 것이다.
경기가 잘 풀릴 때의 4-3-3은 두 명의 윙포워드와 역시 두 명의 측면 수비수가 미드필드를 지원해 주어 상황에 따라 마치 7명의 선수가 미드필드에 배치된 효과를 내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완전히 정 반대가 된다.
4-3-3 에서 오늘 전반처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공격수는 전방에 고립되고 수비수는 수비라인에 갇혀 미드필드에 3명만 덩그러니 서 있는 형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토고전에 이어 이을용의 컨디션이 충분치 못한 듯 했던 것은 우리 팀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었다.

미드필드를 점령당해 수비는 걷어 내기 바쁘고, 공격수는 무리한 패스를 받아 내느라 체력소모가 컸다.
추가 실점이 없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칭찬할 점이긴 하나, 이대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내가 생각한 것은, 
1. 
우선 박지성과 이천수의 위치이동.
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인 좌동진, 우영표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 있는 공격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에서 박지성과 이천수가 자리를 바꾼다.
김동진이 수비에 전념하더라도, 박지성은 충분히 혼자 해 나갈 능력이 된다.
이천수는 이영표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공격라인을 정비한다.


2. 
안정환의 교체 투입.

부진한 이을용을 안정환으로 교체한다.
안정환은 안정된 볼 키핑력과 넓은 시야로 공격진과 미드필드 사이를 조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토고전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지난 토고전에서 "아드보카트 매직"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이런 우려에도 불구, 후반전이 기대되었다.
토고전에서 1:0 으로 끌려가던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역시 학습효과는 무섭다.
그래, 나는 고작 두 경기 만에 "파블로프의 건너", 아니 "아드보카트의 건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후반 - 아드보카트 매직.

하프타임동안 지루한 광고를 피하느라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끝에, 드디어 후반전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아마도 토고전처럼 안정환이 투입되겠지, 교체는 이을용일거고." 하는 나의 예상을 비웃는 듯 아드보카트는 이을용 대신 안정환이 아닌 설기현을 투입했다.

무척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인 설기현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는가?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 직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통쾌한 역전골의 주인공이다.
후반 들어 뒤가리와 르뵈프의 연속골로 3:2로 분패하긴 했지만, 하프타임 내내 대한민국 2 : 1 프랑스 라고 찍힌 프로그램명을 볼 수 있었던 것은 4년이 지난 아직도 짜릿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래, 느낌이 좋다. 설기현 Go, 기현 Go!

그리고 후반 들어 달라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바라던 대로 이천수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격수들의 스위칭은 경기 중에도 빈번히 이뤄지는 것이긴 하지만, 일시적인 스위치가 아닌 그야말로 포지션 변화 말이다.
이제 공격라인은 왼쪽의 설기현, 중앙의 조재진, 오른쪽의 이천수. 그리고 프리롤의 박지성이 이끌게 된다.
그리고 공격은, 예상대로 활기를 띄어가기 시작한다.
조재진이 홀로 고군분투하던 공격진에 우리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하게 된 것이다.

후반 휘슬이 울린 후 10여분간, 우리는 상대를 몰아 치기 시작한다.
과연 이게.. 전반전의 그 팀인가 싶을 정도로 상대를 몰아 부쳤다.
결정적인 장면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부쩍 늘어난 점유율과 패스성공률에서 선수들의 여유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이쯤되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전반의 졸전은 고질적인 문제일까?
전반엔 고전하고 후반에 만회한다가 모토인 "아드보카트 매직" 은 아닐까?
물론 요즘 유행하는 조삼모사처럼 "만회하기만 해 준다면야 그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수의 간격은 전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쯤되니 감독의 노림수이기도 한 듯 하다.
차범근 해설위원의 말로는, 공격과 수비를 완전히 이원화 하여 경기를 운영했다고 한다.
아마도 프랑스가 앙리나 리베리의 빠른 발을 이용한 공격을 자주 하기 때문에 그것만 묶어 두면 된다고 생각한 탓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드보카트가 추구하는 축구는 히딩크의 그것처럼 중원의 점령을 도모하는 축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압도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히딩크 시절보다 훨씬 실리적인 축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히딩크에게 길들여진 나는, 그때의 대표팀이 자꾸 그립다.
또 어느 틈에 아드보카트에게 길들여져 지금이 대표팀을 사랑하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02년의 대표팀이 그립다.


그 후 경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되지만 분명 전반전과는 많은 것이 다르다.
우선 이영표의 오버래핑이 활발해졌다.
이영표의 오버래핑으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미드필드 및 포워드 진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덩달아 왼쪽의 공격도 활발해 졌다.
그리고 슬슬 프랑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우리의 압박이 되살아 났다.
우리가 공만 잡았다 하면 두 세 명이 에워싸던 프랑스는 더 이상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지 못했고, 그에 반해 그저 멀뚱멀뚱 쳐다 본다고 생각되던 우리 선수들이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공 가로채기가 몇번 연출되고, 공수 간의 패스 연결도 매끄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 경기력을 두고 평한다면 "쉽지 않은 상대".
이런 경기력을 전반부터 보여 줄 수 있다면... 강팀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던 중 이호가 비에이라의 니킥을 맞고 쓰러진다.
비에이라 이 녀석, 못 본건지 일부러였는지.. 헤딩 경합을 하다 넘어진 이호를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몸을 돌려 방향전환을 하느라 못 본 것이었겠으나, 나쁜 자식.. 하고 욕이 나온다.
힐끔 쳐다 보더니 녀석도 덩달아 누워 무릎을 부여잡는다.
그래, 실수로 모서리에 무릎 부딪히면 참 아프긴 하더라만.. 어쩐지 그 놈 고의로 니킥을 날린 것이 아닌가 계속 의심이 간다.

결국 비에이라가 날린 니킥의 가공할 위력으로, 이호는 김상식과 교체되어 들것에 실려 나간다.
두둥 - K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 납시오!
김상식이 투입되는 걸 보며, 기대 반 우려 반이 된다.
그의 플레이에는 기대가, 그리고 선수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려.
뭘 해도 욕 먹는 사람 중 하나인 이 김상식이 들어 갈 때 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하나 같이 이렇다.
뭘 해도 욕 먹는 사람들.
어쩌면 그 반대급부로 그들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쯤되면 국가대표 경기에서 그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제발 욕 먹을 빌미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 된다.
그래, 수비수는.. 경기 내내 화면에 클로즈업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호와 이을용이 교체되어 나갔다.
미드필드는 이제 전반 시작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김상식이 깊이 내려가고, 김남일이 공격적인 모습을 띄게 되리라.

이에 앞서 프랑스는 윌토르를 빼고 리베리를 투입했다.
아마도 도메네크는 리베리의 빠른 발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지난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오더니만.. 아직 신인의 티를 채 벗지 못했다.
빠르구나,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약간은 지루하게 시간이 흐를 쯤, 아드보카트가 최후의 칼날을 빼들었다.
후반 25분 경, 이천수가 교체되어 나가고 안정환이 들어 온 것이다.

사실 이 교체는 너무나 뻔한 것임에 틀림없다.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가 아닌 한, 토고전에서 큰 활약을 펼친 안정환을 내보내지 않을리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상이나 선수 보호 차원이 아닌 한, 박지성을 교체아웃할 리는 없다.
또 이미 공격적인 수비라인임을 감안할 때, 수비수를 공격수로 대체할 리는 없다.
조재진을 빼고 안정환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공중볼을 따낼 포스트 플레이어가 없다.
설기현이 원톱도 가능한 선수라고는 하지만 최근 실전 경험은 전무하다.
아드보카트는 전술 운용은 모험적으로 할지 모르지만,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결코 모험적으로 하지 않는다.
3-4-3 에서 4-4-2 를 쓰는 감독이긴 하지만, 설기현을 포스트 플레이어로 쓰는 감독은 아니라는 뜻이다.
남은 것은 단 한자리, 이천수 뿐이다.

