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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아침이다.
    Letter from Kunner 2004. 10. 10. 06:56
    훈련소를 다녀 온 후 벌써 한달이 훨씬 넘었다.
    그간, 정말 정신 없이 보냈다.
    집에 온 날보다 집에 오지 못한 날이 훨씬 더 많았으니..

    정말 한달 보름여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간의 내 삶은 내 생활은.. 정말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듯 하다.

    어느덧 달력을 보니 10월도 중순으로 치닫고 있다.

    평소의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다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했었다.
    나는 정말 그 한달 보름여 동안 그저 숨쉬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거리를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애석한 것은, 이같은 생활이 앞으로도 상당시간 반복될 것 같다는 데 있다.
    회사일에 거의 매진하고 있는데도, 상황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일에 대한 나의 관점도, 회사에서의 내 위치도.
    이렇게 끌려 다니다 날짜 채워 소집해제 되려나..

    시간은 어떻게든 가는 법이니 언젠가는 소집해제가 되고 이 일거리들의 압박에서 몸을 빼낼 때가 오겠지만..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쳐다보고 있는다는 건 나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어떻게든 내 주위의,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체계화하고 객관화 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일하는 기계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다 시간의 흐름에 삶을 맡겨야 한다는 건 정말 좋지 않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어서, 아무리 힘들고 하루하루가 고되더라도..
    그렇게 날짜는 가고 나는 별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긴 하루가 끝나고 내 집의 그리운 침대가 아닌 낯선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이게 뭐하는 삶인가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몰려들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꿈나라로 빠져들고..

    뭔가 하려고 그 전부터 계획했던 몇가지 일들은, 현실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다시 맘을 다잡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 나의 바람들을 다시 굳게 쥐게 되려면 나는 또 얼마나 더 힘을 들여야 하나..


    가끔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에 머릿속이 쓸데 없는 패배의식으로 가득차 나를 학대하고 내 인생을 난도질하는데 열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은 절대로 공정한 게임이 아니며, 나는 얼마간 뒤쳐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위치를 바로 알 때, 앞으로 내딛는 걸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내 위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고민하고 좀 더 열을 다해 살펴보면 보이려나..


    지금의 직업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데는 지난 시간은 물론, 향후 얼마간까지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던 그렇지 않던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불과 5년 전만해도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 줄은 전혀 몰랐고, 지금도 나는 약간은 신기하다.
    나란 녀석 인생이란게 어찌나 예측하기 힘든지..
    얼마간 고무적인 것은 적어도 내가 지난 5년의 레이스를 그저 나태하게만 보내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아니, 좀 점수를 후하게 쳐서 말하자면 나름대로 잘 해 온 모양이다.
    체계적으로 배워 본 일도 없고, 누가 나서서 가르쳐 준 적도 없지만 나는 내 자리 한 켠은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살짝 낯간지러울 정도의 칭찬, 해 줘도 나쁘지 않으리라.
    타고난 끈기나, 성실함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얘기..
    임기응변으로 지금껏 살아 왔다 생각하니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론 대견스럽다.


    주말에 집에 들어 왔지만, 잠자고 밥 먹는 일을 제외하곤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이젠 머릿속이 핑글핑글 돌 지경이지만, 아직도 일거리는 많기만 하다.
    일을 위해 사는가? 삶을 위해 일을 하는가?
    해묵은 과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나날들이다.

    어제 낮부터 계속된 작업은 아직도 끝을 낼 줄을 모른다.
    더 이상은 머리가 돌지 않아 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창밖을 보니 동이 터오고 있다.
    글의 말미에선 이미 완전히 떠오른 태양이 중천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고 있다.


    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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