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푸름이가 태어났다.
Kunner
2019. 1. 19. 00:42
2019년 1월 16일 오전 1시 55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둘째 딸, 푸름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예정일이 18일이었으니, 거의 10달을 꽉 채웠다.
출산 2개월 전부터 조산 위험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기도 하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던 지난 몇달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
생각만큼 내가 많은 힘이 되어 주진 못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여기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고맙고, 미안하고.. 얼마간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제 딸 둘의 아빠가 됐다.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몸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쳇, 가장의 무게랄까...
첫째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마냥 벅차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던 때와는 다르다.
조금은 차분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애 엄마에게 마음이 더 간다.
미안하다, 그렇게 오래도록 혼자 힘들게 해서..
그렇다고 아이에게 관심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예쁘고, 당연히 소중하고 애틋하다.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이 된 것은..
지난 2~3년 간 겪어 본 육아 라는 것이 그렇게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렸다.
아이는 낭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말 그대로 현실이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며, 열이 오르기라도 하면 해열제를 먹이고 종종 걸음으로 병원에 데려 가야 했다.
조금 더 크면 가구 모서리마다 쿠션을 붙여 주고, 입에 닿을 만한 것들은 모두 치워야 하고..
밥을 안 먹어도 걱정이고, 단 걸 많이 먹어도 걱정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녀석이 달리고 싶어 허우적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부부싸움을 모르고 지내던 우리가 아이 앞에서 몇번이나 큰 소리로 싸우기도 했다.
아마 적어 내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회사 일이 바쁘다며 애를 거의 돌보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엄살을 피우다니,
영주가 들으면 어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좀 키워 놓고 살만한가 싶은데 그걸 또 해야 한다니..
시작부터 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그래, 첫째 때와 느낌이 같을 수 만은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의 무게가,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가 또 한번 무릎을 휘청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초점없는 눈에나마 눈을 맞추고, 깃털처럼 가벼운 아이를 품에 안을 때 느낌은 여전하다.
사랑스럽다.
이런 겁쟁이 아빠지만, 모쪼록 잘 부탁해 작은 아가씨.
환영해,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을..
무엇보다 건강히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 길푸름
아이의 이름은 푸름 으로 지었다.
첫째 사랑이의 이름이 한글이니, 둘째의 이름도 한글이어야 했다.
영주와 많은 밤을 아이의 이름을 갖고 고민했다.
길하늘 이란 이름도 후보군에 올랐고, 길하늬도 있었다.
그 중엔 길라임도 있었고(503 때문에 탈락)
중간중간 우스갯소리로 막 던졌던 이름들까지 합치면 수십개는 됐을 거다.
하지만 모두 마음에 꼭 들지 않던 차에..
갑자기 떠오른 이름이다.
발가락이 부러져 절룩거리는 산모를 데리고, 정형외과와 산부인과를 순회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문득 햇살이 너무 따뜻해..
이 추운 겨울도 곧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동지가 지났으니, 겨울도 반은 꺾인 셈이다.
물론 겨울은 뒤로 갈 수록 추워지는 법이라, 동지가 지났다고 겨울이 꺾인 거라 말한다면 헛소리가 되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이렇게 힘든 시간도, 이렇게 아픈 시간도..
이렇게 절박하고 안타까운 순간도..
언젠가는 다 지나고 말 것이다.
차 밖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추운 겨울이었지만,
왠지 그 이면에 움트는 봄을 본 것 같았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핀 푸름을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의 이름을 푸름 으로 짓기로 했다.
모쪼록 살면서 스스로에게, 또 주위의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런 눈부신 푸름이 되어 주기를.
사랑이가 태어나던 날 스스로에게 하던..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둘째 푸름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여전히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멀은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좋은 아버지가 될 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 또 다짐하고 다짐하는 수 밖에..
어제 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아버지가 되어야지..
