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위한 이야기/여행

8월 5일 속리산 종주기.

Kunner 2011. 8. 11. 07:47
게으른 룸펜의 변)

시험 끝나고 나면(7월 24일)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산에도 많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험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니, 그 전에 가도 별로 문제 될 게 없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른 날짜야 가라,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험을 치르고 났는데..
이놈의 비.
나 참.. 그야말로 비, 비, 비 다.
대체 뭔 비가 이렇게 쉬지도 않고 꾸준히 내리는 걸까?
지난 한 두달 동안 날씨 좋은 날이 대체 몇일이었던 걸까?
덕분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보내는 날이 계속 늘어 가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게 된거지만, 중부에 비가 올 때 남부는 비가 안 왔다고 한다.
남부 쪽으로 이동해 여행이든 산행이든 하면 되는 거였다.
허구헌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다 그런 줄 알았다, 하고 말하면 참.. 한심하겠지.



가자, 속리산으로)

아무튼 8월 5일은 그런 한심한 날 가운데에 있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전국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산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작년에 가 본 적이 있는 속리산으로.

8월 둘째주에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적당히 멀고, 적당히 높고,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멋진 속리산을 택했던 것이다.

계속된 폐인 생활로 낮밤이 확 바뀌어 있는 상황이어서..
다음 날 아침에 산에 가기로 해 놓고도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계속 잠이 안 와 잠 잘 생각도 않고 있다가.. 한 세시간쯤 잤을까.
그나마도 형은 한 숨도 못 잤다.

컨디션이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안가거나 하면 스스로 너무 한심할 것 같아서 일단 강행했다.



속리산 입구에 차를 대고 난 직후의 풍경.
간만에 보는 푸르름이다.


속리산 종주)

10시 좀 넘어서 출발해 두시간쯤 달려 속리산 입구에 차를 대고 내렸다.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다.
그 전에 문장대 올랐을 때와 대략 비슷한 일정이 되겠구나, 싶었다.

태양은 이글이글,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이런 날씨 정말 오랜만이었다.
새로 산 긴 챙 모자를 쓰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도를 보며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문장대는 작년에 갔다 왔으니, 작년에 못 가 본 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번 문장대 오르던 중에 반대로 내려오던 사람들이 왜 어려운 이 쪽 코스로 왔느냐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천왕봉으로 올라 문장대로 내려오자,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했겠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건 상주의 화북주차장을 통해 문장대에 올라 법주사 쪽으로 내려 가면 편하다는 얘기였다.
보은 법주사에서 출발하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여튼, 출발할 때는 그런 것들을 알 리가 없고..
일단 속리산에서 가장 높다는 천왕봉에 오른 후 다른 봉우리를 하나씩 오르자고 마음 먹었다.

속리산 등산로에 대한 안내도이다.
이건 입구에 있던게 아니라 오른지 한참 지나 세심정을 지난 다음에 있는 것이다. 입구에 있던건 찍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날 우리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법주사에서 출발해 세심정을 지나고 은폭동폭포와 상환암을 거쳐 맨 오른쪽 천왕봉(1058m)에 오른다.
천왕봉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석문 쪽으로 간다.
석문을 지나 비로봉을 넘고, 입석대를 지나 신선대에 오른다.
신선대에서 곧장 문장대를 바라보고 청법대와 문수봉을 넘는다.
문장대에 오른 후에는 하산을 시작해 냉천골 휴게소, 중사자암, 보현재휴게소와 용바위골휴게소를 지난 후 복천암을 거쳐 세심정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해서 다시 법주사를 지나 속리산 입구 주차장으로 복귀.

다 하고 나서 보니 장장 20여 km에 이르는 길이다. (어찌된 일인지 등산로 안내도에 있는 거리 표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아마 처음부터 저게 저렇게 먼 길이고, 저렇게 힘든 것인 줄 알았으면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하긴.. 모르니까 시작할 수 있는 거겠지.
그게 뭐든 말이다.
얼마나 힘든 건지, 얼마나 아픈 건지 모르니까 시작도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젊다는 것,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속리산이 법주사의 소유라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속리산 입구에서..
입장하기 위해 표를 끊어야 한다기에 국립공원이니 한 1~2천원 하겠거니 했는데..
자그마치 4천원이다.
설악산이나 뭐 이런 명산을 최근엔 가 본 적이 없어서 다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감이 있다.
어차피 세금 들여서 하는 국립공원 관리에 또 장사질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문구를 보았다.
속리산은 법주사의 소유여서, 입장료를 징수하는 주체가 법주사라는 것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사진을 찍어 둘 생각도 못 했다.

