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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를 비난 하는 것은 팬의 권리가 아니다.
    쉼을 위한 이야기/축구 2005. 8. 7. 23:05

    요즘 축구 관련 커뮤니티를 돌아 보거나,
    인터넷 뉴스 같은 걸 들춰 볼 때면 눈살을 찌뿌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사커월드 같은 유명한 커뮤니티들은 대부분 특정 선수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찌질이들이 점령한 인터넷 뉴스 같은 데서는 몇몇 선수들이 생매장 되고 있다.


    경기가 매끄럽지 못했을 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화가 날 수도 있고, 답답해 할 수도 있다.
    정말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거나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을 때,
    우리는 선수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혼자 하는 푸념으로나 가능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극단적으로, 우리 중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물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
    이 경우 나는 철저히 비난을 비난한다.



    나는 술을 먹지 않지만, 술 먹는 사람들은 흔히 축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술자리 안주로 딱 좋다고.
    특히나, 안주 대신 씹을 선수 하나 있으면 딱이라고 말이다.


    사커월드 쯤 되는 축구 커뮤니티에 오는 사람치고 축구가 이 정도 소양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라 하고 싶지만.
    요즘 돌아가는 작태를 보면 딱히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누가 대체 우리에게 그들을 욕하고 비난할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그들은 프로 선수들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팬들의 그런 반응에도 "네, 네.." 하면서 참아야 한다고?
    아.. 정말 웃기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부끄럽지도 않은 것 인가.
    선수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자신에게 한번 대 보길 바란다.
    정말 양심이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금전적 대가를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다.
    거기에 "남의 돈 벌기가 쉽느냐" 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결부되어
    프로는 특출나야 하고, 프로는 열심히 해야 하고, 하는 등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선수들만 프로가 아니다.
    적어도 20대 중반 이후가 되면,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프로가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우리에게 그런 잣대를 대고 있는가?
    선수들에게 퍼붓는 비난의 수위 만큼의 잣대를 우리는 들이대고 있는가 말이다.


    비난에 열심인 사람들은 선수들이 더욱 열심히 해야 하고, 최고가 되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잘못하기 때문에 욕을 먹는 거라고, 비난을 받는 다는 건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잘도 말한다.


    왜냐면 그들은 프로니까.
    그럼 다시 얘기해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직업이 프로그래머 라고 가정하자.
    사실은 프로그래머가 아니어도 좋다.
    설령, 백수라도 좋다.
    일단 그렇게 가정하자.


    사람들은 늘상, 당신에게 프로그램 계의 거두가 되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에러를 발생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육두문자를 날린다.
    심지어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까지도 당신을 욕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당신은 프로니까, 네가 잘못하면 무조건 욕을 먹어야 한다고.
    당신은 프로니까.


    혹시 이 얘길 듣고 팬이 선수에게 하는 비난은 위의 예와 경우가 다르다고 할 양심 없는 사람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위해 위의 예를 좀 더 살펴보자.


    팬이 선수에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밥벌이 원천기 때문이다.
    팬이 없으면 프로선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역시 지극히 기초적인 상식에서 비롯되는.


    그러면, 위의 예에서 프로인 당신에게 비난을 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당신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경영주(구단의 구단주)나, 당신을 관리하는 관리자(구단의 감독 이하 코칭 스탭).
    당신과 같이 일하는 동료들(동료 선수 내지는 경쟁 선수)과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용자들(구단의 팬).
    그리고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는 않아도 향후 당신의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다른 모든 사용자들(다른 구단의 팬).
    결국, 우리와 선수들의 입장은 하나도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당신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며 욕을 하거나,
    또는 비열한 인신공격을 한다거나, 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비아냥만 퍼부어 댄다면.
    맡은 바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출근할 때 계란 세례를 한다거나 했다고 치자.
    회사 출근길에 당신을 비난하는 플랭카드가 붙어 있다면 더 극적일까?


    아마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상대와 심하게 다투고 직장을 때려 치울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지인들과 마주 앉아 그딴 회사 잘 때려 치웠다고.
    어디 그런 몰상식한 놈이 있고, 어디 그런 싸가지 상실한 놈이 있느냐며,
    욱하는 성미에 못 이겨 회사 때려 치운걸 자랑 삼아,
    나도 한 성깔 하는 놈이라며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스스로를 치켜 세우려 할 것이다.
    그렇게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기를 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두둔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을 때려 치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어야 한다는 따위의 얘길 하는게 절대 아니다.


    바로, 당신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아니 그 이상으로 당신들은 공황에 빠질 것이다.
    매끄럽지 못했던 축구경기의 분풀이를 이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 당신들이 과연 어떻게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잘도 강요하고 있다.
    자, 지금도 우리는 팬이고 그들은 프로라며 비난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다.
    정말 비열하고, 더럽고 추잡하다. 정말 나쁘다.
    만약 내 동생이 그랬다면, 죽지 않을 정도로 흠씬 패 주었을 거다.
    다시는 그런 고약한 성미가 삐져 나올 수 없도록, 눈물이 쏙 빠지도록 때려 주었을 거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할지 모른다.
    "그들은 국가 대표 선수들이니까" 라고.
    어쩌면 이 얘기는 리그 경기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나 할 지 모르지만.