나중에 아이들이 더 자라서, 아빠가 너무너무 좋다고까지는 못 해도
아빠가 너무너무 싫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아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푸름아, 잘 부탁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둘째 딸, 푸름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예정일이 18일이었으니, 거의 10달을 꽉 채웠다.
출산 2개월 전부터 조산 위험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기도 하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던 지난 몇달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
생각만큼 내가 많은 힘이 되어 주진 못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여기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고맙고, 미안하고.. 얼마간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제 딸 둘의 아빠가 됐다.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몸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쳇, 가장의 무게랄까...
첫째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마냥 벅차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던 때와는 다르다.
조금은 차분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애 엄마에게 마음이 더 간다.
미안하다, 그렇게 오래도록 혼자 힘들게 해서..
그렇다고 아이에게 관심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예쁘고, 당연히 소중하고 애틋하다.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이 된 것은..
지난 2~3년 간 겪어 본 육아 라는 것이 그렇게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렸다.
아이는 낭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말 그대로 현실이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며, 열이 오르기라도 하면 해열제를 먹이고 종종 걸음으로 병원에 데려 가야 했다.
조금 더 크면 가구 모서리마다 쿠션을 붙여 주고, 입에 닿을 만한 것들은 모두 치워야 하고..
밥을 안 먹어도 걱정이고, 단 걸 많이 먹어도 걱정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녀석이 달리고 싶어 허우적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부부싸움을 모르고 지내던 우리가 아이 앞에서 몇번이나 큰 소리로 싸우기도 했다.
아마 적어 내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회사 일이 바쁘다며 애를 거의 돌보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엄살을 피우다니,
영주가 들으면 어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좀 키워 놓고 살만한가 싶은데 그걸 또 해야 한다니..
시작부터 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그래, 첫째 때와 느낌이 같을 수 만은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의 무게가,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가 또 한번 무릎을 휘청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초점없는 눈에나마 눈을 맞추고, 깃털처럼 가벼운 아이를 품에 안을 때 느낌은 여전하다.
사랑스럽다.
이런 겁쟁이 아빠지만, 모쪼록 잘 부탁해 작은 아가씨.
환영해,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을..
무엇보다 건강히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 길푸름
아이의 이름은 푸름 으로 지었다.
첫째 사랑이의 이름이 한글이니, 둘째의 이름도 한글이어야 했다.
영주와 많은 밤을 아이의 이름을 갖고 고민했다.
길하늘 이란 이름도 후보군에 올랐고, 길하늬도 있었다.
그 중엔 길라임도 있었고
중간중간 우스갯소리로 막 던졌던 이름들까지 합치면 수십개는 됐을 거다.
하지만 모두 마음에 꼭 들지 않던 차에..
갑자기 떠오른 이름이다.
발가락이 부러져 절룩거리는 산모를 데리고, 정형외과와 산부인과를 순회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문득 햇살이 너무 따뜻해..
이 추운 겨울도 곧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동지가 지났으니, 겨울도 반은 꺾인 셈이다.
물론 겨울은 뒤로 갈 수록 추워지는 법이라, 동지가 지났다고 겨울이 꺾인 거라 말한다면 헛소리가 되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이렇게 힘든 시간도, 이렇게 아픈 시간도..
이렇게 절박하고 안타까운 순간도..
언젠가는 다 지나고 말 것이다.
차 밖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추운 겨울이었지만,
왠지 그 이면에 움트는 봄을 본 것 같았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핀 푸름을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의 이름을 푸름 으로 짓기로 했다.
모쪼록 살면서 스스로에게, 또 주위의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런 눈부신 푸름이 되어 주기를.
사랑이가 태어나던 날 스스로에게 하던..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둘째 푸름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여전히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멀은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좋은 아버지가 될 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 또 다짐하고 다짐하는 수 밖에..
어제 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아버지가 되어야지..
나중에 아이들이 더 자라서, 아빠가 너무너무 좋다고까지는 못 해도
아빠가 너무너무 싫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아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푸름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