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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Letter from Kunner 2014. 10. 6. 11:32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던 나는 결혼도 빨리 하고 싶어 했다.
스무살 좀 넘으면 결혼도 하고, 스물 다섯 무렵에는 나를 닮은 아들도 낳아야지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생각했던 스물, 스물 다섯은 아주 큰 어른 같은 거였을테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란 그랬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물질적, 정신적 수단을 갖는 것.
크게 틀리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그게.. 그냥 나이를 먹으면 자연적으로 되는 것으로 알았던 게 가장 큰 틀림이었다.
아마도 이런 풍경을 떠올리곤 했겠지?
현실의 스물은 어둠 가득한 방황이었고,
스물 다섯은 안개 속에 휘청거리는 발걸음이었다.
결혼은 커녕 연애도 만만찮고,
아이는 커녕 제앞가림도 못하는..
아마 그 즈음이었으리라.
나는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자체가 부담스럽던 그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서는..
일종의 회피랄까?
더 이상 그런 것에 부담을 갖고 싶지 않았다.
누가 결혼 얘기를 하더라도, 그냥 아직 하고 싶지 않아서요 - 하면 그만.
어차피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점점 퇴색되고 있는 요즘이다.
서른 좀 넘었다고 노총각 소리 듣기는 쉽지 않은 때란 말이지.
이 즈음의 내가 생각하던 결혼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의 욕구에 의한 결혼이 아니라 주변의 욕구에 의한 것.
내가 원해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촉에 의해 떠밀려 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의미로서의 결혼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꼭 해야 하는..
인생을 사는 하나의 통과의례로서의 결혼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과연 그뿐이었을까?
그냥 가치관의 문제뿐이었을까?
그 대답엔 어쩐지 자신이 없다.
딱히 목적이 있는 질문도, 확고한 생각에 의한 대답도 아니다.
그냥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나는 좀 복잡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주례를 봐 주신 명계남 선생님과 함께 - 왜 연락을 안 받으시는게요?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의아한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또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또는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고민하고 머리 싸매고,
별의 별 말을 다 해 논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 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해야겠다, 하니 그간 장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문제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100일 차.
이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히고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그리는 일에
지난 고민 같은 것은 부질 없이 느껴진다.
뭐하러 쓸데 없는 고민을 사서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때는 이 사람이 내 곁에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 - 빙그레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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