    국가를 대표하지 않고 리그에서 뛰더라도,
    팬이 선수를 비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믿는 유아적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국가 대표던 뭐던 얼마든지 비난의 봇물을 쏟아 낼 테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의 신분(?)은 아무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들이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고 치자.
    그런다고 그들을 비난 하는 것이 옳은가?


    한 나라의 대표가 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린 그들이다.
    국가 대표가 됐다는 것 만으로도, 다른 많은 선수들 보다 앞선 걸음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욕 먹는다고?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닌가.


    프로의 정의를 다시 떠올려 볼 때, 프로선수라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다.
    그리고 국가 대표가 됐다는 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그 수준이 최고급이라는 얘기가 된다.
    한 직업군에서 출중한 기량을 보이면, 일단 그들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게 맞지 않은가?
    무슨 얘긴지 아직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가?


    자, 다시 당신을 어떤 직업을 가진 한 명의 프로로 가정하자.
    아니, 이왕이면 요즘 최고로 유명한 황우석 박사같이, 당신이 한 분야의 달인이라 치자.
    배설욕구를 참지 못해 인터넷에서 찌질대기나 하는 몇몇 사람들에겐 결코 가능성 없는 소리겠지만,
    이야기 진행을 위해 일단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펼쳐지는 대회 - 이를테면 학술 대회 같은 - 에 당신이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치자.
    축하한다, 아주 자랑 스러운 일이다.
    4천만이 넘는 인구 중에 특별한 몇명이 된 일이니 크게 축하 받을 일이 틀림없다.
    더욱이 그저 운에 따른 것이 아닌, 당신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은 것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한다.
    당신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누가 누가 있는데, 당신이 뽑힌 것은 이해할 수 없으니 이건 음모라고 말한다.
    분명 사람의 재능은 절대 비교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또 당신은 나름대로 당신의 위치에서 입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욕을 한다.


    그게, 누가 누가 잘 하는데 당신 대신 그 사람은 어떠냐 하는 정도를 넘어 서서
    당신 이름 앞에 "개" 를 붙이고, 당신의 부모를 욕하고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저주를 퍼 붓는다고 하자.
    당신이 실수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 들어 만신창이를 만들고
    당신의 성공에도 축하는 커녕 저주와 비아냥만이 있다고 치자.


    과연, 당신은 그런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나를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그런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만약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모를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 마구 자행되고 있다.


    그저, 우리가 팬이라는 이유로.
    그저, 그들이 프로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말이다.


    그저 고객(또는 잠재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회사를, 또 그 직원을 쥐었다 펼 자격은 없다.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람을 재단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저 바닥까지 쳐 내 버릴 자격이
    당신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없다.


    그들이 축구선수라는 것이 과연 죄가 될 수 있는가?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또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 진다는 것이 그들의 죄가 될 수 있는가 말이다.
    공인이니 그럴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자.
    공인의 정의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무차별 적인 욕을 들을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거다.
    설령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몇몇 선수들이 그랬듯, 그런 그들은 도태되고 또 다른 유능한 선수들이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테니까.


    그들이 칭찬과 격려, 또 동경의 대상으로는 적절할 지 모르지만
    무차별 적인 욕설과 비난의 대상이 될 필요는 절대로 없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선수들이 부진할 때 따끔한 충고나 비판, 또는 대안 제시가 바람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에는 자기반성이 필수이며, 적법한 절차와 사유, 그리고 예의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부 사람들의 말은 배설에 불과하고, 주위를 어지럽게 만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회자될 때, 그걸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해져만 간다.


    그건 어떤 경우라도 좋지 않다.
    그저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파렴치한 행위일 뿐이다.
    지독한 너의 이기심은 주위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비난의 촛점이 되는 몇몇 선수들의 모습을 보자.
    TV 화면에 잡히는 그들의 얼굴.
    실수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좌절감과 낭패감.
    또 그 후의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플레이.
    자신감을 잃어 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 무얼 느끼는가?


    역시 그들은 그 정도가 한계라며, 그들의 수준을 정확히 짚어 낸 자신의 안목에 희열을 느끼는가?
    그럴 줄 알았다며, 개XX 따위가 뭘 하겠느냐며 욕하는 자신의 모습, 과연 부끄럽지 않은가?
    그들의 표정을 스쳐간 어두운 그림자를 보며, 조금은 미안해지지 않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하자.
    문제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비뚤어진 사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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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기를 보며, 또 경기 후 평소 자주 찾는 싸커월드나 다른 인터넷 매체의 글들을 보며
    온통 착잡한 마음이다.


    설령 그가 이대로 무너진다 하더라도,
    다시는 전과 같은 활약을 펼칠 수 없고,
    다시는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지지할 것이다.
    그가 그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그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는 한,
    나는 그를 끝까지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은퇴를 하기 전 까지는, 늘 그의 비상을 꿈 꿀 것이다.
    지난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잊었을 때,
    그 어두운 길을 홀로 견뎌 낸 그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를 한편으로 존경한다.


    경기 중간 중간,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에 스친 그림자를 본다.
    어쩌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닌가 가슴이 미어진다.


    나를 더없이 안쓰럽게 만드는 그에 못지 않게,
    짧게 깎은 어색한 머리와 찢어진 눈이 오늘따라 더 안쓰럽게 보이는 녀석도 있다.
    녀석을 표현하던 단 한마디, "당돌함" 은 어디로 가고.
    당돌은 커녕 자신감마저 잃어 버려 온통 무거운 그를 보며 나는 또 자책한다.


    내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내가, 내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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