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Kunner

안녕, 사랑하는 푸름아!

Kunner 2019. 1. 18. 23:31
지난 크리스마스에 둘째 딸을 기다리면서 쓴 글이다.
산부인과의 편지 쓰기 이벤트에 지원하기 위해 썼다는 것은 비밀로..
게으름 탓에, 푸름이가 세상에 나오고 이틀이 지나서야 부랴부랴 글을 올리게 된다.


안녕, 사랑하는 푸름아.


어느덧 예정일이 한달이 채 남지 않았어.
처음 네가 엄마 뱃속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 부터 지금껏, 우리는 딸을 둘이나 갖게 된다는 생각에 몹시 설레고 신나 하고 있어. 재미있게도, 엄마 아빠의 주변에는 딸만 둘 가진 친구들이 많아서 많은 얘기를 듣곤 했거든.  그럴때 마다 ‘딸 둘을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 하며 ‘우리도 딸이 둘이면 좋겠는데’ 했었는데...
기적같은 선물이 온거야. 엄마 뱃속에,  너란 선물이.


‘잘 부탁해’

언니가 태어날 때 어쩔 줄 몰라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무척 능숙해 졌어.
너를 위한 유모차를 사고, 젖병이며 속싸개, 손싸개 같은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는가 하면 어떤 것들이 있으면 편하고, 어떤 것은 쓸모 없는지 가릴 줄도 알게 됐어.

이렇게 네가 태어나면 입을 옷들도 미리 다 정리해 두었어.
처음이라 모든게 서툴고 힘들었던 언니 때와는 정말 다르지.
어쩌면 언니에게 고마워해야 할런지 몰라. :)



물론 여전히 무서운 것도 사실이긴 해.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늘상 떠나지 않는 고민이니까.
엄마 아빠가 된지 이제 3년을 좀 넘겨 초보 딱지는 좀 떼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막상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한 것도 사실이란다.

모쪼록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탈 없이 무럭무럭 커 주길 바랄게.

잘 부탁해 아가야.


‘행복한 설렘’

너는 어떤 아이일까?

엄마는 언니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동을 느낀다며 참 많이 궁금해 하고 있어.
태동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했던 언니가 태어난 후에는 동네에서 제일 가는 왈가닥이 됐는데,
이렇게 활발한 태동을 가진 아이는 과연 어떤 아이일까 말이지.



아빠를 더 닮았을까, 엄마를 더 닮았을까?
입가에 보조개가 있을까?

머리 색은 짙은 검은 색일까, 밝은 갈색일까?
언니 처럼 졸릴 때만 쌍꺼풀이 생기려나?
언니는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어 가끔 불안하게까지 만드는데, 너는 또 어떨까?



아이 라는 건, 언니 외에 아직 다른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려나?

이제 몇번만 더 손을 쥐었다 펴면 너를 만날 수 있게 되겠지?
우리는 아주 아주 행복한 설렘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어.


‘돌아보면…’

돌아보면 올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퍽이나 힘든 한 해였어.
지난 해부터 시작된 회사 일의 고단함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한 해의 대부분을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미안함으로
무리해 갔던 오키나와 여행은, 공항 도착하자마자 태풍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 기간 내내 호텔에 발이 묶여 있었지.




이때 엄마 아빠는 다짐 했어.
둘째가 네살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해외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저때 말괄량이 언니가 아주 아주 미운 세살이었거든, 하하.)

그리고 곧 엄마는 조산기가 있어 지금껏 줄곧 누워 지내야했단다.



그땐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무서웠어.
다행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들이 정성껏 돌봐 주셔서 무탈히 퇴원하게 됐어.
그 와중에 아빠는 언니랑 둘이 험난한 육아전쟁을 치렀고..
그간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처음으로, 제대로 깨닫게 되었어.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 드디어 퇴원을 하고 이제 안정기가 왔나 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엄마는 또 이렇게 깁스를 하게 됐어. ㅠ_ㅠ

너를 주려고 모아 두었던 - 언니 때부터 사촌 언니까지 입던 옷들이 너무 많아 기부를 하려고 옷을 정리하다가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어.



그래도 좋은 일 하려다 그런거니까, 엄마가 몸 관리 잘 못 한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말아줘. :(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마다, 그 자체로도 힘들었지만..
혹시나 네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더 힘들었단다.

그런데도 어디 하나 아픈 데 없이 무럭무럭 잘 커주고 있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몰라.



‘너의 이름은…’

어제는 드디어 네 이름을 지었어.

언니의 이름이 순우리말 이라, 너의 이름도 그렇게 순우리말로 짓고 싶었어.
밤마다 잠이 들 때면 엄마와 누워 여러 가지 이름을 꼽아 보고, 다시 지우기를 얼마나 했던지.

이런 이름은 어떨까, 저런 이름은 어떨까..

그러다 어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둘 다 꼭 마음에 드는 이름을 떠올리게 됐단다.

한동안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더니, 어제는 갑자기 봄이라도 온 것처럼 햇살이 따스했거든.
그래, 이렇게 추운 겨울도 이렇게 매서운 바람도 언젠가 다 지나고
앙상하게 빈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며, 회색 벌판이 거짓말처럼 푸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우리 아이의 이름은 푸름이로 하자.

그 푸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를 맞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길푸름’

긴긴 겨우내 움추렸던 나무며 풀들이 봄바람을 맞아 한껏 기지개를 펴고, 따뜻한 볕 가득 받아 푸르게 푸르게 돋아나는 신록의 푸름.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도무지 이 추위가 언제 끝날까, 과연 끝나기는 할까 싶다가도
날이 가고 달이 차면, 그렇게 길던 겨울도 지나고 말아.
그리고는 곧 푸름의 계절이 오지.
그렇게 추웠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푸름이..




푸름아,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힘들 때도 있고, 끝모를 절망에 빠질 때도 있을거야.
가야 할 길이 아득하게 멀어 보여 무릎이 꺾일 때도 있겠지.

그렇지만 기억하렴.

이렇게 추운 겨울도 곧 지나, 이내 세상을 가득 채우는 너의 푸름이 언제나처럼 또 찾아 올테니..

힘들면 잠시 쉬더라도, 포기 하지 말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면 돼.
그런 푸름을 보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힘을 얻게 될거야.
그렇게 우리 푸름이가 주위를 따뜻하고 밝게, 푸르게 해 주는 사람이길 바라.

아빠와 엄마가 늘 곁에서 응원 할게.



‘기다리고 있어!’

‘이제 진통이 오면 아가를 낳을 겁니다’

하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두려운 맘 대신 반가운 맘이 들었어.

이제 안정기가 왔다는 거니까..
그 조마조마한 조산의 두려움을 이제 떨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간절히 손꼽던 37주가 됐고,
엄마 뱃속에서 나와 우렁차게 울 때 안아주며 부를 이름도 생겼으니까.


고마워 푸름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2019년에 만나면 참 좋겠지만, 2018년에 만나게 돼도 괜찮아.
아빠와 엄마는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널 많이 사랑할테니까.

이렇게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가,
그리고 언니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주 아주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