지난 해에 왔을 때는 법주사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그때 생각엔.. 법주사에 행사가 있어 손님이 많이 오니 다 일일히 체크할 수가 없어 아예 죄다 공짜로 입장시키나보다..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속리산이 법주사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담한 동네 뒷산 정도라면 모를까, 국내 10대 명산에 들어가는 속리산이 한 사찰의 소유라고?
그것도 관리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이라는 기관에서 세금 쳐 발라 가면서 하는 걸텐데?
아, 세상에는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몇일 밤낮을 떠들 수 있을 만큼 풀어낼 썰이 많지만..
산에서 내려온지 일주일이 다 되는 마당에 이야기까지 산으로 가는 건 안 될 일이다.

휴... 온통 제 정신이 아니다.



법주사를 지나 속리산으로 가는 길 - 한가롭다.

평일이긴 하지만 휴가철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너무나 오래간만에 맞는 청명한 날씨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덥고 힘드니 다들 여름 산은 피하는 건가?

뭐 어떻든.. 사람 많은 건 질색인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 좋은 길을 떨렁 우리만 걷고 있다!


세심정 오르는 길 우측으로 나 있는 계곡. 보기만 해도 시원한 물줄기다.

바로 하루 전날까지 비가 많이 왔던지라..
계곡에 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지난 해에 왔을 때는 한참 가물때여서 그랬는지 이런 물줄기를 본 적이 없었다.
물이 정말 맑다.
날씨가 몹시 덥다보니 등산이고 뭐고 그냥 저 물에 첨벙 뛰어들고 싶다.
하지만 상수원 보호를 위해 들어가면 벌금에 뭐에.. 골치 아프단다. 참아야지..
결코 벌금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수백만 충청도민의 상수원 보호에 동참하기 위함일 뿐이다.

뭐 어쨌거나.. 참 맑고 시원해 보기만 해도 더위가 씻겨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건 오바다. 진짜 더웠다.



세심정에 도착해 갈림길을 만났다.
기억과 달리 천왕봉이 더 가까웠다.
여러가지 다른 기억들이 뒤섞였던 모양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이 모양이다. (일반화 하고 있다 ㅋㅋ)

세심정에서 갈라지는 길이다.
지난 해에 왔을 때는 여기서 왼편, 문장대 쪽으로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 참..


뭔가 앞에서 사사삭~ 하고 움직여서 보니 뱀이다.
사진을 찍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천왕봉에 오르는 동안 곳곳에서 법주사 스님들이 일궈 놓은 밭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 이 높은데까지 와서 밭을 일궜네? 하고 생각했지만 그 의문이 풀리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법주사 승방의 겨울 양식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팻말을 보았던 것이다.
짜증스러워 더 이상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흉물스러운 철조망이며, 접근금지라는 난잡한 팻말하며..
절로 눈살이 찌뿌려진다.
속리산이 개인의 소유(그게 단체든 뭐든 국가 소유가 아니라는 관점에서)라는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

천왕봉 올라가는 곳곳에 밭이 있다. 부정적인 선입견 탓일까 몹시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상환암 쯤 지났을까?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사이로 시야가 트인 지점이 있었다.
사진도 좀 찍고, 물도 마시고.. 잠시 한숨을 돌린다.

형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너무나 멋진 풍광!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법주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정말 너무 험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를 정도로 중간중간 길이 끊겨 있었고, 그나마 있는 길도 엄청 험했다.
양갈래 길이 나올 때 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오르다 보니 갑자기 길이 끊기고 계곡으로 막혀 있었다.
이런..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다시 되짚어 갈까 고민하는 중 형은 이미 사라졌다.
어디로 갔나 보니 길을 만들고 있었다. -ㅅ-;

저 멀리 희끗하게 보이는게 형이다.
플래시를 터뜨려서 그렇지, 실제로는 완전 깜깜했다. 좁은 암반 사이를 비집고, 넘고, 기어올랐다. 무슨 등산이 이래 -_ㅠ


사진을 찍기가 어려울 정도로 험한 숲을 지나(헤치고, 넘고, 뛰고... -ㅅ-) 간신히 정상적인 등산로로 진입했다.


