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nner 2013. 11. 12. 03:13




* 거짓말처럼

야심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중도에 결렬된지 어느덧 한달여가 흐르고 있다.

자그마치 30억원 짜리 프로젝트였다.


정말 많이 준비 했는데..

정말 많이 노력 했는데..

그리고 정말 많이 애 끓였는데..


정말 끝나 버렸다.

거짓말처럼.



* 시작과 다른 끝

시작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에 비해, 

끝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허무하게 찾아 왔다.


하지만 쉽고 허무하다 해도..

예감하지 못 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그 옛날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 상실의 시대

누구도 내 의사는 묻지 않았다.

하긴, 따지고 보면 내 의사를 물었다고 해도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었겠나.


하지만 이 큰 상실감은..

그저 내 잘못이로소이다, 하기에는 적잖은 억울함과..

회한이 있다.



* 그래도 제로섬은 아니다

참 많은 것을 잃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은 프로젝트였다.


회사에 십수억의 손해를 끼치고 무언가 얻었다고 말하긴 참 민망하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 아니런가.



* 노예 근성

사업을 발의하고, 진행하고, 강제로 마무리된 걸 정리 하면서..

내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무엇이 옳은 걸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불평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유리한 조건이 갖춰질 때 까지 - 무르익을 때까지 버티고 기다리는, 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가난한 회사에서 너무 오래 있던 탓인가 싶다.

환경과 조건은 주어질 뿐이고, 

거기에 내 몫은 어떻게든 악다구니처럼 상황을 뚫고 나가는 것 뿐 - 다른 것이 없었다.



* 오만함의 결과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은..

큰 조직일 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헤아려야 할 것, 따져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냥 열심히 하면,

내가 잘 하면 다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생각했던 것 같다' 라고 모호하게 말했지만..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참.. 오만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었다.



* 깜

실망스럽기 그지 없던 그들을 보며..

'깜'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려 보면, 

나는 그 '깜'이었을까.


자꾸 뒤돌아 보고 후회하게 되는 것은..

내가 그 '깜'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못 한채

등 떠밀려 일이 끝나 버렸다는 것이다.



* 정리

일을 정리하는 과정을 보며,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인간에 대한 예우가 없는 것은 둘째로 치고..

생각보다 허술하고,

생각보다 모자라다.


'만약 나였으면', 하다가 문득.

'이거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지 참..', 하며 머리를 두드린다.



* 양아치

상도도 없고 예의도 없는 것들.

매번 만날 때 마다, 그는 우쭐해 하며 말했다.


"남의 등에 칼 꽂지 말자는게 제 신조입니다"


차라리 예리한 칼은 예의라도 있다.

지저분한 나무 조각을 박아 버렸다.


치명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위협적이지도 않지만..

뒷처리는 참 지저분하고 번잡스럽다.


그야말로, 상도도 예의도 없는 것들이다.

물론 그들은 그러겠지.

그건 너희가 먼저 아니겠느냐고.


인정.

하지만 너희는 몇 배는 더 심해.



* 가능을 불가능으로

정말이지 화가 나는 건.

되도 않는 것들 때문에, 

'가능'이 '불가능'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넉달 동안,

결국 '가능'이 '불가능'이 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불가능'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 꼴이 됐다.


그들은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걸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누구도, 진실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 회한

내 IT 경력의 마침표가 되어 줄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규모도 규모려니와,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입증하고자 했던 가치와 사상.

그리고 그 시스템이 뿜어 낼 가공할 파급력.


어떤 걸 따져도 내 IT 인생의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봐야..

다른 사람들 눈에는 허망한 공상으로 보일 뿐이겠지만.

(물론 그들을 탓할 이유는 없다, 결국 내 스스로 불가능에 대한 의구심을 확신으로 증명해 보인 꼴이니)



* 방황

이제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 

일주일 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 좀 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