어쩌면 1:0 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늦은 교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드보카트는 후반을 20여분 남기고 이천수와 안정환을 맞바꾸었고, 교체되어 들어 온 안정환은 예의 그 몸놀림을 보여 주며 공격진에 활기를 가져다 주었다.
앞서 설기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교체 카드는 멋지게 적중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 팀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인 이천수, 이을용이 모두 교체 되어 나가다보니 프리킥이나 코너킥 할 때,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김남일과 안정환이 프리킥을, 코너킥은 리그 경기에서도 종종 차곤 하는 박지성이 맡는다.
이번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김남일의 크로스성 프리킥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후반 35분, 시간이 멈추다.

프랑스 진영의 하프라인을 넘어 우리 선수들끼리의 패스가 연결되던 중, 안정환이 설기현에게 볼을 건넨다.
이보다 한 두어 장면 전에, 프랑스의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외곽에서 설기현이 볼을 몰고 가다 두 명의 수비수에 에워쌓여 볼을 뺏긴 적이 있었다.
또 그렇게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설기현은 다시 같은 장소로 볼을 몰고 들어 갔다.
예의 그 굼뜬 듯 하게 보이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멋지게 두 수비수를 제치고 크로스를 밀어 넣었다.
마치 조금 전 상황에 대해 복수하기라도 하는 듯.

과연 설기현의 크로스는 "칼날크로스" 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대 수비와 골키퍼 사이를 가로지르는 빠른 크로스가 넘어 갔다.
기다리고 있던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궈 주고, 어느새 자리 잡은 박지성이 밀어 넣는다.
볼이 정확히 맞지 않아, 핑그르르~ 돌며 프랑스의 골문 안으로 빨려 가는데..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골, 골.. 그렇게도 기다리던 골이 박지성의 발끝에서 터져 나왔다.

후반 35분, 드디어 우리 팀의 만회골이 들어 간 것이다.
미친 듯 환호하는 우리 선수들과 넋나간 프랑스 선수들의 희비가 교차된다.

역시 기회는 열심히 뛰는 선수에게 오는 법인가보다.
비록 얀콜러가 보여 줬던 헤딩 슛이나, 프링스의 중거리 슛처럼 멋지게 들어 간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치고, 연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후반 중반 이후, 김남일이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고 체력적인 부담을 호소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교체카드도 모두 다 쓴 후여서 김남일의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 경련을 일으키게 되면 계속 그렇게 된다던데.. 
남은 시간이 아쉽고 교체 카드가 아쉽다.
비에이라가 이호에게 날린 니킥은 이렇게 엉뚱한 곳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버렸다.
그래도 남은 시간, 김남일은 잘 버텨 주었다.
고맙고, 고맙다.


후반 말미, 프랑스는 도라수를 말루다와 교체하고, 곧이어 트레제게와 지단을 교체한다.
이런 이런.. 아무리 앙리와 트레제게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트레제게가 후반 45분 출전용이란 말인가?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에서 트레제게 교체타임으로 시간끌기라도 하는 건가?
아아.. 아무리 앙리가 대단한 선수기로소니 트레제게가 이렇게 전락해 버리다니.
이봐요, 도메네크 감독.. 트레제게가 전갈자리인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시나.. 참내.


그렇게 경기는 약간의 공방을 더하다 종료되었고 우리는 귀중한 승점 1점을 추가했다.

대한민국 1승 1무.
승점 4점으로 여전히 G조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늘 스위스가 토고를 2점차 이상으로 이기지 않는 한, 다음 경기까지 조 1위는 여전히 우리의 몫일 것이다.
두 경기가 끝난 시점에서도 조별 순위표 맨 위에 우리 이름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우리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

늘 그렇듯,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 이하 코칭스탭에게 감사를.
라이프치히를 홈구장처럼 만들어 준 원정응원단의 노고에 치하를.
마지막으로 부디, 이번 거리응원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기를.. 
하긴, 경기 끝나고 바로 해가 떠 버려서 탈선의 기회는 확 줄지 않았을까? 
하하.. 기쁜 경기 결과에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일이 우습다.



선수 열전

평점을 메겨 보려다, 그라운드의 열다섯에 일일히 점수를 부여하는 일이 버거워 그만 두기로 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선수들 면면에 대해 끄적거린다.

역시 김남일의 수비력과 시야, 패스 센스는 일품이다.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패스를 차단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그의 수비력에 박수를 치는 일이 잦아진다.
중거리 슛의 정확도만 보강한다면, 이런 선수 언제 또 나올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결정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을까.
고작해야 5년? 그런 생각을 하면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유럽 도전이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 덕에 지금의 김남일도 있는 거고, 가까운 수원에서 적어도 격주에 한번은 그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수원 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리고 김남일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내게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다시 유럽에 노크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이영표는 토트넘 부동의 왼쪽 측면 수비수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국가대표팀에 오면 오른쪽으로 밀려 나곤 하는데, 그것은 왼쪽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오른쪽 자원이 취약한 탓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레 짚어 본다.
하지만 오늘의 이영표는 오른쪽에서도 제 기량을 십분 발휘해 주었다.
평소 오른쪽의 이영표를 보면, 왼쪽에 섰을때에 비해 수비에 간혹 문제점을 드러내곤 했는데 오늘 경기는 정말 완벽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역시 달리 프리미어리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단을 앞에 두고 발재간으로 제치는 장면에서는, 지단에게 "이젠 그만 은퇴해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단, 이제 남은 한 경기가 은퇴냐 잠시 은퇴연장이냐를 가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지단의 은퇴와 관계없이, 이영표는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정환은 박지성처럼 두개의 심장을 가진 선수가 아니다.
조재진처럼 포스트 플레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설기현처럼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편도 아니다.
이영표처럼 상대를 앞에 두고 헛다리를 짚어 낼 줄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에는 나름의 미학이 있다.
항상 여유가 있으며, 기품이 있다.
물론, 게임이 정말 안 풀리는 날에는 안정환이라고 별 수 있는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플레이에는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의 플레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가 큰 경기에 강한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 쯤은 인정하지 않는가?
오늘도 그가 교체되어 들어 올 때, 오늘 뛴 그라운드의 11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천수와의 교체였음에도 불구 가슴이 뛰던 것은.. 바로 그런 안정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나를 안정환 빠~로 몰아 갈까?
특정 선수의 빠~ 가 되고 싶진 않지만, 굳이 그럴거라면 No20. DG lee에게.. 히히 ^^;;
근데 이 녀석은 재활치료 중이다.. -_ㅠ


이천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선수들 중 하나지만, 그를 보면 자꾸 쓴소리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나의 기대치가 워낙 높은 탓이리라.
이천수는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스페인에서 돌아 온 후 더욱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성숙의 과정에서 이천수는 약간의 스타일 변화가 있던 듯 하다.
정신적인 면과 킥의 정밀함이야 말할 것도 없이 성숙해 졌겠지만, 이 스타일 변화로 인해 그의 과감한 돌파는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질풍처럼 달리는" 이란 수식어를 붙이기가 힘들어 진 것이다.
"좌천수 우태욱"이라는 닉네임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윙플레이어는 어느새 투톱의 small 이 더 어울리는 선수로 탈바꿈해 버렸다.
소속팀에서의 그의 위치는 현재,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인 듯 하다.
하지만 선수는 자기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억지스럽지만 설령 이천수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요구하면, 그에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여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본프레레가 그를 그렇게 기용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결과는 1골 1어시스트.

