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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저런 생각들..
    Letter from Kunner 2006. 3. 30. 15:32

    여기는 역삼동의 친구네 집.
    내 오랜 친구 중 하나인 상이가 서울 올라 온 지 반년이 넘었는데..
    처음 이사 오던 날 한번 왔던 걸 제하면, 오늘 놀러 온게 처음이야.
    생각해 보면 참 무심했어.
    사실 그렇게 바빠 죽을 만큼도 아니었으면서..

    예전에 친구들이 모두 천안에 있을땐..
    어느 하나라도 올라와 있는다면 내 외로움을 많이 달래 줄텐데..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제 둘이나 올라와 있는데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결국 내 맘 가짐이, 내 행동이 문제였던 건가보다.
    뭐.. 어쨌거나...


    내일 친구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놀러 온건데, 정작 친구 녀석은 피곤하다며 진작 잠들어 버렸어.
    내가 워낙 늦게 도착한 탓도 있으니 잠자리에 든 친구를 원망할 순 없다.
    나도 내일을 위해선 자야 하는데 어쩐지 잠드는 게 서운해 이러고 있네. 
    새벽 5시 반을 지나.. 어느 덧 여섯시를 향해 가는데 말이지.

    다른 환경, 다른 공기. 무엇보다 다른 잠자리는 더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듯 해.
    상념에 빠져 있다 보면, 또 무수한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이유없는 반감, 그리고 이유없는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해.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치게 하고, 또 이런 생각들은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해.
    뭐가 문제인가, 지치면 잠들면 되고 힘이 솟으면 그 에너지로 살아가면 될 것을.



    자유로워지고 싶어.
    과거, 기억, 기대, 희망, 꿈, 의무..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갖가지로부터.
    할 수만 있다면 다 떨쳐 내버리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서 지워진 존재이고 싶고, 가능하다면 모두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어.
    그 큰 괴리 덕에 나는 늘 고민하고, 늘 답답해 하는 가보다.
    풀리지 않는 그 숙제를 늘 싸안고 사는가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만 한다면 - 즐거운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더 - 나는 "외향적" 인 사람이야.
    에너지 넘치고 밝은 모습만 가득해.
    그런데 재밌지, 이렇게 혼자 있으면 이렇게 한없이 밑으로만, 밑으로만 빠져 드는 게 말야.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 섬 사람들처럼.. 쓸데 없이 큰 자의식에 맥을 못 추고 있는 느낌이야.
    진지해지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고, 심각해 보이려고 폼을 잡는 건 더더욱 아냐.
    그냥 모든 생각들이 나로, 나로, 나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풀어져 내리는데, 그 모든 생각들의 화살이 내게 향해져 있단 말야.
    후회를 하는 걸까.
    왜 그때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
    왜 나는, 이렇게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나는, 지금 이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들.

    자기비하는 극도의 나르시시즘의 한 일면이라 하던데, 나 역시 그런건가 모르겠어.
    프로이트의 말대로 그게 정신분열의 한 증상이라 한다면, 십수년째 사춘기를 앓고 있는 난 정신분열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랑할 대상이 생기면 다 없어져 버리는 불안한 자기애, 대상을 잃은 자기애에 불과한 걸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글을 쓰기 어려운 건, 그가 볼까 두려워서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건 "나"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줄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론 어떻든간에 지금 난, 무언가 긍정적인 결론을 찾고 싶어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에서 한가닥 위안을 삼고 싶어서.. 라고 생각하는게 더 이치에 맞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해.
    그게 더 비참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다는 것 - 그 자체로.. 적어도 룸펜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힘들어.



    6시가 넘어 가니 차츰 날이 밝아 온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이 시간은 꽤나 어두웠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틈에 계절은 바뀌고 밤은 점점 짧아 지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과 내일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나의 삶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야.
    내 예상과 달리 이렇게 빨리 찾아 오는 여명이나, 샤워를 마치고 하는 냉수욕이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할 때.
    아,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하고 느낄 뿐.
    그렇게 좀 더 지나고 나면, 짧은 소매의 옷 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하루에 몇번씩 찬물을 끼얹어도 여전히 무덥게 느껴지는 여름이 오겠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틈에도 계절이 바뀌듯..
    나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거라면 좋으련만.
    내가 원하지 않아도, 죽음에 가까워 지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너무 여유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내 인생을 너무 옥죄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어.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 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말야.
    그러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이 무언지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하고, 웃고, 교감해도 눈감을 날이 오면 결국은 부족했다 느낄텐데...
    뭘 해 볼 틈도 없이, 결국 "생각 과잉" 아닐까 말이지.


    한참 써내려 놓고 보니..
    그는 다름에 대해 말한게 아니라 맞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그걸 다름이라고 해석해 키보드를 두드렸고.
    아.. 맞지 않는다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구나 하며 써내렸던 글을 지운다.
    그리고 실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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