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당권 분리에 대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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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정치의 이해" 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비록 온라인 수업이어서 지루하긴 하지만, 워낙 정치면에 관심이 많고 특히 대선이 다가오는 시점이라 수업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지난 주 과제였던 "대권과 당권의 분리에 대한 토론"에 제출했던 글을 옮긴다.
시간에 쫓겨 대충 휘갈기느라, 나중에 보니 좀 엉성하긴 하지만 평소에 가진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대권과 당권의 분리라는 말은 국내 정치 현실 하에서는 가당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하에 적혀 있다.
정치란 결코 우리와 먼 세계에 있는 이야기나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 잡설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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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과 당권이 갖는 의미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대권은 대통령선거, 당권은 국회의원 선거 - 즉, 총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한번,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한번 있다.
(재보선이 잦기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라고 말하기가 좀 뭐하긴 하지만.. 씁쓸한 얘기다.)
5년마다 한번, 그것도 후보로 선출된 후 반년 남짓한 시간 때문에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느니 마느니 하는것은 사실 좀 웃기는 일이다.
정치적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정당 내에서 - 어차피 지향하는 점이 같다면 그 반년 동안 당권을 누가 가지던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오를 바엔 한시적 시점에 한해 모든 권력을 집중하고, 대선을 치른 후 공과에 따라 당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잔 말이다.
분명 간단하지만, 이런 쉬운 논리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원인은 국내정치가 이념과 정책이 아닌 계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수 싸움도 결국은 계파간의 갈등일 뿐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총선이 바로 내년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잡은 끈이 박근혜냐, 이명박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명박 계파에서는 일단 당장 다가올 대선이 발등의 불이지만, 그 후 총선에 대한 대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공천권은 대통령이 아닌, 당권을 가진 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이 압도적인 표차로 박근혜를 이겼다면 이런 얘기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가 당권을 쥘 수 있으리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이명박이 웃으며 당권을 박근혜에게 줬다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를 앞섰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오히려 이명박
을 앞섰다.
정당 내에서의 지지도는 이명박보다 박근혜가 앞서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박근혜의 일부 지지자들은 경선 자체의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계파에서 다음 공천권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게 강력한 지지층을 가진 박근혜가 당권을 가지게 될 경우 이명박 계파의 의원들
은 다음 총선에서 금뱃지는 커녕 후보 등록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의원들이 가질 수 있는 선택의 경우의 수는 단 두가지.
박근혜를 몰락시키거나, 박근혜에게 붙거나.
박근혜를 몰락시킨다는 것은 당장 힘을 모아 대선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수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호락호락하게 쓰러질 박근혜도 아니고.
그렇다고 박근혜에게 붙는다?
그럼 처음부터 이명박 계파에 속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이명박이 당내 장악력을 모두 잃는다면 무슨 수로 대통령이 된단 말인가?
그리고 그가 대선에서 쓴잔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 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것은 비단 한나라당에만 속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아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던, 그 반대파가 당권을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 모두는 지난 대선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민주당을 버리고 새 정당을 창당한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는것 아닌가?
그리고 천년정당을 천명하던 열린우리당이 고작 몇년 사이에 무너진 이유도 어디에 있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민심이 어쩌고 해도, 사실은 당권을 누가 갖느냐에 대한 철새들의 한바탕 세 싸움이었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 아니다.
대권과 당권에 대한 분리를 얘기하려면, 먼저 당내 계파 정치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념과 정책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할 요량이라면 따로 창당을 해야 옳다.
대권과 당권의 분리는 이미 이념이나 원리가 아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구시대적인 정치는 시스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이념과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그저 줄서기에 급급한 현실 하에서, 대권/당권 분리니 하는 얘기는 가당치도 않다.
차라리 줄을 설 요량이면 화끈하게 서야 한다.
대권과 당권을 몰아 주고 그 결과에 따라 확실히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후보인 유시민이 신당 대통합 과정 중에
했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국민의 정부는 긍정하면서 참여정부는 부정하는 세력과 둘 모두를 긍정하는 세력이 한마당에 모여 국민의 뜻을 물읍시다.
복잡하게 다투지 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같은 날 오전에 통합결의 전당대회를 열고, 그날 오후에 시민사회 신당창당에 당대당 통합으로 모두 합류하는, 소위 "원샷 대통합"을 합시다.
그렇게 한 다음 국민경선을 해서 누가 이기는지 겨루어 봅시다.
그렇게 해서 이 국민경선에서 승리하는 후보의 정책노선을 대통합신당의 정책노선으로 정합시다.
대권 당권 분리니 계파 안배니 하는 논란은 집어치우고, 당권과 차기 총선 공천권까지 모든 권한을 승리한 후보에게 맡깁시다.
화끈하게 승부를 냅시다.
꼼수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합시다.
...
"
결과에 겸허히 승복하겠다면서도,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는 박근혜나,
두 마음을 품은 채로 경선에 임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후보들이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원하는 것이 권력 그 자체인가, 아니면 보다 나은 정치를 하기 위함인가를 말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건 희대의 코미디라 생각하면서도 박근혜와 그 일파의 움직임에 대해 고운 눈초리를 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때문이다.)