어쨌거나 지금의 이천수는, 좀 더 강단 있는.. 과감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
이동국에 이어 내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인 이 녀석, 남은 경기에선 제발 그래주길 바란다.
말디니 뒤통수를 후려 차던, 칸을 앞에 두고 호쾌한 발리슛을 날리던 그 모습을 다시 보여 달라고!



이제 우리 대표팀은 5일간 휴식 후, 스위스와 마지막 일전을 펼치게 된다.
오늘 스위스와 토고의 경기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결과가 어찌 된다 해도 아직 16강에 올라갈 나라가 확정되진 않는다.
모든 것은 조별리그 3차전이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
16강행에 대한 가능성이 어느때보다도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은 기간, 선수들은 컨디션을 더욱 끌어 올리고 심리적 안정을 취해 24일 對 스위스전을 최상의 전력으로 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오늘 부상이 염려되는 이호와 김남일 선수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바란다.

붉은악마의 함성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덧 -
몇번이나 화면에 잡힌 FC AN YANG, Forever BU CHEON의 걸개에 희비가 교차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표팀을 가진 나라에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부디 안양과 부천이 다시 K리그에 깃발을 나부끼게 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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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의 모든 경기 리뷰를 쓸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월드컵 원정 첫 승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여..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남아 돌아 경기 리뷰까지 쓰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도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기에 말이다.


리뷰에 앞서

이번 경기의 승리는 우리의 기나긴 월드컵 도전사의 한 획을 긋는, 원정에서 거둔 첫 승이다.
자국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는 이른바 4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축구의 변방국일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98년 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에도 불구하고 승점 자판기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만 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안방 호랑이, 심판 매수설등 4강의 위업을 폄훼하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월드컵 1승은 무척 값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별리그 1라운드가 지난 현재, 우리는 G조 1위라는 성적을 마크하고 있으며 경기력이 어떻다 한들 적어도 19일 새벽 4시까지 우리는 승자의 여유를 부려도 좋다.
무엇보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월드컵 첫 경기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끈 23명의 선수들 외 코칭스탭들에게, 그리고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해 준 모든 팬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경기 전 - 불안한 한국, 설상가상의 토고

EPL, 챔피언십리그, 분데스리가에서 각각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다시 해외진출 실패로 국내로 유턴했지만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선수들.
그 내실이야 어떻든 굳이 지난 2002년 4강 멤버가 다수 포함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선수들 면면은 지난 월드컵 대표들과 비교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해 대표팀은 정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고 주전급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과 컨디션 악화는 우리 대표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지난 4월,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동국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송종국과 김남일의 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설기현의 컨디션 난조 등은 현재 대표팀 전력에 상당한 누수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그건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이다.
선수들의 몸상태와 팀 전술 극대화는 각 팀의 전력, 그 자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선수가 이랬으면, 또는 이 팀의 전술이 이랬으면.. 하는 말은 이미 대회가 시작된 지금에서는 의미가 없다.
다만, 응원과 응원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토고를 역대 월드컵 출전국 중 최약체라 평가한 뉴스 기사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팀이 월드컵에 출전했는지 의문이라며, 토고는 다른 G조 국가들에게 승점을 벌어다 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더구나 토고는 월드컵이 개막했는데도, 선수들과 협회 및 코칭스탭들이 출전 수당등을 이유로 불화를 빚었고 결국 감독이 자취를 감추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첫 경기 하루 전날 감독이 복귀하여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가뜩이나 낮은 팀전력을 더욱 낮추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경기 전, 초점은 하나로 맞춰져 있었다.
이런 "팀 같지도 않은" 토고를 맞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전반 - 최악의 졸전,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 버렸다.

아드보카트 취임 이후로 우리의 주 포메이션은 4-3-3 이었다.
4명의 수비 중 좌,우 측면 수비수들의 활발한 오버래핑을 통해 미드필드 및 포워드 진의 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토고 전에서 우리는 3-4-3 이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낯선 포메이션을 선보이게 되었다.
포메이션과 출전 선수 면면을 보고, 
"상대가 투톱이니 3백을 가동하는가보다, 오히려 미드필드와 측면 수비가 따로 노는 부작용이 있던 우리 4백보다 더 안정적이겠구나" 싶었다.
결국 감독의 뜻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지난 9개월간의 4백을 버리고, 3백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경기 시작 전 우리의 국가가 두번 울리는 희대의 해프닝으로, 대한민국의 당연한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게다가 토고의 국가 연주 때 토고 선수들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 중 몇몇이 전형을 이탈(!) 하는 일까지 벌어져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내게 실소를 머금게 했다.

토고의 측면 수비가 취약하다던 협회 기술국의 자문에 따라, 토고 전은 당연하게도 측면 공격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선발 라인업으로는 왼쪽의 이천수, 오른쪽의 박지성, 가운데 조재진.
이천수와 박지성의 활발한 위치 변경과 함께 이천수에게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박지성에게는 저돌적인 중앙돌파를 기대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거기에 조재진의 안정된 포스트 플레이, 토고전 승리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드디어 킥오프, 하지만 우리 팀은 정상이 아니었다.
유효한 공격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수비는 불안하기만 했다.
이것은 비단 한 선수, 또는 공격진만의, 수비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첫 경기라는 지나친 부담감 때문인지 잔뜩 얼어 있었고 느린 볼처리와 패스미스가 남발했다.
공을 가지고 있던 없던, 선수들은 자기 위치도 찾지 못해 허둥댔으며 선수들간의 약속된 플레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더구나 02년 이후 우리의 최대 화두였던 "압박" 은 실종된지 오래였다.
그 덕분에 상대가 수비라인을 끌어 올리지도 않았는데 불구, 미드필드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고 공수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난 마지막 두 평가전 때의 모습이라 하겠다.
이게 과연 우리 대표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리팀의 특질이라 여겨질 요소들을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토고는 후방에서 날아 오는 긴 패스를 쿠바자와 아데바요르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수비수의 배후를 침투하는 플레이를 즐겨했다.
이 플레이는 무척 위협적이었으며, 그들이 좀 더 여유를 갖춘 선수들이었다면 2점 정도는 더 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험한 상황을 맞은 후 리플레이를 통해 나타난 최진철 선수의 입모양 - "집중해, 집중!" - 을 보더라도,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토고의 투톱은 좀 이상한 형태였다.
아데바요르는 톱이라기 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미드필드 진영으로 내려와 있었으며, 쿠바자는 오른쪽 측면에 치우쳐 높게 솟아 있었다.
이는 수비를 강화하면서 공격은 철저히 아데바요르와 쿠바자에게 맡기는 토고의 독특한 전략으로 보인다.
더구나 쿠바자가 오른쪽 측면에 깊이 위치했던 것은 우리 3백 수비의 약점을 왼쪽 측면 - 즉 김진규로 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전반 30분,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배후에서 날아 온 로빙패스가 김영철과 최진철, 두 수비수 사이로 날아 들었고 이 공의 처리를 미적거린 순간 쿠바자가 두 선수 사이로 짓쳐 들었다.
우리 3백의 왼쪽 측면, 원래대로라면 김진규의 수비공간이었으나 공격가담 후 미처 자리를 지키지 못한 틈을 토고가 파고 든 것이다.

