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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ner Blues#2Letter from Kunner 2004. 2. 25. 01:00
한동안 벗어 버린 줄 알았던 짐을 다시 지고 있었나봐.
아니.. 지금도 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다시.. 많이 지쳐있어.
무기력하고 힘들고.. 목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글을 적다 보면, 흐트러진 내 맘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나중에 둘러 보면 웃음만 나올 법한 글을 써내려 간다.
나는 정말, 매순간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중에 영원히 눈을 감을 때도 "나 정말 열심히 살았소. 후회따윈 없소." 하며 가고 싶어.
매순간 내 자신에 충실하고, 내 주위 사람들에 충실하고..
내게 던져진 많은 질문과 숙제들에 충실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사회 속의 여러 문제들에 충실하고..
어느 것 하나 지나침 없이 모든 걸 보듬고 살아 가고 싶어.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실제로 그러고 있노라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네.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너무 막연한 소리지..
표리부동한 내가 싫어.
나는 편견과 선입견을 부정해.
나는 내가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도 갖지 않고, 사물을 존재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해.
하지만, 실제의 난 어떤가.
많은 편견과 선입견, 때론 옳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일그러진 사고의 단편인 그 편견과 선입견들을 맹신하며 살아 가고 있진 않은가.
또 나는 후회 따위 정말 싫어.
하지만 현실의 난, 후회 속에 살아 가고 그렇게 방황하는 시간을 두고 또 후회하고..
그렇게 후회의 연속으로 살아 가고 있지 않은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을까?
오히려 그 반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건데, 자신없다.
나는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 양심의 눈높이가 너무 높음인지, 아니면 내가 일반적 상식에도 한참 모자란 사람인지..
나는 내 자신에게 늘 부끄럽다.
지나간 일들..
그래, 나는 지난 일들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먹은대로 쉽게 되지 않아.
지나간 일일 뿐이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불쑥불쑥 악몽처럼 떠오르는 옛기억들은 이렇게 나를 몇번이고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있어.
내가 지은 죄에 비해 치른 대가가 형편없어서일까?
어제는 집에 오는 길에 - 늘 그렇듯, 전철역에서 집으로 걸어 오는 15분여의 시간은 반성과 자숙의 시간이다 - 혼자 뇌까려봤어.
"그래도 지난 몇년, 나는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았는가.
그렇게 열심히.. 부끄러울 만한 일 따윈 전혀 하지 않고 살았는데도, 아직 모자란거야?
아니.. 난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래, 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는데도 기분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악몽처럼 그 잔인한 옛기억이 떠오르고, 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채 기억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
다 떨쳐버리자고, 그럴 수 없다면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 보자고 맘을 다잡은게 벌써 몇번인가.
평생 이 몹쓸 기억 속에서 살아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 주위의 나쁜 일들로부터 도망치려고 애쓰고 있었어.
나는 어떻게든 잊어 버리고 싶었고, 나를 짓누르는 숙제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한채, 나는 내가 이토록 후회할 일들을 저지르고 말았던거야.
어떤 친구들은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그 정도 안 해 본 사람 없으며, 자기에 비하면 그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기도 하는데..
(이걸 전제로 깔아 두는 것조차 우습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가 아닌가..)
적어도 내겐..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다시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면 진저리가 나도록 내 자신이 싫어.
중요한 얘기는 삭둑 잘라낸 채 얘기를 하다보니..
저 녀석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답답하겠다.
늘 그렇듯.. 보호막을 치고 있는거지.
답답한 마음에 글을 써내려가긴 하지만, 일정 수위 이상은 절대로 말하지 않으려는..
아마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지 몰라.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정리되려던 생각들이 다시 복잡해진다.
이제는 동기마저 퇴색될 지경이야.
너무 완벽한 사람이길 원하는 걸까?
실제의 난 그렇지도 않으며, 그럴 자질도 없는데 너무 완벽한 인간이고자 하는 걸까?
과연.. 그런 걸까?
오늘도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벌써 수요일이 오고 있어.
2월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고, 조만간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와.
언제 끝날지 모를듯 하던 지리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거야.
내 나이도 벌써 스물 하고 여섯.
언뜻 돌아 보면 서른이 될거란 생각에 몸서리를 친다.
그때도 똑같은 고민, 똑같은 방황에 시달린다면... 인생이 너무 암울하다.
2월 24일 밤. 이제는 25일 새벽...
지친 몸과 머리를 뉘러 이만 줄인다..
p.s
전화 통화든 문자든..
그와 나누는 대화는 늘 즐겁다.
하지만 그렇게 즐거운 와중에도 많이 혼란스럽다.
the one과 one of 의 차이를 감당하기엔.. 아직 맘의 정리가 부족한 걸까.
하지만, 넌 확실히 열심히 살고 있더란 말만큼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준다.
내가 아는 사랑이라는 것은 연인의 입맞춤뿐이지만, 만약 다른 의미가 있는 거라면
네게 느끼는 나의 감정이 바로 그 사랑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5-02-24 오후 9:27:16에 수정되었습니다.'Letter from K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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