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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2007년 대선이여.세상 사는 이야기/시사人Kunner 2007. 11. 6. 11:22-
유시민과 이해찬의 연이은 낙마로 대선판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있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슬슬 재밌어지려 한다.
그런데 그 전의 관심과 다른 것이 있다면..
상황 전개에는 흥미가 생기는데, 결과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 되던.. 지금으로선 달라질게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
천년정당이라던 열린우리당이 창당 4년만에 도로 닫힌 당이 되어 버린 후..
나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상당부분 접게 되었다.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사분오열해 각자의 이득만을 위해 진흙밭을 뒹굴고,
알거 다 알만한 사람들이 시대적 소명을 외면한 채 달콤한 권력욕에만 취해있는 걸 보며 나는 진저리가 났다.
열린우리당에만 시각을 좁혀보자면, 처음 세 불리기를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모을 때 부터..
누가봐도 철새인 사람들을 모아대서 뭐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고 개탄했고,
저렇게 해서 어디 천년정당 되겠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
정치는 민의를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민의는 거대한 흐름이라고 했다.
정치는 바로 이 흐름을 살피는 것, 다스릴 치(治)에 삼수변이 있는 건 다른 까닭이 아니라 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나는 이 정권에 참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정권이 우리의 시대적 소명에 귀를 기울이고
노선을 제대로 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 최고의 이슈는 양극화다.
몇년 전부터 언론에서 줄곧 떠들어대는 문제라, 남들 하는 것 따라 뻔한 얘기 또 한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문제를 처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정치와 사회" 라는 수업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학교를 제대로 나가지도 않은 터에 수업을 듣고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일견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으나..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양극화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던 강의가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김영삼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이래, 양극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하긴.. 애초에 고래로 양극화가 없었던 때가 언제 있는가?
이런 양극화는 단순히 부의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무형의 계급을 낳고 서서히 -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굳건히 - 계급을 고착화 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형의 계급은 유형의 계급보다 더 위험하다.
유형의 계급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인지하기 쉽고, 로마와 같이 수직이동이 가능했던 건전한 계급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의 의욕 고취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삼기에도 쉬워,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계급타파를 제시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무형의 계급은 어떠한가.
드러나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폐해에 대해 알기도 어렵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계급사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도 대답하기가 어렵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분명 계급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 맞건만, 타파하자고 말할 수도 없다.
무형 -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말 계급이 없는 만민평등의 사회인가?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낮은 평형대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놀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요즘 부모들.
임대아파트와 인접한 초등학교 입학을 우려해, 모두들 멀리 학교를 보낸 탓에 학교가 폐교 위기에 이르렀다는 모 신도시의 초등학교.
평생 내 집 한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는 소시민들과 태어나면서부터 수천억의 재산가가 되어 있는 부유층의 아이들.
한장에 500원 하는 연탄이 아까워 추운 겨울에도 냉방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과 한 잔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와인을 마시며 그게 교양이라고 우쭐대는 사람들.
분명 학교 다닐 때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며,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한쪽은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다른 한 쪽은 제가 잘못하고도 고개를 잔뜩 쳐든다.
****
사실은 이게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와 새삼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문제가 이미 상당부분 고착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나는 이 사회가 "로또를 권하는 사회" 라고 말했다.
돈이 지상가치가 되어 부를 이루게 된 방법에 대한 존경은 없고, 얼마나 쌓았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그저 얼마나 버느냐에 대해서만 논하는 사회.
얼마나 벌었느냐가 곧 얼마나 앞선 출발점을 갖느냐가 된 사회.
법 앞에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돈 앞에 일렬로 늘여 세워진 사회.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보이지 않는 계급이 굳건히 뿌리를 내릴 때 까지 이렇게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걸까?
나는 이런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노무현 정권이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걸 일거에 해소시켜주지는 못해도 먼 훗날 달라질 우리 사회에 주춧돌을 놓게 되리라 믿었다.
5년 전, 노무현이 유세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당장 우리는 어렵더라도,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주저없이 노무현에 엄지를 들어 세웠고, 이 선택에 대해서는 지금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 - 아니 절반 이상의 실패.
그 이유는 민중에 진정성을 전달하는데 실패해 향후 정권을 반대파에 넘겨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이번 대선 정국을 바라보면, 나는 정말 우울해 지지 않을 수 없다.
*****
정치는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맨날 이래저래 불평은 많으면서 정치나 선거 같은 얘기에는 둔감한 사람들 -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누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권이라면 그저 욕이나 하는 사람들은 반성 좀 하자.
우리의 삶에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국민연금이며 각종 세금으로 유리지갑이라 불평하는 직장인의 월급을 지키고 싶다면 당장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당장 내 집 마련에 긍긍하는 사람들은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가진 정치인들을 찾아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명박도 정동영도, 이인제-_-도, 문국현이나 장성민 같은 사람도..
심지어는 이회창도..
이 시대적 소명을 바로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아니, 적어도 나의 바람을 들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번 대선의 결과에 도무지 별반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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