이 실점 상황에서 몇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상대 토고가 지나치리만큼 오른쪽 측면(우리에겐 왼쪽 측면)을 공략했는데도 불구 그에 대한 대비가 적절치 못했다는 점.
둘째는, 김영철과 최진철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수비수들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 애매한 볼처리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골키퍼 이운재의 상황판단이 좋지 않았다는 점.
이운재의 상황판단은 김영철과의 호흡 불일치로 봐도 좋을 것이다.

화면에 피스터 감독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 마다 "교활한 늙은이"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짜증스럽게 여유있는 표정은 불과 한시간도 되지 않아 완전히 일그러지게 되지만 말이다.

어이없는 실점 상황 이후, 우리는 여전히 극도로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고 상대 토고도 크게 다르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다.
간간히 토고가 날카롭게 역습을 해 왔으나, 극단적 수비축구를 하는 토고팀으로서는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이는 잠그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려 퍼진 다음 나는 망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년간, 아시아권 팀들을 상대로 수없이 맛 본.. 극도의 수비축구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반 - 안정환은 게임을 바꾼다, 그리고 박지성은 게임을 만든다.

이번 월드컵의 테마는 가히 역전 드라마라 하겠다.
"상대가 잠글 때, 우리는 희망을 본다." 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 잠그기에 들어간 팀은 처절한 끝을 맛 보아야 했다.
아.. 이러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뭐냐 싶기도 하지만 대세가 그렇다는 뜻이다 -_-;

며칠 전 어떤 경기에서 서형욱 해설위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법사가 필요하다. 팀을 바꾸는 것은 단 한명이면 충분하다."
이런 한 명의 마법사로 게임의 양상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제 우리의 마법사는 분명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의 투입으로 인해 게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으며, (전반의 그것에 비해) 우리 팀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후반 시작 후 안정환이 투입된 것을 보고, 으레 조재진이 교체되어 나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김진규와의 교체.
우리 팀의 포메이션은 다시 4백으로 돌아선다.
그런데, 4백은 4백이되 좀 재미있는 4백이다.
그간 우리가 곧잘 쓰던 433이 아닌, 442 였던 것이다.
(4-2-3-1이나 4-2-2-2 모두 442의 한 전형으로 볼 때)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처진 스트라이커의 위치로 뛰었는데 안정환이 이런 위치에서 경기 하는 것을 보는 일은 사실 무척 오랜만이다.
그가 역전골을 넣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이런 포지션으로 뛰는 것을 보는 일은 충분히 즐거웠을 것이다.
안정환의 투입은 우리 팀의 공격 전개력을 180도 바꿔 놓았으며, 이는 고립된 공격진이 아닌 미드필드와 유기적인 연계를 맺는 공격진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조재진이 홀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에서, 안정환이 미드필드와 공격진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아 나선 것은 실로 훌륭한 대처였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게임을 박지성이 "만들었다."
무엇보다 박지성의 저돌적인 돌파.
그렇다, 우리는 박지성에게 저런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박지성은 아주 유리한 위치에서의 프리킥 기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상대팀의 중앙수비수이자 주장인 아발로의 퇴장을 이루어내 팀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만들었다.

연이은 이천수의 예리한 프리킥 골.
전반전의 프리킥 찬스를 수비벽에 막혀 땅을 쳐야 했던 이천수는, 절치부심하여 다시 찾아 든 프리킥 기회를 골로 만들었다.
이동국에게 보내는 골세리모니와 아드보카트에게 몸을 던진 그를 보며, 지난 해 스페인에서 복귀해 축 쳐져 있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코끝이 찡해왔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구나, 하고 괜한 생각(?)을 해 본다.
이후 이천수는 몇몇 날카로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실상 기대하던 것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끌려가던 상황에서의 동점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제는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었다!

안정환이 바꾸고 박지성이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화려한 카드가 있었다.
후반 22분,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던 이을용과 김남일의 교체.
후반 시작과 함께 칼을 빼어 든 아드보카트는 김남일의 투입으로 예봉을 더했다.
확실히 베테랑들은, 그들이 왜 베테랑인지를 그라운드에서 충분히 보여 주는 듯 하다.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미드필드진을 지휘하고, 위치를 점검하는 김남일의 모습을 보며 믿음직하다고 느낀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김남일의 투입으로 미드필드는 다시 생기를 찾게 되었고,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압박이"가 돌아왔다.(압박아.. -_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날카로운 패스를 날리는 김남일을 보며 저게 정말 컨디션 난조라는 선수 맞는가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16강 이후 토너먼트를 준비하기 위해, 선수를 보호하려는 아드보카트의 전략이라고도 하던데 그 말이 그리 허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두드리면 열리리라.
김남일의 투입 효과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격진은 안정된 미드필드를 바탕으로 토고 수비진을 흔들어 댔으며, 미드필드를 손에 넣은 우리 선수들은 볼배급이나 공격 차단에 있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후반 26분, 드디어 기다리던 역전골이 안정환의 발끝에서 터졌다.
혹자는 수비수 맞고 들어갔다며 "뽀록슛" 운운하기도 하지만, 수비수를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위력적인 슛이었음에 틀림없다.
더구나 그물에 맞고 튀어 나올 정도로 강력하고 호쾌한 슛.
비하할 필요가 없다, 승리를 즐겨라.

이후, 화면에 잡히는 두 감독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교활한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있던 피스터는 굳은 표정이 되어 큰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당황하는 표정과 분위기에도 불구, 나는 그의 표정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로즈업 좀 자제해 달라고 들리지도 않을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후 경기는 한명 부족한 토고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역습하는 형태로, 우리는 큰 체력 소모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후반 37분, 마지막 교체카드로 조재진이 나가고 김상식이 들어 왔으며 이는 곧 감독이 잠그기 모드를 천명한 것과 같다.
전형은 다시 3백으로, 아니 양 측면 수비수를 포함해 5백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양팀은 의미없는 공방을 벌이다 그마저도 잦아진 상태로 후반 종료 휘슬을 맞게 된다.


대한민국 월드컵 원정 첫승.
그 감격적인 역사의 순간에 함께 숨을 쉰다, 꿈이 아니다.





경기 후 - 승리의 기쁨, 그러나 경계하라.