정상적인 등산로라고 해 봐야 이 모양이다.
애초에 사람이 잘 안 다니는 코스인가 싶다. 요며칠 자란 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위 사진에 나온 건 그나마 양호한 편에 속한다.
걸으면서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몇몇 구간에서는 이게 길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그냥 길도 없는 야산을 타는 느낌이었다.
이거.. 국립공원 맞아?? 4천원이나 받아 먹었으면 관리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닌가!!(뒤끝 작렬이다)

천왕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 헬리콥터 착륙장이 나타났다.
마침 풍광이 좋아 사진을 몇장 찍었다.


드디어 고지를 밟았다.
정상에 선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은 아직 정상은 좀 더 남았다. ^^;)


이전 게시물에서 이미 올린 바 있는 파노라마 샷이다. 멋지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천왕봉에 도착했다.

차라리 그냥 숲이라고 해도 좋을 길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오르고 보니.. 좀 별로다.
문장대에서 느꼈던 그 가슴떨리는 풍광이.. 여기에는 없다.
천왕봉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아니면 여기가 최정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사진에 보이는 정도가 천왕봉 정상의 풍경의 전부다.
이건 뭐.. 수리산 정상이 더 그럴듯 하다.
화려하고 웅장한게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문장대에서 봤던 것과는 사뭇 달라서 좀 실망스러웠다.


천왕봉 정상에서 한 컷.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비가 형의 팔에 앉았다.


완전 역광인 상황이라, 내장 플래시를 터뜨렸다. (a900과 달리 a700에는 내장 플래시가 있다.)
그나마 내장 플래시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이 상황에서 역광 그대로 찍었다면 음영만 나왔을 것이다.
플래시를 사야 할까 잠깐 고민이 왔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분명 사면 책상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을 거란걸..
다음 카메라를 살 때는 반드시 내장 플래시가 있는 모델을 사야 할 것이다. ㅋㅋ


천왕봉 꼭대기에 원추리가 피어 있었다.
7월에 피는 꽃이 이제야 핀 걸 보니 여기가 높은 지대임을 실감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 4월에 운동을 하다 다친 무릎에 이상신호가 온 것이다.
한동안 안 아픈 것 같아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직 이런 등산은 무리였는가보다.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향하는 갈림길.

여기서 그만 내려가야 할까?
아주 잠깐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시 내려갈 수는 없지.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 좀 더 자주 쉬어주면 될 것 같았다.
덕분에 페이스는 뚝 떨어져서 조금 가고 쉬고, 조금 가고 쉬고를 반복해야 했다.
잠시 쉬어주면 좀 낫고, 다시 움직이면 몹시 고통스러웠다.

무릎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들고 있던 카메라를 형에게 주었다.
애꿎은 형은 가방에 카메라에.. 짐을 죄다 들고 있게 됐다.

비로봉이나 입석대 쯤 될 것이다. 표지가 없어 확실치는 않다.


봉우리 하나 넘고 나면 무릎이 아우성쳤다.
이렇게 쉴 수 있는 장소가 나오면 최선을 다해 쉬어야 했다. 무릎아... ㅠ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텐데..
무릎이 아프니 계단을 보자 마자 '망할...' 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니 나무 숲 틈새로 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다시 고민한다. 외장 플래시를 사야 할까. -ㅅ-ㅋ


아마 신선대 쯤이렸다.


법주사에서 천왕봉을 갔다가 문장대에 이르는 코스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물이 없다는 점이었다.

산에 가보면 으레 한둘씩은 꼭 있는 약수터 같은게 여긴 없다.
그리고 십수 km에 이르는 긴 코스에도 불구, 휴게소 같은게 하나도 없다.
상황이 이런 줄도 모르고 '물은 올라가서 사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500mm 짜리 물 두 통만 가지고 올랐었던게 참 큰 패착이었다.
다음에 혹 또 오게 된다면 - 반드시 물은 충분히, 넉넉히 챙겨야겠다.

