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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remember, when we first meet? #1쉼을 위한 이야기/사진 2010. 9. 18. 02:36처음 카메라를 장만한 건 8년 전.
월드컵이 열리던 해가 저물어 가던 무렵,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 전에는 한번도 내 카메라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떠올려 보건데, 아마 우리 집에 카메라 자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두고 카메라를 가져 보았다고 하지 않는 한...
아, 아주 잠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써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다지 감흥도 없고, 이렇게 애써 떠올려봐야 기억나는 정도. 그 뿐이다.
작은 똑딱이 카메라로 시작해 하이엔드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닐 기회가 별로 없던 내게 카메라는 별 필요가 없어서..
내 카메라는 대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장식용으로 쓰이는게 대부분이었다.
그냥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얻는.. 그런 수준이었다랄까.
<2003년 초 아직 쌀쌀함이 묻어나던 날>
1천만 화소 정도는 고화소라 불리지도 못하는 지금으로선 우스운 일이겠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했던 200만 화소의 위엄.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하이엔드 시장에서 미친 스펙을 자랑하던 파나소닉 카메라를 참 좋아라 했었다.
아주 가끔 사진을 찍고, 또 그러다 가끔 쓸만한 사진을 건지고는..
'감각이 있단 말야?' 하며 혼자 으스대고 또 그렇게 끝.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카메라는 그렇게 책꽂이 한켠을 장식할 뿐이었다.
대부분 회사 - 집을 반복하는 생활 탓에 사진을 찍을 기회도 없고.
막상 어딘가 놀러 가면 카메라를 꺼내서 뭔가를 찍어 대는 일이 그렇게 낯설고 민망할 수가 없는데..
아마 자주 해보지 않은 탓이렸다.
더구나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이 싫어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카메라의 먼지가 더 짙어갈 무렵.
어느 덧 내 카메라가 너무나 구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의 사진을 찍어줄 때였다.
셔터를 수백번이나 눌러댄 후.. 내가 가진 카메라로는 절대 그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란 실력을 급하게 올릴 순 없고, 장비를 올리면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세계적 뮤지션 마세오파커 -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2006>
어두운 곳에서도 잘 찍히는 카메라.
이때부터 카메라에 대한 내 유일한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2007년, 소니에서 발매한 스펙 좋은 하이엔드 카메라를 구입했다.
DSLR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렌즈를 이리저리 바꿔 껴야 한다는 건 참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카메라에 대한 부족한 지식 탓에 그저 배율이 몇이냐가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게다가 HDR 이라는 기술은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이 잘 나오게 해 준다니 금상첨화.
고민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생각은 멋드러지게 들어맞았다.
사진사는 같은데, 카메라를 바꾸니 사진이 확 달라졌다.
그 전의 투박하던 카메라에 비해 날렵하게 빠진 곡선도 맘에 든다.
동영상 기능도 좋다.
SONY 라는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호감도 좋다.
좋다.
<지금 보면 '뭐 이런 노이즈 떡칠한 사진이 다 있어?' 하겠지만.. 당시엔 어두운 데서 사진이 찍힌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2002년에 카메라 사고 그 후로 처음 기변을 해 본 나에게는 상당한 문화 충격이었다.
어두워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소니 하이엔드 카메라의 HDR 기술 - 그저 놀라웠다>
한여름이긴 해도 8시가 넘은 시간. 육안으론 이미 밤이다.
그래도 이 카메라로 찍으면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셔터를 눌러댈 때 마다 몹시 기분이 좋았다.
<카메라만 잡으면 누구나 다 찍는다는 풀떼기들>
가끔 그럴듯한 사진이라도 걸릴 때면 몹시 기분이 좋아졌고,
역시 이래서 장비는 좋은 걸 써야 해 라며 고개를 끄덕끄덕.
그런데 항상 만족이란 없는 법이다.
그 해 여름, 잘 놀러 갔다 와서 골이 나기 시작했다.
그간 큼직한 카메라에 대한 욕구는 없었는데, 놀러 가서 보니 죄다 DSLR.
내 카메라보다 두배는 커 보이는 걸 들고 있었다.
그것도 액정도 안 보고 모두 뷰파인더로.
아니, 불편하게 왜 저렇게 뷰파인더를 보고 있는거지?
액정을 왜 안 봐?
이상한 사람들이네.. 그렇게 하면 폼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면서 곁눈질로 그네들의 카메라를 슬쩍슬쩍 쳐다보곤 했는데..
당시 운영하던 사이트에서 주최한 오프라인 모임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뭐 사건이랄 것도 없지만, 점잖지 못하게 '뽐뿌가 왔다' 라고 말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놀러왔으니, 더구나 나는 운영자라고 하니 사람들 노는 걸 사진으로 열심히 찍어야했다.
그런데 웬걸.. 실내에서 촬영을 하려다 보니 너무 어두운거다.
더구나 세미나를 하고, 사람들 연주 발표를 하고 하니 조명은 최대한 낮추기 일쑤.
아무리 어두운데서도 잘 찍힌다고 하지만 이걸론 택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나이 많으신 회원 중 한 분이 DSLR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조작도 않고, 찰칵 찰칵 찍어댔다.
하이엔드 똑딱이 밖에 못 써 본 나도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노출의 개념은 알고 있는데
그 분은 그런 걸 전혀 아시지 못했고 관심도 없으셨다.
그저 AUTO 모드에 놓고 셔터만 누르실 뿐.
그런데 그분의 카메라에서 결과물을 본 순간..
나는 내 카메라를 가방에 슬쩍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쓸모가 없던거다, 내 카메라는.
화가 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깟 사진, 카메라 좋은 것만 있으면 나도 그쯤은 찍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난 돈이 없어서 이런거 쓰고, 저 아저씨는 돈 많으니 사진도 쥐뿔도 모르면서 저렇게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좌절감과 함께 기필코 좋은 카메라를 사겠다는 이상한 다짐을 하게 됐다.
여름 휴가 때 만났던 그 많은 DSLR들.
그리고 여름의 마지막 휴가 때 만난 마지막 DSLR.
난 어느새 DSLR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아니면 사진을 영영 못 찍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무겁고 크고 거추장스러운 주제에 렌즈까지 갈아 끼워야 되는데 그걸 어떻게 쓰냐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DSLR이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고, 나의 얼마 안 되는 사진 인생은 그렇게 끝나고 마는 거라고 낙담하다니.
사람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무슨 죄가 있으랴.
다만 지름신이 문제지.
<2008년의 마지막이자 2009년의 시작 - 예술의 전당>
힘들다. 2편으로 나누자.'쉼을 위한 이야기 >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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