상대의 퇴장으로 수적, 체력적으로 열세인 상태 - 왜 좀 더 공격의 고삐를 당기지 않았느냐 하는 불만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포츠맨쉽이니 페어플레이니 하는 거창한 얘기는 집어 치우고, 당장 남은 경기에서 골 득실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갈 길이 멀다.
선수들의 체력은 비축되어야 옳고, 승점은 3점이면 족하다.
더구나 잔뜩 웅크리고 있던 토고의 역습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10분도 안 남은 상태에서 굳이 무리수를 띄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경험 부족인지, 안전한 선택이었으나 영리하게 대처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프리킥 찬스에서, 10Cm 패스가 아니라 최소한 10m 짜리 패스만 했어도 야유를 들을 일은 없었을텐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우리는 승점을 3점 획득했다는 것이고, 역전극으로 선수들의 사기도 팽배한 상태.
그리고 체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고무적인 것은, 상대의 전술에 대한 대처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간 아드보카트 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의 노림수에 대한 대처가 지극히 모자랐다는 점이었다.
당장 지난 노르웨이전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우리의 코칭 스탭이 선수교체나 전술 변화로 흐름을 바꿔 내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누구나 예상한 것이 빗나갈 수 있다.
또는 감독의 구상에 선수들이 맞춰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감안해야 하고, 또 빗나간 예상을 최대한 빨리 수정/보완해 내야 하는 것이 코칭스탭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경기에서 예상이 빗나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매우 미욱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아드보카트호의 불안요소는 선수의 기량도, 포메이션도, 평균신장 도 아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의 부재" 라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어제 경기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뻔한 선수기용과 의도적 잠그기 라는 오명을 뒤로하고, 어떤 마법을 부려 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경계하라, 문제는 항상 상대가 아닌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진정한 실력이 이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긴장했던 어쨌던 보여 줄 수 있는 실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다.
남은 경기는 19일의 對프랑스전, 23일의 對스위스전.
두 나라 모두 탄탄한 수비와 강력한 중원, 날카로운 공격을 갖추고 있어, 어느 위치를 보더라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당장 어림짐작으로만 봐도 두 팀 모두 토고보다는 강팀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플레이를 펼쳐 보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
당장 토고전만 보더라도, 전반의 무기력한 모습으로는 절대 역전극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드보카트는 정말 토너먼트 이후를 노리고 있는가?
우리의 모토인 압박과 빠른 2선 공격이 사라진 것은 체력안배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는가?
그렇다 하면, 다음 프랑스 경기를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게 토너먼트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고 싶다.
02년,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맞아 싸울 때의 우리의 모습처럼..
월드컵 직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평가전에서의 우리처럼.(잉글랜드 제외-_ㅜ) 
월드컵이 끝난 후 브라질 정예와 3-2로 박빙의 승부를 내던 그때의 우리처럼.
어디를 보더라도 우리 유니폼만 보이던 그때의 우리를 다시 보고 싶다.
02년에는 3-2로 패했지만 지금의 프랑스라면 3-0 으로 제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의 기량만 되찾는다면, 더구나 압박의 아류 격인 스위스 따위는 말 할 것도 없이 말이다.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게 되길 바란다.
태극기의 물결이 독일땅에도 펼쳐지게 되길 바란다.
세계인들이 우리에게, 우리 선수들 - 형제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내밀게 되길 말이다.

잊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미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23인의 대표 선수들이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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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4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월드컵이 다가왔다.
이번 월드컵에도 역시, 우리 대표팀은 앞다툰 언론 보도와 뭇 사람들의 기대로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산업에서는 물론 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온통 월드컵 특수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월드컵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눈살이 찌뿌려 지기도 한다.
"좋은게 좋은 거긴 한데.. 너무 흥분해 있어요." 하고 말해 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즐기는 한 방식일 뿐인데.

그런데.. 정말 축구를 즐기는 것은 맞는가? 
예상 성적을 말하고, 각국 대표팀의 포메이션과 선수 이름을 줄줄 외는 것을 보면 분명 축구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우리네 축구 현실을 돌아 보노라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혹시 "모두 모여 얼싸앉고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 보는 놀이판"에 온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성적이야 어떻든, 경기야 어떻든 그저 신명나게 놀기만 해야 할 것이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들려 올 욕설과 비난이, 나는 벌써부터 두렵다.


**
94년에도 98년에도.. 그리고 그 훨씬 이전부터 월드컵은 있어왔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2002년 월드컵.
"신화"라고 표현되곤 하는 2002년 월드컵에 대해 따로 코멘트를 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 행복했던 한달, 그 열광적인 한달의 기억으로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팬이 되었다.
"전국민의 붉은악마" 같은 말 아니어도, 그 한달 동안 우리는 모두 한 팀을 응원하는 팬이었으니까.
그러고보면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많이도 바꿔 놓았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전의 월드컵과 02년 월드컵, 그리고 앞으로 2주도 채 남지 않은 06년 월드컵.
02년의 괄목할 성적 외, 과연 무엇이 다른가?
정작 축구엔 별반 관심도 없으면서 국가대표팀을 향한 기형적인 관심과 성급한 예상, 그리고 섣부른 기대.
우리는 정말 그런 기대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까?


***
고백하건데 내게 축구란.. 그리고 월드컵이란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이 못 되었다.
프로축구는 고사하고 그렇게 열광하는 대표팀 축구조차 잘 알지 못했다.

예전에 국내 축구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저 황선홍이나 홍명보, 서정원이나 최용수 정도.
고종수는 남들이 다 천재라니 천재인가 보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98월드컵에 없었으니) 안정환은 그렇게 잘 한단다.
그래, 이동국 얘기도 많이 나오더라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서 튀어 나온 걸까?
내가 아는 사람을 다 합쳐봐야 열명도 안 되는데, 축구는 11명이 한다.
리저브 멤버도 있을테니, 최소한 스무명은 될게다.
그럼 대체..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나온걸까?

국가대표라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축구 국가대표는 그 나라에서 제일 축구 잘한다는 사람을 모아 놓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그 기준은 뭐고, 인력 Pool 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너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다 전철에서 우연히 한 스포츠 신문을 보게 되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프로축구, K 리그였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 프로축구라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스포츠 신문의 1면이나 TV의 스포츠 중계 같은 걸 보게 되면 부산이 어떻고 수원이 어떻고, 포항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들어서 말이다.
사실 나같이 축구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도, 간간히 스포츠 신문을 통해 프로축구에 노출 되어 있긴 했나보다.
샤샤의 "신의 손" 사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샤샤나 우승팀 수원삼성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저 아.. 그런 사람이 있구나, 그런 팀이 있는가보구나 했을 뿐이다.
그래, 내게 K리그란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난 FC 코리아 - 국가대표팀의 팬이었다.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는, 그리고 선수들의 소속팀의 경기가 있는 K 리그는 그저 국가대표 양성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국가대표 경기에 열중하다보니, 안양의 최용수도 포항의 이동국도 모두 내 선수인데..
그들이 서로 적이 되어 경기를 하는 프로축구엔 그다지 정을 느낄 수가 없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경기장에 뛰는 선수들 중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 도무지 재미도 없고 감정 이입도 되지 않는 것이 맞을게다.
아는 바가 없으니 도무지 재미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편파적인 언론을 도저히 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이 시작된 것은 축구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안다" 라고 하는 것에 열중하는 나는, 특히 잘 모른다라는 것에 대해 괜스레 죄의식을 갖고 있는 나는, 그때부터 축구에 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게 된 지금엔, "재미가 없어 관심이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내게 적용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게 축구는 단순한 공차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단지 조금 더 알고 싶어 관심 갖게 된 축구를 통해, 프로축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국가대표를 위해 프로축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의 내게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었다.


*****
국가대표든 뭐든.. 축구 선수는 사실 축구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밥벌이는 프로축구인데, 누구나 그렇듯 당연히 축구 선수에게는 자기 밥벌이 - 프로축구가 가장 중요하다.
그 밥벌이가 시원찮게 되면 축구선수를 희망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테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줄면 당연히 국가대표의 실력도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열광하는 대표팀이라는 것은 프로축구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표팀의 성적과 경기력에 관심을 가지면서 프로축구는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어떠한 대가도 노력도 없이, 그저 열매만 취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는 것, 그건 조금 거칠게 말해 부도덕함일 뿐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프로축구 - 우리 K리그는 재미가 없어 보지 못하겠노라고.
느리고 실력이 떨어져서 도무지 예쁘게 봐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당장 TV만 켜면 곧잘 나오는 영국의 EPL 이나 스페인의 라리가 같은 걸 보라며, 그런게 축구지 우리 프로축구는 동네축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며 비하하곤 한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영국과 브라질의 경기,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 심지어 중국이어도 좋다 - 가 한날 한시에 벌어진다 치자.
그리고 서로 다른 방송사에서 중계를 해 준다 칠 때 우리의 채널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기력과 볼거리에 우선한다면 당연히 영국과 브라질의 경기를 보는 것이 맞다.
어떻게 말한다 쳐도 우리들의 경기력과 그네들의 그것은 한참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우리나라의 경기를 보게 될 것이다.
경기력과 보는 즐거움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그들간의 비교가 아니더라도 몰디브 같은 초약체와의 경기중계의 시청률에 대해서 과연 재미나 경기력 따위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정말 우리나라의 축구가 그렇게 재미 있어서 보는 걸까?