점심도 안 먹고 물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무릎까지 아프다.
거 참.. 상황이 이렇게 딱딱 맞아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된거, 근성으로 버틸 수 밖에..


문장대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신선대 쯤 오니 휴게소가 보였다.
얼른 가서 500mm 짜리 물 하나를 샀다.
거금 2000 원. 그 꼭대기까지 지고 올라와서 그렇게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 목이 덜 마른 걸까? 이해는 한다만.. 비싸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안 먹을 수는 없어서 물을 하나 샀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칡즙 한번 먹어 봐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역시 2000 원짜리 칡즙을 두 잔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종이컵에 칡즙 한 잔 따라낸 것이 전부다.
슈퍼 같은데서 파는 레토르트 파우치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사진을 안 찍은게 참 아쉽다.

이런데 잘 안 다녀 보고..
잘 사 먹어 보지 않아서 원래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좀 너무한다 싶었다.
그래도 시중에 파는 칡즙보다 훨씬 진한 맛이 나긴 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그리고 마침내 문장대에 다다랐다.

여기까지 오니 다리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냐, 이 다리를 해서 산을 넘다니..


아프고 힘들지만 정상에 선 느낌은 역시 최고다.
이 순간은 고통을 잊는다.



문장대 정상에서 바라 본 풍광.
두번째 보는 거지만 정말 멋지다. 최고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문장대가 바람이 많이 부는지..
바람이 미친듯 불고 있었다.
사진 좀 찍고, 구경도 좀 하고 내려가자 했는데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어대 얼른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시간이 시간인지라 얼른 내려가야했다.
랜턴도 없는 상황에서 해가 지면 낭패니까.




바람이 하도 불어대 폼을 잡고 자시고 할 틈도 없다.




시원하다 못해 춥다고 느껴지던 바람.
새로 산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버릴것 같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게 법주사 쯤이렸다. 이제 보니 참 멀리도 왔다..


저 멀리 가운데 쯤 불쑥 솟은게 천왕봉이다.
저기서부터 산을 타고 여기까지 온거다. 이렇게 보니 멀리도 왔구나..



아쉽게도 문장대 정상의 풍광을 파노라마로 만들지 못했다.
그랬으면 정말 멋있었을텐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작년 늦가을의 문장대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보자.
http://www.kunner.com/960



누군가 주고 간 과자를 열심히 먹고 있다.


내려 오는 길에 다람쥐를 발견했다.
잘은 몰라도, 작년에 봤던 녀석의 친척이겠지? ㅋㅋ

작년에 봤던 그 녀석.


작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
또 유령(SAL 70-200G)과 관련된 슬픈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일은 생각날 때 마다 속 쓰린다. 내 소니 이 놈들을 그냥!!


하산)

산 속은 해가 일찍 진다.
일곱시 정도 밖에 안 됐는데도 어둑어둑해지더니 이내 한밤이 되어 버렸다.

더 늦었다간 큰일 날 것 같아 아픈 다리를 끌고 급하게 산을 내려왔다.


다시 세심정에 도착했을 때는 8시가 다 되어 있었고, 해는 이미 져 버린 후라 온통 깜깜했다.
가로등도 하나 없으니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작년 가을에 이미 경험해 봤던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근 한 시간을 또 걸어 내려가 차로 돌아 오니 아홉시가 다 되어 간다.
대략 8시간 반 정도 걸린 모양이다.

다시 올라 오는 길은 너무 피곤해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휴게소에 차를 대고 한 시간 넘게 기절한 끝에 다시 운전대를 잡고 출발해 집에 오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정말 꽉꽉 채운 당일치기 산행이었다.

몹시 지치고 피곤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이렇게 건강한 땀을 흘린게 대체 얼마만인가?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
이 무릎으로 더 이상 산행은 무리라는 걸 깨닫고 몹시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다음 주로 예정한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리산 종주는 오랜 숙원이었다. 이번 휴식기에 반드시 해야 할 것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너무 아쉽다.

다녀 온 후로 얼음 찜질에 약을 바르고 먹고, 온천 까지 했는데 아직 무릎에 약간 통증이 느껴진다.
멍청함에 대한 대가는 때로 좀 가혹하기도 하다.

무릎만 멀쩡했어도 이깟 산 정도.. 에휴.

여튼 얼른 회복해야겠다.
건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