바다 건너 일본은 1부 18개, 2부 12개 팀으로 이루어진 J리그의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보다 십년은 먼저 자리잡은 우리 K리그는 고작 14개의 팀. 
그네들의 그것에 반도 되지 않는다.
경기력으로 따졌을 때, 아직 J리그는 우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J리그가 우리보다 더 좋은 리그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인프라나 행정이라면 모를까 경기력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의 단골 손님이 J리거가 아닌 K리거라는 점과,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팀간 전적이 그것을 대변한다.

평균관중 1만명도 채 되지 않는 우리 K리그는 현재 아시아 리그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관중의 열기가 뜨거워서도 아니고, 축구행정이 잘 뒷받침 되어서도 아니다.
그저 성적이 좋을 뿐이다. 마치 우리 대표팀 처럼 말이다.
이런 K리그가 "걸어 다니고 재미가 없어 못 봐주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물어야겠다.
K리그를 보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일 뿐이라고?

그야 어떻든 나는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정말 재미가 없어서 보지 못하는게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정말 우리 프로축구에 관심을 가져 주기가 싫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국가대표팀은 장차 정말 "관심 가져 주고 싶지 않은", 그리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 그런 팀이 될 것이다.
프로축구에 대한 다른 얘기는 다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그 대표팀을 위해 우리는 프로축구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 줄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이렇게 접근하는 것에 나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


******
어쩌면 우리나라 축구는 그 투자에 비해 너무 큰 결과를 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관심도로 볼 때, 거의 축구 불모지에 가까운 이 나라에서 월드컵 단골 진출, 그리고 02년 월드컵 4강.
이런 성적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성적을 보며 어쩐지 나는 자꾸 우울해진다.
따로 투자 하지 않아도, 따로 관심 가져 주지 않아도..
그들이 오늘도 텅빈 경기장에서 그들만의 경기를 한다 하더라도, 프로팀이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연고이전을 밥먹듯 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국가대표팀은 성적을 내 주고 사람들이 그에 열광하는 이런 구조가 언제까지 반복될 수 있을 것인가.

맹목적인 대표팀 사랑은 기형적인 축구 사랑에 다름 아니다.
당장 이번 월드컵에서 참패하게 되면 그 여론의 화살은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애꿎은 선수들은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너희들(어느새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은 고작 그 정도 일 뿐이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 다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한다는 얘기가 어떻게 말이 되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으나 유럽의 강호들에게조차 월드컵 출전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실제로 피파랭킹 2위의 체코와 3위 네덜란드는 02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현재 11위인 나이지리아와 덴마크는 이번 월드컵에 나오지 못한다.
(일본이 18위고 독일이 19위인 피파랭킹이니 믿을 거 하나 없다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지표는 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소속 지역은 아시아고,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보다 축구를 더 잘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지만 우리는 지난 월드컵 예선도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이라는 얘기가 그다지 허구적인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꽤 높은 실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호주가 아시아 지역예선에 참가하게 되는 다음 월드컵 때 부터는 얘기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그토록 기대해 마지 않는 월드컵에서의 참패.
어쩌면 당장 98년처럼 프로축구 중흥의 바람이 몰아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작스런 바람이 오래 갈 리도 없거니와, 그때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월드컵 4강의 추억(?).
98년의 경우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1승을 챙기지 못한, 그러니 관심 갖고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으로 그 영광을 재현해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만약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다면, 관심이 아닌 경멸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체의 발달.
TV채널을 돌리다보면 K리그보다 유럽리그 중계가 더 많이 보인다.
K리그 중계는 한달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지만, 유럽리그는 매주 몇차례씩 중계를 해 주곤 한다.
물리적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이 K리그가 좋지만, 매체의 접근성은 완전히 반대라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뭘 보여 줘야 관심을 가지던 말던 할 것이 아닌가? 
하물며 "재미 없고 느려 터진" K리그는 오죽하겠는가.
이런 생각들이 들때면, 잘 보고 있던 유럽리그 중계도 꺼버리고 싶어진다.

지금도 외신을 통해 심심찮게 들리는 02년 월드컵에 대한 판정의혹과, 
우리 대표팀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비하는 그만큼 우리 축구의 저변이 형편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월드컵 4강이라는 우리의 좋은 성적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뽀록"에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뽀록"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뜻밖에 수능 대박 맞은 학생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분 나쁘지만 그 손가락질 조차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지 않는 한 그런 불명예의 꼬리표는 언제고 계속 붙어 다닐 것이다.
설령 우리가 월드컵 우승을 한다 하더라도 1부만 있는 리그, 관중석이 텅 비어 버린 리그를 가지고 있는 한 말이다.


********
지난 12월, 토고와 스위스가 같은 조에 편성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했던 기사가 있었다.
다만 이 기사에서는 시드 배정국을 프랑스가 아닌 멕시코로 예상했을 뿐,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던 그 조와 실제 우리가 편성된 조는 거의 같다.
사실 12월까지만해도 약체로 분류되던 나라들을, 같은 조에 속했다 해서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 실력으로 최약체라고 평가받는 두 나라가 한 조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약체라고 부를 만한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냉정해지자.
우리는 아직도 축구 변방일 뿐이며, 객관적 실력으로는 월드컵 1승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환상적인 조편성이라 하더라도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제압하고 8강에 오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다는 것도 전문가 뿐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좋아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예상과 기대에 어긋났다고 해서 선수들을 욕하고 대표팀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아무 노력없이 그저 과일을 따먹을 뿐이다.
과일에 잘 여물지 못했다 해서 인상을 찌뿌리지 말자. 
그나마 따먹을 과일이 있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설령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참패하고 돌아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오히려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잠시나마 주빈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떳떳해지자.
우리가 열광하는 대표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단 한번도 매진을 기록한 적이 없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지난 주 두번의 평가전 내내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 흔히 1200만 인구, 실제 인구는 1100 만을 약간 넘긴다고한다.
그런 대도시에서 6만여석의 경기장이 매진되는 사례는 국가대표 경기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단 한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대표팀의 성적이나 경기력을 두고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또, 그런 우리가 K리그가 재미있네 없네 하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다.
비판이란, 책임을 지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 월드컵 때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표팀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떳떳하게 바래보자.
비록 이번에는 그저 주는 과일을 받아 먹는다 치더라도, 다음 번에는 진정한 주체로 참여해 보자.
진정 축제를 즐기는 것은 그런 것이다.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자.
그리고 떳떳하게 응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자.
부디 떳떳해지자.


우리가 하고 있는 축구 사랑은 어떤 것인가?
혹시 그 "재미없고 느려터진 K리거"들로 채워진 국가대표팀에 열광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맹목적인 대표팀 사랑은 기형적인 축구 사랑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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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으면 얼마나 바빴다고.. 작년엔 그 좋아하는 축구장도 한번 못 가고 말았네.
올해는 최소 6번은 찾아 주겠다 다짐해봐.
6이란, 관심 있는 팀의 경기 중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경기, 또 같은 수도권에서 있을 다른 빅매치와의 중복을 고려한 숫자지. 하아~

아래는 K 리그 3월 일정표.
굵은 글씨는 서울/수도권에서 하는 경기.
굵고 빨간 글씨는 서울/수도권에서 하는 경기 중 특히 볼만할 듯 한 경기.
파란 글씨는 볼만하겠지만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너무 멀어 애석한, TV 중계를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경기.

일정표를 보다 보니.. 수도권엔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 빅매치가 많아지겠어.
일단 수원 성남 울산 포항. 요 네팀 서로 만나면 무조건 빅매치 되는게다. ㅋㅋ

올해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이니만큼 K리그 경기를 예년보다 많이 방영해줄테니 벌써부터 좋다.
하지만 그래도 경기장엔 가고 싶어.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미친듯 뛰댕기는 선수들.
그리고 극적인 결승골까지 함께 해 준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
Forza!!

1 2006/03/12 15:00:00 포항 vs 전북 포항전용
2 2006/03/12 15:00:00 울산 vs 광주 울산문수
3 2006/03/12 15:00:00 수원 vs 서울 수원월드컵
4 2006/03/12 15:00:00 대구 vs 전남 대구월드컵
5 2006/03/12 15:00:00 경남FC vs 제주 창원종합
6 2006/03/12 15:00:00 대전 vs 성남 대전월드컵
7 2006/03/12 15:00:00 부산 vs 인천 부산월드컵
8 2006/03/15 19:00:00 전남 vs 울산 광양전용
9 2006/03/15 19:00:00 제주 vs 수원 서귀포월드컵
10 2006/03/15 19:00:00 성남 vs 대구 탄천종합
11 2006/03/15 19:00:00 대전 vs 부산 대전월드컵
12 2006/03/15 19:30:00 광주 vs 포항 광주월드컵
13 2006/03/15 19:30:00 인천 vs 경남FC 인천문학
14 2006/03/15 20:00:00 서울 vs 전북 서울월드컵
15 2006/03/18 15:00:00 광주 vs 전남 광주월드컵
16 2006/03/18 15:00:00 전북 vs 제주 전주월드컵
17 2006/03/18 15:00:00 경남FC vs 대전 창원종합
18 2006/03/19 15:00:00 포항 vs 서울 포항전용
19 2006/03/19 15:00:00 울산 vs 성남 울산문수
20 2006/03/19 15:00:00 수원 vs 인천 수원월드컵
21 2006/03/19 15:00:00 대구 vs 부산 대구월드컵
22 2006/03/25 15:00:00 제주 vs 서울 서귀포월드컵
23 2006/03/25 15:00:00 성남 vs 광주 탄천종합
24 2006/03/25 15:00:00 인천 vs 전북 인천문학
25 2006/03/26 15:00:00 부산 vs 울산 부산월드컵
26 2006/03/26 15:00:00 대전 vs 수원 대전월드컵
27 2006/03/26 15:00:00 대구 vs 경남FC 대구월드컵
28 2006/03/26 15:30:00 전남 vs 포항 광양전용
29 2006/03/29 19:00:00 포항 vs 제주 포항전용
30 2006/03/29 19:00:00 전남 vs 성남 광양전용
31 2006/03/29 19:00:00 전북 vs 대전 전주월드컵
32 2006/03/29 19:00:00 수원 vs 대구 수원월드컵
33 2006/03/29 19:30:00 광주 vs 부산 광주월드컵
34 2006/03/29 19:30:00 울산 vs 경남FC 울산문수
35 2006/03/29 20:00:00 서울 vs 인천 서울월드컵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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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지난 해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최종 승부를 가르는 슈퍼컵 대회가 열렸었어.
(지난해 K리그 우승팀은 울산, FA컵 우승팀은 전북이었어.)
이벤트성 경기긴 하지만, 우승팀은 올해 내내 유니폼에 금장 패치를 달 수 있다 하니 이겨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 전북?
난 원래 전북의 플레이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어.
작년 중반까지 전북의 사령탑은 조윤환 감독이었는데, 이 사람.. 예전에 니폼니쉬 감독이 부천 SK에 있을 때 밑에 코치로 있던 분이지.

니폼니시에게 배운 것 답게..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니폼니시와 거의 흡사한데..
니폼니시 스타일이 뭐냐?
"아기자기한 패스웍, 그러다 킬패스를 바탕으로 한 원터치 슈팅. "
이거 참.. 교과서적이긴 한데 교과서가 으레 그렇듯 실제로 해 볼라치면 답답하게 꽉 막힌 축구가 되어 버린단 말야.

그러다 후반 되면 의미없는 뻥축구가 되어 버리고.. 아마 선수들도 지치나봐.
하긴, 보는 사람도 그런데 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아무튼.. 그래서 그동안 난 전북 경기를 별로 안 좋아 했었어.
그런데 작년 후반에 조윤환 감독이 지난 4년간의 성적부진을 이유로 경질당하고 최강희 감독이 새로 부임했어.
이 분.. 워낙 유명하신 분이긴 하지만 이 분 사진을 혹시 봤다면 알겠지만 인상이 굉장히 안 좋으시거든.
"메두사" 라던지.. "사마귀" 뭐 이런 별명 붙여 놓으면 딱일 것 같이 생기신 분이야.
덕분에 "능력있다 하긴 하지만 인상 참 뭐하다. 아마도 연줄에 의한 돌려먹기 식 인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최강희 감독이 온 후 첫경기였던가?
포항에서 열린 포항과 전북의 경기를 보는데, 포항이 (간신히) 이기긴 했지만 전북의 팀컬러가 예전의 그것과 조금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전북이란 팀에서 최강희 감독의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비록 지금까지는 전북이 그다지 매력적인 팀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기대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어.
물론, 감독의 축구철학이 팀내로 녹아드는 데는 몇년이 걸린다니 충분히 기다려 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고.


- 울산!
아기자기한 패스웍을 표방하는 전북축구에 반해 울산은 선이 굵은 경기를 해.
전통적인 킥앤러시.
뻥축구라 폄하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하지만, 부산이나 서울이 보여 주는 뻥축구와 울산의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어.
그리고 그 차이는 아마도 선수 개개인의 능력 차이겠지.

사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축구가 전형적인 뻥축구지만 그들의 경기를 보고 뻥축구라 욕할 맘이 안 드는 이유는, 뻥축구긴 해도 재밌거든.
보는 사람마저 숨가쁘게 빠르고, 정확하고. 그야말로 뻥축구계의 예술이지.
일단 베컴이 차 주고 오웬이 마무리 지으면 대충만 잡아도 하이라이트 편집 영상이 되어 버리니까.

예전에 울산은 현영민과 박진섭(현재는 성남)이 차 주고 천수가 달려가 마무리 짓는 축구를 했었어.
현영민과 이천수를 베컴과 오웬에 비교하는 건 좀 뭐하지만 어쨌건 호쾌한 축구를 한다는데는 대동소이 했다 이거지.
02~03년의 이 패턴으로 울산은 그야말로 승승장구 했었고, 이때 천수는 "K리그 사기유닛"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어.
딱 한 팀, 대전을 제외하고는 울산을 막을 팀이 없었어.(이상하게도 약체인 대전에 힘을 못 쓰는 울산)

그러다 천수가 스페인 라리가로 진출하고, 울산은 이천수 대신 최성국으로 이 킥앤러시를 이어가야 했는데..
최성국과 이천수의 기량 차이로 인해, 울산 축구는 변화를 겪어야 했어.
그 결과 04년, 울산은 4백을 바탕으로 한 4-4-2 로 전법을 바꾸게 되고, 단순한 킥앤러시가 아닌 전방위 압박을 기본으로 하는 팀으로 바뀌었어.
김정남 감독은 워낙 인품 좋기로 소문난 분인데, 인품과는 별개로 지도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했었어.
하지만 리그에서의 꾸준한 성적,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전술변화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지도력은 수준급이라는게 내 견해야.
아무리 강팀이라해도, 실력의 평준화가 이뤄진 K리그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
심지어 FC 서울 같은 팀은 매년 리그가 시작될 때는 상위권을 예상하다, 리그를 마칠 때는 하위권에서 맴돌곤 하거든.
그에 반해 울산은 정말 대단한거야. 
비록 우승은 작년 한번뿐이지만 지난 5년간 계속해 수위를 다퉈오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울산 축구에 문제는 없느냐?
굳이 짚어내자면 딱 하나, 한골차 승부로 잠그기 모드 돌입하는 게 문제야.
사실 이거 문제야, 큰 문제지.
우리 김정남 감독께서.. 워낙 "신승" 하는 걸 좋아하시는 터라, 한골만 넣으면 잠그기에 돌입하신단 말야.
한번 잠그기 들어가면 시종일관 수비진에서 상대 골에어리어 쪽으로 뻥뻥 차 지르고, 툭 치기만 해도 그라운드에 나뒹구는데..
보고 있다 보면 환장하지.
경기장에서 봤다면 돈 아깝다고 욕할 판이고.
아무리 내 사랑 울산 팀이지만, 이런 건 자중해 줘야해.

이건 비단 울산만의 문제가 아닌, K리그 자체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어.
그러다보니 축구팬들끼리 저 팀도 이기고 있을 때 이랬는데 우리 팀이 그러는게 뭐가 문제냐 하며 툭탁거리는 게 심심찮게 들리기도 하고.
분명 그런 점에서 K리그의 팀들은 모두 원죄를 갖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 이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만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게 내가 좋아하는 팀이었으면 더 할 나위 없겠고.


- 슈퍼컵!!
아무튼.. 그렇게 두 팀이 맞붙었는데, 개막전 슈퍼컵을 TV에서 중계해 주더라고.
역시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는 이래서 좋다.
평소엔 축구에 관심도 없던 언론이 들썩이고,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축구 매니아가 되니까. 하하..
좀 씁쓸하긴 하지만, 나 역시 주는 열매 받아만 먹는 베짱이 축구팬으로서..
그저 주는 열매에 감사하며 즐거운 맘으로 TV를 봤지.

아쉽게도 일 때문에 전반전을 놓쳤는데, 후반전 시작 휘슬과 함께 스코어를 보니 0:0.
"오랜 휴식기를 거친 후의 첫 경기라 재미 없게 진행되는건가?" 하고 생각하니 웬걸..
너무 박빙이라 골이 들어갈 듯 들어갈 듯 들어가지 않고 있던 거야.
해설자가 무승부 경기를 이렇게 재밌게 해설해 본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몇번이나 말하는데..
속으론 "이 우라질 것아.. K리그엔 원래 무지 재밌는 경기가 많단다. 니들이 평소에 관심을 안 가지니 모를 뿐이지" 하며 열심히 봤어.
정말.. 들어갈 듯 들어갈 듯 안 들어 가는데..
양팀의 공격도 수비도 정말 정상급이었어.
괜히 작년 우승팀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
그렇게 팽팽한 균형이 깨어진 건 후반 43분이 넘은 시간.

0:0 으로 마치고 30분짜리 연장전에 들어가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후반 35분 무렵, 부상으로 나간 이종민 대신 들어 온 장상원의 헤딩 결승골로 게임은 끝이 나게 됐어.
단 한골차 승부, 스코어 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 게임은 정말 재미있었어.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휴식기가 너무 긴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될 정도로 말야.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혹서기 한달, 혹한기 한달. 딱 이렇게만 쉬면 참 좋을텐데..

그렇게 슈퍼컵 시청을 마치고 나니..
아직 개막도 안 한 K 리그가 벌써부터 엄청 기다려진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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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터 줄곧 외길만 바라보던 사람이 있어.
먼저 간 사람들의 자취를 좇으며 나도 언젠가는.. 하며 꿈을 키웠을 테고,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나태해지는 마음을 곧추세우며 어제 같은 오늘을 보내던 사람.
분명 하루 일과는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를리 없었겠지만, 
꿈을 향해 나가는 걸음의 폭은 어제의 그것보다 조금 더 커지고
단단해지는 내면의 세기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커져 갔을거야.

잠에서 깨어 보니 최고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어느 순간엔 정말 최고의 찬사를 한몸에 받기도 했어.

그래봐야 우리들 대학교 다닐 나이.
그 나이 - 우리도 다 겪어 봤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어린애는 어린애지.
몸만 훌쩍 자라버린 어린아이.
간혹 실수가 있더라도 잘 타일러 줬어야 하는데.. 다들 그러지 못했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고작해야 약관의 나이, 아직 이룬 것 보다는 이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성급한 우리는 그걸 참고 기다리지 못했어.
그에게 내려지는 최고의 찬사들과 커가는 세인의 관심 속에 우쭐해지는 마음과 감당할 수 없이 가해지는 부담.
아마 그 크기는 겪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거야.
그래서 그가 과거 간혹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었다고 해도, 나는 눈감아 줄 수 밖에 없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테니까..

그렇게 최고의 순간들이 지나고 다음 순간에는 이유없이 가해지는 비난과 손가락질에 눈물흘리는 날들이 찾아와.
누차 말하지만 이제 갓 나이 스물을 넘겼을 뿐인데..
긴 우리네 인생, 그 중 고작 4분의 1을 살았을 뿐인데..

자꾸 무언가 더 보여 줘야 한다며, 이번에도 보여 주지 못하면 너는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은 그를 점점 더 벼랑으로 내몰아 가고.
이제 그가 선 곳은 벼랑. 
한 발짝만 잘 못 디뎌도 밑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그 상황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희망이었겠지만, 그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절망 뿐이었을거야.
누군들 안 그랬을까.

늘 바라 마지 않던 영광의 순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고, 
최고의 찬사로 수식되던 자신의 이름엔 어느새 조소와 멸시가 가득해 지는 걸 바라 보며 빈 주먹 움켜 쥐고 눈물을 뿌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걸 생각해 보면 눈앞이 아득해 지지 않을 수가 없어.
아, 나는 그런 절박함을 느껴 본 일이 있었을까?
몰라서 그렇지 무척.. 정말 몹시 힘들었을거야.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그냥 얘기가 이렇게 끝났더라면, 나는 더 이상 그를 주목하지 않았을거야.
그냥 많은 안타까운 얘기들 중 하나로 묻혀, 그저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고 말았을거야.
가끔 술자리 안주 대용으로는 모를까 지금처럼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냉대와 질시, 조롱과 멸시를 딛고 일어서서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삶을 다시 최고의 자리로 올려 세우려 하고 있어.
덕분에 그를 바라보던 차가운 시선에 조금씩 호의가 묻어 나오는게..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야.
하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고, 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는 듯 보여.

실제로 그에게는 이룬 것보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이..
그리고 보여 준 것 보다 앞으로 보여 줘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어쩌면 인생이라는게 죽는 날까지 이뤄야 할 것, 보여줘야 할 것들 투성이인지도 모르지.
그런 인생을 그 역시도 살아 가고 있는 걸테고.

지금 이 순간, 내가 그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려 주는데 망설임이 없는 것은.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절망의 나락에서 올라섰기 때문이야.
앞으로 그에게 또 어떤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지만,
그래서 또 다시 절망의 한 가운데 그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길을 걸어 갈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야.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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